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보편주의에 저항하는 언어들

문자의 지정학

2017-08-31     필립 데캉 & 자비에르 몽테아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

세상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을 관찰해보면 세계화, 즉 오랜 기간에 걸친 세계화의 힘, 세계화의 ‘아바타’들에 대해 각기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역사의 측면에서 보면 글쓰기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발생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문자로 알려진 우루크(Uruk)의 수메르 그림 문자판은 겨우 5,300년 전에 새겨졌다. 아주 오랫동안 태고의 구두표현은 수천 개의 언어, 방언, 사투리로 다듬어지고, 계층화됐지만, 그 본질적인 면은 알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문자체계들은, 인류가 서로 귀에 속삭이고 얼굴에 던졌던 극히 일부 단어들을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문서는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철자의 배급은 무엇보다도 공동체 신앙의 전파, 특히 위대한 종교들의 전파를 보여준다. 석가모니가 간 구도의 길은 인도문자의 영토를 표시했다. 예수 출생 후 몇 세기 동안 로마자 표기화는 지중해에서부터 동심원으로 퍼져나간 기독교화의 뒤를 쫓아 이뤄졌다. 아랍화는 메카에서 출발한 이슬람 설교자들의 뒤를 따라 신속히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분열로, 동유럽에 키릴 알파벳이 들어오면서 유럽의 문자들이 분리됐다.

그 후 식민지 통치는, 어쩌면 구전으로 전달된 지혜는 알고 있어도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명을 가져다줬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깊게 뿌리내렸다. 개종을 시키려는 선교사들은 피식민 주민들의 언어로 설교하고자 음절 발음 교본을 발명해 이 방면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됐다. 그러나 그것은 무용한 작업이었다. 매우 다양한 문자들이 존재하기에, 그 어떤 언어든지 고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어와 중국어는 아랍어 알파벳으로 잘 표현된다. 한국어는 한글 알파벳뿐만 아니라 중국어로도 전달된다. 기원이 아랍어인 몰타어는 라틴어와만 연관성을 지닌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20세기에 4종의 알파벳을 배웠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보편문자를 만들려는 시도, 또는 적어도 사람들 간의 접근과 문맹퇴치를 용이하게 해줄 것처럼 보이는 규범화를 시도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보편주의 사고의 일환으로 로마자 표기화를 정치적으로 고려하려는 생각이 이란이나 중국을 거쳐 일본에까지 퍼져나갔다.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이 보증한 인터내셔널리즘의 이름으로 보편주의 사고는, 공산주의 이념의 통일성 확산을 위한 바쿠(Bakou, 아제르바이잔 수도) 대회에 영감을 줬고, 이 대회는 1926년 아제르바이잔과 북극 사이에 사는 10여 민족에게 로마자를 채택시켰다. 교육위원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Anatoli Lounatcharski)는 심지어 로마자의 사용을 슬라브어에까지 확대하려 했다. 문맹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도 5년 안에 로마자 확장의 야망을 구현하려던 ‘10월의 알파벳’ 운동은 아랍-이슬람 지역에서 이슬람교도들을 멀리 쫓아낼 수 있게 했으며, 단 한 종류의 타자기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계획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1934년부터, ‘일국 사회주의’의 아버지인 스탈린이 키릴 문자를 강제하고 지역 언어들을 제한하면서 러시아어를 확장하는, 제정러시아의 정책으로 회귀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어를 앞세워 민족어들을 소멸시켰고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진 이후, 지역 엘리트들이 라틴어 알파벳으로 회귀하려 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화는 생산비 최소화라는 명령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 정치·경제·과학·기술 영역의 우위로 미국이 주도하는 로마자 표기 흐름은 경쟁문자들이 존재할 권리, 특히 철자 방언들이[프랑스어의 ‘세디유(cédille)’, 스페인어의 ‘틸드(tilde)’, 슬라브어의 악센트들] 존재할 권리를 인정할 때에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1991년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컨소시엄인 유니코드(Unicode)는 통합된 방식으로 문자들을 코드화하고, 정보과학의 지원과는 무관하게 언어들 사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산업규범을 만들었다. 2016년 판 유니코드는 12만 8,172개의 문자에 달하는데, 2/3가 중국 문자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모든 문자가 결코 망각으로부터 보존된 적도 없었고 실제로 그 많은 사람들이 결코 똑같은 방식으로 문자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중국 국민들은 자신의 전화기나 태블릿PC 위에서 간단한 방식으로 채팅하기 위해 26개 문자로 재주를 부린다.

로마에서 온 고대 알파벳이 시합에서 이긴 것인가? 지배적인 각 문자는 자신이 영향력을 가진 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래 지도는 유엔이 인정한 197개국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철자의 상대적인 힘을 표시하고 있다. 이 지도는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종교문자(콥트 문자), 소수문자(체로키 문자), 사라진 문자(마야 문자)를 생략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로마자 표기화와 이에 대한 저항, 또는 보편주의와 개인주의 간의 변증법이 전개되는 데에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국가의 언어 규범 밖에 존재하는 인터넷 공간은 아라비지(arabizi, 아랍어 채팅 알파벳)라는 혼합어의 사용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아라비지’에서는 숫자가 로마자의 음성적 불충분성을 보완하기 위해, 소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자동전사와 같은 새로운 기술 도구의 전파는 지배 문자들의 대안적인, 또는 혼종적 사용을 쉽게 해줄 것이다.   


글·필립 데캉 & 자비에르 몽테아르 
Philippe Descamps & Etxavier Monthé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