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의 나라’ 호주
저 위를 노리는 모순의 지정학

2010-04-09     올리비에 자제크

러드 총리 집권 뒤 아·태 국가들과 관계개선 노력 지속
존재론적 ‘친미’의 한계… 주변국, 경계 품고 손잡기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병력 증강 요청을 받은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미국의 격려를 반기면서도 이를 수락하지는 않았다. 2007년 12월 정권을 잡은 러드 총리는 이후 대미 지원 입장을 재고하지 않았지만, 아시아 주변국과 관계 증진에 힘쓰고 있다.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페이지 하단의 ‘미주’ 정도로 나타나는 호주가 지정학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일까? 평면구형도상 위치에 준해 호주 사람들이 반어적으로 ‘저 아래의 나라’, 즉 ‘다운 언더’라고 부르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호주는 국제관계 분석가 사이에서 기껏해야 예의상의 관심 정도를 살 뿐이다. 호주는 핵보유국이 아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이 아니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는다.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이 아니며, 신흥경제4국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호주가 과연 역학관계에서 배제될 수 있는 나라일까?
 세계 6위의 국토 면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11번째로 잘사는 나라인 호주는 유엔개발계획의 인간개발지수가 세계 3위이다. 국내 인구는 2200만 명밖에 안 되지만, 탄탄하고 믿을 만한 국방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태평양에서 핵심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3월 호주 예방 일정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치 재설정이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국가안보 향방에 관한 내부 토론에서 수많은 질문이 불거져나왔다.
 2010년 초, 부임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노동당 출신 케빈 러드 총리가 세운 첫 번째 목표는 보수파 출신의 존 하워드 전 총리와 구분선을 긋는 것이었다. 1996년 총리에 임명된 하워드 전 총리는 국가에 ‘해로운’ 선택을 해왔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라로서 그 역할을  어느 때보다 눈에 띄게 노골적으로 못박아둔 하워드 전 총리의 정책이 호주의 외교력을 ‘아주 조금’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1999년 유엔의 지지를 받으며 동티모르 다국적군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에 도취된 하워드 전 총리는 미국이 정당한 질서유지 권한을 행사하는 태평양 지역에서 호주가 ‘부보안관’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반테러 ‘선제 행동’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며 호주가 2002년 10월 발리 테러(1)에 이어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도 대미 추종적 성향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강화됐다. 호주가 이러한 신념을 표방하고 나서자,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주변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국은 일제히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국가들은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 호주가 개입한 것을 두고 놀란 게 아니었다. ‘지역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2003년 솔로몬 제도에 1500명을 파병한 것이나(2) 2006년 통가에 100여 명을 보낸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일 뿐이다. (3)
 하지만 이 지역 전문가이자 호주의 지정학 관련 내용이 담긴 유일한 프랑스 교과서(4)의 저자 파브리스 아르구네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호주의 이러한 구조적 개입과 독단적 판단, (파푸아뉴기니를 포함한) 주변국을 ‘파산국’으로 간주하는 미국식 논리에 동조한 정세 발언이 어울리지 않는 결합을 이루면서 ‘오만한’ 호주의 이미지가 더욱 강화됐다. 캔버라의 그런 표현은 주변국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2002년부터 이미 필리핀의 로일로 골레즈 국방장관은 “하워드 총리의 입장은 솔직히 오만하다”고 평했으며, 2006년에는 솔로몬 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가 하워드 총리 쪽을 두고 “지역적으로나 오만한 나라 차원에서나 위험요소”라고 평가했다. 그 다음해에는 파푸아뉴기니의 마이클 소마레 총리가 “우리 지역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건 당신네 민족과 지도자들의 전형적인 오만함”(5)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내부적으로 강경보수파 싱크탱크(공공정책연구소, 독립연구소)의 지원과 신보수파 거물 루퍼트 머독 언론 그룹의 지지를 받은 하워드 총리의 태도는 1970년대 이전 미국 유일 추종주의 기반의 ‘선방위 정책’을 다시 부추기는 듯했다.
 지금과 비교해 그때를 구조적이라기보다는 동조적 차원에서 반테러 히스테리에 연계된 예외적 시기로 볼 수 있을까? 지형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어떤 선제 이론도 근본적으로는 호주가 처한 명백한 지정학적 전략의 모순을 무마할 수 없다. 주로 개발 단계에 있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에서야 호주가 경제·문화·정치 면에서 굉장한 위력을 가진 나라이나, 반대로 중국·일본·미국·러시아 등 강대국이 우위를 떨치는 북태평양으로 무대를 옮기면 호주의 역할은 들러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40년 전 영국이 아시아·태 평양 지역에서 철수한 뒤 일련의 움직임에서,(6) 호주의 관심은 한층 교묘히 장기적인 아시아 세력 균형을 고려하면서 좀더 독자적인 외교를 발전시키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호주의 대외무역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이고, 2007년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호주의 제1교역상대가 됐다.

 공조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든 아니든, 호주의 미래는 이러한 현실에 맞물려 있다. 게다가 이는 하워드 전 총리의 미국중심주의와 호전성으로 악화된 지역 내 반감을 넘어 그 자신도 인식하던 바였다. 2004년 그는 역대 호주 총리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 기반을 세우기 위한 아세안 회의에 참석했다. (워싱턴과 합의한 내용을 감안하면 다소 신중하지 못한 태도였으나) 같은 해 그는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의 입을 통해 “호주가 대만해협의 잠재적 분쟁에 ‘반드시’ 관련될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며 중국의 환심을 샀다.(7) 2005년 말,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반대와 논란이 있었지만 호주는 결국 아세안과 일본, 중국, 한국이 결합해 더욱 확장된 정치기구로 발족된 ‘동아시아 정상회의’ 회원국이 됐다.
 이러한 대아시아 전략은 지금의 러드 총리에게서 재차 확인된다. 둘의 확실한 차이라면 러드 총리의 좀더 중립적인 외교 화법이 다자주의적 행동에 어울린다는 점이다. 하워드 전 총리는 기후변화 문제에 극심하게 반발했지만, 2007년 12월 3일 호주는 교토의정서에 서명했다. 러드 총리의 임기가 시작되던 상징적인 날이었다. 러드 총리는 이라크 파병 병력 2천 명을 철수시키면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주변 이슬람 강국의 찬사를 받았다. 게다가 2008년부터는 동양계 이민제한 정책도 완화됐다. 같은 해 2월, 러드 총리는 토착 원주민에게 호주인의 사과를 엄숙히 전했다. 하나같이 아시아에서 반기는 결정이었다.
 대중국 관계 또한 겉으로 봤을 때는 적어도 상호 의견 존중과 정상화의 의지가 보였다. 과거 외교관 출신인 러드 총리가 유일하게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서방’ 지도자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후진타오 주석과 회담할 때 일절 통역 없이 진행한다.) 호주의 이같은 대아시아 전략 방향을 잘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실은 한때 부시 행정부의 영향 아래서 구상됐던 ‘4자 회담’이 이제는 논의할 계제조차 안 된다는 점이다. 인도·일본·미국·호주를 묶어 대중국 전선을 구축하려던 4자 회담은 이제 명함조차 내밀 수 없게 됐다.
 호주의 장기적인 목표는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개괄적 차원에서 미국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주가 더 중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한창 개편 중인 지역 포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미국 동맹관계를 완화하는 것이다. 하워드 총리 시절 아시아 지역이 냉각된 시기는 부시 행정부가 태평양 지역을 등한시했을 때와 일치한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대아시아 정책 방향과 러드 총리의 정책에서는 시의적절한 연계점이 발견된다. 둘의 공통적인 분석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21세기 지정학적 균형을 결정할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싱가포르나 필리핀같이 중국의 급격한 성장을 예의주시하는 일부 동맹국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좀더 ‘동양화’할 필요가 있으며, 호주 정부는 이같은 위치 재설정이 수월하도록 돕고 있다. 호주의 메콩강 유역 전략에서 알 수 있듯이, 호주 국제개발청(AusAid)은 다년간의 계획을 통해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투자해왔다. 이 전략의 2007~2011년 계획안은 캄보디아·베트남·라오스 등지에서 인프라, 교육, 수자원 관리 프로젝트를 재정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8)
 하지만 이같은 균형 재조정은 신중하게 결정되는 양상이다. 최근 호주의 움직임 가운데 일부는 점차 효율성을 발휘하는 역내 다자구조와 대치된다. 2008년 6월 시드니 아시아소사이어티센터 연설에서 케빈 러드 총리가 여러 차례 소개한 ‘2020 아시아·태평양 공동체’가 같은 맥락이다. 이는 2009년 5월 발행된 <국방백서>에서 재차 언급됐다.(9)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이 자유무역, 반테러, 에너지 및 안보 협력, 자연재해 및 질병 관리에 참여하는 등 상대적으로 모호한 목표를 설정한 아·태 공동체에는 현재 그 어떤 지역 협력체도 가담하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껄끄럽게 만들 수 있는 구상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동아시아 정상회의 중심 추진세력이던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계획을 오랫동안 외면해온 호주를 쉽게 용서할 리 만무하다.(10) 그러나 호주의 위치 재설정 문제가 어려운 건 비단 까다로운 몇몇 상대국과 대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동양 국가가 태평양에 묻힌 정체불명의 작은 서방국가 호주를 바라보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필리핀, 대만, 베트남 등 역내 일부 국가가 오로지 중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목적에서 호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국가 모두 캔버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파푸아뉴기니 같은 일부 주변국은 속칭 ‘오지’가 여기저기 개입하며 훈계하고 다니는 것에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호주가 동티모르에서 ‘주도권’을 가진 게 여전히 못마땅한 인도네시아는, 그래도 동맹이 필요한 탓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유기적 동맹관계에 있든, 비판적 주변국 관계에 있든 어떤 나라도 실제보다 말이 앞서는 호주의 ‘동양화’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거침없이 내뱉던 하워드 전 총리와 달리 지금의 러드 총리가 외교적 방식으로 하는 말이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호주를 믿지 못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 이번에 발간된 <국방백서>는 이전 판과 마찬가지로 호주의 안보정책의 핵심은 역시 (역내 비다자주의적 관점의) 1951년 호주·뉴질랜드·미국 안전보장조약임을 재차 확인해주고 있다.(11) “역내 전략적 안정성은 일본·한국·인도·호주를 포함한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적의 방식으로 보장된다는 게 정부의 견해다.” 극동지역 미 동맹국들의 이 솔직한 입장은 논리적으로 동아시아의 상당 부분, 특히 중국이 발빠르게 재무장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계된다.
 2009년 10월, 러드 총리와 중국의 천 빙더 신임 총참모장 사이에 있었던 회동은 이후 만족스러운 외교 보고서를 만들어냈겠지만, 끊임없이 호주를 괴롭히는 중국의 군사력 신장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중국의 군 예산은 연간 60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어 캔버라 쪽에서 늘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호주 <국방백서>는 ‘중간 톤’의 어조를 유지한다. “속도, 범위, 구조 등 중국의 군 현대화는 그에 대한 이유와 설명이 없다면 주변국의 걱정을 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무역 ‘공격’이 더해진다. 이제는 호주의 경제계에서도 비난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광물 및 에너지 분야를 개방한 뒤, 중국 정부는 자국의 광물자원(특히 희토류 광맥)에 보호 조치를 취하고, 이 분야의 중국 투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호주의 대형 광산업체 리오 틴토와 중국의 관계 악화는 이러한 균열 조짐을 보여주는 최근의 한 사건일 뿐이다. 리오 틴토는 결국 지난해 9%에서 20%로 올리려던 중국 치날코의 증자를 거부했다. 역내에서 좀더 신중하게 외교적 위치를 재설정하는 문제를 넘어, 러드 정부는 중국을 저지하는 미국 동맹 네트워크의 약화가 우려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원치 않는다. 물론 그는 미국이 2025년까지 핵탄두를 500기 이상 보유하지 않고 선제공격 방침을 폐기하는 내용의 ‘국제핵비확산군축위원회’(ICNND) 권고를 받아들여 핵무기 감축을 고려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의 전략적 고민의 틀에 비추어보면 이는 꽤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2009년 12월, 호주 국제정책연구소 소장이자 영향력 있는 논설위원인 앤드루 시어러는 머독 그룹의 ‘플래그십 스토어’ 격인 호주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에서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아시아와 중국이 재래식 무기에서 부진을 만회하려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믿을 수 있는 핵 억지력 유지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우선 과제로 남아 있어야 한다.”
 워싱턴에서 보면 호주는 캔버라-자카르타-마닐라-타이베이-도쿄 라인을 남방에서 지지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 라인은 야심찬 중국의 해상 전면 부상을 감시하는 저지선으로,(12) 긴밀히 확대되어야 한다. 비공식적이었던 도쿄-캔버라 축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양상이다. 이를 증명해주는 게 2007년 3월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와 하워드 전 총리 사이에 체결된 ‘안보 협력에 관한 공동 성명’과, 특히 2008년의 ‘방위 협력 각서’이다. 후자의 경우, 반테러·인도주의 지원·평화유지·해상안보 분야에서 연례 훈련을 통해 일본 자위대와 호주군 사이의 진정한 상호 공조 체제를 확립해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미국태평양사령부(USPACOM) 미군과 긴밀한 관계 속에 진행된다. 2009년 1월에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의 각 참모총장이 롬복 조약(2008년 양국이 비준한 양자 안보조약)과 같은 맥락에서 ‘안보협력 공동 선언’을 체결했다. 긴 설명과 함께 아·태 지역의 미 주축 동맹들 사이에서 이뤄진 이 공동 선언 체결은 호주방위군의 지역 군사협력을 옛이야기로 거의 잊게 해줄 것이다.
 러드 정부의 공식적인 담론과 달리, 호주의 안보에 관한 합의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호주의 아프가니스탄 작전 참여에 관한 논의가  거센 양상을 띠고 있고, 존 폴크너 신임 국방장관이 조속한 시일 내에 호주군 1500명이 귀환하길 바란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하지만 이는 시류를 탄 것뿐이며, 미군 철수가 예정되어 있는 마당에 호주군의 철수가 그리 놀라운 건 아니다.
 그렇다면 호주-미국 간 거리 유지는 불가능한 일인가? 2010년 2월 13일,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보수 논설위원 그레그 셰리던은 이같은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지난 수십 년간 아시아의 안정을 유지하고 호주의 안보를 보장해왔던 안보 기틀은 오직 미국만이 제공해줄 수 있다. 물리적·정치적·정신적으로 다른 그 어떤 강대국도 불가능한 일이며, 특히 중국이라면 더욱 아니다.”(13) 사실 (이를 개탄하기 위한) 호주 급진좌파의 분석이나 (이를 반기기 위한) 보수 야당의 분석에서 강조하는 바와 같이, 노동당은 이미 기반이 취약한 아시아 지역 내 외교 및 문화 균형 조절 문제를 넘어 안보에 관한 교체 비전이 없다. 2007년 말 이후 정권 교체가 되었지만, 거대 중국의 부상으로 긴장이 고조된 태평양 무대 아래쪽 어딘가 ‘다운 언더’의 호주에서 미국 중심 안보에 관한 합의는 뼛속 깊이 뿌리박혀 있는 상태다.

 

글•올리비에 자제크 Olivier Zajec
유럽전략지능회사 연구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의 역서가 있다.

<각주>
(1) 이 테러로 20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호주인 관광객 88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2)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솔로몬제도지역원조단(RAMSI·Regional Assistance Mission to Solomon Islands) 차원의 활동. www.ramsi.org
(3) 장마르크 레뇨(Jean-Marc Regnault), ‘태평양 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불안정 지대’(Une zone d’instabilité méconnue, le Pacifique insulair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6월호.
(4) 파브리스 아르구네스(Fabrice Argounès), <호주의 지정학>(Géopolitique de l’Australie), Complexe, Bruxelles, 2006년 10월.
(5) 2007년 프랑스 정치학회(AFSP) 총회 발표 ‘주변국에 비친 호주의 오만함’(Une arrogance australienne au miroir de son voisinage)에서 파브리스 아르구네스가 인용.
(6) 1967년 영국은 ‘수에즈 동부’에 위치한 지역의 상비군 철수를 결정. 이때부터 미 동맹이 지역 내에서 반공산주의 안보 보증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7) 존 하워드 전 총리와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은 내부적으로도 극심한 논란에 부딪혔으며, 미국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8) www.ausaid.gov.au/publications/pdf/mekong.pdf.
(9) Defense White Paper 2009. Defending Australia in the Asia Pacific Century: Force 2030. 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Defense, Canberra, 2009년 5월 2일. www.defence.gov.au/whitepaper/docs/defence_white_paper_2009.pdf.
(1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지역포럼(ARF), 아세안+3국(APT) 등과 같은 다양한 기타 지역 포럼은 고려하지 않음.
(11) 9·11 직후에도 호주는 이 조약의 내용을 원용해 미국을 전적으로 지원했다.
(12) 올리비에 자제크, ‘중국 해군, 대양 제패를 꿈꾸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9월호.
(13) 그레그 셰리던(Greg Sheridan), ‘미국은 지구적 지배력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US will not abdicate its global dominance), <디 오스트레일리안>, 2010년 2월 13일자.
(14) www.greenleft.org.au.

 


 

[박스기사1] 호주군, 미군 등에 업고 지역에 영향력

 호주방위군(ADF·Australian Defense Force)은 역내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영국군 철수 후 1971년부터 사실상 5개국 방위협정으로 호주·뉴질랜드·영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방위체제가 구축되었으며, 이 지역에 공격이 들어오면 호주·뉴질랜드·영국이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지원한다. 5개국 방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1997년부터 5개국 해군 및 육군이 정기 합동훈련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고 현역 5만1천 명, 예비역 19만400명이라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호주방위군이 미 방위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조엘 피치본 전 국방장관은 2009년 5월 <국방백서> 발간을 언급하며, 공공연히 이를 상기시켰다. “미국의 훈련 구조·기술력·역량 없이는 호주의 방위력이 분명 지금과 같은, 그리고 앞으로 그래야 할 현대적 도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1) 이처럼 미국에 대한 전적인 지지 입장은 상당한 수준의 투자로 드러난다. 호주방위군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는 세계 곳곳에서 언제 있을지 모를 미국의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네덜란드 등 미국의 다른 제일선 동맹국처럼 신뢰할 만한 수준의 훈련된 병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특수군·다목적전투기 등 예외적인 병력 신장에 노력을 집중해 호주가 늘 자랑스레 지지를 표명하는 ‘선의 연합'(Coalitions of the willing) 내에서 최대의 영향력을 얻어내야 한다. 호주의 군 자문위원들은 ‘큰형’ 미국의 연구소와 훈련소에서 환대를 받고 있으며, 데이비드 킬컬렌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오늘날 그는 미군의 내란기도 진압(Counterinsurgency) 이론의 ‘대가’가 되었다.
 육군 장교 출신인 킬컬렌은 2007년 이라크전쟁 ‘증파 전략’ 준비 단계에서 당시 미국의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에게 조언한 인물이다. 여러 영미권 정부를 도와준 그는 현재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 이사회 회원이다. 베트남에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호주는 펜타곤 수뇌부의 흠잡을 데 없는 조력자였다.
 한편에서는 미군 파병에 지원군을 대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태평양이라는 변경의 요새 지대에서 오랜 방어벽 좌표 역할을 해온 호주가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역할이 결국 호주의 두 가지 ‘국가 안보권역’과 관련해 미국의 영원한 보장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권역은 1987년 <국방백서>에서 ‘직접 군사 이익 반경’이라는 용어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당장의 주변 국가를 포함한다. 이 국가들의 안정성과 부동성은 중요한 방위권을 구성하며, 호주로서는 일종의 ‘지정학적 산호 방어벽’이 된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솔로몬 제도, 피지가 들어가며, 더 넓게는 남태평양의 섬나라까지 포함한다. 두 번째 권역은 호주 자체의 영토 방어, 즉 호주 본섬과 관계되나 코코스 섬, 크리스마스 섬, 노폴크 섬 등 유인도와 애시모어 섬, 카티어 섬, 허드 섬, 맥도널드 섬, 산호해 섬들, 호주 남극 영지 등 무인도까지 포함한다.
 현재 호주 참모부가 주력을 기울이는 한 가지는 호주방위군이 ‘산호벽’ 권역에서 더 자립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1987년 피지 쿠데타 시 ‘모리스 댄스’ 작전으로 첫 해외작전 업무를 맡은 호주는 현재 ‘항구적 자유’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호주의 파병 능력은 크게 신장됐다. 해군 부대와 수륙양용 부대(콜린스급 잠수함 6대를 포함한 50대 이상의 현대식 대형 선박), 미국의 전술(C130 Hercules)·전략(C17 Globemaster) 수송기를 갖춘 항공 수송 부대 등이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끝으로 주된 역할인 자국 영토 방어와 관련해, 호주방위군은 남극이나 뉴질랜드를 바라보는 연안 지역에 비해 주로 섬 북쪽에 전략적으로 ‘밀집’해 주둔하고 있다.

<각주>
(1) 호주 국방부, <A Defence Force for the 21st Century>, Canberra, 2009년 5월 2일.


 

 

[박스기사2] 지역 기구 및 조직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버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이, 베트남.

 

아세안+3국 아세안 국가+중국, 한국, 일본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3국에 호주, 인도, 뉴질랜드가 결합. 러시아는 참관국 지위.

아세안지역포럼(ARF)
1994년 창설. 호주, 방글라데시, 버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캐나다, 중국,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북한, 남한, 라오스, 말레이시아, 몽골, 뉴질랜드,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러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타이, 동티모르, 유럽연합, 베트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중국, 남한, 미국,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페루, 필리핀, 러시아, 싱가포르, 대만, 타이, 베트남. 매년 정상회의 개최.

상하이협력기구(SCO)
2001년 조직.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몽골, 이란, 파키스탄은 참관국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