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미소짓는 ‘에어컨 자본주의’

2017-07-31     브누아 브레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숨 막힐 정도로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선사하는 시원한 공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빈번한 폭염 때문에 한층 강력해진 에어컨의 유혹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에어컨은 그것이 자리 잡은 국가들의 생활방식마저 뒤바꾸고 있다.

 
캐나다의 해밀튼 시는 온난한 기후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는 날이 연중 129일에 달하며, 불과 18일만이 3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인데도, 50만 인구 중 82%가 에어컨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시의회에서는 건강문제를 겪는 빈곤층 주민에게 에어컨 시설의 무상공급을 고려중이다. 그만큼, 해밀튼 시는 미국에서 고안된 대책을 최초로 도입할지 모른다. 미국에는 이미 에어컨 비용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위한 공공보조금이 존재한다.(1)
 
계절별 출생률까지 바꿔놓은 ‘에어컨 혁명’ 
 
에어컨에 보조금을 제공한다?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정책이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해마다 여름이면 미시시피 주에서 애리조나 주, 플로리다 주, 뉴멕시코 주, 네바다 주, 텍사스 주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이 낮에는 40℃가 넘고, 밤에도 40℃에 약간 못 미치는 숨 막히는 기온을 자랑한다. 그런 곳에서 에어컨 없이 생활하면 늘 숨이 가쁘고 고혈압, 폐기능 부전, 수면 문제, 두통 등의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국 남부에서는 전체 가구 중 97%가 에어컨 설비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애리조나 주 등 몇몇 주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기, 수도와 마찬가지로 에어컨 역시 온전한 상태로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적 냉기를 선호하는 미국인의 취향은 이 아열대 지역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폭염보다 폭설이 훨씬 흔한 버몬트 주, 몬태나 주를 포함해 미 전역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계절과 지리적 위치를 막론하고, 20℃를 살짝 넘는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에어컨은 가정집이나 자동차, 식당, 상점, 행정기관, 대중교통시설, 경기장, 엘리베이터, 학교, 체육관, 교회 등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는 군인들마저도 자기 텐트에 에어컨을 설치할 정도다. 언론인 데이비드 오웬은 “에어컨이 설치된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은 에어컨이 없는 자기 집 공기에 적응할 수 없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2)
 
그런데 이런 에어컨 의존증은 에어컨 냉매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량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환경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대부분은 석탄에 의지하는 미국 내 전력생산량 중 에어컨의 전력사용량은 연간 6%를, 가정의 고지서 내역 중 20%를 차지한다. 2년 전 이미 미국은 아프리카 전 대륙의 용도에 달하는 전력사용량을, 자국의 건물온도를 낮추는 데 사용했다. 여기에 자동차 에어컨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연간 휘발유 380리터를 더해야 한다.(3)
 
1960년 7월, 에어컨이 미국가정 내에 이제 막 자리 잡았을 무렵,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의 어느 기자는 ‘에어컨의 혁명’ 앞에서 경탄하고 말았다. 이는 ‘혁명’이라기보다, 느리고 점진적이며 체계적인 ‘장악’에 가깝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이런 움직임은 오늘날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었고 한 나라의 지리, 도시화방식, 여가, 소비방식, 사회화방식, 심지어는 성관계 패턴까지 바꿔가며 나라 전체를 개편했다. 에어컨이 생기기 전에는, ‘실내 스포츠’에 전념하기에 여름은 너무 더웠다. 그래서 7~8월 여름철에서 9개월 후인 4~5월경에는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지게 마련이었다.(4) 
 
실내온도가 내려가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20세기 초 처음 등장할 무렵 에어컨의 냉기는 사람의 쾌적함이 아니라, 상품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강한 열기 때문에 인쇄기 및 종이가 상하는 것에 화가 치민 뉴욕의 어느 인쇄소 사장은,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에게 주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계를 주문했다. 이에 1902년, 냉각제가 든 관으로 공기를 통과시키는 기계가 만들어졌고, 출시 직후 대성공을 거뒀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되지 않아 섬유, 담배, 면류, 밀가루, 추잉검, 초콜릿 등 온도에 민감한 산업분야 전체에 에어컨 설비를 도입했다.
 
또 하나의 긍정적인 영향은, 노동자들이 이 시원함을 선호한 것이다. 1921년 사업 분야 일부를 멕시코로 막 이전한 캐리어 사의 한 광고에서는 “(에어컨만 있다면) 생산량이 최고치로 유지되며, 직원을 구하기도 쉬워집니다. 그들은 캐리어 제품을 갖춘 공장에서 일하려 할 테니까요”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로부터 8년 후, 새로운 광고문구가 등장했다. “에어컨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는 더 깨끗하고 쾌적한 공기로 직원들을 사로잡았으며, 노사분규가 거의 사라졌다”(5)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를 위한 복지라기보다는 생산성과 직결된 문제였다. 감독반장들은 폭염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생산속도가 떨어지고 결근율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추가 휴식시간을 제공하거나 작업시간을 앞당겨야 했다. 때로는 생산을 아예 중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는 테일러리즘(노동자 직무를 세분화해 생산공정을 자동화, 통제하는 노동관리 방식-역주)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던 시대가 아닌가? 고용주들은 고효율성을 보장해줄 온도를 측정했고, 연방정부도 테스트를 실시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여름에 에어컨 설비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타이피스트들의 생산성이 24% 떨어진다는 것.(6) 캐리어 사의 한 광고는 구릿빛 피부의 모델이 챙 넓은 모자로 얼굴을 덮은 채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최고의 발명품과 과학적, 산업적 진보는 온대지역에서 탄생했을까? 수 세기 동안, 열대지방에서는 열기가 기력과 야망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어컨도 없었으니, 더운 낮에는 잠이나 잘 수밖에.” ‘기온 39도, 생산성 0’(7)이라는 제목이 대문자로 박혔다. 이처럼 에어컨은 점점 더 많은 사무실, 공장, 관공서를 유혹했다.
 
영화관 등 여가공간을 점령한 에어컨 바람
 
이처럼 에어컨은 노동생산성과 연관이 깊었지만, 영화관 등을 통한 여가, 기쁨, 오락과도 관련이 있었다. 19세기 말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자주 찾았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폐쇄된 더운 공간에 갇히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영화관은 텅텅 비거나 문을 닫곤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극장 프랜차이즈 발라반앤드캣츠는 1917년부터 시카고의 자사극장에 에어컨 설비 도입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둔다. 에어컨 설비비를 그 해 여름 한 철에 모두 회수한 것이다. 경쟁사들이 그 뒤를 따랐고, 1936년 이후 시카고 시의 영화관 256개 중 3/4이 에어컨 설비를 갖추게 됐다. 이런 움직임은 또 다른 미국 대도시에까지 이어졌다. 이제 뉴욕, 허스턴, LA에서는 ‘안은 추워요’, ‘언제나 20도’ 같은 문구와 함께 북극곰, 네모난 얼음조각, 눈송이 등의 이미지가 영화관 입구를 장식했다. 더 이상 여름은 극장가의 불황기가 아니게 됐고, ‘여름철 블록버스터’라는 전략이 가능해졌다.
 
영화관 점령 이후, 에어컨은 비슷한 도식에 따라 기차, 식당, 상점, 호텔을 정복했다. 1937년에 이 산업분야의 한 전문가는 “우선 대형 프랜차이즈 건물부터 시작해 지역 프랜차이즈 건물로 퍼져 나갔고, 그 다음은 개인상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규모 동네상점까지 들어갔다”고 기술했다.(8) 에어컨이 없는 곳은, 에어컨이 있는 곳을 이길 수 없었다. 당시 에어컨은 현대성을 상징했고, 무엇보다 피서효과에 매료된 고객들은 숨 막히게 더운 가게를 찾지 않았다. 게다가, 에어컨은 ‘위생적’이라는 긍정적인 평판까지 가지고 있었다. 광고와 공권력에는 “에어컨 공기가 정화돼서 깨끗한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기차 안에서 에어컨 공기는 담배연기를 흡사 ‘마법처럼’ 사라지게 했기 때문이다.
 
몸에 좋다는 뜬소문에 힘입어 가정 속으로
 
“에어컨 공기는 임산부에게도 좋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당시 시카고 보건당국이 미래의 어머니들에게 1921년 여름 발라반앤드캣츠 영화관에 가라고 하면서 단언했던 내용이다. “영화관에서 임산부들은 콜로라도 산맥의 파이크 봉에서보다 훨씬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명성에 힘입어, 에어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가정집까지 진출했다. 양차 대전 사이에 여러 기업이 개인용 에어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초기의 개인용 에어컨은 소음과 부피가 컸다. 무엇보다도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가정 내 설비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1951년, 캐리어 사가 설치가 쉽고 가격도 저렴한 윈도우형 에어컨을 출시하자,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1960년 이후 전체가구 중 12%가 에어컨을 장만했고, 그로부터 20년 후에는 55%, 2005년에는 82%, 오늘날에는 약 90%에 육박했다. 처음에는 부유층의 전유물, 후에는 중산층의 상징물이 된 에어컨은 오늘날 거의 전 세계인의 집에 자리 잡았다. 전 지역 및 전 사회 계층으로 퍼져 나가면서 에어컨은 제 나름의 필요성을 만들어냈다. 미국 남부는 북부보다 오랫동안 도시화 속도가 느렸는데, 20세기 초가 되자 남부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1910년부터 1950년 사이 인구가 1천만 명 감소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인종차별법과 농업의 기계화에 따른 일자리 고갈을 피해 미국 중서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흑인들이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1960년대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과거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여름을 자랑했던 남부는 주민들과 기업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태양열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서도 그 장점만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었고, 노조가 없는 기업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1950년부터 2000년 사이, 선벨트(미국 남부의 15개 주에 걸친 지역-역주) 지역인구가 급증했다. 전체 미국인구 중 28%를 차지하던 것이 40%로 늘어난 것이다. 역사학자 개리 모미노는 “에어컨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플로리다의 인구가 185만 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9) 올랜도에 위치한 월트디즈니사의 놀이공원은 찜통일 테고, 그 어떤 플레이어도 네바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카지노에서 열기에 시달리려고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덤불투성이 땅인 애리조나 주의 외딴곳에 있는 피닉스 시는 1930년만 해도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는 150만 명에 달하며, 근교지역의 몸집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도시를 감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낮 동안 흡수한 열기를 해질녘에 배출하기 때문에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피닉스의 기온은 연 30일간(1950년대에는 7일간)은 43℃가 넘고, 최근인 2017년 6월만 해도 3일 연속 50℃에 육박했다. 수십만 대의 에어컨이 밤낮으로 돌아가며 열기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데, 이는 기온을 약 2℃ 상승시키고, 이로 인해 에어컨 사용이 더욱 절실해진다.(10)
 
 
물론, 미국 남부에서 에어컨 없이 산다는 것이 상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 세기 이전에만 하더라도 아무도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기후에 맞춰 계획됐다. 상점들은 가장 더울 때 문을 닫았고, 아이들은 날씨가 선선해질 때 학교를 나섰으며, 점심식사 후에는 낮잠을 즐겼다. 건축물의 모양새와 방향도 열기에 따라 설계됐다. 통풍을 위해 문과 창문은 크게, 천장은 높게 만들고, 방과 방 사이에는 얇은 벽을 뒀다. 햇빛으로부터 몸을 가리기 위해 벽의 기둥 위쪽에 커다란 돌출부를 만들었고, 바닥은 지면보다 높이 뒀다. 그리고 현관에는 덮개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면 선풍기를 천장에 연결했는데, 이는 침실에 설치하는 에어컨 한 대보다 에너지를 10~20배 덜 소모하는 발명품이다. 대야에 찬물을 받아 발을 담그거나,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르는 것도 더위를 쫓는 좋은 방법이었다.
 
1960년대에 선벨트 지역에 등장한 주택들은 펜실베이니아나 인디애나의 주택들과 닮아 있었다. 지면에 그대로 놓인, 창문이 좁은 소형빌라들, 중앙 에어컨 시스템을 위해 고안된 현대식 건물들, 창문을 열 수조차 없는 고층빌딩들이 바로 그것이다. 땅값이 싸다 보니 도시들은 시야를 벗어날 정도로 멀리 펼쳐졌고, 북부보다 남부에서 자동차는 더더욱 절실해졌다. 역사학자 레몽 아스노에 따르면, 에어컨은 이렇게 “남부의 미국화”를, 지역적 차이의 소멸을, 미합중국의 균질화를 부추겼다.(11) 루이지애나나 앨라배마에서나 이제 학교, 상점, 사무실 들은 쉼 없이 문을 연다. 그 그늘 아래서 이웃과 담소를 나누곤 하던 현관 덮개는 더는 찾아볼 수 없다. 여름철의 뉴욕에서는 아무도 거리의 상인에게서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으며, 발코니나 외부 계단의 층계참에 침대 매트리스를 배치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남부나 북부나 모두가 에어컨이 구비된 환경을 만끽하는 셈이다.
 
언제 어디서나 에어컨 구비 
 
미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에어컨 바람을 원한다. 기온이 8℃도 안 되는 밤에도, 시애틀의 어느 주민은 여러분에게 에어컨 작동법을 서슴지 않고 설명할 것이며, 알래스카에서는 전체 호텔 중 1/4이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는 공간의 안락함을 제공한다. 열기에 대한 이 나라의 내성이 한없이 떨어진 탓에, 이제는 대부분 여행자들이 ‘너무 춥다’고 느낄 정도의 실내온도를 미국 국민들은 선호하게 됐다. 에어컨이 초호화호텔이나 열차의 일등칸에만 있었던 시절처럼, 인공적 냉기는 곧 고급서비스이며, 또 세련됨인 것이다. <뉴욕타임스> 부록 ‘유행과 스타일’에 따르면(2005년 6월 26일 자) 뉴욕의 패션스토어들은 취급제품이 고급일수록 매장온도를 낮춘다고 한다. 저가형 매장 올드 네이비의 온도는 약 26.8도인데, 이는 고가의 메이시스몰보다 4℃ 높으며 명품 부티크 버그도르프 굿먼에 비하면 7℃ 가까이 높다.
 
그렇지만 에어컨의 여정은 꽤나 험난했다. 애초부터 고객들은 상점과 영화관 안이 너무 춥다고 불평하는 격분의 편지를 보냈다. 남부 주민들은 ‘북부산(産)’으로 여겼던 이 기술을 신용하지 않았다. 북부인들은 열을 제대로 견디지 못한다고 봤던 것이다. 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자신도 전임자가 설치해둔 이 에어컨을 싫어했다. 1931년, 캐리어 사의 수뇌부는 “루스벨트 대통령은 에어컨 공기에 굉장한 반감이 있었으며 이를 거부했다. 대통령이 언론에 정기적으로 내비치는 강력한 비판은 매우 부정적인 선전으로 자리 잡았다”고 기록했다.(12) 미국인과 자연의 관계가 단절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에어컨이라고 봤던(<에어컨의 악몽>, 1945) 작가 헨리 밀러에서부터 자신의 환경에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인류의 의지를 비판했던(<힘의 오각형>, 1970) 역사학자 루이스 멈포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식인들이 비판행렬에 동참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환경운동가들은 에어컨의 환경적 피해를 비난한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비만이 증가하는 원인의 하나로 에어컨을 꼽는다. 사람은 시원할 때 더 많이 먹는 경향이 있으며, 에어컨 때문에 집 안에 틀어박혀 운동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더 이상 열량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한편 여성주의자들은 에어컨이 성차별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비난한다. 사무실의 에어컨 온도가 바지, 넥타이, 셔츠 차림인 남성들에게 맞춰져 있으므로, 여름에는 대부분 원피스에 샌들 차림인 여성들에게는 춥게 느껴진다.(13) 일례로, 여름만 되면 SNS는 미국의 실내의 냉기에 대적하기 위해 스웨터, 겉옷, 심지어는 코트까지 들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항의하는 여성들(때로는 남성들)의 메시지로 넘쳐난다.
 
차별적으로 사용되는 에어컨 온도 
 
이런 저항들은 수많은 경제주체의 지원을 받은 에어컨의 승승장구를 방해하지 못했다. 공공기관은 1960년대 이후 에어컨을 구비한 가정에 이로운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했으며, 금융사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부동산 구매에 더 높은 금리를 부과했고, 부동산 개발업자는 설계도에 자동으로 에어컨을 포함시켰으며,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에너지 대기업은 이 같은 새로운 수요에 매료됐다.
 
그렇지만 에어컨이 근심거리만 초래했던 것은 아니다. 에어컨이 선사하는 안락함 외에도, 미국 남부의 위생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남부에는 과거 말라리아 같은 열대병이 만연했는데, 사람들이 모기에 노출되는 비율이 줄어 여름철의 사망률이 감소했던 것이다. 빈곤층이 여전히 에어컨의 혜택을 입지 못했던 1979년부터 1992년 사이에는 폭염으로 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여기에는 시카고에서만 5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1995년 혹서의 피해자들까지 포함시켜야 한다.(14) 이제 폭염은 더는 ‘대량살육’의 동의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병원과 수술실에 필수품인 에어컨은 통제된 온도를 요하는 의약품 생산에도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에어컨은 인터넷 작동에 필요한 데이터센터들의 열을 식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미국 내의 에어컨 사용제한을 고려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2008년에 UN은 뉴욕본부의 온도를 3도 올림으로써 모범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솔선수범은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했고, 일부 도시들만이 과다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소극적인 정책을 도입했을 뿐이다. 예컨대 2015년에 뉴욕 시는 상점들이 에어컨을 켜놓은 채 문을 열어두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시원한 바람으로 행인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2011년, 전력사용량을 강제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나라가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은 전력사용량을 대폭 감소시켜야만 했으며, 따라서 에어컨 사용량을 줄여야만 했다. 이에 도쿄에서는 와세다 대학의 어느 교수가 사무직 노동자들의 생산성 감소를 계산했는데, 이는 1일 노동량 중 30분 손실에 해당했다.(15) 이것이 아마도 미국 고용주들이 UN의 모범을 따르지 않는 이유인 듯하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2011년, 미국 내에서 지급된 에어컨 보조금 총액은 2억 6,9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난방보조금의 1/4에 해당됐다. cf. <Low income home energy assistance program>, U. 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Washington, DC, 2015. 
(2) David Owen, <The efficiency dilemma>, The New Yorker, 2010년 12월 20일. 
(3) Stan Cox, <Cooling a warming planet: a global air conditioning surge>, Yale Environment Magazine, 2012년 7월 10일, www.e360.yale.edu
(4) Alan Barreca, Olivier Deschenes et Melanie Guldi, <Maybe next month? Temperature shocks, climate change, and dynamic adjustments in birth rates>, Institute for the Study of Labor, Bonn, 2015년 11월, www.ftp.iza.org
(5) Gail Cooper, Air-Conditioning America. Engineers and the Controlled Environment, 1900-1960,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Baltimore, 1998. 
(6) Gail Cooper, Air-Conditioning America, op. cit.
(7) Marsha E. Ackermann, Cool Comfort. America’s Romance with Air-Conditioning, Smithonian Institution Press, Washington, DC, 2002.
(8) Jeff E. Biddle, <Making consumers comfortable : The early decades of air-conditioning in the United States>,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vol. 71, n° 4, Cambridge, décembre 2011.
(9) Stan Cox, Losing Our Cool : Uncomfortable Truths About Our Air-Conditioned World (And Finding New Ways to Get Through the Summer), The New Press, New York, 2010.에서 인용.
(10) Stan Cox, <Cooling a warming planet>, art. cit.
(11) Raymond Arsenault, <The end of the long hot summer : the air conditioner and Southern culture>, The Journal of Southern History, Baton Rouge (Louisane), vol. 50, n° 4, novembre 1984.
(12) Marsha E. Ackermann, Cool Comfort, op. cit.
(13) Petula Dvorak, <Frigid offices, freezing women, oblivious men : An air-conditioning investigation>, The Washington Post, 23 juillet 2015.
(14) cf. Eric Klinenberg, <Autopsie d’une canicule(어느 폭염의 상세분석)>, Le Monde diplomatique, août 1997.
(15) Elisabeth Rosenthal, <The cost of cool>, The New York Times, 18 août 2012.
 
 
박스기사
 
한창 발전 중인 세계 에어컨 시장 
 
에어컨의 미래는 더 이상 미국에 있지 않다. 기후 온난화와 주택 확장으로 에어컨 전력량은 증가하는 반면, 에어컨 판매시장은 정체하고 있다. 많은 가정들이 오래된 에어컨을 그대로 쓰거나 중고 에어컨을 물려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신흥국들에서는 도시 중산층이 형성됨에 따라 새로운 고객들이 등장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윌리스 캐리어의 발명품인 이 에어컨이 말 그대로 모든 대도시에 범람했다. 2010~2016년 2억 대 이상의 에어컨이 팔린 것이다. 스탠 콕스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부터 2020년까지 중국은 미국보다 에어컨 사용량이 훨씬 늘어날 것이다.(1)
 
이에 비해 인도는 보급률이 낮긴 하지만(전 가구의 2~3%), 발전 가능성이 어마어마하다. 인도의 대도시들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데다, 무덥고 습한 기후를 자랑한다. 2015년 여름에 예외적인 폭염이 찾아왔을 때, 인도 동부 부바네스와르의 기온은 62도라는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중산층에게 인공적 냉기는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에어컨의 판매량은 연간 15~20% 급증했으며, 2013~2014년 회계연도 당시에는 330만 대가 팔려나갔다.(2) 에어컨이 얼마나 매력적인 상품이 됐는지, 이제 일부 자동차 광고에서는 차량의 가속 능력이 아니라 에어컨의 냉각속도를 자랑한다. 매년 여름, 전력수요의 증가로 인해 인도의 인프라는 혹독한 시험에 처한다. 단전이 수시로 발생하며 때로는 대규모의 정전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2년 7월 30일과 31일, 인구 6억 명에게 전력이 차단됐을 때처럼 말이다.
 
에어컨 시장은 이미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40℃의 날씨에도 쇼핑몰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페르시아만 국가들에까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제는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필리핀, 멕시코에서도 신속하게 발전하는 중이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실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부터 2030년까지 7억 대, 2050년까지 16억 대의 에어컨이 판매될 수 있다.(3) 그렇게 되면, 이제 전 세계 에어컨 보급률은 미국 내 에어컨 보급률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에어컨이 기후 온난화를 악화시켜 더더욱 에어컨에 매달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번역·박나리
 
(1) Stan Cox, Losing Our Cool : Uncomfortable Truths About Our Air-Conditioned World (And finding New Ways to Get Through the Summer), The New Press, New York, 2010.
(2) <International Energy Outlook 2016>, U. 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Washington, DC, mai 2016. 
(3) Chris Mooney et Brady Dennis, <The world is about to install 700 million air conditioners. Here’s what that means for the climate>, The Washington Post, 31 mai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