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이 ‘역사적 우연’? 반환은 ‘역사적 필연’이다!

2010-04-09     원용진/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지난 3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그날 두 번에 걸쳐 의외의 만남을 경험한다. 오전에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던 중 1인 시위를 벌이던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과 만난다. 경호원의 제지가 있어 실질적인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장관은 황 위원장의 1인 시위 내용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황 위원장은 프랑스 정부가 보관 중인 외규장각 문서를 반환할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외무장관으로서는 7년 만의 한국 방문 문지방에서 벌어진 당혹스러운 ‘환영행사’였다. 쿠슈네르 장관은 같은 날 오후 황 위원장과 다시 한번 맞닥뜨린다. 이번엔 특강을 하기 위해 방문한 서울대학교였다. 장관은 1인 시위를 벌인 황 위원장에게 “두 번째군요”라고 말을 건넸다.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외규장각 반환을 놓고 의견을 나눈 직후여서인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황 위원장은 “영구 대여는 불가하며 무조건적 반환이어야 한다”고 대꾸했다. 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프랑스 외무장관의 만남, 참으로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낯선 만남이 된 것일까?

 장관과 1인 시위자, 두 차례의 만남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로즈(Roze) 제독은 한국 땅을 침범한다. 한국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가 박해를 받았다는 이유로 행한 보복적 침범이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그 침범을 본국의 지시 없이 행한 독자적 군사행동으로 규정했다. 침범 다음달 프랑스 정부는 로즈 제독과 드 벨로네(de Bellonet) 극동지역 총영사를 본국으로 소환해 처벌했다. 한국에서는 1866년 병인년 그 불법적이고 우발적인 프랑스의 한국 침범을 병인양요라 부른다. 병인양요로 많은 한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인명 피해에 그치지 않았다.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프랑스군은 왕실의 문서를 보관하던 외규장각을 털어 국보급 도서를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다. 로즈 제독은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보물찾기 원정단’을 구성했고, 가치 있는 유산을 찾을 목적이 강했다고 자술한다. 로즈 제독은 약탈물의 일부는 상관에게 선물로 제공했다. 어떤 정황으로 보더라도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적 조처가 아닌 개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따른 모험적 침략임이 분명했다. 이때 약탈한 도서가 340여 권이었지만 지금 프랑스는 174종 297권의 책자를 보관하고 있다. 그 책들을 조건 없이 돌려달라고 1인 시위를 벌인 황평우 위원장과, 그 책을 한국에 영구 대여하는 방안을 협의하러 방문한 쿠슈네르 외무장관의 만남은 그같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서울대에서의 두 번째 만남에서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두 나라의 오랜 과제이던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놓고 한국 정부와 벌인 협상이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황평우 위원장이 소속한 한국 시민사회단체인 문화연대는 오래전부터 외규장각 완전 반환을 프랑스 정부에 요청해왔다. 그와는 달리 한국 정부는 차선책으로 ‘영구 대여’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했다. 소유권을 인정받지 않더라도 후손이 오랫동안 열람할 수 있다면 그마저 외교적 수확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프랑스도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선례를 만들지 않고 소유권을 유지하는 ‘영구 대여’를 더 원하고 있었다.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한국과 외교관계도 매끄럽게 할 수 있으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대통령, 외무장관을 만나고 나서 황 위원장을 대한 그가 웃음을 잃지 않고 인사를 나눈 것은 그러한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쿠슈네르 외무장관의 자신감과는 달리 ‘영구 임대’에 대한 한국 여론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웃음기를 싹 가시게 할 만한 조처들이 그의 방문 후 줄을 잇고 있다.

성금 모아 프랑스법원에 소송
 문화연대는 2007년 2월 9일 파리행정법원에 외규장각 문화유산 반환을 요청하는 소를 제기했다. 2년 10개월 후인 2009년 12월 파리행정법원은 외규장각 유산이 프랑스 국유재산이며 양도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행정법원 대변인은 공판에서 ‘약탈’을 인정하지만 현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국가재산임을 밝혔다. 과거의 약탈 사실은 인정하지만 현재의 소유 사실은 변경할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1993년 한국을 방문한 미테랑 대통령도 이와 유사한 말을 남겼다. 미테랑은 프랑스가 보관 중인 많은 유산과 예술품은 “더 자세한 상황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은 역사적 상황”에서 취득했다며 이를 “역사적 우연”이라 표현했다. ‘우발적 역사’는 질문하지 말고 현재만을 따지자는 말로 들렸다. 파리행정법원도 과거 우발적 약탈은 인정하나 현재의 소유권은 변경할 수 없다는 동어반복을 행했다. 문화연대는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2010년 2월 항소를 제기했다.
 문화연대는 그동안 소송에 2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썼다. 모두 시민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가능했다. 아직 지불하지 못한 소송 비용과 항소 비용까지 합쳐 1억5천만 원 정도를 내야 한다. 시민의 모금 열기가 전보다 많이 줄어 걱정이다. 게다가 ’정부가 영구 대여로 입장을 밝힌 마당에 구태여 완전 반환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느냐’며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늘어 모금이 난항에 빠질 것도 우려하고 있다. 문화연대는 교육적 효과와 탈식민지 효과를 겨냥하며 모금운동과 시민홍보를 지속할 예정이다. 병인양요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한국의 문화재가 약탈당한 채 프랑스 정부 소유로 존재한다는 사실, 국가가 국민의 자산을 외국에서 빌려오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는 사실, 제3세계 문화유산은 반드시 반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을 알리려 한다. 선조가 벌인 ‘역사적 우연’을 우연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후손이 반드시 풀어야 할 필연적 과제로 받아들이려 한다.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문화연대의 노력을 지지하는 층이 두터워 어려움은 쉽게 극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후손의 과제라는 점에서 프랑스 후손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2007년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 전면광고를 실어 양심 있는 프랑스 시민의 협조를 구했다. 문화방송의 협조로 프랑스를 방문해 프랑스 시민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프랑스 시민은 약탈한 문화재의 본국 반환은 당연하다는 의견을 냈다. 전 프랑스 문화장관 쟈크 랑과 지식인들이 시민과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과 프랑스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엄청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고 있지만 양국의 시민이 내는 의견은 단순하며 명쾌하다. 원래 있던 자리에 조건 없이 갖다 놓기만 하면 될 일이라 말한다. 문화연대는 문화재를 약탈당한 국가의 시민과도 손을 잡기로 했다. 동남아시아의 민간기구와 함께 약탈된 문화재 반환을 위한 국제 연대기구를 제안하고 국제 여론을 조성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제기구 등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확산해 우연의 문제로 돌리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일제 어용학자 후손의 환대

 황평우 위원장이 두 번째 1인 시위를 한 장소는 서울대학교였다. 쿠슈네르 장관의 특강이 그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장이 외무장관을 영접하러 나왔다. 다음날 신문 사진에 황 위원장의 시위를 배경으로 장관과 총장이 만나는 장면이 실렸다. 묘한 역사적 만남이었다. 서울대 총장은 한국 문화유산을 총괄하는 기관의 수장인 문화재청장의 형님이다. 그 두 사람의 조부는 일제시대 한국사를 왜곡하던 어용학술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서 10여 년을 일한 인물이다. 미테랑 대통령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의 역사적 펼침은 모두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그림이든 역사에서 우연은 없다. 역사를 그렇게 생각하게 하려는 책략만 있을 뿐이다. 약탈 유산을 자신의 소유라고 말하는 장관을 영접하는 대학총장은 일제에 협력한 어용학자의 손자이고, 그의 동생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총괄하는 수장이고, 그 뒤에서 외롭게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역사 바로잡기를 거론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이 장면이 어찌 우연일까.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고 정리하지 못한 국가에서 생기는 필연적 사건으로 보아 마땅하지 않을까.
 시민의 지지, 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화연대, 그리고 멀리서 그 활동을 돕는 프랑스의 양심적 시민, 그들은 역사를 제대로 대접하자는 평범한 주장을 하고 있다. 과거 약탈 사건을 잊지 말고, 그래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성찰을 거듭하자고 권유하며, 아직도 역사를 우연으로만 생각하는 집단을 혼내주자며 분주하게 서로 말을 건네며 손을 잡고 있다. 그 흐름에 어깃장을 놓는 어떠한 노력도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고, 혹 일시적으로 승리한다 하더라도 역사는 다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 정부가 본국 시민의 염원에 경의를 표하는 획기적 성찰과 외교적 타결을 모색하길 요청해본다.

글•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저서로는 <대중문화의 패러다임>(1996), <광고문화 비평>(1997), <텔레비전 비평론>(2007), <아메리카나이제이션>(2008) 등이 있다. 블로그 ‘원용진의 미디어 이야기’(airzine.egloos.com)를 통해 활발한 대중문화 비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