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무한자유를 위해 안정적 주거권을 약탈하다

[Spécial] 세계의 거대 도시화

2010-04-09     뱅상 두메루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에 자리잡은 앙베르, 자본주의의 이름 아래 사람과 자본과 상품이 자유로이 이동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1959년 옛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수많은 자동차로 길이 막힌 도로를 보고 당시 흐루쇼프는 시장에게 “합리적이지 못하구먼!”이라 말했다고 한다.(1)
 50년이 지난 지금, 흐루쇼프의 말은 사실인 듯 보인다. 도심의 확대, 꽉 막힌 도로는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개인 주택과 자동차,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에 따른 활발한 운송 등이 상징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도시의 글로벌화를 가져왔다.(2) 현대사회의 키워드인 사람과 자본,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은 자본주의의 중요한 요건이 되었다. 모든 것이 항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변화는 도시를 거대한 인프라 시설로 채우는 결과를 낳았고, 도시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곳이 돼버렸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은 도시라는 장소에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들도 모여 있다는 걸 잊은 것일까?

 벨기에 앙베르의 두 얼굴
 오랜 역사 속에 세계화가 동시에 깃들어 있는 벨기에의 도시 앙베르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도시가 보여주는 상반된 모습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KBC은행 고층 빌딩과 화가 루벤스의 집 사이에 위치한 광장, 교회, 상점이 밀집된 메이르 거리는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로 늘 북적인다. 도시 변두리 지역은 모로코나 튀니지에서 온 이민자가 밀집해 있다. 최근에는 사하라 이남 국가나 동유럽 국가에서 이민이 활발하다. 앙베르는 마치 끊임없는 지진의 진동에 시달리는 것 같다. 47만 명(도시 권역을 합치면 60만 명이 넘는다)에 이르는 인구, 불빛이 찬란한 시내, 석유화학단지, 유럽 제2의 항구(근처에 있는 로테르담 항구 다음이다), 공항, 철도 분기점,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도시 외곽 지역 등으로 얼키설키 엮여 있기 때문이다. 앙베르는 수도인 브뤼셀까지 겨우 45km 떨어져 있다. 세계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서유럽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산업화가 빨리 진행된 베네룩스 지역의 심장부인 이 도시에서는 온갖 종류의 운송 수단이 하늘로, 땅으로, 물 위로 지나쳐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뤼셀 도시 권역을 잇는 고속도로인 ‘링’(Ring)에서 몇km 떨어진 지점은 이러한 지진판의 균열선을 이루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역의 주요 도로망이기도 한 이 외곽 순환도로는 6개 고속도로를 연결하며, 유럽 내 연계 도로망에 속해 있다. 현지 및 국제 교통량을 합치면 이 고속도로의 일일 통행량은 25만 대에 달한다. 링은 케네디 터널을 통해 에스코강을 통과하는 도로인데, 평균 6만5천 대의 차량 통행을 위해 1969년 건설됐다. 현재 이 도로의 일일 통행량은 16만 대가 넘는데, 이 중 대형 화물차량이 3만 대이며 80%가 경유 차량이다. 이런 수치는 지난 40년간 유럽에서 진행된 폭발적인 교통량 증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끊임없는 자유 이동이라는 이념이 가져온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정부, 주민 고속도로 반대 묵살

 플랑드르 정치인들은 미완으로 남아 있는 북서쪽 지역 도로망을 확충해 고속도로 벨트를 건설함으로써, 링을 완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우스터윌’(Oosterweel)(3)이라 명명된 연계망 확충사업은 에스코강 좌안 지역에서 강을 통과하는 터널과, 랑주 와페르(Lange Wapper·앙베르의 전설적인 거인에서 유래된 이름)라는 길이 2.8km, 높이 150m의 고가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설 도로는 유료이며,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일환으로 민·관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된다. 정부는 도로망 확충사업이 ‘링’이 현재 처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으로 본다. 케네디 터널의 정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물차량은 통행이 금지되며, 교통 용량을 확대함으로써 대기오염을 막고 교통 정체를 해결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사업의 지지자들은 랑주 와페르가 브루클린 다리처럼 “현대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선전한다.(4)
 랑주 와페르를 제외하고도, 레이엔(Leien) 정비공사(파리대로 정비사업과 유사), 녹색도로화를 위한 싱겔(Singel) 개조공사(마레쇼도로 정비사업과 유사), 도심과 교외를 잇는 트램 노선 확장공사, 앙베르와 리에주를 연결하는 알버트 운하 현대화 사업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앙베르를 광적이다시피 한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슬로건의 열풍으로 몰아넣으려 하며, 현지 지역민의 반대도 묵살하고 있다. 도시 운송망을 자본주의의 논리에 최적화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주변 환경을 보전하려는 현지 주민의 의지 중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이 사업에는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StRatengeneraal’라는 단체가 대표적인데, 이 단체의 이름이 뜻하는 바는 상당히 의미 있다. 일반적으로 해석하면 ‘대중을 위한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서 길의 공적 기능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단체 명칭에서 ‘R’을 제외하면, ‘의회’라는 뜻이 되는데, 즉 정치 권력의 견제 기능을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단체 지도자인 건축가 피터 베르헤게와 마누 클라에이스에 따르면, 의사결정권을 가진 정부기관에서는 시민이 제시하는 대안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대며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클라에이스는 한 네덜란드 TV방송과 다리 건설 예정 부지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기자도 “역사 유적지에 매우 근접한 곳이군요”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사적지는 랑주 와페르 건설 부지에서 2.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도심과 단절을 더욱 심화할 것이다. 링과의 교차점이 되는 강 우안 지역 도로는 현재 폭 42m의 8차선 도로와 향후 폭 106m의 18차선 도로로 확장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도로가 각종 편의시설이 밀집된 종합체육관 부근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StRatengeneraal은 정부가 추진하는 방법보다는, 터널을 건설해 도시 북쪽 에케렌 지역의 기존 도로와 연계하면 고속도로 벨트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강변 지역과 종합체육관 주변 이용객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좌파 단체인 ‘민중을 위한 의사 모임’(5) 회원인 의료인 반 듀펜은 ‘자유로운 이동’ 열풍의 희생자들과 매일 대면한다. 시의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되르네에서 진료를 한다. 병원에서 그가 진료하는 환자는 서민이며, 상당수가 이민자이다. “우리 병원에서 진료한 7살 이하 어린이 355명 중 165명이 천식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미세입자들이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지요.” 차량들이 뿜어내는 미세입자가 인체로 흡입된다. 의료연구 결과, 고속도로 주변 지역의 어린이들은 폐기능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6) 인체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사회 및 환경 문제도 있다 .

 

 최우선 가치가 된 도로교통
 ‘숨이 막히는’이라는 뜻의 ‘Ademloos’라는 단체명은 대기오염을 상징한다. 이 단체는 도로정비 사업에 따라 에스코 강가의 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한 강변 지역 주민이 2008년 겨울 개최한 좌안 지역 주민모임에서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의학 및 도시계획 분야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플랑드르 의회 내 발언권 확보를 위한 시민서명운동을 벌였고, 2008년 6월 발언권을 획득했다. “장관은 불참했고, 의원은 단 6명만 앉아 있었다. 동행한 과학자 3명 중 1명만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라고 윔 반 헤스 대변인은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 단체는 대교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 찬반투표 실시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고, 2009년 7월 투표 실시 요건인 전체 주민 10%의 동의를 얻음에 따라, 시장은 대교 건설이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고 주민투표를 했다. 반 헤스 대변인은 이런 정책 입안자들의 ‘늑장 대응’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의원 및 국회의원의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그해 10월 18일 실시된 투표의 참여율은 35%였고, 투표자의 59%가 대교 건설에 반대표를 던졌다.
 현 상황에 비춰볼 때, 랑주 와페르 다리 건설은 앙베르에 두 가지를 가져다줄 것이다. ‘명성’과 ‘원활한 도로 교통’이다. 대대적인 정비사업은 지역 간 경쟁에 일종의 무기가 되었다. 대교 건설 반대론자들이 대안으로 내놓은 터널은 분명 대교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고속도로 벨트 확충사업은 결국 환경 부하를 심화하면서 도로 교통의 우위성을 공고히 하고, 현 자본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일종의 밀어붙이기 정책이다. 도시를 뒤흔드는 지진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글•뱅상 두메루 Vincent Doumayrou
주요 저서로 <철도의 붕괴>(Editions de l’Atelier, Ivry-sur-Seine·2007)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홀랜드 헌터, <소련의 운송 및 물류사>, 브루킹스연구소, 워싱턴, 1968년, p.105.
(2) 사스키아 사센, <글로벌 도시화와 정치논리>, 파리, 2004년 8월, p.9∼23.
(3) 부근에 있는 교회 이름에서 유래한다.
(4) Cf MobielAntwerpen, BAM 사보, 2009년 6월, p.2(저자 역).
(5) www.mplp.be 참조.
(6) Lancet, vol. 369, 런던, 2007년 2월 17일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