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시즘의 재건은 어떻게 가능하나?

2017-06-30     자크 비데 | 철학자 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풍우 속에서 좌파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경쟁적인 정치세력 간 대립이 누그러지는 역사적 변환, 지금은 거의 일반화된 그 상황이 ‘예외성의 국가’라는 프랑스에서도 발생했다. 반동적인 우파의 입장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가장 소외된 서민층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좌파의 사상가를 모으고 좌파 당수를 무력화시키면서, 좌파가 구현하는 희망을 현실화할 유일한 인물이 자신임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국, 융합이 ‘끝장 투쟁’을 이긴 것인가?


지난 수십 년간 투쟁으로 이어온 좌파권력의 도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앙에서 변두리를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민주적 타협’으로 구체화됐다. 자본주의는 식민지전쟁과 환경파괴로 끝없이 이어졌지만 자본주의적 소유의 특권은 낮은 실질이율, 미미한 배당금 분배, 주춤한 증시상승세, 비금융분야의 우세 등으로 약화됐다. 그리고 국내산업, 공공서비스, 사회보장, 고용 및 개발 정책 등이 수립됐다. 종종 좌파 정치세력이 이끄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모든 동역학은 1968년 최고점을 찍었다. 

좌파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도약은 갑자기 멈췄다. 1970년대 말, 자본주의자들은 공격력을 회복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역사적 주기의 문을 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결론이 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과거를 덮고 새출발했다. 새로 난 길은 되돌아올 길이 없는 듯하다. 단순히 좌파가 추구하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혹에 그치지 않고, 좌파가 꿈꾸는 미래에 이르기까지 좌파라는 사상 자체에 대한 의혹이 짙어졌다. 신앙을 잃었을 때와 같은 공허함이 몰려왔다. 기를 꺾어버리는 암담한 절망을 불러왔다. 

좌파의 역사를 이해하고, 불가항력적 비상에서 역사적 쇠락까지 지난 시간을 총결산하고, 어려울 듯하지만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과연 ‘좌파’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칼 마르크스를 원용해, 마르크시즘 자체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공통된 문화에서 ‘노동 대 자본’이라는 두 진영을 구분하고 고착화한 것이 마르크시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그릇된 편견을 심어준다. 현대 사회질서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지배적인 사회세력이 있다. ‘자본가’의 세계에 조직가, 민간 경영자와 공공 관리자, 모든 분야의 전문가 등 ‘관리자-전문가’의 세계가 연결됐다. 서로 연관됐으나 대립하는 이 두 세력에 ‘민중 근본계급’ 전체가 맞서는 것이다. 양자대결이 아니라 삼자대결 형태라는 것에서부터 현대 계급투쟁을 이해해야 한다. 

‘영광의 30년’ 동안 중요시됐던 ‘사회 민주적 타협’ 차원에서 사회당이나 공산당으로 다양하게 대표되는 근본계급과 관리자-전문가 간 동맹이 이뤄졌다. 근본계급이 주동력이었고 관리자-전문가는 중심축을 맡았으며, 양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민족국가는 사회국가가 됐으며 기업경영과 정책운용은 상당 부분 자본가의 손을 벗어났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접목한 혼합경제를 이야기했다. 이제 이 대상의 특징을 짚어보고 어떤 상황에서 사라졌는지 이해하는 일만 남았다. 

마르크시즘의 재분석이 필요한 때

그러려면 마르크스의 분석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의 중심사상은 현대사회에서 계급구조가 그 이전 체계처럼 일부의 천부적 우월성을 주장하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경제에서 주어진 자유와 만인의 평등을 확인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 체계가 노동자 자신을 착취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야만 실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는 시장경제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다. 시장 자체적으로는 계급 간 관계를 형성하지 않지만 파장이 큰 요소다. 시장은 생산수단이 사유화되도록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 시장경제 매트릭스가 다른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이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현대 기업에서는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시장을 소외시키다가 결국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합리적 조정 요소가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조직’으로 생산 결정을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조정한다. 노동자계급은 여기서 계급상승의 동력을 구하고, 임금노동자들은 결국 기업을 손에 넣고, 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노동자 간 수립된 공고한 조직을 바탕으로 한 후기시장경제시대를 열 것이다. 

이 ‘거대서사’는 20세기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유토피아가 무엇이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유토피아는 세상의 운명을 바꾼 영웅적 혁명, 투쟁, 해방을 위한 개혁의 불씨를 지펴줬다. 그렇지만 이론적 근간이 되는 이 서사에도 모호한 측면이 내포돼 있는데, 조직도 시장처럼 하나의 계급요소이고, 현대적 사회 형태는 이 두 가지 지주(支柱) 위에 수립된다는 점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계급지배는 비교적 두드러지게 다른 세력 두 개가 주도하는데, 하나는 자본소유를, 다른 하나는 경제적·행정적·문화적 조직을 운영하는 ‘전문성’을 통해 이뤄진다.(1)

우리가 ‘네오마르크시즘’라고 부르는 이 패러다임은 고전 마르크시즘가 제안한 계급구조 분석을 대폭 수정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사회학자들이 기록했고 상식적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지배의 이원성을 왜 놓쳤느냐고 질문한다. 관료제를 하나의 질병으로 봤던 고전적 접근법에서 조직의 계급요소를 발견하지 못하고 왜 이런 생각을 낯설게 바라봤을까?

그 이유는 고전 마르크시즘가 역사적으로 자본 소유에 맞서는 관리자-전문가와 민중계급의 암묵적이고 얼마간은 비밀스러운 합의를 바탕으로 등장한 담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고전 마르크시즘는 ‘현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속 사회주의’에서 ‘노동운동’의 공식 독트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언제나 부인됐지만, ‘노동자계급’과 경제 문화적 관리자 축 간의 타협을 지향하는, 양가성을 지닌 계급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만인의 협의(공식적 목표는 ‘노동자동맹’)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안에서 공공제도의 비호를 받으며 조직경제의 형태를 취한다. 만인의 권력은 조직자의 권력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두 개의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20세기 자본주의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처럼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두 세력이 번갈아 권력의 정점에 올라 통치하며 형성됐다. (미국에서 뉴딜 정책이 시작된) 1933년까지 ‘금융’이 지배적이었다. 그다음은 조직적 관리자로 1970년대까지 우세했다. 또다시 금융이 득세했다. 이때 금융은 내재적 사회변화의 동역학을 조직자에게 강요했다. 조직의 축이 중요시될 때에 그들은 금융에 맞서 민중계급과 동맹을 맺었다. 

이런 해석의 틀은 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의 평행하지만 서로 다른 운명을 보여준다. 기업, 거대 공동체, 정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구권의 ‘관리직 세력’의 급부상과 단일한 지배층으로 승격된 조직자의 손에 권력을 신속하게 넘긴 동구권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비교해보게 한다. 양대 현상의 평행관계는 이 현상들이 현대 사회 형태에 내재한 본질적인 구조적 결정 인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체계 간 수렴과 한 체계에서 다른 체계로의 이전이 꾸준한 논의의 대상이 됐을 정도로 말이다. 

민중계급과 관리자-전문가 사이의 역사적 동맹은 1960~70년대까지 점점 강화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고, 제3세계의 투쟁,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세력, 전 세계에 걸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젊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위로 이미 높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1968년 전통적 우파 세력이 자신들의 계급적 권력의 근거로 삼았던 낡은 문화적 배경을 뒤흔들었다. 이런 세태에 힘입어 노동자계급도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전국 각지에서 40여 일의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왜 역사는 다른 흐름을 타게 됐고 금융의 느닷없는 귀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사회민주적 타협에서 금융의 권력과 소득 억제가 간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본 하이에크에서 밀턴 프리드먼까지 자본가계급의 사상가들은 처음부터 국내외 차원에서 이 과정이 어떤 성격을 띠게 될지 파악하고 있었다. (1929년 대공황의 기억이 희미해지자) 금융은 호전성을 회복했고 금융권력은 새로운 금융시스템,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 유로 시장의 등장과 함께 재편됐다. 

1970년대 초 달러 위기를 비롯해서 전후 (사회민주적) 타협이 나아가는 길에서 마주친 모든 장애물들은 그 근간을 약화시켰다. 타협을 옹호하는 이들이 1970년대의 구조적 위기, 특히 인플레이션 급등 앞에서 보인 무력함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철’의 결의로 맞선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구현하는 권력이 등장하게끔 했다. 1979년 이율이 전례 없던 수준으로 상승하면서 소득이 최저수준이었던 자본가계급에게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됐다. 빚을 진 제3세계에서는 위기가 발생했다.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에게 새로운 규율을 강제했다. 

이전 사회질서가 개발정책의 일환으로 길들이는 데 성공했던 상업과 금융의 세계화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경향은 일부 기술적 ‘진보’로 쇄신된 상황에서 다시 기세를 회복했다. 세계화의 특성이 바뀌었다. 식민지 착취를 재개하고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을 경쟁 관계로 몰아넣는 미국 헤게모니 아래에서 세계화는 새로운 세계적 차원의 노동 분업을 강요했다. 중국의 기적은 라틴아메리카의 상처를 감추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관리자-전문가들은 금융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주도적 능력을 박탈당하고 민족국가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것이었던 목표에서 강제로 멀어진 그들은 유럽 같은 대륙 차원에서 논리를 재정립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민주적 타협에서 신자유주의적 타협으로 넘어갔다. 역사적 상황에 따라 얼마간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열광적으로 새로운 흐름에 합류했고, 프랑스보다 미국과 영국에서 기꺼이 이에 동참했다. 

어떻게?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을 것인가

관리자-전문가를 대표하는 정치적 인물들이 신자유주의적 선택지를 택했을 때 개인적인 배신은 없었다. 행로의 모호성은 차치하고 사회민주적 타협의 등장을 이끌었던 역사적 조건이 사라졌다. 좌파여, 사격 개시! 그리고 근본계급에게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어떻게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두 번째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어떻게 삼자대결에서 양자대결로 넘어갔을까? 어떻게 삼자계급 구도가 정계를 이끄는 (좌우) 양자구도 형태가 실현됐을까? 다수파 정부라는 민주적 구도에서 좌파는 근본계급과 관리자-전문가 사이의 동맹이 이뤄지는 상징적인 정치적 장소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혁명적이거나 개혁적인 전환기에 임금노동자가 ‘전문성’, 관리직, 문화 계층에게 손을 내밀 때 좌파는 그들을 역사 동역학으로 이끌면서 역사적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분야의 지식인과 조직가들은 자발적으로 ‘노동자운동’의 최전선에 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조직’은 물론 잠재적으로 어마어마한 절대권력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 조직이 공개적으로 노출돼야만 절대권력으로 작용한다. 조직은 목적과 수단을 유기적으로 구성해 전체적 기획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시장’은 그 자체로 밝히거나 공동의 비판을 받아야 하는 공동의 계획이 전혀 없다. 시장이 광고와 선전이 필요하다면 시장이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이윤과 개인적 이해의 기제에 있는 번영의 약속뿐이다. 그러므로 시장은 좌·우파 어느 쪽의 지배를 받는지에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좌파’는 관리자-전문가가 좌파의 사회민주적 타협 또는 우파의 타협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불안정한 것을 일컫는 단어다. ‘좌파 중의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진정한 좌파는 자연적으로 보장되는 제도가 아니라, 민중의 움직임이 관리자-전문가를 자신의 고유한 해방의 동역학으로 이끌어 들이는데 성공했을 때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런 상황에서 계급지배의 두 구성요소 간 자연적인 관계는 느슨해지고 많은 것을 규제하는 바이스도 헐거워진다.

오늘날 상황은 전혀 다르다. 노동자세계가 중심성과 생산에서 동력으로 작용하던 그들의 전략적 위치를 상실했다. 관리자-전문가와 맺은 동맹도 불확실해졌다. 근본계급은 역사적인 곤경에 처했다. 우선 자본적 소유의 소외를 위해 필요한 동력은 동맹을 통해 얻을 수 있는데 상대편이 동맹에서 자신만의 동기를 찾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문성과 관리 능력이라는 특권으로) 계급의 적수로 남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지배가 이중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투쟁도 두 개의 전선에서 일어나야 한다. 

한편, 근본계급이 서로 분열되는 경향이 있는 분파 간의 정치적 단결을 이뤄야만 승리할 수 있음은 명확하다. 단결이 어려운 이들의 성향은 정치적 각축장에서 분산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본을 소유한’ 우파는 비임금 노동자와 임금노동자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을 사로잡는다. ‘조직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좌파는 공공부문의 임금노동자, 좀 더 포괄적으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야심가들을 흡수한다. 이런 긴장관계는 민중연합의 계획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해방이나 개혁이나 혁명이 강력하게 일어났던 현대사를 이끈 것이 바로 이 단결과 동맹의 정치다. 다른 길이 없었다. 가장 국지적인 곳에서부터 가장 광범위한 단계까지, 유럽에서 세계 공간까지 이를 개발하고 그 목표를 급진적으로 만드는 게 미래를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마르크시즘

생산수단 일부의 공유제와 소득의 적절한 분배가 다가 아니다. 이와 더불어 양성 간 관계, 생태, 노동, 보건, 교육, 연구, 도시화 등 공동의 생활조건 개선이 필요하다. 추상적 부, 즉 이윤의 축적을 논리로 삼는 자본주의와의 투쟁은 언제나 존재의 실질적 조건을 위한 투쟁이자 사회적 삶의 생성에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근본계급은 어떻게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정당’과 같은 그들만의 정치조직이 (하나 이상으로) 필요하지만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언제나 새로운 공격과 ‘엘리트’가 민중투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곡해하는 경향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오직 항구적이거나 정황에 따라 일어나는 다양한 독자적 운동만이 투쟁을 그럭저럭 이끌어갈 수 있다. 따라서 정당들과 운동들 사이의 공생과 지적, 도덕적, 정치적 공모에서 자본주의적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좌파가 등장할 것이다.

여기에 기술된 계급구조가 펼쳐진 민족국가 형태에서는 자본주의적 ‘세계체계’를 이해할 게 없다. 세계체계는 중앙부와 주변부를 대립시킨다. 계급관계를 비대칭적인 지배와 갈등 관계로 전환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민족국가에서, 또 현재는 대륙 차원에서 펼쳐지는 생산과 통치의 현대적 논리를 경험한 역사적 운동은 종국에 이 같은 매트릭스가 생성 중인 세계국가 형태에서 재생산되게끔 했다. 체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세계의 중심인 미국은 그들이 가진 군사적·경제적·문화적 권력을 동원해 현재 형성되고 있는 세계적 계급의 ‘국가성’의 지배적 주도자로 자리 잡기 위해 전념을 다 하고 있다. 

크게 보면 그들은 원하는 바를 이뤘다. 냉전 시대의 고유한 두 세계나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으로 대표되는) 트라이어드(3대 세력)와는 달리 단극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 계급제도가 자리 잡았다. 이는 자본이 집중되는 축으로 지구의 다른 지역까지 (자신의 체제를) 재수출하고 있다. 막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 권력 집중에 맞서 투쟁과 저항의 단결이 공고화되고, 계급과 인종과 젠더의 투쟁 간 수렴되는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인식은 아직 희박하지만 신자본주의가 흔들리면서 분명해졌고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와 당파성이 불러일으키는 모순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들이 인터내셔널을 조직하길 기대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운동의 형태다. 그 사회적 토대와 ‘세계성’과 사상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마르크시즘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글·자크 비데 Jacques Bidet
철학자, 파리우에스트낭테르라데팡스(구 10대학) 명예교수
제라르 뒤메닐 Gérard Duménil 
경제학자,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주임연구원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7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임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Altermarxisme, Un autre marxisme pour un autre monde(대안마르크시즘-새로운 세계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2007)의 5장과 6장에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해 서로 다르지만 결국 수렴하는 두 이론을 소개했다. 이에 대한 토론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블로그(https://www.monde-diplomatique.fr/2007/10/BIDET/15216)에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