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되지 못한 노동자를 상상하라

2017-07-31     다니엘 리나르 | 노동사회학자
 
프랑스 정부는 노동법 개정에 대한 반발을 완화하고자 오는 9월까지 노조와 함께 최소 48회의 연합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논의가 곧 협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법을 함께 만들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 사회적 권리를 강화하면서도 노동계약 고유의 종속관계를 끝내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한 회사의 직원들이 사장에게 종속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에서는 우버(Uber)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한 기업들과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관광택시(VTC) 기사들이 종속관계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상 이미 고용주에게 종속돼 있는 상황임을 강조해 지금의 자유계약직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경제지 <레제코(Les Echos)>는 “우버 사를 둘러싸고 새로운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면서 “사회보장부담금징수조합(URSSAF)은 우버 사와 소속기사들 사이에 ‘종속관계’가 존재하므로 해당 기사들을 정식 노동자 신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1)

종속되기를 요구하는 상황에 몰린 노동자들

대개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보호하고 보장해주는 여러 장치들에 대해 두 종류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하나는 돈으로 지불하는 장치들로 의료보험, 퇴직연금, 교육연수비 등에 대한 분담금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대가’를 지불하는 장치로, 이는 노동자들이 종속관계에 속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속박은 근무 기간 내내 적용되며, 노동자들이 위계질서에 계속 복종하도록 만든다. 민간기업의 노동자나 공공기관의 공무원이라는 위치를 지키려면 노동계약서의 핵심요소인 영구적 종속, 즉 경영진에 대한 ‘복종’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 근무해야 한다.

그런데 종속에 동반되는 권익 때문에 피종속인이라는 자리가 유리한 것처럼 여겨지며, 심지어는 갈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우버 택시 기사들의 사례뿐 아니라, 회사의 해고계획에 맞서 오랜 투쟁을 벌이고 때로는 폭력시위까지도 불사하는 여러 노동자들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콘티(Conti), 굿이어(Goodyear), 푸조(PSA) 등 몇몇 공장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들도, ‘종속적 노동’이라는 힘겨운 현실을 감당할지라도 일자리의 존속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에너지가 사회운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착취와 소외가 없는 자유로운 노동사회를 꿈꾸며 종속적 조건을 반대했던 게,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노동자의 종속적 지위는 일종의 운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희생에 동의해야 하는 현실을 정당화한다. 그런 보장에는 급여, 의료서비스, 실업수당 등이 있으며, 시민이자 구성원으로서의 사회 편입, 납득 가능한 노동단체 참여 등도 포함돼 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의 종속화와 자아의 포기가 물질적 불안정과 자존감 상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하나의 투자가 된 상황이다. 노동자의 종속화가 점점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실제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제 보편화 돼버린 수많은 직장 내 고충이 이를 증명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킨 주범, ‘개인화’

노동자들의 삶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노동관계가 대폭 개인화된 것과 관련이 깊다. 실제로 1968년의 대규모 노동자 파업과 테일러리즘식 질서에 대한 거센 반발 이후, 고용주들은 기업 내 단체조직을 해산하고 업무관계를 개인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왔다.(2) 결국 인간의 존엄과 인정이라는 고유의 원칙들,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먼 고유의 가치들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시켰던 기존의 단체들은 이런 경영정책으로 인해 단계적으로 해체됐고, 이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조건을 홀로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개인화, 개별화가 진행될수록 종속관계는 더욱 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화됐다. 더욱 가혹하고 비타협적인 관계가 됐으며, 암담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특히 종속적인 관계성이 이전처럼 집단에게 적용되지 않고, 노동자라는 범위를 넘어 하나의 인격체에 직접적으로 가해질 때 더욱 심각하다. 경영진은 직업적 측면에 악영향이 있을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점차 개인의 내밀한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즉, 경영지식이나 직무와 같이 본질적으로 집단적 성격을 띠는 하드 스킬보다 개인의 소프트 스킬(커뮤니케이션, 협상, 팀워크, 리더십)에 집중했다.

실제로 위계질서를 통해 설정된 목표와 그에 따른 평가 항목들은 매우 개인적인 것들로, 철저한 경쟁구도 안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적, 감정적, 정서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야망과 열정을 품고, 재능을 표출하며, 온 마음을 담해 참여하고, 심지어 상부를 놀라게 할 것을 요구한다. 프랑스 텔레콤(France Télécom)의 전 경영인 중 한 명은 부하 직원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라”는 목표를 지시한 적도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제는 특정한 자격을 갖추고 다른 동료들처럼 자신의 업무수행에 집중하는 전문인이 아닌, 열정과 욕심과 욕망을 가진 특출한 인물이 돼야 상부와 최고인사책임자(CHO, Chief Human Resources Officer)의 눈에 드는, 중요한 직원이 될 수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 최고인사책임자를 ‘최고행복책임자’(Chief Happiness Officer)라고 명명하기에 이르렀다.(3)

 

‘바른’ 노동자를 위한 윤리헌장

업무조직 및 인사관리에 대한 결정이 일단 재정적 기준과 모호하고 특징 없는 기반에 따라 정해지면, 직원들은 각자 업무의 일환으로서 매우 개인적인 형태로 그 결정을 따를 것을 요구받는다. 날이 갈수록 과해지는 기업의 목표에 대해 충성심과 적극성을 증명하고 기업의 대의를 향한 지지를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경영진은 정서와 감정을 관리해 노동자들의 인정욕구를 이용하고, 이렇게 인정받고자 하는 동기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역설적인 측면이 또 있다. 노동자들은 인사평가 면접에서 직관, 혁신, 적극성, 자발성, 책임감을 고루 갖춘 직원이 되기를 요구받는 한편, 직장 내 일상에서는 절차, 관례, 과정, 방법론을 중시하는 ‘모범사례(Best practice)’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마리-안 뒤자리에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래너’들, 즉 실제 근무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대형 국제평가기관 소속 전문 컨설턴트들이 설정한 추상적이고 일률적인 방식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4) 결국 노동자들을 가두고 일방적으로 결정된 목표와 효율 기준에 맞춰 일할 것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의 종속화가 구체화된다.

이런 종속화는 노동자들의 직무능력(전문성)을 부인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전문성을 갖춘 노동자는 정당성을 가지고 업무지시 방향에 대해 반박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위층 경영인들로 구성된 한 싱크탱크의 회의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현재의 기업으로 이직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한 고위층 인사의 인상 깊은 한탄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저희 회사 직원들 모두가 확신에 차있다는 점입니다. 저보다 근속년수도 길고 직무도 잘 안다는 거죠!”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도 자신 역시 그렇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진들은 노동자들이 각자의 직무를 잘 알고자 하는 태도에는 분개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주어진 명령을 신뢰하고 외부에서 고안된 방법을 따르게 할 수 있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병원 경영진이 의사들에게 환자 1인당 진료시간까지 정해진 ‘모범사례’를 강요하려는 것도 같은 논리다.

노동자들은 개인의 직업적, 도덕적 가치와는 모순될 수 있는 방법론을 따르기만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의 어깨에는 경영진이 작성한 윤리헌장, 윤리강령, 도덕률 따위가 짊어져 있는 셈이다. 이런 요소들은 ‘바른’ 노동자, 즉 활용가치가 있고 충성스러우며 융통성 있고 유연한 노동자, 최선을 다하며 적극적으로 임하는 노동자, 스스로에 대한 문제제기와 위험감수를 받아들이는 열정적인 노동자를 내세운다. 파트릭 부바르는 이에 대해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기업의 강제명령은 ‘적당주의(Comfort zone)를 벗어나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우리는 이를 ‘불편한 경영(Comfortless management)’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며, 창의력의 원동력이자 도전을 위한 발판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5)

따라서 노동자들은 논의조차 할 수 없었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인지적, 감정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적합하고 무능한, 의지박약한, 위축된, 실망스러운, 무가치한, 무익한 사람으로 보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들에게 부과된 방식과 협상 불가능한 절차들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실제로 기업 내에서 실시된 많은 인터뷰 결과는, 인사평가 후 많은 직원들이 깊은 고독감과 스스로에 대한 과소평가에 빠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모 대형 은행 소속 서비스매니저는 (그랑제콜 출신임에도) “그들이 맞아요, 전 무능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서 및 분과 재편, 소프트웨어 교체, 업무분장, 조직이동, 업무이전, 이사 등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모든 기준들은 혼란스러워지고 노동자들은 주관적인 불안정 속에 빠지게 된다. 또한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전문인들은 사실상 영원히 인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그들은 몇 번이고 스스로를 증명해보여야 하고, 매번 업무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제어력을 회복하는 데 힘을 전부 소진하고 만다.

이런 경영전략은 노동자들의 지식과 경험들을 구식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전략은 노동자들을 오로지 주어진 절차나 모범사례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뜨리고, 그 결과 영원한 수습생이 돼버린 노동자들은 기업의 결정에 반박할 정당성을 잃게 된다. 다른 노동자들 역시 같은 논리에 갇혀 피차 경쟁자가 돼버려 도움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마치 구명조끼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이런 요소들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6) 그러니 직장에서 버티기 위한 수단으로 알코올, 진정제, 신경안정제 등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노동사회의 현실로 인해 많은 청년들은 겁을 먹고, 노년들은 절망하며, 중년들은 지쳐가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고통, 불편, 낙심, 비극은 여러 소설이나 영화, 연극,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작년 니콜라 시롤이 감독한 <회사(Corporate)>라는 제목의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한 직원의 자살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회사 경영의 폭력적인 면을 그려냈다. 이처럼 각종 미디어는 기업 내 자살 문제를 논하고 있으며, 정부는 공공정책을 통해 사회심리적 위험을 막기 위한 대책들을 낱낱이 제시하고 있다. 노동조합 역시 노동자들을 번아웃 상태로 몰고 가는 회사의 압력과 학대에 대해 규탄하고 있으나, 이런 종속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종속관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어떤 이들은 종속관계로 인해 궁지에 몰려 있는 노동자들에게, 끝없이 거론되고 있는 경제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은 노동시간 확대, 직원 수 축소(특히 공공분야), 정년퇴직 연령 연장 등을 주장한다. 이는 프랑스기업운동(MEDEF)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프랑스기업운동은 종속에 대한 보상을 축소해야 하고, 현재의 노동법이 너무 까다롭고 특히 지나치게 노동자 보호에 치우쳐 있으므로 개정이 필요하며, 기업 감독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위생안전노동조건위원회(CHSCT)의 자격 역시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사회당 정부 당시 추진된 ‘엘콤리 법’도 이런 의미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엘콤리 법 역시 특히 기존 규범의 질서를 뒤집을 것을 권하고 있으며, 권력관계와 협상문제에 있어 노동자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사회당(PS)은 기업 경영진의 힘과 권한을 제한한다는 것이 ‘뒤떨어진’ 측면이 있으며, 특히나 노동의 효율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봤다. 노동의 효율성은 자유로운 틀 안에서만 제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당은 기업주의 이념을 따랐고, 노동자들에 대한 선험적 불신에 근거를 두었으며 우선적으로 이들을 억압하고 붙잡아 두기 위한 조직 형태를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의 주도 하에 오는 여름 통과될 것으로 예정되고 있는 노동법 개정안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업 경영진들을 해고 및 채용과 관련된 까다로운 규율로부터 ‘해방’시키고, 업계 현실에 보다 가까운 노동조건과 고용조건을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협상이 노동자들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될 것임은 분명하다.

 

기본소득제는 노동자의 멍에를 풀어줄까?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특히 프랑스공산당(PCF)의 주장), 개인이 월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본소득제를 실시(지난 대선 당시 브누아 아몽 사회당 후보의 주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 사회 내 임금노동제의 입지를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씌워져 있는 멍에를 조금씩 풀어 이 멍에가 개개인의 삶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자리와 그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멍에를 결정하는 속박이 지닌 양적 영향력 또한 제한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의 ‘부담’과 책임을 덜기 위한 의도로 노동자들을 임금 관계 밖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기업 경영진들의 논리와 일치한다. 이들은 그런 ‘멍에’가 곧 임금노동제의 이면이기도 한 각종 권리와 보장들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축소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 창출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구속으로 노동자들을 속박하면서도, 그들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개인 역량을 갖추고 각종 위험에 각자의 방식대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런 전략은 주로 자영업체나 특히 디지털 플랫폼 기반 기업(우버 등)에서 시행된다.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은 종종 자유와 모험, 대담함과 유연함을 추구하는 자들처럼 소개되곤 하지만 사실은 구체적으로 지정된 설비(자동차, 자전거 등)와 복장을 지켜야 하고 심지어는 정해진 고객응대 매뉴얼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8) 또한 이런 기업들은 요금기준을 직접 설정하고, 고객들의 평가를 받게 하며, 징계권을 이용해 이 ‘파트너’들을 거침없이 제재하기도 한다.(9) 예를 들어 딜리버루(Deliveroo, 음식 배달 서비스)의 ‘파트너’들 또한 독립적인 노동자로 보이지만, 영업시간 내에 세 건 이상의 서비스 요청을 거부할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한다. 우버 택시 기사들도 유사한 규정을 따라야 하며, 이들의 경우는 심지어 부가가치세, 각종 조세 및 사회보장 부담금, 유류비, 자동차 구입비 등도 직접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프랑스의 전체 노동자 중 약 87%가 임금노동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종속관계의 비인간적 측면을 버리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은 보호(나아가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임금노동제의 현대화 방안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놀라울 수밖에 없다.

 

‘자율경영기업’, 누구를 위한 것인가

종속관계에서 나타나는 부당하고 낡은 제약사항들이 직장 내 고통의 근원이 되며, 업무의 질과 효율 향상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를 문제 삼지 않을까? 아무리 이런 노동형태가 가지고 있는 두 측면, 즉 종속적인 측면과 사회보호 및 보장의 측면이 함께 형성됐다고 해도 왜 이것을 분리하려 하지 않을까?

그런데 경영주들 스스로가 이런 의문에 점차 동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은 이들 역시 현재의 경영전략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 경쟁시장에서 프랑스 기업들이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기에는 지금의 전략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기업들의 경우 비용 측면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저임금을 앞세운 개발도상국 기업들보다 결코 우위를 선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내 근무형태를 개선하고, 아이디어와 제품을 쇄신하며,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충족시키고, 단기적 수익 외의 여러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참여, 지식, 집단적 경험, 아이디어 제안 등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최근 이런 차원에서 중요한 혁신을 추구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바로 ‘자율경영기업’이다. 프랑스에서는 2014년 말 아르트(Arte) 채널에서 방영된 마르탱 메소니에 감독의 다큐멘터리 <직장에서의 행복(Le Bonheur au travail)>이 자율경영기업의 개념을 대중화시켰다. 이후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자율경영기업들은 수평적 구조, 홀라크라시(Holacracy, 서클 형식의 의사결정구조), ‘민첩’한 체계, 위계질서 축소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그들의 기본전제, 즉 노동자들에 대해 선험적 신뢰를 가지고 자율적인 경영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다수의 기업들이 자율경영방식을 선택했다. 벨기에 사회보장부, 파비(Favi), 풀트(Poult), 크로노플렉스(Chronoflex), 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등이 그 예다. 이들은 자율경영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대기업 경영진은 물론, 심지어 프랑스 고용서비스공단 내 일부 사업소에까지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자율경영기업이라는 이름표 또한 경영진들이 고안하고 적용한 것이며 이들의 조직체계에 대한 심층적인 사회학적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의 혁신사례들을 고려할 때, 자율경영 또한 그저 노동자들에게 경영진의 선의를 보여주고 인적자원관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혁신사례 중 하나는 아닐지 의문을 품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자들이 지닌 자율적 경영능력을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중간관리자층을 대폭 없애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업무현장의 관리인을 따로 세워 급여를 줘가며 간부 역할을 맡겨도 되지 않도록, 노동자들이 ‘모범사례’와 매뉴얼을 충분하게 따르고 자신들의 효율성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을 위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프랑스전국고용주연합(CNPF)이 1998년 프랑스기업운동(MEDEF)으로 명칭을 바꾼 사실이 보여주듯, 비록 경영진만이 유일하게 기업을 대표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업무의 자율화’라는 조건을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의 자율적 경영 전략을 통한 현대화(자율경영기업이든, 디지털 플랫폼 기반 기업이든)는 기존에 노동자에게 가해지던 종속관계의 속박은 풀지 않은 채 오히려 경영자의 몫이었던 많은 부담과 책임들까지 더 떠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노동자들이 업무 방식과 효율 기준을 규정하는 데 진정으로 기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각자의 경력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업무 및 회사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권리와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현재 심각하게 부족한 상상력, 창의성, 적극성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여러 형태로 현대화된 지금의 경영진들이 추구하는 유아적이고 비존중적인 업무 명령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반으로 삼을 만한 대안적 모델은 없다.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대안적 모델은 노동자들 각자가 직접 보유한, 집단적 지식의 동원을 통해서만 만들 수 있다. 즉, 혁신에 대한 의지를 전부 잠재우고 마비시키는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속관계가 노동자들의 머리 위에 다모클레스의 검(원래 권력의 위험한 속성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위험한 상황, 특히 전쟁의 위험을 강조하는 말로 굳어졌다-역주)을 달아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또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면 새로운 대안을 시행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문위원회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 위원회에는 노동자들이 전문인의 자격으로 자리한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생산조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결정에 영향을 주는 환경 요인들을 고려하는 시민 및 소비자 대표들도 함께 자리하는 것이다. 즉 노동이 사회적이고 시민적인 활동이 되며, 인간과 자연을 존중하는 소비논리를 제공할 수 있고, 나아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종속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해야 한다.

너무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실용주의적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역시도 과거의 사회적 선택과 끝없는 재구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것은 정당하고 또 가능한 일이자, 또한 매우 시급한 일이다.


글·다니엘 리나르 Danièle Linhart
노동사회학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명예연구부장. 저서로 La comédie humaine du travail 노동의 인간희극,(Erès, Paris, 2015)이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Pour l’Urssaf, les chauffeurs Uber sont des salariés(URSSAF, 우버 택시기사에 노동자 판결 내려)‘, Les Echos.fr, 2016년 5월 13일.
(2) ‘Hier solidaires, désormais concurrents 어제는 연대했으나 오늘은 경쟁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3월.
(3) 쥘리앙 브리고 외, ‘행복서비스팀장(CHO)을 아세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10월.
(4) Marie-Anne Dujarier, Le Management désincarné. Enquête sur les nouveaux cadres du travail 비물질적 경영, 신근무환경에 대한 조사, La Découverte, Paris, 2015.
(5) Patrick Bouvard, ‘Sus à la zone de confort 적당주의를 벗어나라’, RH info.com, 2015년 3월 13일.
(6)  La comédie humaine du travail 노동의 인간희극, (Erès, Paris, 2015
(7) Benoît Hamon, ‘Le revenue universel est la nouvelle protection socaile’, Le Monde.fr, 2017.01.04.
(8)  Denis Jacquot & Grégoire Leclercq, Ubérisation. Un ennemi qui vous veut du bien? 우버화,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적인가?, Dunod, Paris, 2016.
(9) Jérôme Pimot & Rachida El-Azzouzi, ‘Germinal au royaume des plateformes numériques?(디지털 플랫폼 왕국의 새싹?)’, Mediapart, 2016.12.14.(interview video) / Julien Brygo & Olivier Cyran, 『Boulots de merde! Du cir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 des métiers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부터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유용성과 사회적 문제에 관한 조사』 (La Découvert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