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과 배신 사이 하위계급은 지금 분열 중

[Dossier]

2010-04-09     에리크 뒤팽

   어쩌면 현 금융위기는 정치와 지성의 무대 전면으로  서민층을 불러들이는 순기능을 발휘할지 모른다. 선거에서는 대거 기권표를 날리고, 풍자만화에서는 ‘편협한 자들’로 희화되는 서민층은 그동안 프랑스 국민의 과반수를 차지하면서도 아무런 이목을 끌지 못하는 뒷방 신세로 인식돼왔다.

   한판 통쾌한 폭로전이 연출될 뻔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현행 경제 시스템의 폐해가 백일지하에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물론 경기침체와 그로 인해 발생한 여러 사회적 비극이 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 체류자 탓이라는 허황된 논리는 이제 설득력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사회학자 알랭 메르지에(1)는 “계급구조의 상위에는 재계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업 종사자나 대기업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추상적인 성격 탓인지 상위계급이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두 번째 계층은 각양각색의 ‘얼굴 없는 범인들’이다. 마지막으로 소외와 빈곤이라는 ‘지옥’행이 선고된 저주받은 하층민이 있다. 이 마지막 부류는 유독 서민층에게 다른 권력계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체적인 얼굴을 부여한다. 극빈층(2)을 두려움과 적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각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제위기 ‘지옥행 열차’ 승객
 프랑스노동총연맹(CGT)에서 활동한 마리즈 뒤마는 “최근 사회 불평등에 대한 체감지수가 높아지면서 이웃 간에 서로 등지고 살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이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라고 지적한다. 그녀는 또 “점점 결속에 애를 먹고 있다”며 파산 직전의 기업에서 출구도 없이 처절하게 투쟁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개탄했다. 이제 더 이상 밥그릇 싸움이 문제가 아니다. 퇴직수당이라도 잘 챙겨보려는 게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때론 벼랑 끝에서 궁서설묘(窮鼠齧猫)식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마르셸 그리냐르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 사무총장이 전국의 노동자를 만나고 다닌 뒤 같은 진단을 내렸다. 그는 “전보다 통한과 환멸을 느끼는 노동자가 많다. 분노가 표면화되는 일은 드물지만 저변에 피해의식이 팽배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상궤를 벗어난 무의미한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감정과 “억제된 분노”가 한데 뒤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그 역시 노동투쟁을 ‘결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회학자 메르지에는 “서민층이나 하위 중산층은 사회 결속이 점차 약화되는 현상 앞에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능동적 연대 수당’(RSA·Revenu de Solidarité Active, 최저소득보조금(RMI)이나 편부모보조금(API) 수혜자가 저임금 고용으로 복귀했을 경우 수당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수령할 수 있게 한 일종의 고용복귀 장려정책으로, 추가재원 마련을 위한 세금 인상이 문제된 바 있다-역자) 등을 필두로 몇몇 노동법 개정 노력이 있었지만, 서민으로 대표되는 노동취약 계층과 그 상위 계층 사이의 단절을 오히려 제도화하는 결과만 낳았다. 고용불안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중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서민층’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계층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는 정작 서민층 자신이 스스로를 서민층이라 여기지 않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서민층을 규정하는 일은 간단해 보인다. 통계 조사에서 서민이란 공장 노동자(2006년 프랑스 통계청(INSEE)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의 23.2%)와 사무직 노동자(28.6%)로 구성된 ‘비간부 실무 근로자’를 의미한다. 경제활동인구의 51.8%인 프랑스 국민의 다수가 서민층인 셈이다.
하지만 서민층을 규정하는 일이 항상 명료한 것만은 아니다. 사회학자 올리비에 슈바르츠는 세 가지 기준에 근거해 서민층을 규정한다. 그는 △사회 및 직장 내 위상이 낮고 △경제적 자원이 넉넉하지 않으며 △문화 자본(3)에서 소외된 계층을 서민으로 보았다.

 사회적 결속 약화 가속
 통계학상의 서민층은 당면한 현실 조건에 따라 한층 더 복잡하게 미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선 시간제인지 정규직인지, 또는 불안정 고용인지 아닌지 등 고용형태가 서민층을 세분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같은 서민층이라도 직능 수준이 천차만별이 되는 추세는 서민층을 동일한 기준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사회학자 세르주 포감은 “비숙련 노동자는 직업에 대한 낮은 만족도와 고용 불안정성이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며, 이를 ‘박탈형 통합’(Disqualifying Integration)(4)이란 용어로 함축해 설명했다. 특히 세계화 여파로 사양길에 접어든 부문에서 활동하는 일부 ‘노동자 계급’은 자신을 ‘루저’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계층들의 경우 “부정적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포감은 분석한다.
고용상황뿐 아니라 주거지도 서민층을 세분화하는 요소다. 같은 서민이라도 시내의 공공임대주택단지(HLM)에 사는지, 교외의 집단주택단지에 사는지, 또는 수도 근교의 단독주택에 거주하는지, 좀더 외진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지에 따라 차별화된다. 지리학자 크리스토프 귈뤼와 크리스토프 누와이에는 ‘도시 및 농촌 외곽 지역으로의 서민층 이동 문제’에 천착하면서, 서민층이 외곽 지역으로 이탈하는 현상은 내 집 장만을 위해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5)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도시이탈 현상’을 부추기는 진짜 요인은 도시 내 심화되는 임대주택란과 부동산값 상승이다.

중산층 아니다, 하층은 더 아니다

가엘 브뤼스티에와 장 필리프 윌랭은 신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외곽으로 이주하면서 이들에 대한 온갖 오해와 편견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그야말로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보수주의와 편견이 뒤섞인 이상한 시각이 이 계층에 대한 낙후된 고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들을 학력수준이 낮고, 유색인종에 유난히 적대적인 알코올중독자로, 현대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손사래를 치는, 보수주의적이고 순응적인 계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 뒤에는 프랑스 엘리트 계층(6) 일부의 프롤레타리아 계층에 대한 깊은 혐오증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일한 서민계층 사이에 거주 지역이 차별화되는 추세는 사회동학적 차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때론 절박할 정도의 사회적 신분 상승 노력에 의해 오늘날 중서민이 ‘집단주택단지’를 버리고 ‘개인주택단지로 몰려드는 프랑스 사회의 기현상’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중서민’을 타인을 배려하는 데 인색한 ‘여유로운 백인’쯤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요즘은 이민자 가정도 개인주택단지 이주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전에 살던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는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이 많이 모여들면서 주거환경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외국인 거주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7)로 서민단지를 떠나 개인주택으로 이사 오는 이민자도 생겨났다. “중서민은 무엇보다 남들과 비슷한 평균의 삶을 원한다. 내 집 장만의 꿈을 실현하고, 자녀에게 좀 더 나은 교육 혜택을 주기를 바란다”(8)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들은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층민과는 더욱 다르다고 인식한다.
중서민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런 태도는 올리비에 슈바르츠가 말한 ‘삼각구도형 인식’(Triangular Conscience)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에 따르면, “중서민은 본래 상위계급과 하위계급이 존재한다면, 자신을 샌드위치처럼 두 계급 사이에 낀 계층으로 인식한다. 지도층, 위정자, 유력가 등이 상위계급이라면, 하위계급은 사회보조금으로 생활하는 빈곤가정이나 사회 동화를 거부하는 이민자, ‘인간쓰레기’(9)로 살아가는 청년층 등을 의미”한다.
사회가 다양하게 계급화되면 무엇보다 ‘계급이탈’에 대한 강박관념이 팽배해진다. 카미유 푀니에 따르면, 35~39살 프랑스 국민의 25%가 ‘계급하락’ 현상을 겪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사회적 신분이 하락한 동일 연령층은 전체 인구의 18%에 불과했다. 그는 또 “부모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청년층이 점점 늘고 있다”며 “주류 소비 패턴에 맞게 생활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말한다. 푀니는 이들을 ‘희생된 세대’라 표현하며 “예전과 달리 학력은 높지만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10) 계층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계급이탈이란 부모의 사회적 위상과 격차를 보이거나 본인의 학력수준에 합당한 계층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연구자가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스테파니 베르메에르시는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화두가 유행하는 저변에는 몇몇 인텔리 계층의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지적하며 “계급이탈은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통계분석센터(11)의 연구 결과도 세대 간 계급이탈이 절대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연구소는 2003년 30~59살 국민을 대상으로 계급이탈 현황을 조사했는데, ‘계급상승 인구’(39.4%)가 ‘계급하강 인구’(21.9%) 비율보다 2배 높게 나타났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계급이탈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계급 유지에 대한 강박관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프랑스 사회는 계급투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지위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정비사 겸 운전기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생활을 청산하고 체신청 간부가 된 어머니를 둔 뒤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자신이 속한 계층 안에서만 교류하고, 서로 다른 계층 사이에 교류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증언한다.

계급 추락 강박증
 생활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계급 유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경제학자 에리크 모랭은 “학력수준이 높은 부유한 가정이 교육과 부동산 시장에서 이토록 적극적인 적은 없다. 서민층을 멀리하기 위해 이렇게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주택과 학교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결이 아닌 회피 구도가 주를 이룬다. 서로 다른 계급을 멀리하는 현상은 비단 상위계급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 계급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크리스토프 귈뤼는 요즘 센생 드니의 서민지구를 떠나 센에마른의 개인주택단지로 이주하는 가정을 보면서, “하위계급을 피해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에 표를 던지는 것보다 더 심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날 학교는 계급차별의 최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 교육수준이 평준화되면서, 슈바르츠의 표현대로 서민층 일부에서 ‘인종 격차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베르메에르시는 극성스러운 부모들의 ‘과열된 교육열’을 지적한다. 최근 기업 내 연공서열 정책이 철폐되면서, 모든 인생의 성패는 초등교육 시기에 판가름 난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모두 교육 실패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회통합의 이상이고 뭐고, 공교육 대신 무조건 값비싼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가는 형국이다. 주택과 교육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회통합 이상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말로만 사회통합이지 사회통합을 실제로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 게다가 사회학자 프랑크 푸포와 지리학자 장 크리스토프 프랑수아가 파리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12)가 보여주듯이, 학구제 철폐는 계급 분리 현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주택과 교육, 계층 분리 심화

귈뤼는 “좌파정당이 서민층에게 남긴 상처의 앙금이 오래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회당원으로 활동하는 가엘 브뤼스티에는 “사회당의 지도부는 세계화나 금융글로벌화에 경도된 엘리트 계층이 주를 이루는데, 이들은 민간 분야에서 일하는 저소득 노동자에게서 너무 유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13)
2007년 대선은 서민층의 정치적 분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민주택단지가 사르코지에게 대거 반대표를 던졌다면, 파리 외곽 개인주택단지는 대중운동연합(UMP)의 표밭을 형성했다. 센생드니에 위치한 고네스 개인주택지구를 대상으로 심층연구(14)를 한 결과, 전체적으로는 좌파정당을 지지하는 이 지역에서 ‘중서민’을 중심으로 우익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푀플리에 지구도, 1980년대와 1990년대 국민전선(FN)에 대거 표를 던진 이후 지난 대선 때는 사르코지를 지지하는 등 우파 성향이 도드라졌다.
사회학자 올리비에 마스클레는 “우파 지지 배경에는 교육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좌파 하면 우등생만 신경 쓰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교수나 교사라는 인식이 뿌리내려 있다”고 한다. ‘중서민’ 중에는 좌파란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 공공교통 노조라는 등식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교통노조는 교사만큼 파업이 잦다. 하지만 슈바르츠는 설문조사 답변과 달리 실제로는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진’ 버스기사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계급의식 자각시킬 정책 부재
 마스클레는 “중서민 계층이 질서를 기치로 내거는 좌파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한다. 2008년 시의회 선거에서 푀플리에 지구는 ‘치안’ 문제를 공약으로 내건 사회당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 사르코지 정책에 대한 실망은 지난 3월 UMP의 지방선거 참패로 나타났다. 하지만 서민층과 좌파는 화해하지 않았다. FN도 여전히 복병으로 매복해 있다.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예기치 않은 선전은 FN이 여전히 예전의 지지도를 회복할 저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7년 르펜 지지표가 UMP로 이동하면서, FN의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민생고를 가중하는 경제위기는 여전히 극우당에 유리한 토양을 마련해준다. 일례로 탈산업화의 타격이 심한 프랑스 북동부에서 극우당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전례 없는 기권 행렬이 연출됐다. 특히 서민지구를 중심으로 기권 현상은 도드라졌다. 귈뤼의 표현대로, ‘공공 영역에서의 유리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베르메에르시는 서민층의 ‘위축’을, 슈바르츠는 ‘변방화 위험’을 진단한다.
슈바르츠는 “경제위기로 서민층의 무력감과 피해의식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 말한다. 사회학자 아니 콜로발드는 그럼에도 서민층이 여전히  “정치인이 민생에 관심 가져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민층이 지금은 개인주의에 입각해 저마다 안락을 추구하는 데 급급하지만, 언젠가 개인주의 전략이 한계에 다다르면 다시 집단주의에 대한 열망이 회귀할 것이다.
그사이 서민층은 콜로발드의 표현대로 “서민을 대표하고 대변함으로써 상징적으로나마 서민 간 통합과 조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정책이 상대적으로 부재하는 현실”로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즉자적인 계급’과 ‘대자적인 계급’ 간 거리가 어느 때보다 멀게 느껴진다.  

<각주>
(1) 필리프 귀베르와 공저, <신분추락: 서민층에 대한 연구>, 플롱출판사, 파리, 2006. 각주가 없는 인용문은 작가 인터뷰.
(2) 스테판 보·미셀 피알루, <노동 조건에 대한 반성. 소쇼 몽벨리아르 푸조 공장에 대한 연구>, 파이야르출판사, 파리, 1999. 제라르 모제, <프랑스 서민층이 30년간 겪은 변화>. 장 로이킨·피에르 쿠르 살리·미셸 바칼루리스, <신계급투쟁>, PUF, 파리, 2006.
(3) ‘상류층, 하류층, 취약층: 서민의 사회학’, 아니 콜로발드와 올리비에 슈바르츠의 대담, <Vacarme>, 파리, 제37호, 2006년 가을. 프란츠 셜시스, 아르노 프로엔펠더, 크리스토프 드레, 나탈리 피조, <오늘의 서민층. 가정의 자화상, 사회학의 틀>, 라르마탕 출판사, 파리, 2009.
(4) 세르주 포감, ‘노동조건: 노동형 통합에서 박탈형 통합까지’, <Cités>, 파리, 제35호, 2008.
(5) 크리스토프 귈뤼·크리스토프 누와이에, <프랑스의 신사회격차 지형도>, 오트르망출판사, 파리, 2006.
(6) 가엘 브뤼스티에·장 필리프 위랭, <대중을 필사적으로 추구하다>, 부랭출판사, 파리, 2009년.
(7) 사회학자 에드몽 프레트세이유는 다수의 이민자 1·2세대가 외국인이 적은 지역에 거주한다고 밝혔다. ‘파리 내 인종 간 벽이 높아졌는가?’, <Revue franèçaise de sociologie>, 제50권, 파리, 2009년 3월.
(8) 마리 카르티에·이자벨 쿠르탕·올리비에 마세·야스민 시블로, <중서민의 프랑스. 파리 외곽 개인주택단지에 대한 연구>, 라데쿠베르트 출판사, 파리, 2008.
(9) 각주 (3) 참조.
(10) 카미유 푀니, <계급이탈>, 그라세출판사, 파리, 2009.
(11) 마린 브와송·카트린 콜롱베·줄리앵 다몽·베르티유 들라보·제롬 투르나드르·브누아 베리에, <계급이탈 측정: 새로운 사회현실에 대한 이해와 해법>, 전략분석센터, 파리, 2009년 7월.
(12) 장 크리스토프 프랑수아·프랑크 푸포, ‘장소의 의미, 주택과 교육에서 나타나는 계층 간 분리 현상‘, <Raison d’Agir>, 파리, 2008.
(13) ‘70년대 시각을 고수하는 사회당’, <르파리지앵>, 2009년 9월 14일.
(14) 각주 (8) 참조.

글•에리크 뒤팽 Eric Dupin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박스기사] 차별과 빈곤, 둘 다 괴롭다

“영국의 사회계층 간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며, 벌써 오래전에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는 문제다.”  영국 다문화주의 비영리기구인 ’러니미드 트러스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실린 내용으로, 언뜻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러니미드 트러스트는 계층 간 갈등에 대해 최근 새로이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카르탄 스베인슨은 러니미드 트러스트가 <누가 화이트칼라 계층에 대해 근심하는가?>라는 연구보고서(1)를 발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고 했다. 이 보고서는 “화이트칼라 계층을 대변한다는 모순과 가식으로 뭉친 지도층이 어떻게 그들을 논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연구 목적은 빈부 간의 실질적 대립을 다루는 것이었지만, 분석은 주로 차별 문제에 모아지고 있다. “화이트칼라 계층은 일련의 기준에 따라 차별받고 있는데, 이들이 쓰는 악센트나 생활수준, 식생활, 옷, 주로 찾는 장소 심지어 집주소와 이름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스베인슨은 더 이상 피부색에 의한 차별이 아닌, 위와 같은 요소에 의해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연구 보고서와 관련된 다른 연구로는 사회학자 웬디 보테로를 들 수 있다. 보테로는 불평등과 그 발생 원인에 대한 문화적 접근이 내재하는 위험에 대해 우려했다. 사회학자 버블리 스케그스는 영국 북부 지방 ‘화이트칼라 계층’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서민층에 대한 인식의 심각성을 논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받는 것이 괴롭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케그스는 중산층이 서민층 혹은 빈민층에 가하는 ‘상징적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려 했다.
<평등에 반하는 다원주의>(Raisons d’Agir·파리·2008)의 저자인 미국 출신 월터 벤 마이클스는 <런던서평>(2)에 러니미드 트러스트의 보고서에 대한 비판을 실었다. 마이클스는 인종차별 전문 ‘싱크탱크’가 계층 간 분석을 도입한 것은 신선하다고 봤으나, 윤리적인 잣대에 치우친 분석 태도를 비판했다. 보고서가 “서민층이 분노하는 원인은 계층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받는 경멸과 멸시 때문”이라고 분석한 부분에 대해, 그는 “계층 간 차별의 문제를 계층에 대한 선입견 문제로 바꿔버리는 순간 (…) 당신들이 말하는 부의 재분배는 중요성을 잃게 된다. 문제의 쟁점이 부의 재분배나 빈곤 퇴치가 아니라, 빈민층이 멸시를 받느냐, 존경을 받느냐로 바뀌기 때문이다.” 

<각주>
(1) 카르탄 스베인슨, <누가 화이트칼라 계층에 대해 근심하는가?>, Runnymede Perspectives, 런던, 2009. www.runnymedetrust.org.
(2) 월터 벤 마이클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런던서평>, 2009년 8월 27일.

글•에리크 뒤팽 Eric Dupin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