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주의자의 기억 또는 망각?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전 총리가 최근 내놓은 회고록은 특별히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거나 반향을 일으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독백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회고록이다.(1) 그렇다고 책이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운동가에서 사회당 총재를 지낸 프랑스 좌파의 거물 중 한 명이던 조스팽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중요했던 시기가 기억난다’, ‘혁명가는 혁명을 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난 혁명가가 되지 않았다. 대신 개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길을 간 프랑스인들이 많은 것 같다’. 이같은 구절이 인상 깊다. 조스팽은 그의 저서 <리오넬이 조스팽 이야기를 들려줄 때>(Lionel raconte Jospin)에서 자화자찬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좌파가 정권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은 시기가 안 좋아서라고 봤다. 그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다시 자유화·세계화되며 돈을 불러들이는 때였다. 그래서 커다란 희망이 생겨났으나 결국 안타깝게도 환상이 깨져버리는 결과가 생겨났지만 말이다.
그러면 조스팽이 대선에 실패한 것은? 그의 회고록은 다른 후보들의 탓으로 본다. “대선 운동 기간에 다수의 후보들이 힘을 보태주었다면 우리가 2002년에 승리를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스팽은 몇 가지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2002년 2월 조스팽은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테러’라고 규정하는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한다. 그리고 조스팽은 자신이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한 적이 있음을 좀더 일찍 자각하지 못해 후회한다. 솔직히 그는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한 사람치고 여정이 단조로웠으니 자책할 만하다. “우선, 난 트로츠키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이다. 그리고 트로츠키주의자는 사회주의자 앞에 사라진다.” 미테랑 정부 시절 다시 정치적으로 복귀한 조스팽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미테랑과 여러 부문에서 의견대립을 보였다. 조스팽은 미테랑을 비난하면서 그와 더욱 멀어졌다. 1984년 조스팽은 미테랑 주변의 핵심 인물 4명(로랑 파비위스, 루이 메르마, 피에르 족스, 피에르 브르고부아)에 들지 않았다. 미테랑은 브르고브아를 총리로 임명했다. 1995년 미테랑은 조스팽보다 앙리 에마뉘엘리를 사회당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이번에 조스팽은 지지자들의 표 덕분에 앙리 에마뉘엘리를 눌렀지만 자크 시라크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회당의 미래는 그 과거를 살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스팽이 회고하기를 1977~81년 세 가지 경향이 사회당에서 맞섰다. 좌파 연합이 깨진 이후의 일이다. 첫 번째 경향은 중도로 나설 것을 제안하는 미셸 로카르의 주장이었고, 두 번째 경향은 공산당의 요구 일부를 들어주자는 장 피에르 슈벤망의 주장이었으며, 세 번째 경향은 미테랑의 주장이었다. 핵심 인물이 바뀌면서 사상도 바뀌었다. 하지만 조스팽은 회고록에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자도 중도파로 기울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는 개혁적인 성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조스팽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회고록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여성의 우월성에 관하여>(2009) 등이 있다.
<각주>
(1) 리오넬 조스팽, <리오넬이 조스팽 이야기를 들려줄 때>(피에르 파비에와 파트리크 로맹의 인터뷰), Seuil, 파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