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에 스며든 마르크시즘
2017-06-30 기 스카르페타 | 작가
2천 쪽에 달하는 기 드보르(1931~1994)의 <작품집> 출간은 상황주의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와 동시에, 그의 경이로운 사유의 정합성을 파악하는 기회를 제공한다.(1)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은 기 드보르의 사유의 정합성은 현시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상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프랑스 지성인으로서 기 드보르가 처한 상황은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그가 평생을 두고 대항했던 스펙터클(2)의 주체들까지 너나없이 그를 인용하며 참조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전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 사실 앞에 낯설게도 언론이 신중을 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집>은 기 출간된 작품들 외에도 귀중한 서신들과 지침서들, 발언들과 다양한 정기간행물에 발표된 기사들, 미간행 원고들을 한 데 엮은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집>의 발행은 해를 거듭해 진보한 그의 사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그 사유의 놀라운 정합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마치 드보르가 <스펙터클의 사회>를 평가하는 정형화되고 무미건조한 몇몇 표현들과 클리셰들 곁으로 다시 소환돼야 할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것도 저작에서뿐만 아니라 삶에서까지 기성질서에 저항하는 것, 아니면 적어도 어떤 기성질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드보르의 ‘혁명적’ 결의에 해를 가하면서 말이다. 1950년대 초 드보르는, 20세기 초의 몇몇 아방가르드 계보를 이어 예술은 ‘분리된’ 실체로서 죽은 것이고 이제 시가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열렬히 주장하는 청년 소모임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 젊은이들은 다다이즘이 예술을 실현하지 못한 채 예술을 철폐하려 하고, 초현실주의는 예술을 철폐하지 않은 채 예술을 실현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개개의 삶은 감내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야 하는 것이며, 도시(파리)는 여러 시도, 즉 여러 ‘일탈들’마저 횡행하는 땅이다(가령, 그들이 보기에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거리 파괴’를 목적으로 한 도시계획 발상을 지지하는 우를 범했고 그로 인해 빈축을 샀다). 그들의 목적은 ‘상황들을 창조하기’인데 이는 기존의 모든 예술을, 좀 더 보편적으로는 직접적인 경험에서 분리돼 ‘자주성을 상실한’ 모든 문화를 철저히 배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껏해야 이 문화의 ‘변질’을 인정하고 로트레아몽(프랑스의 시인으로 본명은 이지도르 루시앙 뒤카스. 초현실주의 문학가와 예술가의 재평가를 받았으며 근대시의 선구자로 추앙받음-역주)의 뒤를 이어 문화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기법들을 상상하는 정도나 할 수 있을까‧‧‧.
<스펙터클의 사회>의 탄생
제 2기(대략 문자주의 인터내셔널에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3)로 옮겨가던 시기)에 드보르는 행동반경을 아주 뚜렷이 넓혀 정치성을 띠게 된다. 문화비판은 자연스럽게 사회비판으로 이어진다. 그와 마르크스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비록 그것이 정통 공산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비정통 마르크시즘과의 조우였다 하더라도 말이다(드보르와 그의 동지들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전체주의 국가가 노동평의회의 권력을 대신하고 스페인 시민전쟁의 무정부주의 봉기가 스탈린의 관료주의에 의해 진압되던 20세기에 바로 ‘반혁명’이 승리를 거뒀다).
마르크스는 생산 시스템과 상품의 관계를 분석했는데, 드보르는 특히 그 ‘상품’의 논리가 이제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영역을 확대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또한 기술혁명으로 인해 생겨난 ‘여가’는 더 많은 자유를 유발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일신하는 가공된 욕구를 촉발하면서 우리를 조작되고 위조된 허상들의 노예로 만드는, 스펙터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드보르에게 있어 그 시기는 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음모의 시대이자, ‘선언들’에 따라 전술적 동맹(군상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이 구성되는 시대이며, 동시에 강력한 이론이 구상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이론의 구상은 1967년, 지속적인 담금질을 통해 탄생한 막강한 이론들의 총체인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귀중한 책으로 이어진다.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총체가 아니라 이미지들의 매개로 형성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고 드보르는 기술한다. 그리고 ‘스펙터클의 사회’는 미디어나 광고 형식의 헤게모니에 그치지 않는다. “그 너머의 무분별한 주권자적 지위를 확보한 상품 자율성의 독재적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와 보조를 맞춘 정부의 신기술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스펙터클의 사회>가 출간된 이후의 상황을 알고 있다. 그 이론들은 은밀히 확산되고 스트라스부르와 낭테르의 대학생들 사이에서 지류를 형성해 결국 1968년의 5월 혁명이 발발한다. 혁명에서 상황주의자 정신은 은밀하고도 열정적이며 확산력 있는 진원과도 같이 출현하는데, 이는 (소르본 대학의 점거 지속을 위한 평의회 등에) 널리 퍼진 드보르의 영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슬로건, 벽보들이 68운동의 거리를 가득 메운다.
그 이후는 조금 암울하다. 드보르는 넓은 의미에서 진부한 사유 속에 침잠할 위험, 즉 인습적이고 케케묵은 ‘비판’ 속에 묻혀버릴 위험을 자신이 안고 있다는 사실을 비교적 빨리 깨닫는다. 그래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최대 회원 수가 15명을 넘은 적이 없다)의 해체와 자성, 자발적 유배가 이어진다(이 자발적 유배는 특히 이탈리아에서의 체류를 의미하는데,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타협’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고, 동시에 붉은 여단(Brigades Rouges: 1970년에 결성된 이탈리아 극좌파 테러조직으로, 이탈리아 붕괴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이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을 목적으로 함-역주)에 대한 국가권력의 조작과 침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해 지적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드보르는 후견인 제라르 르보비치를 만난다. 이 후견인은 자신의 출판사에서 드보르가 애호하는 작가들(그라시안에서 오웰에 이르기까지)의 저작들을 출간하고, 드보르 영화 특별 상영관을 제공한다(결국 이 모든 시도는 향후 방향을 돌린 스펙터클의 무기를 이용해 스펙터클을 내부에서부터 파괴할 목적을 가진 독특한 영상 활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이다). 르보비치는 훗날 석연치 않은 상황들 속에서 암살당한다. 68혁명 세대 대부분이 기성 자유주의 질서에 합류하는 동안, 드보르는 자신의 급진성 속에서 더욱 고립되고 점점 더 완고해져, 자신과 작품들에 덧입힌 ‘이미지들’(거의 대부분 중상적이다)을 반박하는데 마지막 노력을 쏟는다.
고전적이면서도 동시에 파괴적이고 오만하며 응축되고 각성된 집필을 시작하면서, 이제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1인칭으로 기술하기를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데(이것은 저 경이로운 <예찬>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는 자아도취로 인한 행동이라기보다, 강요된 삶의 방식 외에 또 다른 형태의 삶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명하는 동시에, 완전히 상품화된 세상에 대한 저항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전 세계를 완전히 지배할 ‘통합된 스펙터클’
마지막 시기의 주요 저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1988년에 출간된 <스펙터클의 사회에 대한 주석>이다. 이 책에서 드보르는, 1967년에 나온 자신의 분석들을 확장하고 심화하면서 현대사회에 대한 극도로 날카로운 진단을 내리는 동시에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1년 전, 그는 기술혁명으로 인해 스펙터클의 ‘집중된’ 형태(공산주의 체제)와 ‘확산된’ 형태(서방 자본주의) 간의 구분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향후 전 세계를 완전히 지배할 ‘통합된 스펙터클’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감한다. 그의 특징적 표현들은 어떤 것일까? ‘끊임없는 기술혁신(가령, 모든 사용자를 의무가입 고객으로 만드는 정보통신 관련 강제가입 상품)’과 ‘경제-국가 융합(국가가 시장에 흡수)’, ‘비밀의 일상화(진실한 결정 불가, 마피아적 모델이 정치 법정에서 승승장구함)’, ‘반박의 여지없는 허위(처음으로 세계의 지도자들도 언급의 대상이 됨)’, ‘영원한 현재(철저한 역사의식 철폐)’ 등이다.
이것은 유례없는 자발적 속박의 세계를 창조한다(드보르에게 스펙터클에서 찾을 수 있는 이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스펙터클의 규범에 순응하는 세대를 양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계속 주시하는 자는 결코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방관자가 될 것이다.” 거대한 집단 유토피아에 당연히 오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스펙터클은 자체 시스템에 대한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비평까지 망라해 모든 것을 점령하고 완전히 흡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스템을 철저히 거부할 수 있다. 그런데, 드보르의 작품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다소 느껴지는 퇴행이 보인다. 이 퇴행은 드보르가 스펙터클이 소멸시킨 바로 그것들, 즉 시효를 다한 과거의 몇몇 전망들을 아쉬워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드보르의 여정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들이 출간된다. 눈에 띄지 않거나 미간행 상태였다가 출판된 몇몇 작품들의 탁월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후아리 부메디엔의 쿠데타로 인해 아흐메드 벤벨라 대통령이 실각한 해인 1965년의 작품 <알제리 혁명가들에게 고함>이나, 중국 문화혁명의 모순을 철저히 분석한 1967년의 탁월한 기사, 아니면 우리와 좀 더 밀접한 <이민자 문제에 대한 미공개 기록들>(1985년 12월)이 있다. 드보르는 이 기록들에서 프랑스가 미국화 돼가는 시기에, 이민자들이 정확히 어디에 ‘통합되기를’ 강요받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드보르의 저서에는 정확성과 통찰력, 그리고 선견지명을 담고 있으며, 어떤 진부한 생각(특히 순응주의 좌파의 무분별성과 상투성의 대척지)에도 굴하지 않는 풍부한 분석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 드보르가 ‘사회주의 진영’이나 제3세계의 독재자들에게 대단히 냉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모든 주제들 중 왜 ‘가장 혁명적인’ 관점의 연구에서 명석함과 통찰력이 극대화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드보르의 영상 텍스트가 보여주는 것들
또한 흥미로운 그의 영상 텍스트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설혹 영화체계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드보르의 영화들(특히, <우리는 밤중에 배회하고 소멸한다(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 같은 걸작)은 역사의식과 주체의식을 가진, 놀라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어떤 영화들은 이미지들을 통해 본 세상에 대한 이해이자 동시에 고백이며 사색이고 에세이다.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아마 장 뤽 고다르의 최고의 작품들과 견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증오했던 이 두 거장 사이에 어떤 대화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4)
스펙터클이 20세기의 모든 창조적 열망을 파괴하려 하거나 ‘비가시적’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드보르가 집필하거나 지지한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가 당시의 모든 예술과 문학을 거의 예외 없이 거부한 것이 과도하고 부당하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드보르가 자신의 태도가 갖는 집단적 영향력, 즉 정치적 영향력을 다분히 깎아내리며 그를 둘러싼 집단들 내에서 때때로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을 계속해서 단절시키고 거부하는 경향에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것은 실상 그의 비타협성과 완벽하리만치 급진적인 엄격함이 빚어낸 대가일 수도 있다. 그는 모든 반체제적 집단은 반드시 ‘방황-선동-침범-이용당함-침해-변절’을 순서대로 겪는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보르의 사유와 급진성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 상품화의 전모와 그것이 전파할 수 있었던 ‘허위의식’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드보르는 그의 사유를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키는 편승효과에도 불구하고 급진성을 유지한다. 그는 “내가 어디에서도 내 시대의 지배적 사유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라고 기술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우리 삶 속에서 따를 법한 위대한 교훈이다.
글·기 스카르페타 Guy Scarpetta
대표작으로 <L’Age d’or du roman(소설의 황금기)> (Grasset, Paris, 1996), <Pour le plaisir(쾌락을 위해)> (Gallimard, Paris, 1998),
<Variations sur l’érotisme(관능을 위한 변주)> (Descartes et Cie, Paris, 2004) <La Guimard(기마르)> (Gallimard, Paris, 2008)가 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임
번역·이상순 leesangsoun@hot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Guy Debord, <Œuvres(작품집)>, Gallimard, 《Quarto》총서, 파리, 2006년, 1904쪽, 장루이 랑송(Jean-Louis Rançon)이 앨리스 드보르(Alice Debord: 작가, 기 드보르의 배우자, 결혼 전 이름은 Alice Becker-Ho)와 함께 정리하고 주석을 달았음.
(2) 스펙터클(Spectacle): 미디어 연구 관점에서, 자연경관 외에 미디어가 보여주는 표상이나 이미지를 포괄하는 개념이자, 이미지에 의한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를 사는 개인이 미디어가 제공하는 이미지에만 매혹되어 진정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 편집자 주)
(3)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유럽 아방가르드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던 ‘문자주의자 인터내셔널’과 ‘이미지주의자 바우하우스를 위한 국제운동’이라는 전후 아방가르드 집단이 통합해 1957년 새로이 창립한 단체이다. 이들은 당시 유럽에서 진행되던 아방가르드 운동을 재통합하고, 나아가 자신들 이전의 아방가르드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려 했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소비자본주의 생활방식에 대한 대안과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기 드보르의 저서 <스펙터클의 사회>는 이러한 상황주의 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편집자 주).
(4) 드보르와 고다르 간의 이 모순적인 유사성(또는 근접성)은 세실 길베르가 아주 잘 지적하고 있다. 기 드보르에게 헌정한 최고의 에세이 중 하나인 <기 드보르를 위해(Pour Guy Debord, Gallimard, Paris, 1996)>에 잘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