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급행열차는 달릴 수 있을까?

2017-07-31     기욤 볼랑드 | 언론인

남미지역의 철도는 흥미로운 역설 그 자체다. 본래 유럽국가들이 자원을 수송해갈 목적으로 건설했던 철도시설들이, 이제는 지역통합으로 새로운 형태의 국가주권을 이루려는 남미 국가들의 전망을 실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세월 민영화 단계를 거치며 관련설비가 악화된 만큼, 원상복구작업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아르헨티나의 철도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저녁 6시 30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티로-미트레 역. 철제구조와 두꺼운 유리창으로 만든 원형 천장 밑에, 기차를 타려는 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남반구의 여름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이들이었다. 그 앞에 있는 열댓 개의 플랫폼은 텅 비어 있었고 단 한 곳에만 열차가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은 약 50m 길이로 줄을 서 차를 기다렸다. 가족끼리, 또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서 아르헨티나 전통차인 마테차의 향이 물씬 풍겼다. 여행객들은 짐을 발 옆에 내려놓고(준비성이 투철한 이들은 옆에 베개까지 낀 채), 앞으로의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주요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코르도바를 연결하는 노선은 열차를 한 번 놓치면 다음 차까지 사흘을 기다려야 한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750km의 철로를 오가는 열차가 일주일에 2대만 운행하기 때문이다. 이 열차의 공식 총 소요시간은 13시간이다. 물론, 그나마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의 이야기다.

그때, 갑자기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먼저 이 열차를 이용해준 승객들에 대한 감사 인사로 시작한 방송은, 승객들이 자정 무렵 산 니콜라스 데 로스 아로요스 역(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220km 떨어진 곳)에 하차해 버스로 일부 구간(70km)을 이동한 후, 다시 다른 열차에 탑승해 13시간 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폭우로 인해 일부 선로가 침수됐기 때문이다. 안내방송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라는 단서를 덧붙이며 마무리했다. 

안토니오 지메네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자신을 철학자라고 소개한 그는 한숨 섞인 불평을 내뱉었다. “15년 전에도 13시간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말이 되나요? 적어도 안전하기나 하면 좋겠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철도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교통규제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철도사고는 총 500건 이상이다. 탈선사고가 67건(2005년에는 50건), 충돌사고가 118건 일어났으며, 디젤기관차의 화재사고 역시 수십 차례 이상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인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오후 7시 7분. 마침내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열차가 플랫폼을 떠났다. 19세기 말, 영국의 철도기술자들이 아르헨티나의 주요 철로를 건설하면서 내걸었던 ‘시간에 따른 공간의 축소’라는 목표는 아직도 요원하다. 최고속도인 시속 40km로 달리는 열차에 오른 승객들이 느끼는 현실 역시, 그 목표와는 상반됐다. 오히려 철도 때문에 이동시간도 길어지고 팜파스 대평원이 더욱 광활해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증명이라도 하듯 기차역 플랫폼의 곰팡이 낀 벽 곳곳에는 바늘이 멈춘 커다란 시계들이 남아있었다.

아르헨티나 철도산업 분야의 운명은 민영화와 국영화를 오가야 했다. 1857년 국가의 주도로 최초의 철도노선인 페로카릴 오에스테(FCO)가 건설됐고, 이는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들과 항구지역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줬다. 철도를 통해 교통편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철도는 영국의 우선순위에 따라 지어졌다. 영국이 경제적 지배력 확보를 위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체제와 지역구조를 조성했기 때문이었다.

1889년 ‘웨스턴 레일웨이즈’가 FCO를 인수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철도분야는 본격적으로 민영화되기 시작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민간 및 해외투자자들이 철도경영을 더 잘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민영화를 정당화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철도노선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노선들은 영국의 철도회사들 소유로 넘어갔고, 정부는 대도시와 먼 지방 도시들을 연결하는 ‘개발노선’들을 맡았다. 그러던 중 1948년 3월 1일, 첫 임기(1946~1955)를 수행하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국가의 정치적 주권 확립을 위해 철도국영화를 결정했다. 총 5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로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를 중심으로 제각기 부채꼴 형태를 그렸다. 앞서 1930년대 초, 영국의 투자가 둔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철도열풍이 불어 닥친 아르헨티나는 철도 총 연장규모 면에서 세계 10대 철도강국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또한 철도가 국토개발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특히 농산물 수출모델이 발전했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유럽의 곡창지대로 떠오를 수 있었다.

30년 이상 손보지 않은 철로 위를 달린다

오후 8시 48분. 김 서린 창밖에 드넓은 콩밭의 풍경이 펼쳐지던 가운데, 갑자기 열차가 제자리에 멈췄다. “앞에 다른 열차가 있어서요.”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물난리가 난 화장실로 급히 향하던 두 승무원이 정차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상황을 잘 아는 한 승객이 소리쳤다. “앞이 아니라 맞은편에 있다는 얘기겠죠!” 이 구간에서는 두 열차가 한 철로를 같이 사용한다. 철도망 전체에 일괄적인 규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철도 인프라는 영국 철도회사들이 신속하게 운영했지만, 그 외 부차적인 노선들은 프랑스 등의 새로운 투자자들이 각각의 표준규격에 따라 건설한 탓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러 지방 소도시들은 철도연결만 기다리고 있지만, 일부 도시들은 동일한 구간에 선로 폭이 다른 여러 노선을 중복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오후 9시 19분. 약 30분 동안 승객들 간에 조심스러운 추측이 오간 뒤, 마침내 열차가 다시 위태롭게 덜컹거리며 갈림길로 접어들었다. 밤 12시. 팜파스 평원 위로 하얗게 빛나는 달빛 아래 힘겹게 달려가는 열차 안에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제 버스로 갈아타야 할 시간이다. 어렵게 잠에서 깬 승객들은 더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각자 서둘러 짐을 챙겼다. 어두운 불빛 속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30년도 넘은 철로를 수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으니, 비가 오면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죠. 놀랄 일도 아니에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은 60대 승객은 다시 잠을 청하려는 옆 사람에게 말했다. 열차기관사도 그 옆에 앉아 “승객들 명단을 검사하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버스 안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다음 열차의 기관실에는 나이가 40대인 마르셀로 토레산이 앉아있었다. 그는 한 손은 브레이크에, 다른 한 손은 경적기에 올린 채 두 눈을 번쩍이며 계속 주위를 살폈다. 열차는 언덕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언덕에 앉은 소년들은, 달리는 열차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토레산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선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은 25년 이상 제대로 보수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다 임시방편으로만 해놓은 것이죠.” 기관실 앞 유리에는 튄 돌이나 나뭇가지를 막기 위해 철망을 덧댔다. 철길의 자갈도 너무 오래전에 깔린 것이라 이런 폭우는 견딜 수가 없다. 선로 주변에는 가지치기가 안 된 나무들이 불쑥불쑥 자라있어 마치 기관차가 나무들 사이로 터널을 뚫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울퉁불퉁한 선로를 따라 열차는 요동쳤고 엔진의 굉음과 함께 나뭇가지들이 차체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토레산 씨는 익숙한 듯 놀라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삼대에 걸쳐 대대로 철도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1992년, 일하던 철도노선이 폐지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었다. 당시 같은 상황에 처한 철도종사자는 8만 명에 달했다. 정부가 철도분야를 다시 민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합리화’하자 대규모의 철도파업이 일어났고,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파업한 철도노선은 폐지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토레산은 철도노조인 라 프라테르니다드(La Fraternidad) 소속 동료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마테차 빨대를 입에 문 채 실습교육 중인 젊은 직원에게 “이 직업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민영화 이후 남아 있는 자리들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철도분야를 부분적으로 국영화했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선으로 우파정권이 들어서며 철도종사자들은 또다시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새롭게 당선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비용 삭감 정책을 통해 유례없는 대규모 해고 바람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 취임 일 년 반 만에 2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많은 철도종사자가 수시로 결근하며 빈둥대는 ‘뇨키 공무원(아르헨티나에는 매월 29일 뇨키를 먹는 전통이 있는데, 29일은 공무원 월급날이기도 해서 붙은 조롱조의 별칭)’으로 치부됐고, 편지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1990년대에 해고된 사람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어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상황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토레산은 건널목 앞에서 경적을 울렸다. 이 열차노선은 300개가 넘는 건널목을 지나는데, 그중 대부분은 차단기가 설치돼 있지 않다. 어떨 때는 담당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몇몇 건널목을 오가며 통행을 직접 통제하기도 한다. 이 열차가 지나는 곳들처럼, 아르헨티나에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 ‘유령도시’라고 불리는 마을이 800개 이상 있다. 기차가 지나가기는 하지만, 정차는 하지 않는 마을들이다.

오후 1시 29분. 열차가 멈추고 경찰관 한 명이 탑승했다. 도시 외곽에 경찰병력이 배치된 것은 도난사건(특히 화물열차의 경우)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차내 난입과 습격을 막고 승객들의 지갑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늘색 차체에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열차가 코르도바 외곽에 위치한 빈민가, 이른바 ‘비야 미세리아’를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시계가 오후 2시를 가리켰다. 철로 옆으로는 버스, 트럭, 자동차들이 끝없는 행렬을 잇고 있었다. 인구의 절반이 비공식부문 또는 불완전고용에 속하고 수입 역시 평균 소득(월 8천 페소, 1페소는 한화로 약 70원)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교통문제는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해결책은 차를 자주 이용하는 것뿐이다. 2016년 10월, 철도시설관리공단의 기예르모 피아드 이사장은 “철도는 선택지일 뿐, 의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1) 하지만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철도는 선택지로서의 선호도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16년 초 아르헨티나 정부는 기차표를 500% 인상하기로 했다. 실제로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코르도바까지의 이등석 티켓 값도 기존 75페소에서 360페소로 올랐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긴 이동시간 때문에 많지 않던 기차승객은 3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많은 승객이, 3배 이상 비싸더라도 신속하고 쾌적한 버스를 선호하는 것이다.

국내 트럭운송비, 해상운송비보다 비싸

2016년 3월, 기예르모 디트리히 교통부 장관은 아르헨티나 전국화물운송연맹(Fadeeac) 앞에서 “국가의 척추 역할을 하는 것은 트럭”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1960년대 이후로 교통망 개발, 차량 보유 대수 증가, 석유업계의 로비 등이 이어지면서 아르헨티나 화물 운송 분야의 구조는 변화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전체 화물 중 95%가 육로로 운송되고 있다. 반면 화물 철도망은 1989년 3만5천km에서 1991년 1만1천km로 축소됐다(철도운송분야 종사자 역시 9만4,800명에서 1만7,000명으로 감소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상황을 가져왔다. 화물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광고들이 증가했고, 우버택시 서비스를 본떠 화물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움베르(Humber)’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출시(2015년 4월 온라인 출시)했다. 원칙은 “생산자들과 물류회사의 운송비 절감”이다. 그 결과 교통량은 더욱 증가했다.

한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감자, 서부의 멘도사 지역의 토마토, 북부의 투쿠만 지역의 레몬 등 지역 농산물들도 육로로 운송되고 있다. 멘도사의 칠레국경 근방에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새까만 흙이 묻은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트레일러에 농산물 상자를 싣고 있었다. 약 450km를 가야 하지만 직접 가는 편이 낫다고 했다.

“운송비가 너무 비싸서 트럭을 이용하려면 농산물 가격을 올려야 합니다. 물론 더 저렴한 철도운송을 이용할 수 있지만, 너무 느려서 도착하기도 전에 다 상해버릴 겁니다.”

과거에는 철도개발이 아르헨티나의 농업 분야를 활성화했지만, 오늘날 농촌 지역에는 기차 편이 충분하지 않아 생산물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천정부지로 솟은 트럭운송비 때문에 곡물 생산자들이 여러 차례 파업했다. 2016년 조사에 의하면, 북부에 위치한 살타 지역의 콩 생산지는 4만5천톤의 화물을 1,150km 떨어진 로사리오 항구까지 보내는 육상운송비가, 항구에서 중국 상하이까지의 해상운송비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2) 이런 상황 때문에 지역 간의 물리적 연결을 강화하는 것을 전반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남미에서는 브라질 해안부터 페루까지를 연결하는 바이오세아닉(Bi-oceanic) 철도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3,750km에 달하게 될 이 철로는 아마존 우림과 안데스 산맥의 중심부를 가로지를 것이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해당 프로젝트가 ‘21세기의 파나마 운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지멘스 등 독일의 철도회사들을 비롯한 여러 투자자와 접촉하고 있다. 파라과이의 오라시오 카르테스 대통령처럼, 볼리비아 대통령도 이 프로젝트가 자국의 해상 접근성을 향상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아르헨티나를 지나는 노선은 논의된 바 없다. 하지만 남미지역을 통합하는 철도와의 연계를 위해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는 전설적인 화물 운송 노선 벨그라노 카르가스(Belgrano Cargas)의 재정비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이를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북부지역 및 주변국(칠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과 연결하려는 것이다. 결국, 20세기 아르헨티나의 강점이었던 화물 철도를 많은 기대 속에서 재정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재정비 사업의 위험성은 새로운 산업에 의존하는 것만큼 높다. 50년 이상 된 노후한 기관차가 대부분인 데다가 레일부터 신호 시스템, 케이블 등을 모두 교체해야 하는데, 주요 제작 및 보수업체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탓에 국내에서는 이제 교체 부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기욤 볼랑드 Guillaume Beaulande
중남미 전문기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 등이 있다.

(1) www.ambito.com, 2016/10/04.
(2) La Nacion, Buenos Aires, 201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