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키프러스 통합, '연합이냐, 연방이냐'

터키 군부, 유엔·그리스계 '샅바싸움'… 터키 유럽연합 가입 변수

2008-10-29     니엘스 카르디츠케 | 기자·베를린 특파원

 

이 섬의 핵심 현안은 키프러스 공화국이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훨씬 더 복잡해졌다. 공화국의 주권은 북부 지역 3분의 1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 키프러스 터키 공화국(RTCN)은 터키에 의해서만 인정되었다. 터키는 4만 명 이상의 군대를 이 곳에 주둔시키고 있다.
 
 분단 경계선 개방… '희망의 싹'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과 유엔이 볼 때 이 지역은 1974년 이래 강제로 점령된 영토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유럽 공동체의 입법권이 '잠정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이, 개인 자격으로, 다른 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권한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키프러스 공화국 여권을 획득하기만 하면 모든 권한을 똑같이 누린다. 대부분의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은 이미 여권을 획득했다
 2008년 봄엔 '희망'이 보였는데, 분단된 수도 니코시아 중심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행자들에게 개방된 새로운 길을 따라 그리스계와 터키계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터키계 상점들은 자기 상품들의 가격을 유로로 표시하고 있으며, 그리스계 상품 판매점에서는 터키계 직원이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1월 1일부터 키프러스 공화국은 유로 존에 포함되었고, 유로 화폐가 섬 전체에 퍼졌다. 게다가 키프러스 동전에는 'Kypros'와 'kibris'라는 단어들이 들어 있는데, 이 단어들은 터키어가 공식적으로 유로 존에 처음으로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변화된 모습이 고통스런 과거를 지우지는 못한다. 1963년 크리스마스에 그리스계와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 사이에 최초로 충돌이 발생한 후, '그린 라인'이 정확히 니코시아 중심의 레드라가(街) 중앙에 그어졌다. 국제 연합군이 1964년 이래 이 거리를 감시하고 있다. 1974년 여름, 터키가 침공하면서 이 '그린 라인'은 국경선이 되어 버렸고, 이 선이 그 후 전체 섬을 관통하게 됐다.  
 
 그리스계, 유엔 '연방안' 지지 대통령 선출
 레드라가(街)의 개방은 무엇보다 2008년 2월 선거에서 키프러스 공화국의 전 대통령이 패배함으로써 가능했다. 4년 전 타소스 파파도풀로스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제안한 평화 계획안을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이 거부하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1). 그는 "일단 유럽연합의 회원이 되면 그리스 측이 터키에 대해 더 효과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간이 그리스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게 분명하다"고 그리스계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파파도풀로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실패했다. 결정적 요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재통합이 수월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그 이후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의 3분의 2가 1차 투표에서 터키 측과 새로운 협상을 하겠다는 후보들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2차투표에서 데메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를 선출했다. 그는 색다른 형태의 그리스 민족주의자라고 하기 보단, 키프러스 좌파 애국주의자에 가깝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50년대 생긴, 이곳 최초의 정당인 '노동자 진보당(AKEL)'의 전통적 공산주의자들이 키프러스 좌파를 지배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방식의 언어를 구사하기는 하지만, 이 정당은 노동당의 지중해식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조합과 농업조합에 가입한다.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북부의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고 있다. 게다가 'AKEL'은 1963년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내전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지 않았던 반면, 파파도풀로스는 당시 그리스와의 합병을 위해 투쟁했던 그리스계 민병대 전 사령관이라는 '사악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터키계, 터키 군부 막후서 통제
 파파도풀로스와 크리스토피아스는 미래에 대해 상반된 두 개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파파도풀로스는 소수인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에 대해 소정의 권리를 인정하되, '제 2의 그리스 국가'를 주장하고, 크리스토피아스는 동등한 권리의 연방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대통령 선거 당시 그처럼 상이한 두 사람은 서로 공조함으로써 세인을 놀라게 했다. 특히 크리스토피아스가 파파도풀로스를 대통령직에 지명한 사실은 터키계 키프러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5년 후 크리스토피아스가 파파도풀로스에 대항하여 출마했을 때, 이는 결과적으로 코피 아난의 계획을 실패하게 만든 2003년의 '실수'에 대한 뒤늦은 자아 비판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러나 북 키프러스 터키 정부 대통령인 탈라트의 책상 옆엔 'RTCN'과 터키의 두 국기가  나란히 서 있다. 북 키프러스 터키 정부는 터키의 영향을 확연히 받고 있다. 'RTCN'의 실질적 권력은 터키 군부로부터 나오며, 경찰과 소방관 지휘권 역시 터키군 사령관이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수상을 '파차(Pacha)'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전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술탄의 대리인에게 주어졌던 이름이다.
 지난달 시작된 크리스토피아스와 탈라트 사이의 협상에서, 터키 군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터키 군부는 키프러스 문제를 '국가적 대의', 다시 말해 '군대의 대의'로 간주한다. 'RTCN'의 대통령이 마지 못해 2007년 1월 처음으로 레드라가를 개방하려 했을 때, 군 총사령관인 메흐메트 야사르 부유카니트 장군은 그를 앙카라로 소환하여 질책했다. 보도진 앞에서 '주권' 공화국의 안전에 관련된 모든 문제는 오직 터키 군대의 관할에 속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토지·재산권 문제도 통합 '걸림돌'
 'RTCN' 정부와 레세프 타이프 에르도간 터키 정부 사이의 우호 관계는 군부에게 의구심을 던져주었다. 게다가 터키에서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는 케말 파샤 진영과 찬성하는 정의진보당(AKP) 사이의 권력 투쟁이 격화돼 탈라트 대통령의 입지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에르도간 수상과는 반대로 장군들은, 궁극적으로 북부 지역에서 모든 터키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목표로 삼은 코피 아난의 계획을 항상 경계해왔다. 공군, 해군, 경찰 지휘관들은 유엔 계획에 대한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쿠데타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참모총장 힐미 오즈코크 장군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 제지될 것을 두려워하여, 쿠데타에 반대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카라의 군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키프러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에 대한 선의의 제스처로 일부 터키 군을 철수할 수 있는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탈라트 대통령은 "공화국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터키 군대에 맡기고 있는 'RTCN'의 헌법 조항을 참조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 코피 아난 계획이 여전히 협상의 토대가 되고 있는가?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은 아난의 계획이 폐기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탈라트 대통령은 그 계획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한다. 공식적으로는 두 사람 다 아난 계획을 포함한 유엔의 '중요한 모든 계획'에 대해 협상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아난 계획은 벌써 그 실체의 일부를 상실했다. 그리스인의 북부 토지 소유권 문제에 대해 유엔 계획은 부분 반환이나 보상을 계획한 바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토지가 2004년 이래 택지로 전환되어 주로 터키나 영국 투자자들에게 양도되었다. 이 투자자들은 이미 수천 채의 '햇빛 비치는 주택들'을 외국 고객들에게 팔아버린 터였다. 탈라트 대통령은 이런 사실에 대해, "그리스 사람들이 아난 계획을 거부할 때 그럴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수많은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에게 있어 재산권 문제는 중요하다. 특히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의 토지에 대한 대부분의 투자가 앙카라 개발은행의 재정 지원을 받은 터키 기업들에 의해 이뤄지고, 이들 부당 이득 취득자들이 키프러스의 재통합을 반대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리스계'연방', 터키계'연합'선호
 그러나 분쟁의 원인은 키프러스의 미래 통합 공화국의 국가 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앙카라는 국가안전위원회(MGK)가 내린 결정대로 '섬의 현실과 두 종류의 다른 국민과 두 종류의 민주주의에 근거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 국민의 자결권에 근거한 두 국가의 연합을 요구한다. 아난 계획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 두 개의 연방 국가로 조직된, 두 종류의 공동체로 구성된 키프러스 연방 공화국을 예견하고 있다.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이나 유럽연합과 유엔이 볼 때에, 이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의 연합은 어느 때라도 한 회원국에 의해 폐기 통고될 수 있다. 반면에 연방은 단일 토대에 근거하여 완전한 단일 주권을 누린다. 크리스토피아스와 탈라트의 첫 회동 이후 공표된 성명에는 "두 대통령이 '통합된 주권과 시민권'에 대해 토의할 수 있으며 '원칙'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해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표현들 때문에 북부의 민족주의 정당들이 탈라트의 사임을 요구했고, 'RTCN'에 있는 터키 비밀 조직인 '볼칸'은 심지어 그를 반역죄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걸림돌은, 1974년 분리 이후에도 국제법 주체로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구 키프러스 공화국의 연속성 문제다. 그리스계 키프러스 사람들은 구 키프러스 공화국이 영속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새로운 연방은 일종의 키프러스 제 2공화국이 된다. 그러나 앙카라는 터키가 새로 탄생하는 개별 국가의 '보호 권력'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유럽연합의 회원인 키프러스가 상당한 기간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없는 한 국가에 의해 '보호'된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사실상 군대가 될 것이고, 이 군대 권력이 모든 통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은 더 늦춰 질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키프러스 문제의 해결책은 터키 자체의 상황에 달려있다. 만약 케말 파샤 진영이 'AKP'와의 분쟁에서 승리한다면, 앙카라는 유럽연합 가입 전망에 결정적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유럽연합 가입 여부와 이와 관련된 터키 정계의 움직임이 키프러스 문제를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1) 유엔 사무총장은, 유럽연합에 동시 가입하는 두 개의 키프로스 국가의 연방 창설을 제안했다. '키프러스 사람들이 잃어버린 기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5월호 참조.
 2) 해군 사령관 오즈덴 오르네크는 자신의 일기에 음모의 세부사항을 적고 있다. <Today's Zama>, 이스탄불, 2008년 7월 3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