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청년의회 '미래 지도자 키운다'

2008-10-29     마리 안느 부토로, 막심 소베트르, 에릭 스카브넥

 유럽 전역에 문어발처럼 뻗어나가는 막강한 조직입니다." 2008년 PEJ 브르타뉴 회기의 회장을 맡았던 벨기에 출신 런던경제대 학생 니콜라 마티우다키스가 자랑스럽게 운을 뗐다. 1987년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퐁텐블루의 한 고등학교에서 창설된 PEJ는, 2004년 독일의 하인츠-쉬바르츠콥프 재단1)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편입되면서, 재단의 관리를 받으며 세계 수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정기 회의·포럼으로 '리더십' 단련

 이 단체는 지역별, 국가별로 정기 회의와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유럽 32개국 출신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초대되어 역할을 분담하는 식으로 유럽의회 참여도 독려하고 있다.
 정계 인사와 고위직 공무원들이 PEJ의 귀가 되어 주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특히 그렇다. 농수산부장관 미셀 바르니에, 전 수상 미셀 로카르,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작크 랑 사회당 국회의원, 마르코 월스트롬 유럽위원회 부의장, 조셉 보렐 퐁텔 전 유럽의회 회장 등이 그들이다. 2008년부터는 호세 마뉴엘 바로소 유럽위원회 회장이 국제 PEJ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4월, 이 조직의 브르타뉴 위원회는 '유럽 프로젝트'란 타이틀을 내걸고 렌느에서 제 3차 지역 회의를 가졌다.
 렌느에서 개최된 59 번째 국제회의를 앞두고 예행연습을 한 것이었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유럽 고위 관계자들의 전폭적 지지 속에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개최된 국제회의에는 대략 3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다.
 이 단체는 또 프랑스 정부로부터 '청년과 대중교육'이란 프로그램으로 인가를 획득,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수많은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 PEJ는 한해에 1만 명에서 2만 명의 젊을 이들을 상대로 EU의 힘을 과시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비정치적'2) 개입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교육'의 기능마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집행부 보고서에 따르면 회기 중에 다루는 주제는 '국가 조직위원회 관계자 및 스폰서 그리고 파트너 등, 일부 명망가들의 의견을 참고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스페인 비즈니스 스쿨, 미쉘린 그룹, 아코르 그룹, 루이비통과 헤네시 그룹 등이 위에서 거론된 명망가 반열에 올랐다. 또 '생각하는 회사'라 불리는 히포크렌 재단도 젊은이들에게 자유 분방하고 유럽적인 조언들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국제 PEJ는 거대 기업경영컨설팅 회사인 MC 킨제이 & 컴퍼니로부터 3년에 걸쳐 6만 유로의 지원금을 따내는 쾌거도 올렸다.
 
 '유럽 정신' 수호를 위한 비전 주입
 2006년 파리에서 열린 제 51회 PEJ 국제 회기 때, 프랑스 대표 막심 코스틸레는 "주요 파트너인 스페인 비즈니스 스쿨은 단순한 파트너십 개념을 진일보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소중한 주제, 즉 유럽 기업의 문제를 다뤄 보라고 제안했다. 비즈니스 스쿨 측과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 간에 토론의 장이 마련되고, 기업 문제와 해결책을 좀 더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비즈니스 스쿨 관계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국제 회기 중 곁에 있는 친구들과 언어 소통이 원활치 못해 독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쿨 실무 담당자인 노엘 포르자르 씨는 꽤 만족해했다. "유럽청년의회의 시도는 스페인 비즈니스 스쿨이 주창하는, 시도, 혁신, 관여, 다문화라는 우리의 문화와 딱 일치합니다. 이 젊은이들은 우리의 산 힘이죠. 이들이 내일의 유럽 사회 테두리를 규정짓는 것 뿐 만 아니라 유럽 산업의 테두리도 규정지을 겁니다. 장차 성공의 원천이 되는 팀을 구축할 것입니다."3)
 기업들도 이들의 영향력과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예컨대 이 단체는 사기업에 호의적이지 못한 고등학교나 대학에 기업 후원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교가 되어주기도 한다. 심지어 PEJ는 교육계 종사자들을 상대로 기업을 대신해 로비를 펼치기도 한다. 특히 국제회기 동안 학생들을 대동하고 참가한 교사들이 로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럽 정신 수호라는 기치 아래 모였지만, 다른 가치가 우선시되는 현상도 돌출한다. 제 3차 브르타뉴 회기 공동 집행자인 클레망 베캉 씨는, PEJ의 주목적은 유럽 경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연대시키는데 있다는 주장을 폈다. 렌느 경영대학 학생인 그는 자신을 '기업에 대한 현대적인 비전'을 지닌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 '비전'이 PEJ를 장악하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2007년 브르타뉴 회기의 주제는 '기업정신을 갖춘 유럽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4) 한편 브르타뉴 회기의 마티우다키스 회장은 개회식 인사말에서 PEJ 회원들에 대해 "장차 유럽 리더가 될 세대"라고 추켜세웠다.5) 실제로 제 3차 PEJ 브르타뉴 회기에 법대, 정치학과, 경영대 학생들이 총집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관계, 재계 전폭 지원… 정기 회의 통해 '지도자 연습'
유럽 기업 성장, 지역 발전과 공동체적 이상 실현 추구


 엄격한 내부 질서… 고차원적 삶의 가치 학습
 이런 위상에 걸맞게 PEJ는 아주 고가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건물, '팀 빌딩'에 둥지를 틀었다. 위원회 업무는 렌느 정치 학교에서 봤다. 포럼 회기 동안 개회식은 렌느 시청 시의원 실에서, 총회와 폐회식은 일-에-빌렌느의 도의원 실에서 가졌다.
 권위있는 대부분의 국제회의가 그렇듯, 회의는 일부 영어로 진행됐다. 이곳에서는 커피 타임을 '뽀즈 카페(pause cafㅤㅁㅐㄼ)'가 아닌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 향후 전망을 '투르 도리종(tour d'horizon)'이 아닌 '오버 뷰(overview)'로 썼다.6)
 이러한 사교 모임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물론 엄격한 위계 질서와 관료주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PEJ는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그 시스템 책임자는 직속상관의 '명령'을 하달 받도록 했다. 속칭 '의자'라고 불리는 위계 구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브르타뉴 회기의 공동집행 운영자, 오드 게넥-알랭 부인은 일부 조직원들이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주길 바라는 듯 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간혹 여러분이 보기에 정말 어처구니없고, 심지어 '그로테스크'한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팀빌딩'에서는 그래야 합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도 말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 들지도 말고, 여러분 '의자'에 있는 지시 사항을 따라, 게임을 즐기세요!" 
 이런 식의 신입생 환영회는 참여자들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유발시킨다. 실제로 많은 업무가  다른 위원회 멤버들의 지시에 따라 맹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각자 돌아가면서, 상관과 부하 역할을 바꿔가며 복종도 하고, 명령도 내린다.
 이런 의례의 목적은 각자가 '거대한 가족'의 구성원이 됐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의자'들은 대표들을 일컬어 '갓난아이들'의 보모라 부르기도 한다. 회원들은 일거수일투족까지 상관의 명에 따른다. 예를 들면, 화장실 가는 것, 식사하러 가는 것까지 허가를 받는다. 회기 동안의 주말 내내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잠자러 갈 때와 시내의 멋진 바에서 술을 실컷 마셔 댈 수 있는 저녁 파티 시간이 고작이다.
 매 순간 진행되는 이런 멘토 행위는 위원회 토론 시간에 어쩌다 생길 수도 있는 정치적 분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완벽한 조화 속에서만 '유럽의 청년들'이 국경과 자유 경쟁에 대해 왜곡하지 않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회원의 말이다. "PEJ는 진정한 삶을 표방하는 학교입니다. 순전히 '사회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어, 한층 고차원적이고 사교적인 곳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7)
 
 '유럽 시민으로서 책무감'뼈저린 인식
 총회는 신성한 미사 형식으로 치러졌다. 일-에-빌렌느 도의회 회의실에 비치된 도의원 좌석을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회의가 진행됐다. 장황한 인사말 뒤에, 차렷 자세로 유럽 국가를 부르고, 연이어 프랑스 PEJ의 공식 노래가 된 존 레논의 대표곡 '이메진'을 목청껏 불러댔다. 분위기가 괴기스럽기까지 했지만, 모두 무감각했다. 온 종일 강력한 유럽과 사업 번창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권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기업의 권리를 찬양한 뒤, 확신에 찬 청년들이 국경과 사유재산 철폐를 부르짖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PEJ가 매력적인 것은, 게임과 엄숙함을 조화롭게 변주하는 능력에 있다. 총회장에는 '정장' 착용을 사실상 의무화 하고 있다. PEJ의 정신 세계는 이처럼 경영자 사원(寺院)과 여름 캠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심지어 회장 마티우다키스 씨는 엄숙한 투표 과정마저 웃음거리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형식상 하는 투표입니다. '재미로'요. 왜냐하면 이 투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단지 의원 행세를 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이처럼 시끌벅적한 소란을 뒤로 하고 대표들이 자리에서 물러나 평범한 페지스트(PEJ 회원)가 되고, "유럽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했다"는 '자격증'을 수여 받는다.
 그러나 혹자가 말했듯이, "유럽은 이들이 뼈를 묻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지속되어야 하는 평화의 땅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뇌리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1) 이 이름과 하인츠와 쉬바르츠콥프(Heinz et Schwarzkopf) 기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체 창시자 함부르크 출신의 성을 딴 것이다. 그는 전 베르마르크(Wehrmacht, 제2차 세계 대전 및 대전 중의 독일군) 출신으로서, 전쟁 후 외상 장애에 시달리다 유럽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미망인이 남편 이름을 딴 재단을 1971년 창설했다.
2) 인터넷에 소개된 PEJ 국제조직 관련 글 참조.
http://www.pejfrance.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21&itmid=71
3) 2006년 3월 13일 EADS보고서, http://eads.com/1024/fr/pressdb/archiv/2006
4) 2008년 회기는 여기서 문제 삼은 '유럽프로젝트'였다.
5) 사이트 참조;
http://www.sre-pejbretagne.c.la/
6) 내부 문건에 의하면, 조직이 책임자들을 임명할 때, 그들이 지닌 진취적 능력만을 보고 판단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7) PEJ사이트는 각자가 겪은 감동적인 사연들을 묶어 선보이고 있다. 이 글도 그 곳에 실린 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