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눈높이에서 정치혁명이 나온다

[특집] 선거, 생활정치에 대한 질문

2010-04-09     하승수/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풀뿌리에서부터 정치를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선 대구 이야기부터 해보자.
 정치적으로 ‘대구’는 보수 기득권의 상징이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지방의회까지 모두가 보수 기득권 세력에 의해 거의 100% 장악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대구에도 좋은 사회와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 동구에 가면 ‘대구 참여연대 동구 주민회’ 사람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든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 도서관은 학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동네마다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서 아이들이 걸어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 도서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청소년이 편안하게 놀고 쉬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수성구에서 주민운동을 하는 한 여성 활동가는 “수성구에는 청소년이 쉬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고 했다.

 보수 지역엔 주민 시설이 없다

 실제 정치적으로 보수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수적이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인들이 표가 안 되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없다. 보수 기득권 성향의 정치인들은 그보다는 개발사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려 대구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대구 참여연대는 올해 지방선거에서 좋은 기초지방의원(구의원)이 나올 수 있게 하기로 결의했다. 대구 몇몇 선거구에서 지역시민운동이나 주민운동 출신 구의원 후보들이 나올 예정이다.
 대구에서 서쪽으로 한참 가면 ‘광주’가 있다. 광주나 전남 지역에서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기득권 세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진보 정당이 일부 지역의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 민주당 일당 지배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선거 때면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민주당 공천을 통해 개인적인 정치 진출을 도모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달라지고 있다.
 광주에서는 시민운동가 출신 임승호씨가 남구에서 무소속으로 구의원에 도전한다. 그는 지역의 희망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로 내걸고 있다. 전남 나주에서는 농민회와 시민단체가 시장부터 도의원, 시의원 후보까지 모두 내고 민주당을 넘어서는 모델을 나주에서부터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좀더 위로 올라오면 충청도이다. 충북 옥천에서는 <옥천신문> 대표를 지낸 오한흥씨가 무소속으로 군의원에 도전한다. 그는 풀뿌리 지역 언론의 모범사례인 <옥천신문>을 일궜고, 최근에는 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 살리기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에게 전화를 하니, “천막을 선거사무실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한다”고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중앙권력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이런 소식을 전하면, 곧바로 ‘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겠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중앙집권적이니까, 대통령이나 국회 다수당이 바뀌어야지’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민주화 이후 수십 년간 우리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을 직시해보자. 한편에서는 “MB 정부 심판”을 외치며 그런 구호로 뭐가 될 것처럼 기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에 아무런 기대가 없는 두터운 유권자층이 존재한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절반가량의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해왔다.
 그렇다고 투표율이 골고루 낮은 것은 아니다. 특정 연령대, 특정 계층의 투표율은 지금도 높다.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연령대별 투표율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다. 60살 이상 투표율은 65.5%에 이른 반면, 20대 평균 투표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계층별 투표율도 차이가 난다. 도시에서는 부유층 투표율이 다른 계층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정치 변화를 어렵게 한다. 아무래도 정치가 변하려면 투표를 하지 않던 유권자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 퇴행과 독선·전횡에 불만이 쌓이면서,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는 투표 참여 열기가 뜨거울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과연 그 기대가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야당의 상태는 심각하다. 민주당은 여전히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 정당도 시민의 기대를 모으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마냥 탄식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지역정치가 중요하다. 지역정치를 통해 유권자는 ‘내가 관심을 가지면 실제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면 자신의 지역에 복지예산이 늘어나고, 작은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어려운 아이들이 적절한 보호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것만큼 정치 불신을 깰 수 있는 확실한 통로는 없을 것이다.
 호남과 영남의 보수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있는 것도 지역정치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호남의 민주당 일당 지배와 영남의 한나라당 일당 지배가 깨지지 않고서 과연 중앙정치의 큰 변화가 가능할까?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중앙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도 풀뿌리에서부터 만들어가는 변화가 중요하다.
 
 대안 모색도 지역에서부터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곳도 지역이다. 물론 한국의 지역은 ‘풀뿌리 보수주의’의 온상이다. 그래서 지역에서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형편 속에서도 지역 주민의 힘으로 대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친환경 무상급식’의 단서는 지역에서 나왔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통해 친환경 학교급식을 전면적으로 확대해온 제주의 경험이 있었기에 ‘친환경 무상급식’이 전국적으로 주창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지역주민의 참여 속에 전개된 일련의 운동이 있었다. 친환경 급식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제주도의 주민발의운동에서 1만 명이 넘는 주민의 서명을 받았다.
 대의민주주의를 혁신하기 위한 시도 또한 지역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내외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일반 시민이 예산편성이라는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는 브라질의 도시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에서 시작해 외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지역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는 시민이 직접 참여해 대안을 만들고, 그 대안의 현실성과 적합성을 오감(五感)으로 검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믿기 마련이다. 친환경 급식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작은 도서관 하나가 그 지역 아이들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시민은 개발과 시장지상주의가 아닌 ‘삶’의 대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6·2 지방선거와 풀뿌리 정치운동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풀뿌리에서부터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지 못하다. 특정 사안에서 주민의 힘을 모아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 지역의 대의정치를 큰 틀에서 바꾼 경우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이나 지역시민운동, 주민운동은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해왔다. 진보 정당의 경우 지역 현실과 사람들의 삶에서 의제를 찾고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추상적 담론과 정파 경쟁에 힘을 낭비해온 것이 문제였다. 진보 정당의 당원조차 지역에 무관심하고 지역활동 참여 비율이 낮았다.
 지역시민운동, 주민운동이 지방선거를 통해 대의정치에 진출하려는 시도는 여러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계속돼왔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 고양시 등지에서 적잖은 후보가 지방의회 진출에 성공했지만,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공천제가 기초지방의회까지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민후보’ 또는 ‘주민후보’로 당선된 지방의원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정치를 변화시키려는 흐름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역풀뿌리운동과 진보 정당의 연대로 2명의 시의원(무소속 1명, 진보신당 1명)이 당선된 경기 과천시에서는 의정활동을 통해 새로운 풀뿌리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의원들은 학교급식 개선, 친환경상품 구매 촉진조례 제정,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 및 설치·개선 지원 조례’ 제정 등을 이끌어냈다. 이런 가시적인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의원들이 ‘이웃 같은 대표자’, ‘참여하는 주민들의 안내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매 연말 예산편성안이 나오면 시민과 함께 예산 워크숍을 열어 시민의 의견을 청취하고, 그 의견을 예산심의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문 닫을 위기에 놓인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인과 소통하고,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는 주민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의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사례는 풀뿌리정치의 희망을 보여준다.
 올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지역에서도 ‘풀뿌리에서부터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지역시민운동, 주민운동에 뿌리를 둔 후보들은 지난 2월 19일 ‘풀뿌리 좋은 정치네트워크’(http://2010net.tistory.com/)를 결성했다.
 한편 유권자의 힘으로 정책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역 풀뿌리운동에 기반을 둔 유권자 단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서울 관악구의 유권자 단체는 청소년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 ‘청소년 의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런 흐름이 얼마나 힘을 받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정치를 제대로 바꾸려면 풀뿌리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개발과 시장이 아닌 ‘생활’이 대안이 되려면, 그런 대안은 먼저 지역에서 모색되고 실현될 수밖에 없다. 그 출발점이 6·2 지방선거가 되어야 한다.

 

글•하승수
변호사. 지방자치와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