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 민주주의가 결핍된 이유
2017-06-30 디터 그림 | 베를린 고등과학원 교수
유럽연합(EU)에 민주주의적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결함의 주요 원인이, 유럽협정의 지위를 헌법으로 변화시킨 데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 결함은 유럽사법재판소(CJUE: Cour de Justice de l'Union Européenne)가 내린 판례 때문에 발생했는데, 그 판례의 효력이 주민들의 통합동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1963년까지 국제법에 속해있다고 인정된 유럽법은 국제법 자격으로 회원국을 통제해왔다. 유럽법은 국내법으로 치환된 후에야 한 국가의 개인들에게 효력을 미칠 수 있었다. 반대로 룩셈부르크의 CJUE는 그 해에(1963년) 협정들이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반겐트 앤 로스 ‘Van Gend & Loos’ 판결. 1963. 02. 05.). 즉, 유럽법이 국내법으로 치환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자국의 법정에서 유럽협정의 준수를 요구하는 개인들을 위해, 주관적인 권리들이 협정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타(Costa) 대 ENEL(Ente Nazionale per l'Energia Elettrica, 이탈리아 전력공사) 판결에서(1964년 7월 15일), CJUE는 한 발 더 멀리 나아갔다. CJUE는 협정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모든 사법 규정까지도 각국의 최고규범인 헌법들을 포함한 어떤 국내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선언했다. 유럽법과 양립할 수 없는 국내법 조항들은 자동으로 그 효력을 잃었다. 어떤 재판기관이나 공권력도 더 이상 유럽법과 충돌하는 국내법 조항들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이 두 건의 판결은 방법론상의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생겨났다. CJUE에 의하면 유럽법은 국제법 층위에 속하지 않았다. 유럽법은 자율적인 법으로, 국내법들로부터 독립됐다. CJUE는 더 이상 유럽법을 예전처럼 국제법으로서 해석하지 않았다. 국가 주권이 침해됐을 때, 협정은 더 이상 계약 당사자들의 의지에 맞게 제한적인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협정은 그 대신 CJUE에 의해 하나의 헌법으로 해석됐다. 다시 말해, 객관화된 목표를 중시해 국가주권을 고려하지 않으며, 서명한 국가의 의지와는 다소 무관하게 협정을 헌법으로 해석했다.
이런 법해석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공동시장을 만들기 위한 국가들의 개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유럽위원회(협정의 발효를 책임지는 기관)와 CJUE(분쟁이 생겼을 경우 협정들의 해석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가 경제통합을 담당했다. 이 두 기관은 국내법이 공동시장을 속박한다고 평가할 경우, 해당 국내법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선언했다. 회원국 정부들은 현실적으로 그 조치에 반대할 수 없었다.
CJUE의 해석에 좌지우지되는 현실
사실 모든 것은 CJUE가 협정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협정이 시장 혹은 행정관리에 우호적이거나 규정들의 일관성, 자유나 사회적 다양성에 우호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CJUE가 ‘경제통합’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온 관심을 기울이며, 추진에 엄청난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즉 CJUE는 한 가지 임무에만 집착하고 있다. EU에 이전된 권한은 과도하게 해석되고 있고, 회원국에게 남겨진 권한은 제한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CJUE의 법해석은 특히 4가지의 경제적 자유를(재화, 서비스, 자본과 사람의 자유이동) 보장했는데, 이것은 협정들로 이미 예견된 것들이었다. 공동시장의 설립은 입법보다는 법해석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경쟁 왜곡을 막기 위해 제정된 국가보조금의 기업 지급 금지 규정은 아주 넓게 해석돼 민간영역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까지 적용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CJUE는 입법자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이 같은 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게다가 CJUE는 모든 회원국에서 유럽법의 통합된 적용을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예외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뤄진 민영화는 CJUE가 내린 법해석의 열매다. 이 모든 것이 협정들에서 곧바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아닌 바로 그런 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임을 확실히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법해석은 국내법과 국내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무역장벽 금지에 대한 광의의 해석은 생산품, 일자리, 건강의 질에 있어서의 일정한 수준 유지에 대한 회원국들의 요구들을 막고 있다. 공공서비스 분야의 보조금 금지에 대한 광의의 해석은 시장에 맡기고 싶은 영역들과 통제하고 싶은 영역들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각 정부로부터 빼앗아 버린다. 그 결과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2000년 12월 채택된 4가지 경제 자유의 강화와 같은 EU 기본권 헌장에 대한 광의의 해석은 경제적 권리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회원국의 헌법재판소들은 인권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CJUE의 법해석은 흔히 유럽건설을 위한 쾌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경제메달’에는 반대급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EU의 합법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의 대상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도 포함된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아차렸을 때 반대급부는 명백해졌다. 주민들이 정치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통합으로 가는 데는 단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CJUE의 법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협정들에 의해 정해진 원래의 길은 기본적인 유럽법(협정들)과 부수적인 유럽법(지침들, EU 기구들이 채택한 규정들)을 제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CJUE가 의도하는 바대로 협정들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 길은 EU의 집행 권력과 사법 권력(유럽위원회와 CJUE)에 닿게 돼 있다. 이 두 개의 길은 엄청나게 다르다. 첫 번째 길에서는 회원국들이 권한을 EU에 이전한다. 그 길은 정치적이며, 유럽의회 및 각 회원국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정당화된 기구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 길에서는 EU가 협정들에 대한 광의의 해석을 통해 회원국에게서 권한을 빼앗아 간다. 본질적으로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이 길은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정당화된 기구들을 배제한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통합과 관련된 것으로, 그 통합에서는 행정적·사법적 기구들이 커다란 독립성을 누린다. 두 번째 길의 비정치적인 방식이 채택된 결정들에서 그 정치적 성격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자. 그것은 커다란 영향력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권한인데, 그 권한이 정치기구로부터 비정치기구로 이전되는 것이다. 동시에 합법성과 책임을 보장해 주는 수단들, 특히 의회와 선출된 정부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CJUE가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CJUE는 무엇보다도 먼저 협정들에 의해 정해진 목적인 공동시장을 설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CJUE에 제출된 대부분의 소송은 국내법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하는 경제당사자들이 제기하기 때문에, CJUE는 회원국의 규제를 제거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만 공동시장을 설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셈이 된다.
협정에 부여된 합헌성으로 인한 문제들
법해석의 변화는 왜 문제를 일으키는가? 협정의 주요 당사자들인 회원국들이 법을 개정함으로써 CJUE의 틀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다. 그 이유는 협정들이 합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협정들이 헌법과 유사하지는 않지만, 협정들은 헌법과 똑같은 강제적 효력을 발생시킨다. 협정들에는 회원국들에게 당연히 여겨질 규범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그러므로 협정들은 한 국가의 가장 상세한 헌법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
협정들이 이렇게 과도한 합헌성을 가짐으로써, 전통적으로 회원국에게 부여된 ‘협정의 주인들’이라는 지위가 손상되고 있다. 지각되지 않은 권력의 이전(移轉)이 생겨난다. 협정의 개정과 해석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헌법 층위와 법률 층위 간의 불충분한 구분은, 협정에 대한 합헌성 부여와 결합해 유럽위원회와 CJUE의 역할을 면제시켜, 법률개정을 통해 법해석을 수정하려는 민주적인 기관들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한다. 이 불충분한 구분은 또한 EU의 집행기구와 사법기구를 면역시켜 언론의 압력을 무력화시킨다. 언론을 고려해야만 하는 정치 관계자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비정치적 관계자들이 개입할 수 있지만, 이들은 언론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CJUE는 회원국의 그 어떤 재판소보다 더 자유롭다.
회원국의 권한을 조금씩 침해해 오는 것에 대항해 자신들의 지위를 방어하는 데 있어서, 회원국들이 완전히 무장해제된 것은 아니다. 만약 권한 침해가 유럽위원회에 의해 행해진 것이라면, 회원국들은 CJUE를 움켜쥘 수 있다. 또 권한 침해가 협정들에 대한 해석에 기인한 것이라면, 회원국들이 협정들을 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수단들은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CJUE는 EU와 회원국들 사이의 중립적인 심판관이라기보다는 통합의 엔진으로 간주된다. 협정들을 개정하려면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법해석을 수정하기 위해 그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 결과 시민들의 동의를 결코 얻지 못한 유럽통합국가가 생겨난다. 시민들이 그런 국가를 거부한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통합국가가 말이다.
EU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면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EU가 힘을 잃고 있는 이유를 유럽의회의 취약성에서 찾는다. 그러나 EU를 의회시스템으로 전환한다 해도 유럽의 민주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유럽의회의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28개(곧 27개)의 선거법에 따라 투표한다. 우리는 자국 내 프로그램들에 대해 선거운동을 하는 자국 정당들에 대해서만 투표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200개가 넘는 각 국가의 정치단체들이 스트라스부르 의회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범국가적 연맹인 정치그룹들이(현재 7개의 정치그룹이 존재한다) 바로 유럽의회의 핵심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이 정치그룹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해당 사회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연유로 회원국 유권자들에게 유럽의회선거의 중요성이 감소되고 있다.
요컨대, 공통의 문제들에 대한 28개국의 국가 담론들만 있을 뿐이고, 진짜 유럽적인 대중토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와 선거 사이에 시민들과 정치기구들을 연결해야 하는 중재세력들이 없거나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역동적인 민주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EU를 하나의 의회시스템으로 변화시켜도 그것이 시민들과 기구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새를 메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회원국 정부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의 역할을 축소하지 않고서 유럽의회의 역할을 증대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개혁이 단지 의회역할의 증대라는 목표를 위해 제시됐다. 그럴 경우 유럽이사회는 의회의 상원이 될 것이다. 그 대신 유럽위원회는 의회정부로 승격될 것이다.
그러나 제도상으로 의회가 승격된다 해도 그것이 민주화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EU의 의회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유럽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는커녕,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EU의 민주적 정당성은 오직 회원국들로부터 생겨난다. 유럽이사회가 EU의 중요기관이고 유일한 입법부다. 유럽이사회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진다. 결과적으로 어떤 회원국도 자신들의 민주적 기관들이 승인하지 않았던 법을 따르지 않았다. 만약 시민들이 자국정부의 유럽정책에 만족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자국의 선거에서 자신들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다. 만장일치의 원칙은 1987년에 바뀌었다. 현재 유럽이사회는 대부분의 주제를 다수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어떤 회원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통제된 기관들에게 승인을 받지 않은 법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이사회를 더욱 약화시키는 것은 외부 정당성을 축소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부 정당성을 그만큼 증대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EU의 의회시스템으로의 전환은 과도한 합헌성 부여라는 결과 외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합헌성이 부여된 협정들에 의해 보호받는 영역에서, 선거도 유럽의회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EU의 민주주의적 결핍의 근원은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재(再)정치화함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EU의 정당성을 강화하기를 원한다면, 행정적이고 사법적인 기관들의 진짜 정치적 결정들을 정치적 기관들로 넘겨야만 한다. 여기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헌법적 특성을 가진 조치들에만(다시 말해 그 내용은 예시되지 않는 결정들이 내려질 정치적 범주를 정의하는 조치들에만) 협정들을 한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치들에 대한 책임을 ‘협정의 주인들’인 회원국들이 지는 것이다. 동시에 비헌법적 성격의 모든 규범들은 부차적인 법률 수준으로 강등돼야 한다. 그러면 유럽의회와 유럽이사회 같은 EU의 정치 기구들이 일반법에 속하는 것을 변경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 법해석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는 쉽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여하튼, 합헌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적 비용이 대중의 관심을 벗어난 만큼 그만큼 요원한 일이다.
글·디터 그림
베를린 고등과학원 교수이며 전직 독일연방헌법재판관. 이 글은 2017년 3월 29일 콜레주 드 프랑스의 초청으로 개최된 강연에서 발표됨.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