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퓰리처상이 미 언론의 목표는 아니다

미디어 ‘아포칼립스’에 비친 트럼프

2017-08-31     로드니 벤슨 | 뉴욕대 사회학 교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미디어는 애정과 애증 사이를 오간다. 최고의 광고역할을 톡톡히 하는 트럼프의 돌출행동을 기사화했던 기자들은 이제 대통령의 임기를 낱낱이 해부하기 시작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신랄한 비난으로 기자들을 정면에서 공격한다. 이 애정과 애증 관계는 미디어 경제의 균질화를 은폐하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조차 사회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을 꺼리고 있다.
 
반세기 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모든 매체를 싸잡아 ‘미디어’라며 비난했다. 소수의 TV채널과 잡지, 신문이 미디어 산업의 전부였던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아주 완벽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미디어의 판도는 아주 다양해졌다. 종류와 매체를 통틀어, 미국 미디어를 3개의 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군에는, <버즈피드>나 <허핑턴 포스트>처럼 탄탄하게 입지를 굳힌 인터넷 사이트 등의 대중뉴스·엔터테인먼트,(1) 국영TV채널(CBS, ABC, NBC, CNN)과 각 채널의 지부들이 해당한다. 다음 두 번째는,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군(2)으로, 보수성향의 <폭스뉴스>, 진보성향의 <MSNBC>, 보수성향의 주요 라디오방송들, 블로거 공동체, 트레보 노아가 진행하는 <더 데일리 쇼>, <라스트 위크 투나잇 위드 존 올리버> 같은 정치풍자 코미디 쇼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폴리티코> 등의 일간지나 <타임>, <어틀랜틱> 등 국영 월간지, 주요지역 신문처럼 양질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군이다.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지닌, 소수에 불과하지만 다이내믹한 미디어들은 시장경제에 연동된 이 시스템에서 종종 균형을 잡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분류는 경계가 모호하다. <허핑턴 포스트>나 <복스> 등의 TV채널과 사이트들은 양질의 저널리즘과 뉴스, 엔터테인먼트의 조화를 시도한다. <뉴욕타임스> 등의 미디어가 추구하는 정치적 중립은 보수주의자들의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미국가정의 70%가 시청하는 최대지역 TV방송사 ‘싱클레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 대변인을 정책분석가로 채용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방송사의 173개 채널을 이용해 “우파세력의 정책을 장려한다”(3)며 비난했다. 
 
“퓰리처상을 휩쓴 것이 주가폭락의 원인”
 
이 새로운 생태계의 도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워터게이트 사건(1972~1974)으로 각인돼 ‘황금기’로 오인되고 있는 1970년대, 그리고 이윤창출이 미디어의 모든 것이었던 1980~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신문사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반면, 미국의 신문사는 오래전부터 뉴스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어마어마하다. 80년대에는 미국 내 매출 1위 일간 신문인 ‘USA 투데이’를 발행하는 미디어 그룹 ‘개닛’과 같은 상장그룹이 100개의 신문으로 25% 이상의 순익을 냈고, 이후 업계에서 타 기업의 선망 대상이 됐다. 성공비결은 지역 독점을 위해 경쟁사를 없애고, 직원과 예산을 삭감하고, 저렴한 긴급기사들로 지면을 채워 넣고, 광고 지면을 최대화하는 것이었다. 최근만 봐도 광고가 미국 지면 매체 매출의 80%를 차지했는데, 이는 서방국가들 중 가장 높다.  
    
 공익실현의 목표가 금전만능주의로 방향을 바꾼 획기적인 사건은, 1986년의 어느 날 일어났다. 언론계의 전설 <나이트 리더>가 7개의 퓰리처상(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을 받자 기업의 주가는 폭락했다. 폭락원인에 대해, 한 증권분석가는 “퓰리처상을 과하게 휩쓸었다. 수익으로 이어져야 할 돈이 퓰리처상에 낭비됐다”(4)고 분석했다. 90년대에는 압력이 더 심해져 이윤추구가 최우선시됐다.
 
 이런 배경에서, 21세기 초 미디어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인터넷판 수입으로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생활광고와 광고전단지의 몰락, 그리고 2001년과 2008년 재정위기 여파로 인한 광고수익의 하락. 2005년 490억 달러였던 광고수익은 2016년에 200억 달러까지 떨어졌고, 그 중 30%는 가격이 저렴한 인터넷 광고였다. 구독수익이 오름세에 있다고 해도 광고수익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은 주가하락으로 이어졌고, 지면매체의 6만 개 정규직 중 1/3이 사라졌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부문은 공적문제에 대한 탐사보도와 특별취재를 담당하는 부문이었다.(5) 
 
부호들이 주요 신문사를 장악하다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상장그룹은 부호들에게 주요 신문사를 매각했다. 2013년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리 베조스는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고,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단주 존 헨리는 <보스턴 글로브>를 매수했다. 이듬해에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농구 구단주 글렌 테일러가 미국 미네소타주 최대규모 신문사 <스타 트리뷴>을 손에 넣었다. 2015년 말에는 보수파 억만장자 셸던 아델슨이 <라스베이거스 리뷰 저널>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윤추구의 압박이 크게 부담되지 않을 이 거물들은 다소 통일됐던 미디어 세계에 ‘다양성’을 배가시켰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조사를 수행한 선구자격 신문이었다. 두 신문 모두 어느 미디어 그룹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주식 대부분은 설즈버거 가의 소유다. 이런 사유형태는 정치적 편향성이나 이해대립, 투명성 결여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제프리 베조스의 <워싱턴 포스트> 인수가 결정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아마존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반독점 위반 조사를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가 꼭 경쟁법이 아니었다 해도, 아마존의 영향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고, 그만큼 높은 이해대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TV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16년에 성인의 38%는 인터넷을 통해, 57%는 TV를 통해 뉴스를 접했다. 케이블 시대, 인터넷 시대에 시청자 확보를 우려하다 보니 ABC, CBS, NBC 주요방송사들은 선정적이고 피상적인 언론 보도를 한다. 방송사가 대선기간 내 심도 있는 보도에 할애한 시간이 2008년에는 220분이었던 반면, 2016년에는 32분에 그쳤다.(6) 반면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와 <인포워즈>처럼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사이트는 심도 있는 기사를 다루기는 하나, 사실을 왜곡하고 심지어 거짓보도를 하기도 한다.  
 
 양질의 뉴스는 부족하고, 선정적이고 표면적인 기사는 넘치는 초상업화 행태로 인해 경제붕괴 우려가 있는 이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가 개입해서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하겠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적 행위는 반정부 보수집단과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내용으로 한 미국헌법 개정 제1조를 등에 업은 프로페셔널 기자들 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한편, ‘공공서비스’ 미디어는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영국이나 독일, 북유럽 국가처럼 ‘공공서비스’ 미디어의 자율성이 구조적 보호 아래 있게 된다면,(7) 타 상업적 미디어보다 한층 심도 있고 비판적인 보도를 제공할 수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은 미디어 지원 면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 공영방송 PBS와 공영 라디오 NPR의 재정지원 규모는 1인당 3유로가 되지 않는다(프랑스 70유로, 영국 86유로, 독일 116유로, 노르웨이 152유로). 사실상, PBS와 NPR은 비영리 공공기관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내세워 대부분은 기부금으로 자금조달을 한다. 하지만, 기부금을 포함한다 해도 미국 공공 미디어들의 재정지원 규모는 1인당 8유로에 못 미친다.(8)    
 경제위기의 여파로 사람들이 등을 돌렸지만, 매출뿐 아니라 수익 면이나 온라인 구독자수 면에서 신문이나 잡지, TV 채널 방송 같은 ‘전통적인’ 상업 미디어는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주요 뉴스 사이트, <허핑턴 포스트>와 <버즈피드>는 이윤을 거의 또는, 아예 내지 않는다. 지면매체의 통상적 이윤인 8~15%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물론 여기에는 케이블뉴스 채널의 두둑한 수익은 포함되지 않는다. 오직 온라인 광고만으로 운영되는 디지털 미디어 직원들은 소수로 구성된 부서와 일을 하고, 전통적인 미디어 직원들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다. <허핑턴 포스트> 미국판의 경우, 풀타임 직원 수는 약 250명으로 대부분은 타 언론사의 기사를 재활용한다. 반면, <뉴욕타임스>의 풀타임 프로페셔널 기자 수는 1,300명으로 기존에 있는 기사를 취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온라인 미디어의 신선함, 그리고 한계
 
 2015년 컴스코어가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들은 온라인 미디어보다 전통적인 미디어를 더 많이 이용했다. 미국의 뉴스 검색 사이트 랭킹 10위 중 몇 개를 순위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ABC, CNN, NBC, CBS, <USA 투데이>, <뉴욕타임스>, 폭스. 영국 매체인 BBC와 <가디언지>는 각각 15위와 17위를 차지했고, 영국 매체 총 29개가 랭킹 50위에 이름을 올렸다. 랭킹 50위에 이름을 올린 나머지 21개의 온라인 미디어의 명백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온라인 전문 매체들은 폭넓은 주제 및 아이디어와 다양한 형식을 제공한다.
 
<허핑턴 포스트>와 <버즈피드> 같은 뉴스 취합 사이트들은 뉴스와 정치 탐사기사를 포함해 점점 더 창의적인 내용의 기사를 제공한다. 또한 <폴리티코>, <더힐>과 같은 정치 전문 일간 신문도 있다. 랭킹 50위에 오른 매체 외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인 에번 윌리엄스가 만든 ‘미디엄’과 같은 양질의 사이트들도 심도 있는 장문의 기사를 제공한다. 특히 <복스>와 <바이스뉴스>는 눈여겨볼 만하다. <복스>는 특종보도에 혈안을 올리는 대신, 시리아 사태, ‘오바마케어’, 기후변화와 같은 복잡한 주제를 다루며, 그래픽과 Q&A, 슬라이드를 가미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한다. 재미있지만 동시에 진지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현재 방영 중인 TV 채널 베스트 18’(매주 업데이트)을 비롯해, ‘경찰 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9가지’(2016년 1월 4일 방영), ‘비트코인의 모든 것’(2015년 11월 3일 방영), ‘미국 이민 시스템 이해하기’(2015년 8월 4일 방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바이스>는 시각적인 면을 강조한 ‘몰입 저널리즘’이라는 형식을 사용해 시청자가 개인적인 시선으로 주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케이블 채널인 홈 박스 오피스 HBO에서 방영된(HBO 사이트나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시청 가능)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는 우크라이나, 북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IS가 장악한 영토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2014년에 방영된 IS 영토편 다큐멘터리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했다. <바이스> 특파원인 데니 골드는, “시청자가 3인칭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주제를 받아들일 수 있게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9)라고 설명한다. <바이스> 독자의 평균연령은 25세 미만으로, 전통적 미디어보다 그 대상층이 상당히 젊다.
 
 한 가지 흠이라면, 후원받는 내용을 아주 교묘하게 프로그램에 삽입하는 ‘네이티브 광고’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버즈피드>처럼 ‘바이스’도 ‘버츄’(자사 마케팅팀)의 도움으로 본 광고기술을 처음 도입한 매체 중 하나다. 예를 들면, ‘인텔 설립 파트너’가 지원하는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The Creators Project)> 사이트의 탐사 기사에서는 인텔 제품을 사용하는 엔지니어와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설립 파트너(Founding partner)’라는 개념은 기업이 그저 브랜드를 알리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바이스>가 생산하는, 유행에 민감하며 얼터너티브(Alternative) 성향을 지닌 이미지 뒤에는 자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상업적 측면이 감춰져 있다. <바이스>의 투자자로는 폭스(거물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자, 이제 이사회의 멤버가 된 제임스 머독), 타임워너 그룹, 허스트, 월트디즈니, A&E 네트워크 외 다른 벤처캐피털 기업들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새로운 온라인뉴스 사이트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새로운 시도가 상업적인 강제성에 의해 휘둘림과 동시에 독특한 개성은 사라져 버린다. 
 
 
 
양질의 기사, 그러나 유지가 힘든 비영리 미디어들
 
 상업 미디어가 조사와 취재를 할 수 없거나 혹은 원하지 않는 분야, 가령 사회문제와 같은 분야들은 어쨌든 사회공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그렇다면 비영리성 저널리즘이 과연 이 부재를 채울 수 있을까?
 
 2005~2014년, 미국 25개 주에서는 308개의 비영리성 미디어가 탄생했다.(10) 대부분은 포드 재단이나 존 앤 캐서린 맥아더 재단,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나이트 재단과 같은 대형 재단들이 운영과 공공 서비스를 책임진다. 이 중 전미 지역, 주, 공영방송을 통틀어 18개 미디어에 대해 시행됐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8개 미디어 예산의 평균 12~16%가 상업 미디어에 할당된 반면, 34~85%는 논설기사에 할당됐다.(11) 이들은 주로 국내 정치나 해외소식에 대한 탐사기사와 기획기사를 전문으로 다룬다.
 
이런 비영리성 언론은 탐사 저널리즘의 부흥에 기여를 했다. 2008년 창립 이후 2개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프로퍼블리카>, 1977년 창립한, 다소 오래됐지만 한창 떠오르는 <탐사보도센터(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와 1989년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가 대표적인 예다. <프로퍼블리카>는 적십자사(‘적십자사는 어떻게 5억 달러를 모금해서 아이티에 숙소 6개를 지었나’)(12)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거대 자본가들 간의 유착관계, 수납이 밀린 어려운 형편의 환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한 병원 측의 도가 지나친 태도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진보개혁주의파의 영향을 받은 이런 미디어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재단들의 후원은 미국의 상업적 저널리즘으로 인한 경제실패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언론기관들에 지원되는 기부금은 많아야 연간 1억 5천만 달러로, 주요 언론사들이 광고수익부문에서 입었던 손실을 메꾸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주요 비영리성 미디어인 <프로퍼블리카>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각각 70명과 80명의 기자가 있지만, 대부분의 미디어는 10명 내외의 기자들로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재단은 장기적으로 후원하지 않는다. 거의 기업주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재단의 후원을 비영리 언론기관들이 진정한 기업으로 변모하도록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일시적인 지원으로 여긴다. 가령 재단은 언론기관에 기부할 수 있고, 고급 광고주들을 이어줄 수도 있는 상류 소비자들에게 그들의 정보를 알릴 것을 조언한다. <프로퍼블리카>와 같은 몇몇 미디어는 상업적 사이트들에 자신들의 기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럴 경우 해당 미디어는 가시성을 얻는 대신, 기부재단으로부터의 경제적 자율성은 물론 독립성을 상실한다.
 
 비(非)엘리트 대중을 겨냥하는 비영리성 언론기관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서민의 월스트리트저널’을 기치로 마이클 스톨이 2009년에 창립한 <샌프란시스코 퍼블릭 프레스>는 대기업 광고와 후원을 일체 거절한다. 마이클 스톨은 “저임금 근로자들은 럭셔리 상품을 선전하는 기존 신문의 광고 따위에는 관심 없다”고 설명한다. <샌프란시스코 퍼블릭 프레스>는 주로 십만 달러 이하의 연간 예산액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인력으로 운영된다. 이들 매체는 양질의 기사를 다루지만, 규모를 키우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요약하면, 재정적 도움을 주는 재단들이 비영리성 언론기관을 자신의 기업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델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기존 매체들로부터 소외된 독자들을 겨냥하는 비영리성 매체들의 유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부금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재단기부금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부금에 적용되는 세액공제 특성상 정부로 들어가야 할 세금이 불투명한 곳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언론기부 사업부 담당자는 “단속도 없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재단 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칠 필요가 없다. 나는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지만, 재단활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익실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13)    
 
  대개 기부활동은 은연중에 그에 따른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큰손 기부자들은 단순한 운영비 지원 목적보다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기부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위해 계속 압력을 넣는 방식을 선호한다. 사회공헌재단에 의존하는 한, 공영매체들이 이런 압력의 피해자가 된다. PBS는 2012년에 ‘다우 케미컬’의 후원으로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가 깊이 묻어나는, 경제 관련 시리즈를 만들었다. 2013년에 미국의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지원하는 드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2014년에는 공무원의 퇴직연금제도 철폐를 원하는 한 억만장자의 투자로 ‘공무원 연금의 위험성’(The Pension Peril)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이는 공무원 퇴직연금이 초래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내용의 시리즈였다. PBS 옴부즈맨은 “이는 재정지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윤리적 타협과 시청자들에 대한 투명성 결여를 여실히 보여주는데, 일부는 공공방송 시스템 지원에 대한 어려움에서 비롯된다”라고 털어놓는다.(14)     
 
 미디어의 상업화와 사회공헌 분야에서의 미국 사례를 살펴본 결과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몇 가지 긍정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미국 국민의 관심사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구조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대형 미디어 그룹들은, 어렵다고 해도 살아남고 있다. 비록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개닛’은 최근 <시카고 트리뷴>의 모회사이자, 과거 이름을 날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소유한 ‘트롱크(전 트리뷴 퍼블리싱)’를 인수하려 했다. 미디어기업들의 통합은 계속되고 있다. 7개의 상장기업이 미국 신문사의 4분의 1을 소유하고 있다. 지역 채널을 소유하려는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도를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대중이 원하고, 이윤추구를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대중의 분열, 어떻게 뉴스를 전달할 것인가?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점점 더 보기 어려워졌다. 오랫동안 버텨왔던 <뉴욕타임스>도 결국 지난봄에 편집부의 100개 자리를 없앴다. 재정지원을 명목으로 광고업자들의 영향력 행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디지털 상업 언론사는 기존 언론사보다 더 심한 압력을 받고 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와 같은 엘리트 신문사에게 있어 정기구독자는 큰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인터넷판 정기구독자는 2백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모든 신문사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기자들을 끈질기게 공격함에 따라, 미디어 판의 이데올로기 분열은 더 심화됐다. 2014년 이뤄진 미디어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왼쪽(좌파) -10점부터 가장 오른쪽(우파) +10점까지 등급을 매겼을 때,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폴리티코> 독자들은 -3점과 -5점 사이에, <폭스 뉴스>(토론 프로그램 제외)는 +2점에, 나머지 우익매체 <브레이트바트>, 진행자 션 해니티와 블로거 러쉬 림보의 대중은 +6점에 위치했다. <야후 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독자들만 중도성향인 것으로 조사됐다.(15)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토록 분열된 대중들에게 어떻게 뉴스를 전달할 것인가? 종종 편견을 심화한다는 지적을 받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골칫거리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편향된 정보의 울타리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히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반대의견이 있을 경우 SNS 이용자는 정면으로 반박할 기회를 SNS 비 이용자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다.(16)
 
 궁극적으로, 미디어의 양극화에 대한 대중들의 걱정 이면에는 더욱 심각한 계층 간의 깊은 간극이 숨어 있다. 미국의 부유층과 고학력 계층의 국민들이 공적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은 유럽 국가의 같은 계층 국민들의 수준과 비슷하다. 하지만 유럽에서 빈곤층과 저학력 계층 국민들도 부유층 국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얻는 반면, 미국에서는 소득 상위 25%와 하위 25% 간 격차가 상당하다.(17) 미국의 엘리트 매체들은 ‘고급대중을 위한 고급뉴스’(18)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그 외 다른 매체들은 방송사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질 낮고 왜곡된 내용의 뉴스를 보도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엘리트 매체, 뚜렷한 정치성향의 매체, 대중매체 모두 작금의 정치 불안의 씨앗인, ‘세계화로 인한 불안정’에 관심이 없다. 도시에서 교육 혜택을 누린 엘리트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애써 언급하고, 또 그들에게 다가가는 미디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사람들은 선거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표로도 기부자나 매체 구독자, 광고대상 그룹으로 이들의 존재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첨이든 비난이든,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 다른 주제에 대한 기사를 낼 용감한 미디어는 극소수다. 그렇게 ‘상업적 강제성’이 군림하게 된다. 결국, 미국 미디어의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글·로드니 벤슨 Rodney Benson
아이오와 주립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UC버클리대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 대학의 미디어 문화 학과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Bourdieu and the Journalistic Field>(2005), <Shaping Immigration News: A French-American Comparison>(2013) 등이 있다.
 
번역·권진희 classic16@gmail.com
미국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 및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소피 외스타슈 & 제시카 트로쉐, <De l’information au piège à clics(그들의 뉴스엔 더이상의 저널리즘은 없다)>, Le Monde diplomatique, 2017년 8월
(2) <Délire partisan dans les médias américains(미국 미디어 속의 신봉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4월
(3) 시드니 엠버, <Sinclair requires TV stations to air segments that tilt to the right>, The New York Times, 2017년 5월 12일
(4) 필립 메이어, <The Vanishing Newspaper. Saving Journalism in the Information Age>, University of Missouri Press, 2004년 
(5) <Newspapers Fact Sheet>, Pew Research Center, 워싱턴 DC, 2017년 6월 1일
(6) 투표 2주 전 집계 수치에 기반을 뒀다. 앤드루 틴들, <Issues? What Issues?>, Tyndall Report, 2016년 10월 25일, http://tyndallreport.com    
(7) 앙드레 쉬프랭, <L’État norvégien protecteur de la culture(노르웨이의 문화 보호)>, Le Monde diplomatique, 2010년 3월
(8) 로드니 벤슨, 매튜 파워스, 티머시 네프, <Public media autonomy and accountability : Best and worst policy practices in 12 leading democracies>,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vol. 11, 로스앤젤레스, 2017년   
(9) 2015년 11월 23일 뉴욕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한 행사에서 데니 골드가 한 말이다.
(10) 제스 홀컴, 에이미 미첼, <Personal wealth, capital investments, and philanthropy>, State of the Media Report, Pew Research Center, 워싱턴 DC, 2014년 3월 26일
(11) <Finding a foothold : How nonprofit news ventures seek sustainability>, Knight Foundation, 마이애미, 2013년 10월 28일
(12) 저스틴 엘리엇, 로라 설리번, <How the Red Cross raised half a billion dollars for Haiti – and built six homes>, 2015년 6월 3일, www.propublica.org 
(13) 2013년 3월, 익명을 요청한 한 재단 담당자와의 인터뷰 중 일부. 
(14) 마이클 젤터, <Tensions over pensions>, PBS Ombudsman, 2014년 2월 14일, www.pbs.org
(15) 에이미 미첼, 제프리 고트프리트, 조슬린 킬리, 카테리나 에바 마츠사, <Political polarization and media habits>, Pew Research Center, 2014년 10월 21일
(16) 리처드 플레처, 라스무스 클레이스 닐슨, <Social media appears to diversity your news diet, not narrow it>, NiemanLab, 2017년 6월 21일, www.niemanlab.org
(17) 제임스 쿠란, 샨토 아이옌거, 앵커 브링크 룬드, 잉카 살로바라-모닝, <Media system, public knowledge and democracy. A comparative study>,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사우전드오크스(캘리포니아), vol. 24, n° 1, 2009년
(18) 2011년 4월 6일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언론대학원에서 뉴욕타임스의 발행인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