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세계화의 쌍끌이, 도시 남획사

[Spécial] 세계의 거대 도시화

2010-04-09     필리프 S. 골뤼브

신석기시대 이래 시작된 세계의 도시화 움직임은 산업혁명과 맞물리면서 일대 격변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도시는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에 지렛대 역할을 하게 됐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계 인구의 비율이 2007∼2008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농촌 거주 인구의 비율을 넘어섰다. 오늘날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는 33억 명이 넘으며, 그중 5억 명 이상이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거대도시 또는 인구 50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거주한다. 유엔은 세계의 도시화율이 향후 수십 년 동안 크게 증가해 2030년에는 59.7%, 2050년에는 69.6%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장차 증가할 인구의 대부분을 구·신도시가 흡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1)

40년 뒤 인구 70%가 도시 거주
 이러한 대대적 변화는 인구밀도가 높은 신흥·빈곤 지역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도시화를 이룬 선진국의 도시인구는 비교적 서서히 증가해 현재 74%인 도시화율이 21세기 중반에는 약 85%가 될 것이다. 이 도시의 팽창 가능성도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신흥 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20세기 초부터 조기 도시화가 형성된 덕분이다. 하지만 이는 부국의 도시화와는 또 다른 유형에 해당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균형이 깨질 것이며, 이미 이런 현상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아프리카의 도시인구는 1950년 이후 10배 이상 증가해 3300만 명에서 3억730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2050년에는 12억 명으로 인구의 약 63%를 차지할 것이다. 20세기 중반에는 2억3700만 명, 오늘날엔 16억5천만 명에 달하는 아시아의 도시인구는 2배 이상 증가해 35억 명에 육박할 것이다.
 요컨대, 선견지명이 있던 역사가 루이스 멈포드(2)의 표현을 빌리면 온 세계는 “하나의 도시가 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화된 경제구역의 연결고리를 이루면서 때로는 과도하게 커진 도시 거점의 집합이 될 것이다. 신흥·빈곤 지역의 도시화 확대는 많은 인류의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갈수록 급속히 진행될 것이다. 도시화는 이주의 원인인 동시에 그로 인해 심화된 결과물인데, 이는 새로운 사회계층 분화를 유발하는 한편 인간에 의한 지구 생태계의 변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 대규모 도시화 확대는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의 등장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류세란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지질시대(주거환경)를 지칭하기 위해 일각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산업혁명에 필요한 화석에너지 자원을 집중적으로 사용한 결과, 주거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단절이 발생하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경제·사회 생활은 “자연환경과 공생관계”(3)를 유지하는 마을 및 초기 도시로 이루어진 전통적 경제의 느린 리듬을 따랐다. 물론 사회가 자연에 국지적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생태계의 균형에 문제를 야기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으로 인구의 정착 및 집중화가 시작된 이래 19세기까지 세계 인구 가운데 도시인구의 비율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았다. 역사가 폴 베로크는 이전 추정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이 비율이 지역 및 시대에 따라 9∼14%에 달했을 것으로 보았다.(4)
 물론 이처럼 기나긴 산업혁명 이전 시기에도 대규모 밀집지가 형성되기는 했다. 바빌론, 로마,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시안, 베이징, 항저우, 난징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도시들 중 일부는 제국의 수도였으며 인구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 명에 달했다. 서기 1300년경 베이징의 인구는 50만~6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5) 중세 유럽은 인구 2만 명 이상의 상업도시와 도시국가가 형성되면서 베로크가 말한 ‘도시 팽창’ 현상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도, 사회적 관계에 혁명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1780년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100곳도 채 되지 않았다. 즉, 유럽이든 그외의 곳이든 도시의 지배를 논할 상황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의 사회적 재생산은 어디에서든 농업이 근간을 이루었다. 농업은 사회의 전반적 활동 구도를 제공한 농촌의 기반이었다.

산업혁명, 다른 두 도시의 분기점
 그러다가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 간의 새로운 공생관계”가 자리잡았다.(6) 산업화는 노동과 자본의 집중화를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해 노동 분업 구조가 새로이 조직되면서 전례 없는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1750년 20%에 조금 못 미치던 영국의 도시인구 비율도 당시로서는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는데 1세기 중반 이후에는 80%에 달했다. 평균적으로, 새로이 산업화가 이루어진 지역(일본 제외)의 도시인구 비율은 1800∼1914년 10배로 늘어나 2억1200만 명에 이르렀다.  도시 일자리의 절반가량을 공업 부문이 차지하는 가운데, 이러한 증가의 기저에는 농업 생산성의 꾸준한 향상이 깔려 있었다. 변화가 얼마나 과격하게 이루어졌는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세기 후반의 아동 및 성인 노동자층의 심각한 생활·근로 여건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은 20세기에 이룩한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서서히 이어지는 변화의 일환이었다.
 세계 식민지 도시는 이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산업혁명은 서구의 영토 확장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국제 노동 분업을 구축했고, 원거리 무역도 늘어났다. 1848년 마르크스는 이러한 첫 번째 세계화를 묘사하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옛 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 새로운 산업은 머나먼 지역에서 온 원자재를 이용하며, 그 생산품은 해당 국가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소비된다. 자국의 생산품으로 충당되던 옛 수요를 대신해 머나먼 고장과 기후의 생산품으로 충족돼야 할 새로운 수요가 탄생하고 있다. 자급자족하던 과거의 마을 및 국가를 대신해 보편적인 관계, 한마디로 국가 간 보편적 상호의존성이 발달하고 있다.”(7)
 ‘중심-변방’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이러한 비대칭적 상호의존성은 식민지 혹은 의존적 지역의 경제와 공간을 새로운 형태로 변모시켰다. 이 지역들이 세계시장에 강제적으로 편입되면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전통적 연결고리가 와해됐고 내부 경제순환망도 피해를 입었다. 대신 수출용 기초생산품(면화, 설탕, 아편, 곡물, 금속 등)의 생산이 발달했다. 강제적인 식민 중상주의 조약의 제약 때문에,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중국 등지에서는 원초적 산업활동이 뒷걸음질쳤다. 그 결과, 1750년 이전까지 세계 제1의 섬유 생산국이던 인도에서는 탈산업화가 거세게 이루어졌다.
 이렇듯 도시화의 수준은 비교적 미약했다. 그러나 국제교역이 새로운 구조를 보이면서 해안도시는 인구가 급증했으며 세계시장에 판매될 기초생산품의 창고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는 ‘탈대륙화’해 해안 지역으로 이전했고, 인도의 경우 뭄바이·캘커타·마드라스 등은 인구가 증가한 반면 내륙도시 인구는 감소했다.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북아프리카 해안도시의 모습이 변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지역은 20세기, 특히 1950년대 이후 급속한 도시화를 겪었지만 제대로 된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다만 신흥 개발도상국의 대도시(서울, 타이베이,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와 베이징)는 예외였다. 그외의 지역을 보면 옛 식민 시절에 무질서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식민지배의 구조적 산물인 동시에 세계시장의 위력으로 강화된 내부의 경제·사회적 불균형에 기인한 것이었다.

글로벌 도시와 글로벌화된 도시

 농촌 지역의 빈곤으로 인구의 도시 유입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에서는 거대한 연담도시(聯擔都市·Conurbation)가 형성됐다. 이 도시들(라고스·다카르·멕시코시티·카라카스·콜카타·다카·자카르타·마닐라 등)의 인구와 공간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대량 실업, 빈민촌, 열악한 인프라, 가공할 만한 환경문제 등을 겪게 되었다. 이 도시권에서는 막대한 부와 대규모 빈곤이 공존하면서 세계적 규모의 ‘지구 빈민촌’(8)이 탄생했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이 밝혔듯이 부국의 대도시는 선진 북반구에 저개발 남반구를 결합한 ‘이중적’ 도시이기도 하다. 강력한 사회계층 분화가 된 이 도시에는 하인으로 일하는 이들과 많은 소외계층이 집중돼 있는데, 이는 상당수가 옛 식민국가의 유물이다.(9) 그렇지만 부·문화·지식·기술이 한데 모인 ‘글로벌’ 도시의 사회적 불평등은 ‘제3세계’의 ‘글로벌화된’ 도시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
 도시화는 산업화 및 세계화의 긴장과 갈등을 집결해 드러낸다. 이를 두고 앙리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산업화의 방향이자 귀결점인 도시사회는 스스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형태를 잡아나간다.”(10)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된 도시화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교육, 문화, 보건, 건전한 환경 등 공공재를 생산할 능력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생산능력이야말로 집단적 복지와 아울러 개인의 자유 확대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1차적 조건이니 말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산업국가에 대규모 중심지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고찰이 넘쳐났다. 빅토리아 시대 개혁적 도시계획가들은 빈민촌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작고 더 ‘살 만한’ 군집 지역을 새로 건설함으로써 도시를 분산하도록 제안했다. 그리하면 많은 인구를 더욱 쉽게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오늘날 중국과 인도의 정부 및 지역 당국도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훗날 멈포드를 비롯한 이들은 현지 자원과 단거리 공급망 활용에 기반을 둔 지역과 하위 지역의 계획화를 통해 도시 혼잡을 완화하는 구상을 했는데, 환경적 균형을 이룩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오늘날에는 이를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0∼80년대에 이르러 시민이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직접 관장하는 ‘공동체(Community)형’ 도시 개발의 구상이 꽃을 피웠다.(11) 하지만 오늘날에도 시민의 도시 점유와 도시공간 생산 조건에 관한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는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각주>
(1) <세계 도시화 전망, 2007년 개정 인구 데이터베이스>, 유엔인구국(UNPD) 경제사회부. http://esa.un.or/unpd.
(2) Lewis Mumford, <역사 속 도시: 기원, 변형 및 전망>(The City in History: Its Origins, Its Transformation, and Its Prospects), Harcourt Brace, International, New York, [1961] 1986.
(3) Mumford, 앞의 책.
(4) Paul Bairoch, <예리고에서 멕시코까지: 역사 속 도시와 경제>(De Jéricho é Mexico : villes et économie dans l’histoire), Gallimard, Paris, 1985.
(5) Tertius Chandler, <도시 성장 4천 년>(Four Thousands Years of Urban Growth), Edwin Mellen, Lewiston, 1987.
(6) Edward W. Soja, <포스트메트로폴리스: 도시와 지역에 관한 중대 연구>(Postmetropolis: Critical Studies of Cities and Regions), Blackwell, Oxford, 2000.
(7) Karl Marx & Friedrich Engels, <공산당 선언>, Flammarion, Paris, 1999.
(8) Mike Davis, <지구 빈민촌>(Planète bidonville), Ab Irato, Paris, 2005.
(9) Manuel Castells, <정보도시: 정보, 기술, 경제 재구조화 및 도시-지역 프로세스>(The Informational City: Information, Technology, Economic Restructuring and the Urban-Regional Process), Blackwell, Cambridge, 1989, <이중적 도시: 뉴욕의 재구조화>(Dual City: Restructuring New York), Russel Sage Foundation, New York, 1991.
(10) Rémi Hess, <앙리 르페브르와 세기의 모험>(Henri Lefebvre et l‘aventure du siècle), Métaillé, Paris, 1988, p.276 인용.
(11) Peter Hall, <내일의 도시>(Cities of Tomorrow), Blackwell, Oxford, 1996.

글•필리프 S. 골뤼브 Philips S. Golub
저서 <권력, 이익, 영예: 제국 팽창의 역사>(Power, Profit and Prestige: a History of Imperial Expansion), Pluto Press, London, 5월 출간 예정.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