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사막엔 트럼프의 장벽이 존재한다

2017-07-31     막심 로뱅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한 여성>, 2016 - 리버붐 그룹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총 3,200km의 ‘거대하고 멋진 장벽’ 건설만이 구멍이 숭숭 뚫린 미-멕시코 국경을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이 신임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불법 이주자들을 쫓아내는 게 아니었다. 애리조나 주(州)에서는 사막과 국경수비대와 민간 순찰대가 불법 이주자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의 작은 마을, 시에라 비스타를 지나 먼지 길을 몇 km 더 달려가면 국경이 나온다. 초소 근처 언덕 위에 글렌 스펜서의 목장이 우뚝 솟아있다. 나이 지긋한 그는 면도를 말끔히 한 모습이다.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미국 국경수비대원(US Border Patrol)들의 무전교신을 듣는다.


극렬한 반이민주의자들 사이에서 글렌 스펜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민간 국경 감시단체인 아메리칸 국경수비대(American Border Patrol)의 창립자이며, 블로그(1)와 SNS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레콩키스타(Reconquista] )’, 즉 멕시코의 미국점령계획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인물이라고 자랑한다.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이 이론은 지금의 히스패닉 이민이 19세기 미국과의 전쟁에 패배하면서 영토의 일부를 미국에 내줘야 했던 멕시코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스펜서는 애리조나 주 유권자의 48%처럼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두 팔 들어 환영했다.(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4포인트 앞섰다.) 80세인 그는 ‘자경단’을 비롯해 수많은 반이민 단체를 거쳤다. 그 유명한 무장 자율방범단 ‘자경단’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후 애리조나 주에서 우후죽순 조직됐다. 단원들은 전투복을 입고 불법 이주자와 마약 밀매상을 잡기 위해 사막을 순찰했다. 하지만 지금 자경단의 지도자들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수감 중이다. 몇몇은 레이다 망에서 사라졌다.


“실패는 정해져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의자에 앉아 AK-47 소총을 들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 심심해서 죽었을 것이다.” 스펜서는 이렇게 한탄하고 자신은 더 현대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유지에 일정한 간격으로 지진 탐지기를 묻어 놓았고,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3,145km의 국경에 자신의 기계가 설치될 날을 꿈꾸고 있다. 14년의 경험과 열성적인 팀 덕분에 자신의 탐지기가 ‘코요테와 차량과 소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스펜서는 지진학을 전공하고 쉐브론과 텍사코에서 일했다. 예전에는 석유를 쫓던 그가 이제는 사람을 쫓고 있다고 한다. 해가 뜨자 스펜서는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조수가 불법 이주자 역할을 하기 위해 목장에서 나갔다. 73m간격으로 설치된 센서가 조수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감시 모니터로 데이터를 전송했다. ‘가장 성능이 좋은’ 프랑스 산 패럿 드론도 띄었다. 드론에는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침입자의 얼굴을 촬영할 수 있다.
“드론은 명령도 내릴 수 있어요. 'Cuidado! Go back! (멈춰라! 돌아가라!)', 이런 식으로 말이죠.”


스펜서는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는 계획을 비웃었다. “우리가 개발한 탐지 시스템과 드론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다. 숫자도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시스템은 생태적으로도 더 우수하다. 동물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2017년 3월 6일 미 국토안보부는 예정대로 국경 장벽 건설 입찰 공고를 냈다. 400여 개의 기업, 스타트업, 거대 군수업체가 참여했다. 스펜서 역시 자신의 평생 프로젝트를 담은 12장짜리 제안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초에 미국-멕시코 간 장벽 설치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장벽 높이는 말할 때마다 10m, 15m, 24m 식으로 바뀌었다. 콘크리트 대신 태양광 패널로 친환경적인 장벽을 세우겠다고도 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레이저든 콘크리트든 형태와 재질과 관계없이 장벽은 ‘멕시코가 비용을 낼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단언하지만,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세워질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여름이 되기 전에 최종 결정을 내리고 예산을 책정해야 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없었다. 의회는 딴청을 부렸고, 친민주당 성향의 주(州)는 입찰에 참가한 회사들을 보이콧 하겠다고 위협했다. 멕시코는 4월에 장벽 건설을 무력화할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1970년 양국은 지하수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건조물을 양국 간에 세우지 못하도록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현 장벽에서 겨우 120km를 추가하는데 그치는 15억 달러를 승인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이 쪼그라든 것인가! 벌써 몇몇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선거 공약인 장벽건설은 은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2)

클린턴부터 조금씩 늘린 장벽에 벽돌 한 장 없는 셈

장벽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업이라면 유권자들이 국경을 ‘철망’이라고 믿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미 도시지역과 자주 이용하는 통행지점에 장벽이 세워져 있다. 장벽을 더 늘린다고 해도 이미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는 군사 분계선에 벽돌 한 장 더 얹는 것에 불과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1993~2001) 때부터 후임 대통령은 모두 조금씩 장벽을 늘렸다.


투손(미국 애리조나 주 도시)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에 노갈레스(멕시코 북서부 소노라 주 도시)가 있다. 이 국경 마을은 6m 높이의 녹슨 철 기둥 장벽으로 나뉘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반대편을 볼 수 있다. 연인들은 손을 잡을 수 있지만 포옹할 수는 없다. 국경에 이르기 전, 미국의 마지막 맥도날드 매장에 앉아 있으면, 산 중턱에 자리한 멕시코의 빈민촌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산 아래에는 노갈레스 마을의 ‘출입구’가 숨어있다. 이곳으로 모든 상품과 인간이 드나든다.


멕시코 쪽 노갈레스는 훨씬 북적거리고 지저분하다. 세관을 지나면 약품(비아그라, 시알리스 등) 진열대와 치과가 줄지어 있다. 치료비가 미국보다 1/4밖에 안 된다. 브릿지 시술을 하러 알래스카에서 온 은퇴자들도 있다. 노갈레스는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다. 9.11 테러 이후 국경은 더욱 닫히고 관광객은 줄어들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 또 다른 장벽을 세우려 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며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지저스(3)는 이 상황을 매우 철학적으로 봤다. 그는 애리조나에서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주말에는 노갈레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낸다. 지저스는 옛날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국경을 넘는 것이 가축우리를 뛰어넘는 것처럼 쉬웠다고 한다. 그는 아무 문제없이 국경을 넘어 와이오밍 주에 있는 구리광산으로 일하러 갔다. 고된 일이었다. ‘수염이 꽁꽁 언 채로’ 갱도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장벽은 위협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아래로, 그 위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벽을 넘어갈 것이다.” 지저스는 턱으로 장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갈레스 주민들은 장벽을 넘다가 사망한 멕시코인들을 기리기 위해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벽에 분노가 담긴 문구, ‘Pinche migra(더러운 국경수비대)’를 썼다.


노갈레스의 국경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2001년부터 1천억 달러 이상을 썼다.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모든 정보기관의 예산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최신 설비를 갖춘 국경수비대는 공포의 대상이다. 티후아나, 노갈레스, 아쿠아 프리에타, 후아레스 같은 국경도시는 적외선 카메라, 맨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떠 있는 드론, 오프로드차량을 타고 순찰하는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경비대원들로 북적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 경비로 명성을 쌓은 이스라엘 회사 엘비트 시스템즈가 제작한 감시 타워들이 19번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사막을 감시하고 있다. 200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억 4,800만 달러를 승인해서 매입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정치 분석가는, “차라리 오지 말라고 돈을 주는 것이 돈이 덜 들겠다”고 조롱하기도 했다.(4)


오바마 대통령 재임시절 추방된 불법 이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2009년과 2016년 사이 3백만 명이 추방됐다. 이전 대통령들 때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덕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추방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민자 추방을 보고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이전에는 국경 근처에서 불심검문이 비공식적으로 이뤄졌고 공식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5)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주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멕시코로 향하는 멕시코인의 수가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인의 수를 앞질렀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힘들게 일한 후에 은퇴해서 멕시코로 돌아가 정착하는 멕시코인이 많아졌다. 반면 멕시코를 떠나는 이주자들의 수는 감소했다. 2009년과 2014년 사이 87만 명의 멕시코인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1995년과 2000년 사이에는 290만 명이었다. 2015년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멕시코인의 1/3이 ‘두 나라의 삶의 질이 비슷하다’고 밝혔다(2007년 23%).(6)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이주 속도는 더 느려졌다. 2017년 1월과 2월 사이 국경수비대가 체포한 불법 이주자는 40% 감소했다.(7) 이전에는 봄이 되면 숫자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 입국자보다 출국자가 더 많은 멕시코인

투손 순찰대가 체포한 불법 이민자들은 꽤 오랜 기간 수감된 후에 버스를 타고 노갈레스로 이동한다. 버스에서 내려 피곤함에 지친 이주자들이 찾는 곳은 수녀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식당 코메도르다. 코메도르에 가기 위해서는 시 묘지를 지나야 하는데 노숙자들은 묘지를 침대 삼아 이곳에서 자기도 한다. 추방당한 사람들은 유치장에서 나올 때 받은 하늘색 폴로셔츠를 입고 현금 등 소지품이 든 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있기 때문에 금방 눈에 띈다. 그래서 노갈레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 옷을 사는 것이다. 폴로셔츠를 입고 있으면 범죄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잠겨있는 진료소 창살문 뒤로 커다란 테이블 6개에 30여 명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알리시아 수녀가 새로 도착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해주며 따뜻한 수프와 코코아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처럼 사막을 건너는 데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사히 미국에 정착해 여러 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깜빡이 켜는 것을 잊어’ 경찰에게 검문을 받다가 체포되기도 한다. 불법 이민자들이 겪는 고전적인 스토리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돌려가며 가족들과 통화했다. 통화가 다 끝나면 수녀는 전화번호를 꼼꼼히 삭제했다. ‘휴대폰이 나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가족에게 연락해 납치했다고 협박하고 돈을 갈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방된 사람 중 노갈레스 출신은 없다. 대부분 남부농촌 지역인 치아파스, 게레로, 오악사카에서 왔다. 그곳에서는 종일 일해도 닭 모이 밖에 사지 못한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코메도르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키노 보더 이니셔티브’의 조아나 윌리엄스는 극심한 가난과 조직폭력, 이 두 가지 이유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진다고 했다.


   
▲ <아리조나 국경지역>의 흔적들, 2016 - 리버붐 그룹

추방자들은 아침식사 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다. 마리벨 수녀가 질문지를 내밀며 한 사람 한 사람 질문했다. “안내인, 멕시코 경찰, 이민자, 범죄조직으로부터 절도, 강간, 납치, 폭행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해당하는 곳에 표시하시오.” 살바도르는 자신의 어이 없는실패담을 들려줬다. 그는 사막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안내인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자신을 떨쳐놓고 미국 땅이라고 말하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바도르가 믿었던 안내인은,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포도를 따서 살아가는 조카들에게 빌려온 3천 달러만 가지고 가버린 날강도였다. 그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살바도르는 지난 25일 동안 노갈레스 버스 터미널의 아스팔트 위에서 잤고 식사는 코메도르에서 해결해왔다. 이제 다 끝났다. 살바도르는 미초아칸 주로 히치하이크를 해서 돌아갈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불법체류 노동자 한 명이 사라졌다.


우리엘이 흥분한 듯 눈을 부릅뜨며 얘기했다. 그는 국경에서 쓰는 은어를 많이 사용했다. 이주자는 폴로(닭), 안내인은 폴레로(닭 키우는 사람)라 불린다. 폴레로는 보통 젊은 사람들로 사정은 이주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폴레로 위에는 코요테가 있다. 이들은 사륜구동을 운전하며 연신 스마트폰으로 통화하고 카르텔(알선조직)과 연관돼 있다. 대장들은 먼 곳에 있다. 그들은 하수인들을 통해 일을 처리하고 플라타(돈)를 수금한다. 국경을 군사지역화 하면서 마약밀매만큼 돈이 되는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안내인이 되거나, 그룹이나 단독으로 국경을 통과하려면 카르텔에 돈을 내야 한다. 카르텔에 알리지 않고 국경을 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돈을 내지 못하는 이주자들은 25kg의 마약을 운반해야 한다. 마약밀매와 인신매매가 한 몸이 됐다.


우리엘은 자신을 ‘슈퍼 이주자’라고 부른다. 벌써 5번이나 사막을 통과해 캘리포니아에서 ‘건설 쪽’ 일을 했다. 매번 대략 2천 달러를 코요테에게 냈다. 직업군인이었던 그는 사막에서 살아남는 여러 비법을 설명했다. “땅에 구멍을 내고 그 위에 비닐봉지를 덮어두면 이슬이 맺힌다.” 함께 국경을 넘었던 사람들을 말할 때 그의 털복숭이 손은 테이블 위에 칩을 놓는 것처럼 움직였다. 안내인 1명, 폴로는 자신을 포함해 4명, 그중에 2명은 여성...


“폴로들이 계속 물을 찾았다. 나한테 해달라는 것도 많았다. 울보들 같으니!”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붙잡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면서, 다음에는 혼자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헬리콥터, 장벽, 순찰대, 탐지견 등을 이용해 사막을 제외한 미국-멕시코 국경 전 지역을 꽁꽁 막고 있다. 사막은 통과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주자들은 도전하기 위해 더 많은 길을 걸었다.


“투손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 돼버렸다.” 협곡과 절벽으로 이뤄진 시에리타 산맥 밑에서 진 크레이쉬가 지프의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1999년부터 2017년까지 투손 지역에서 발견된 시신이 3천구가 넘는다. 탈수나 추위로 죽거나 국경수비대에 쫓기며 협곡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진 크레이쉬는 자원봉사 순찰 단체를 이끌고 있다. 사막에서 죽은 불법 이주자의 수가 열 배로 치솟은 2002년에 사우스 투손 장로교회가 결성한 조직이다. 그는 1주일에 3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물과 비상용품을 사막에 놓아둔다. 기자가 동행했을 때 나온 자원봉사자들 3명은 모두 은퇴자들이었고 평균연령은 67세였다.


뜨거운 바람에 관목들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는 단조롭지만 눈부신 풍광을 배경으로 자원봉사자들은 원을 그리며 낮게 날고 있는 말똥가리 무리를 찾았다. 말똥가리들이 찾는 곳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시신을 찾기 위해서는 땅이 아니라 하늘을 봐야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 물통을 놔두기 위해서다. 이주자들은 끊임없이 길을 바꾸며 수색대와 숨바꼭질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기름이 묻은 종이, 청바지, 스웨터, 레드불 캔, 흥분제 통(이주자들이 빨리 걷도록 안내인들이 제공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약통에 적힌 유통기한을 보고 최근에 사람들이 지나간 것을 확인한다. 소녀의 헬로키티 신발이 선인장 위에 놓여있다.


크레이쉬와 자원봉사자들은 GPS에 빨간 점으로 표시된 죽음의 지도를 업데이트했다. 국경수비대가 발견한 시신들은 종종 옷이 벗겨져 있거나 입 주위에 상처가 많다. 죽기 직전 망상 상태에서 선인장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수영하듯 모래 위에 사지가 펼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주유소에서 겨우 50m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시신도 있었다. “많은 이민자가 한 번도 열대지역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사막이 얼마나 험한 곳인지 잘 모른다. 그들에게 사막은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크레이쉬의 설명이다. 게다가 안내인들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모자도 없이 검은 옷을 입고, 충분한 물과 밤에 추위를 견딜 담요도 없이 길을 나선다.” 발목이라도 삐게 되면 일행들로부터 뒤처지고, 결국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

2001년 이후 국경 사막에서 희생된 사망자 수는 6천 명

주검은 대부분 발견하지 못한다. 국경수비대의 우선 업무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체포하는 일이다. 사막에서 시신은 빠르게 부패한다. 코요테는 뼈를 이리저리 물고 다닌다. 노 모어 데스(No More Deaths)협회 소속 마리야다 발레는 2001년부터 누적한 사망자 수가 6천 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한다. “전체 숫자를 알 방법이 없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사막이 의도적으로 죽음의 무기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채택한 이 전략은 ‘억제를 통한 예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 지역 예술가가 시신이 발견된 곳에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진 크레쉬 팀원이 한 십자가 앞에 GPS 기기를 가져다 댔다. ‘코로나 바르가스, 마르코 안토니오. 2007.10.13. 고체온증 추측’이라는 글이 떴다. 신원이라도 밝혀졌으니 이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사막에서 수거된 시신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은 투손 법의학 센터다. 법의학자 그렉 헤스는 투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2010년 사망자가 가장 많았을 때는 시신을 보관하기 위해 냉동 트럭 여러 대를 빌려야 했을 정도였다. 지금도 신원을 확인해야 할 시신이 150구나 더 있다. 올해는 4월 1일 현재 40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중 38구가 백골 상태였다. 이 경우 신원확인은 여러 달, 나아가 여러 해 걸린다. 고인의 가족이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한다. 미 영사관이나 인도주의 단체에 알리고 DNA 샘플을 보내야 한다. 여전히 신원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화장을 해서 투손의 공동묘지 유골함에 보관된다.


그런데 비극 뒤에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투손에는 불법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이 점에서 모든 미국 도시가 국경도시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당국의 묵인하에 불법 체류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믿을만한 값싼 노동력으로 미국 경제에 참여하고 세금을 낸다. 그러니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식당, 호텔, 농촌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학교와 병원 식당에서 미국인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투손에서는 새벽이 되면 시(市)에서 ‘민감 지역’으로 지정한 교회 앞으로 불법 이주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범법행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민감 지역에서는 경찰이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이주자들은 그곳에서 그날 공사나 정원 일을 줄 고용주를 기다린다. “불법 노동자들이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캘지 바르톨로메이는 불법노동자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녀는 멕시코 출신 미국인으로 ‘머더 허바즈’라는 레스토랑을 오랫동안 운영했고 현재는 델리카트슨 상점을 하고 있다. “요양사, 가사 도우미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슬프지만 부시 대통령 시절이 그립다. 부시 대통령은 빈센테 폭스 대통령과 가까웠다. 그래서 양국 사이가 매우 부드러웠다. 나도 그때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가게에 농산물을 공급해주고 있는 아이오와 주 농부들이 밭에서 일할 노동자들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농산물이 발밑에서 썩어가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대선 이후 국경 초소는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 바람에 항상 긴 줄이 서 있다. 교회 역시 면책특권을 잃을까 봐 염려하고 있다.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국경을 통제하기 전에는 양쪽이 자유롭게 통행을 했다.” 투손과 멕시코 중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아마도에서 만난 리사 맥다니엘 허칭 목사가 말했다. 허칭 목사는 노동자들이 이주를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해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도 터뜨렸다. “자유무역협정으로 멕시코 농업이 무너졌다. 한 마디로 미국이 현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들은 국경수비대를 야만인이라고 비난하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국경수비대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주자들과 마리화나 밀매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투손 구간만 해도 4,200명의 대원이 순찰하고 있다. 히스패닉계가 상당수인 국경수비대원들도 자신들이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 미국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5천 명의 추가 인원을 보강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경수비대의 최대 노조인 전국 국경수비 위원회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유일한 노조다. 투손에서는 80%의 대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투손 국경수비대장인 아트 델 쿠에토는 전국 국경수비 위원회의 부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중요한 인사이자 트럼프주의를 열렬히 홍보하고 있는 대중적인 인물이다. 마초 록 가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3년 전부터 ‘그린라인’이라는 팟캐스트를 방송하고 있다. 소란스럽고 보수적인 대원들이 나와 다양한 이슈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린라인’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트럼프 후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부터다.(8)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는 수비대를 ‘100%’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린라인은 처음부터 극우 온라인매체인 브레이트바트 뉴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현 백악관 고문인 스티브 배넌이 설립했다.


델 쿠에토 대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대신 노조의 변호사 짐 캘리가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국경수비대의 부패, 불법 이민자들의 사망 등 다양한 사건에서 국경수비대를 변호해 왔다. 투손에서는 전직 기자인 그를 ‘입만 민주주의자’라고 조롱하고 있다. 캘리 변호사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국경수비대의 사기가 올라갔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제 이민문제에 대해 터놓고 논의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국경을 통제한 지난 20년 동안 국경수비대의 역할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봤다. “1998년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이민자들은 일자리를 찾으러 미국에 왔다. 한 번에 100명씩 국경을 통과하기도 했다. 누가 조직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족끼리 넘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카르텔이 국경을 장악하고 있다. 단체로 넘어와도 절대 6명이나 8명을 넘지 않는다. 하루에 2명 체포하면 잘하는 것이다. 카르텔은 굴을 파고 투석기를 이용해 약을 운반한다. 심지어 미성년자들까지 고용한다. 대원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장벽을 타고 올라간다.노갈레스에 있는 장벽에 가서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국경수비대의 사기는 진작됐는지 모르겠지만 업무방식은 매우 불투명하다. 무력행사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투손의 국경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사건 중 45건이 국경수비대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9) 국경수비대원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기소된다고 해도 유죄 판결이 내려진 적은 없다. 세 명의 청소년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노갈레스에 사는 열일곱 살의 호세 엘레나는 집으로 가는 중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사건이 발생한 지 4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갈레스 사회는 그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호세가 총을 맞고 쓰러진 인테르나시오날 거리의 장벽 앞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조화가 놓여있다. ‘정의를 요구한다’라는 문구가 스페인어로 적혀있는 스티커도 보인다. 애리조나 쪽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대원은 청년을 향해 총을 열 발이나 발사했다. 그 중 여덟 발이 등에 박혔다. 문제의 대원은 처음에는 호세가 돌을 던졌기 때문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부정하는 증언들이 많이 나왔다. 사건 장면을 녹화한 테이프도 있었지만 국경수비대는 사법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켈리 변호사는 ‘실수로 영상이 압축돼’ 화질이 나빠 사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일렬로 쪽 놓여있는 14건의 두터운 소송 서류에는 장벽의 비극이 숨어있다. 이 사건은 미국과 멕시코 모두에게 쉽지 않은 사건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변호사들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법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짐 캘리 변호사는 ‘군대가 아니면서도 불법 이주자들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하는’ 국경수비대의 독특한 위상을 강조했다. 그리고 수비대원들이 얼마나 모범적으로 일하고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힘을 주어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관련 대원은 자동으로 내사를 받게 된다. 이주자 20명 중 한명이 아니 10명 중 한 명이 마약 밀매자들이다. 대원들이 매일 같이 상대하는 자들은 갱 조직원들이다. 그들은 추방됐다가 다시 넘어온다. 이 자들은 빨리 뛸 줄 알고 싸울 줄 알며 국경수비대가 자신들에게 폭력을 썼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이런 말은 대개 이주자가 국경수비대를 비난하며 하는 말이다.


작년에 ‘국경수비대의 헌법에 반하는 폭력행사와 만연된 부패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37개 조치를 권고한 보고서가 국토안보부에 제출됐다.(10) 이미 카르텔이 국경수비대에 침투했고 매수된 대원이 수십 명을 넘을 정도로 부패문제는 심각하다. 군 고위 관계자와 마약단속국(DEA)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국경수비대가 큰 위기를 맞고 있으며 책임자 문책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국경수비대 개혁은 더 이상 주요 안건이 되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은 오히려 “족쇄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americanborderpatrol.com
(2) John Burnett, <President Trump’s big wall is now just 74 miles long in his budget plan>, National Public Radio, 2017.5.24, www.npr.org
(3) 면담자가 요청한 경우 성(姓)없이 이름만 명기했다.
(4) Kate Kilpatrick, <Immigration seen as bonanza for slumping global defense industry>, Al Jazeera America, 2014.9.6, www.america.aljazeera.com
(5) Caitlin Dickson, <Is Obama really the deporter-in-chief ? Yes and no>, 2014.4.30, www.thedailybeast.com
(6) Jens Manuel Krogstad, <5 facts about Mexico and immigration to the US>, Pew Research Center, Washington,DC, 2016.2
(7) Jenny Jarvie, ‘Number of immigrants caught at Mexican border plunges 40 % under Trump’, <The Los Angeles Times>, 2017.3.9.
(8) <Episode 77 : Donald J. Trump>, www.spreaker.com
(9) ‘Why border cops’ failures are your problem, too‘, <The Arizona Republic, Phoenix>, 2014.5.8.
(10) <Final report of the CBP Integrity Advisory Panel>, U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2016.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