“CG로 만들 수 없는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
2017-06-01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 겸 사장
JTBC 뉴스룸 앵커로서 대학생을 비롯해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와 존경을 받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손석희 JTBC 사장. JTBC가 비록 재벌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사 계열사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및 대선 정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한 데는 오로지 진실을 규명하려는 손석희 사장의 강직한 언론철학이 자리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이후 조기에 치러진 이번 19대 대선에서 손 사장은 자칫 분열과 반목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는, 각 후보들의 인터뷰와 토론회를 진지한 민주주의 실현의 공간으로 재설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사장은 지난 5월 13일, 커뮤니케이션 학자들로 구성된 한국소통학회(회장 남인용) 학술대회의 ‘대선정국과 선거보도’에 관한 강연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자세와 시대정신에 대한 소신, 그리고 대선방송에서의 고뇌의 순간들을 가감 없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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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5월 13일)은 제가 JTBC로 온 지 4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특히 이번 대선정국에서 저와 함께 일했던 JTBC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도 학계에 몸담았지만, 오늘은 복잡한 진단보다는 핵심 키워드 몇 개를 중심으로 순전히 현업 책임자의 입장에서, 이번 대선정국과 선거방송에 대해 느낀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입니다. 선거 정국에서 인터뷰는 별 볼 일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선거방송에서는 토론회 이전에 다른 방송사들에서 다양한 포맷으로 후보 몇 사람을 앉혀놓고 검증하는 형태로 진행됐지만, 저희는 1:1 인터뷰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그 방식이 나름대로 후보를 검증하는 데 유효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언론 학술단체에서 인터뷰 대상 기준을 정해줬으면 싶었는데, 저희는 원내교섭단체(정당소속의원 20인 이상) 소속 후보 중에서, 지지율 5% 이상 후보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심상정 후보가 제외됐었습니다. 하지만 (주요정책 어젠다에서) 심 후보가 관심인물로 떠오르면서 나중에 이슈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심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데 왜 나왔느냐”는 거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답변했습니다. 심 후보의 그런 점이 이번에 높은 지지도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반면 탄핵정국이었던 지난해 11월 28일에 만난 문재인 후보는, 신중모드로 일관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즉각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문 후보는 답변이 아직 준비가 안 됐는지, 즉각 답변하면 “문재인이 자신의 당선을 확신한다”는 식의 비판을 우려해서인지, “지금 그 이야기는 시기상조다”라며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더군요. 아마 그쪽 캠프에서 관련입장을 전하지 말라고 한 걸로 보였습니다. 한 보도에 의하면, 제가 같은 질문을 9번이나 했다고 하는군요.
제가 인터뷰에서 중시하는 것은 의외적 답변입니다. 2007년에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도전했을 때 사기혐의를 받은 BBK 유착설로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당시 BBK 전 대표로서 횡령죄로 구속된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을 기억하실 겁니다. 에리카 김이 이 후보의 BBK 유착설과 관련해 LA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취소했어요. 그런데 당시에 제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 <시선집중>의 갓 입사한 AD가 ‘혹시’하는 마음으로 전화했는데 우리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거예요. 졸지에 다음 날 아침에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원래 15분을 할당했다가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 40분 넘게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밤, 제가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MBC TV의 <100분 토론>에 참석하기로 했던 한나라당 측 패널들이 불참을 통보해왔습니다. 아침에 에리카 김과 가진 40여 분의 인터뷰가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로 <100분 토론>이 결방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1년 9월 초, 박근혜 후보와 가진 인터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선이 12월인데 박 후보 측에서 갑자기 인터뷰하겠다는 연락이 왔길래, 저는 과거사에 대한 입장변화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사전에 보낸 질문서에서 과거사와 관련된 질문을 하겠다고 말했고, 박 후보도 그와 관련해 이야기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바뀐 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던 끝에, 인혁당 관련 질문을 던졌는데 판결결과에 대해 인식이 전혀 잘못된 답변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자면 박 후보를 괴롭히기 위해 그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인식이 전혀 바뀌지 않은 박 후보가 너무 안이하게 답변하는 바람에 그의 지지율이 급락했습니다. 박 후보 캠프에선 상당히 긴장했고, 저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습니다. 현재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어느 분이 1주일 후 저와 만났는데, “시간을 1주일만 되돌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그 인터뷰가 그 정도로 타격이 컸습니다.
19대 대선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문재인 후보와의 인터뷰에 이어, 안희정 후보와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그의 ‘선의’ 발언이 나온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후에 경선에서 떨어진 안 후보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타격이 컸다고 하더군요. 또, 저는 국민의당 선대위원장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무척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JTBC가 ‘안까방송’이라고 말입니다. ‘안철수 까기 방송’이라고요. 분명하게 말하지만, 저희는 ‘안까방송’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 후보 쪽 지지자들로부터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었는데, 제가 사과까지 했습니다. 홍준표 후보와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습니다.
누구와 어떤 순서로 인터뷰 할지 고민
현업에 있는 사람으로서, 대선정국에서의 인터뷰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철이 시작될 때마다 보통 두세 달 전부터 저희는 인터뷰를 누구와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인터뷰 질문의 난이도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질문의 농도나 난이도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질문이 쉬워서 답변이 잘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보충질문이 잘 안 들어가고, 질문이 애초에 어려우면 계속 질문이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데, 결국 난이도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죠. 나중에 오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는데, 제가 신이 아니고서는 그것까지 조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토론과 관련해서는, 대개 언론학자들이 그 영향력이 별로 없다고 지적해왔는데, 이번에도 그랬나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누가 제일 득을 봤죠?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토론의 영향력이 득표의 차원으로 연결됐는지 궁금해서입니다.
4차 토론에서 동성애 논란이 있었는데,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토론 이후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아쉽지만 말입니다. TV토론을 통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요. 심 후보를 두고, “어음은 받았지만, 수표는 못 받았다”는 표현이 만들어졌지요. 문 후보는 어떤가요? TV토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표를 잃지 않았다고요? 문 캠프내부에서도 문 후보가 토론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그러면 안 후보는요? ‘갑철수’, ‘MB 아바타’라는 게 어떻게 회자될 수 있었죠? TV토론에서 홍 후보와는 “얼굴 안 보고 토론하겠다”고 해서 홍 후보로부터 ‘어린애’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죠.
‘귀여움의 코드’로 이득본 홍 후보
토론에서 홍 후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검사 출신이고 자기가 늘 조서를 만들어왔기 때문인지, 억지스러운 면도 물론 있지만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100분 토론> 때는 자료를 ‘이 만큼’ (손바닥을 20cm 정도 벌리며) 가지고 왔었죠. 그 분은 뭐랄까,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우기는 데 귀여움의 코드가 있었습니다. 이건 한국소통학회에서도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배우 박중훈 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좀 있는데,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박중훈 씨가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이 뭔지 아냐고요. 답은 귀여움의 코드였습니다. 박중훈 씨가 대표적으로 그렇죠. 여러분도 한번 주위를 둘러보세요. 귀여움의 코드가 전혀 없는 사람은 오래 못 간다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들은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생각해보니 홍 후보가 예전부터 귀여움의 코드가 있었고, 최근 그 코드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토론으로 홍 후보가 득을 봤다면, 4차 토론 이후였을 겁니다.
제 생각이니까 참고만 하세요. 3차 토론까지 워낙 네거티브가 많았기 때문에 4차 토론은 좀 다르게 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형식도 달리하고, 스튜디오를 원형으로 만드는 등 돈 좀 들였습니다. 저희가 사실 그만한 스튜디오가 없어, 원래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는 300평짜리 공간을 원형으로 디자인하고 객석을 만들었습니다. 토론다운 토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형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환경이나 형식의 일정부분, 혹은 상당부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토론의 경우, 끝까지 쭉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게 합니다. 그런데 5명이 일렬로 마주 보게 하면 2:3이 되니까 모양이 아쉽고, 그러니 그냥 둘러앉자. 그런데 이 경우에는 토론자가 방청객 피드백에 상당히 영향을 받잖아요. 예전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경우에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방청객 중에 자신에게 안 좋은 인상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꼭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위축되니까 싫다는 거겠죠. 그래서 토론 준비할 때부터 이 두 가지의 자리배치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안 후보 쪽에서는 방청객을 두는 것과 관련해,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이 말하고 있을 때 방청객들이 인상을 쓰거나 졸고 있으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하더라고요.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저는 좀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는 저희 방식을 밀어붙였는데 그쪽에서는 저를 비토했습니다. 저희에 대해 ‘안까방송’이라고 오해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살짝 기분이 상해서 그때까지의 보도내용에 대해 통계를 내봤어요. 그랬더니 안 후보 쪽에 비판적이었던 보도가 두 개 정도 더 나갔더군요.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안 후보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의 보좌관 사적 사용에 대한 보도였어요. 결국, 김 교수가 사과까지 했습니다. 안 후보가 사과한 건 아니지만 그 이상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때 국민의당이 조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일부러 그걸 찾아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안 후보의 전 보좌관과 우리 방송국 기자가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둘이서 이야기하던 중에 전 보좌관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줬던 거예요. 그렇게 우리 기자가 김교수 문제를 알게 된 상황에서 기사를 내지 않는다면, 전 보좌관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JTBC가 취재까지 다 해놓고 보도를 안 한다고 비난하겠지요.
안 후보 측의 반발로 인해 네 번째 토론이 우여곡절을 거쳤습니다. 안 후보 측은 “손 아무개가 진행하면 안 한다”고 말했고, 저도 기분이 상해서 후배들한테 “내가 진행을 안 할 테니 외부에서 교수님을 모시자”고 밝혔으나 관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안 후보 측에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는 후보는 빼고 간다고 통보했어요. 그런데 걱정됐던 건, 안 후보 쪽에서 안 나오면 문 후보 쪽에서도 안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다른 후보들로부터 혼자 공격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 후보 캠프 쪽에서 “안 후보가 안 나오면 빼고 갑시다. 우리는 나오겠습니다”라고 나오더군요. 그쪽에서도 다 전략이 있었겠죠. 그런 것은 단시간 내에 계산이 끝나는 거예요. 그게 늦으면 유능한 캠프가 아닌 거지요. 만일 안 후보가 안 나온 상태에서 문 후보가 공격을 받는 것과 안 후보가 혼자 안 나온 것과 뭐가 더 ‘네거티브’하게 작용할 것인가. 그런 건 금방 계산이 나오는 거고요. 그게 30분도 안 걸리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밀고 나갔던 거고요.
대개의 경우 대선에서 토론은 대략 1~2%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번에는 손해 보는 사람, 손해 안 보는 사람, 득 보는 사람이 명확하게 갈린 듯 싶습니다. 매우 연구 대상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특징적인 측면 때문에 토론이 좀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방식 등 많은 것들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영향을 끼친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지나친 규제가 있는데 그런 점은 개선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섯 사람의 후보가 모여 룸 미팅을 하면, 일이 되는 게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대선토론을 소개하자면, 2007년 열린우리당 후보경선 토론회였습니다. 당시 후보경선 <100분 토론>에서 정동영 후보와 손학규 후보가 나왔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론 룰을 없앴습니다. 이번에 스탠딩 토론을 놓고 말이 많았는데, 그때 처음 서서 토론했어요. 그냥 형식으로만 서서 하면 사람만 피곤하게 하고,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그때는 모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룰이 없는 자유토론이었어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진행자이자 사회자 입장에서는 토론을 즐기기 어려운데, 그때는 즐겼던 것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번 토론의 1부를 조금 즐겼고, 재밌게 한 주인공은 유승민 후보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토론에서 규제가 완화됐으면 좋겠고, 학회에서도 계속 요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업에서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반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정책토론이 잘 됐느냐를 두고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책토론만 하면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방송사가 주체가 되면 시청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자화자찬을 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4차 토론은 가능한 한 정책토론을 가지고 가자는 것이었어요. 이게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1부였고, 제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보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 중 하나는 ‘팩트체킹’이었습니다. TV토론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체크하는 방식이었지요. 원래는 방송자막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룸 미팅에서 다섯 후보가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 한 우리가 순진했던 거죠. 그래서 페이스북 등에서 실시간 팩트체크를 하고, 사후 팩트체크까지 했습니다. 팩트체크 강화로 홍 후보가 쏙 들어가 버렸었어요. 모든 후보가 홍 후보가 말할 때마다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죠. 앞으로도 선거에서 팩트체크를 매우 중요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이번 선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팩트체크를 기존에 하던 것 외에 대선 특집을 따로 운영해서 꼼꼼히 팩트체크 했습니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공세적인 가짜뉴스에 무력감 느껴
이번 대선 정국의 또 다른 키워드는 가짜뉴스입니다. 너무 많이 쏟아졌고 저한테도 쏟아졌습니다. 탄핵국면에서부터 가짜뉴스가 공세적이어서 저는 굉장히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방송에서 허구한 날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이다”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일 “아니에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과거처럼 집단지성이 작용하면 좋을 텐데, 요즘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쪽이 더 집단화돼 있어서 점점 그럴듯하게 페이크뉴스를 뉴스처럼 만들곤 합니다. 이건 과제로 남겨놓을 뿐, 현재로서는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희가 했던 거의 모든 뉴스가 가짜뉴스의 대상으로 올랐습니다. 저에 대한 모든 음해는 100% 가짜입니다.
이번 대선에선 프레임 싸움도 치열했습니다. 아마도 민주당 경선 때 나온 적폐청산과 연정이 첫 프레임 싸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외에 다른 프레임으로 나온 것은 없었다고 봅니다. 대선 본선에서도 처음 나온 프레임은 적폐청산과 연정, 그리고 곁다리로 나온 게 선의였습니다. 문 후보 쪽에서는 적폐청산을 처음에 들고 나왔다가, 상대를 모두 적폐로 보느냐는 논쟁 끝에 적폐를 거뒀습니다. 나중에 다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적폐를 내세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MB시대 적폐까지 이야기했죠. 그 다음에 홍 후보가 나서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유승민 후보가 내세웠던 ‘진짜 보수’는 사실 좀 힘이 미약했던 것 같고) 진보 대 보수 프레임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진보진영이 불안해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상당 부분 보수 세력이 있고 그것이 지난 선거에서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홍 후보는 당연히 그것을 노렸던 것 같습니다. 홍 후보는 저와의 인터뷰에서 상당히 전략적으로 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말로는 부산에서 열차타고 올라오면서 생각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홍 후보는 얼마든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후보들 간의 프레임 전쟁 치열
이미 다른 분석가들이 이야기했지만, 홍 후보가 자신의 목표를 보수 세력을 일정 부분 되찾고, 대통령 당선까지는 어려워도 여당을 끌고 나가는 데 뒀다면, 저를 첫 제물로 삼겠다는 건 상당히 좋은 전략이었던 듯합니다. 저는 보수 쪽에서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언론인 조갑제 씨가 제가 수갑 찬 사진을 피켓으로 들고 나온 모습을 직접 봤어요. 저는 촛불집회도 나가고 태극기집회도 나가봤어요. 취재를 해야 되니까요. 물론 후배들이 취재를 해오지만 제가 모르고 앉아서 할 수는 없잖아요.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쓰고 나가면 아무도 몰라요. 경찰은 알아보더라고요. 경찰이 사회부 기자한테 연락해서 “손 사장님 나오셨던데 나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역시 경찰이 세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JTBC와 저에 대한 공격이야말로,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데 가장 유효한, 그리고 가장 즉발적인 방법이라고 홍 후보는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래서 홍 후보가 그 인터뷰를 열심히 준비했다고 저는 생각한 것입니다.
그 이후 물론 홍 후보가 도지사를 사퇴한 직후였기 때문에 일이 막 풀릴 때였는데, 그 때 첫 저격대상을 저로 삼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세우지 않았을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본인은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제가 그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요. 홍 후보가 저와 친분이 있다고 했잖아요? 실제로 친분이 있어요. 몇 번 밥도 같이 먹었고. 그래서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저와의 인터뷰를 이용하지 않았나. 그리고 홍 후보 입장에서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레이밍이 시작됐고요. 그 프레이밍은 이후 선거일까지 지속적으로 끼어들었습니다. 많은 선거전문가가 그 프레이밍 전략이 유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한 가지 준비한 것은 ‘디지털 뉴스룸’이었는데, 요즘에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디지털 뉴스룸에 집중을 하더라고요. 저희는 디지털 뉴스룸을 꾸준히 강화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디지털 뉴스, SNS라던가, 포털이라던가 하는 부분들은 타 언론사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디지털 뉴스룸이 이번에 제 역할을 한 듯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팩트체크라던가 이런 것들이, 뉴스가 끝난 다음에 바로 ‘소셜 라이브’라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서 나가거든요.
저는 1984년에 방송사에 입사했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는 제가 ‘졸병’이었고 뭣도 모르고 치렀는데, 1992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합당’으로 당선이 됐을 때 고민이 됐어요. 1987년 선거도 그렇고 그 이후도 그렇고, 언론이 언론다웠는가 하는 고민. 그런 것들이 겹쳐지면서 그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은 대선 날의 선거방송을 보고 저는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개인적으로 큰 자괴감이 있었어요. 부끄럽다고 할까. ‘당일 이런 불꽃놀이 폭죽쇼를 하면 선거방송을 다 한 거냐’, ‘당일의 방송만이 선거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건 1992년 제가 다른 매체에 칼럼을 쓸 때도 똑같이 썼어요. ‘부끄러운 짓이다’라고. 그래서 우리는 다른 콘셉트로 가자, 어차피 선거는 시민들이 만들어 낸 건데,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야지, 선거에서 시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를 담아내야지, 그 엄청난 컴퓨터 그래픽으로 뭘 담아내느냐….
“내 영혼의 깨끗함을 위해 투표”
선거가 끝난 후 제가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낼 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방송하는 여섯 시간 동안 몇 사람의 시민들을 인터뷰했는데, 양평에서 온 한 여성분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다가 식사는 뭐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어요. “저는 오늘 우비도 안 입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셨습니다. 밥은 둘째 치고. 내 영혼이 깨끗하게 유지되기 위해.” 그게 그날 방송의 백미였죠. 저는 이걸 지켜보고서 직원들에게 “이런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 컴퓨터그래픽은 이런 거 절대 못 담는다. 바로 이거다. 선거라는 게 시대정신이 있는 거고, 그 시대정신을 담아낸다면 그건 CG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거방송에서 인터뷰나 토론방식의 개선이 필요하고, 스피디한 중계방송과 시시각각 변하는 지지율을 쫓는 여론조사, 그리고 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고화질의 화려한 이미지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유권자와 시민들의 입장에서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노력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손석희 JTBC 사장이 지난 5월13일, 서울 상명대에서 개최된 2017년 한국소통학회의 봄철 학술대회에서 특별 강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주최 측과 강연자의 승낙을 받아 게재합니다.
정리·주동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대학생 인턴기자.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4학년으로, 글쓰기를 통해 ‘세상 속의 나’를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