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에 대한 배신

2017-06-01     나이케 테스크슨

안드레아 도리아는 1991년 8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선택한 날짜다. 암 투병 5년째인 1990년 말, 안드레아는 병원 치료를 포기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거야.” 그녀는 병원을 떠나면서 간호사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겼다. “1년 간의 지루한 화학 요법보다는 한 달간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을 인정해 준다는 뜻으로 이 편지를 가지고 계세요.” 안드레아가 가까운 이들에게 보낸 서신들은 25년간 해적판 팜플렛 형태로 전해졌지만 이를 모아 정성스럽게 편집한 <N'드레아>(1)는 이 첫 번째 편지로 시작한다. 

저자 안드레아는 1985년 프랑스에서 탄생해 ‘낡은 세상’, 그 세상의 산물인 급여생활과 부르주아의 삶을 거부한 ‘오스 캉가세이로스’라는 단체의 회원이었다. 안드레아는 살기 위해 훔치고 거부하기 위해 마음대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특이한 회원들에 속했다. “사회 속에서 여러 고비를 통해 죽음에 관한 생각과 분명히 마주치면서 그 생각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1985년, 그녀는 마치 집게발을 자기 가슴까지 올리는 게처럼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암 선고 앞에서 느꼈던 외로움, 종양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정작 환자를 존엄하게 대우하지 않고 고립시켜 통제하는 의학에 느꼈던 분노를 훌륭한 필체로 묘사한다.

레이저 요법, 화학 요법, 호르몬 요법…. 안드레아는 골반 부위에도 ‘죽을 만큼 괴로운’ 치료를 받지만 모든 것이 일절 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 같은 치료들로 근육은 오히려 영원히 경직됐다. 상황이 악화되기만 하자 안드레아는 병원으로부터 마지막 가능성을 믿고 한 치료를 시험적으로 받아보라는 권고를 듣는다. 부작용이 많은 사노피 그룹의 항암약 치료. 실험실 쥐가 되라고? 안드레아는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는 쪽을 택한다.

“다시 자유를 찾을 거야.” 그녀가 친구 벨라에게 쓴 편지다. “나는 철저히 파괴됐어. 이 순간 나를 위한 최고의 존엄한 행동은 내 야심을 실천하는 거야. 온전한 나 자신을 되찾고 산산조각 나 흩어진 나의 조각들을 전부 모으는 거야. 소외감을 안겨준 병원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통제 됐지. 이 모든 것과 완전히 관계를 끊어야 했어. 이제 내 삶을 되찾았어.” 존엄성이란 이름 앞에서 만일 우리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의 안드레아는 암의 원인을 분석하기 보다는 보이는 증상만 치료하려는 의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은 이미 유익한 책 <암을 유발하는 사회>(2)에서도 이뤄진 적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질병을 일으키는 실제 원인(환경오염, 일터의 유독 물질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석유화학 분야, 산업화된 농업, 원자력, 제약 회사의 로비가 얽힌 ‘암 산업’을 어떤 식으로 중시하는지 들려준다. 그 결과 암에 걸릴 위험은 개인의 손에 달려 있고 암에 걸린 것은 개인의 유전자, 개인의 생활 습관 때문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다. 환자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이 같은 정서를 설명하면서 안드레아는 자신에게 “환자 분이 암을 키웠습니다”라고 말한 의사를 예로 든다.

마르탱 빙클러가 최근 집필한 책 <흰 가운을 입은 야만인들>(3)은 의사들이 환자들을 어린애 다루듯 하는 권위적인 태도가 자세하게 묘사된다. 의사이자 수필가인 저자는 환자들, 그 중에서도 남자보다 치료를 훨씬 많이 받는 여자 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설명하고 전하기에 바쁜 임상 의사들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빙클러는 의학치료를 거부하거나 부인과에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대동해가거나, 필요하다면 법원에 소송을 걸라고 한다. 매뉴얼만을 강조하는 병원에 맞설 수 있는 좋은 충고다. 


글·나이케 테스크슨 Naiké Desquesnes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역서로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등이 있다. 
(1) Andréa Doria, N'Dréa. Perdre ma vie est un risque plus grand que celui de mourir(N'드레아. 내 삶을 잃는 것이 죽는 것보다 위험하다), Éditions du bout de la ville, 바르셀로나, 2016년
(2) Geneviève Barbier, Armand Farrachi, La société cancérigène. Lutte-t-on vraiement contre le cancer?(암을 유발하는 사회. 우리는 정말로 암과 싸우고 있는가?), Points, 파리, 2007년
(3) Martin Winckler, Les Brutes en blanc(흰 가운을 입은 야만인들), Flammarion, 파리,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