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 부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넘쳐나는 부탄 국왕의 사진을 보며
2017-08-31 이상엽 | 사진작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핫한 해외여행지를 물으면, 아마 ‘부탄’이라고 답할 이가 많을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탄 방문 이후 행복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하고, 올해가 마침 ‘한국인 방문의 해’여서 여행비 50%할인행사 중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부탄. 하지만 외국인에게 여행을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히말라야의 은둔국가 부탄에 대해서는, 실상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진 정보가 없다. 그저 많은 이들이 ‘부탄의 신비’라는 기표를 가지고 헬조선의 고통스런 기의를 잊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나 역시 그랬다.
왕과 왕비와 왕자가 행복해보이는 사진들
일단 해발고도 2,200m에 위치한 파로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조종사는 계기착륙인 아닌 시계착륙을 위해 긴장한다. S로 휘어진 계곡을 지나칠 때 승객도 바짝 언다. 그렇게 착륙한 공항에서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부탄 왕 가족의 사진. 왕추크(Wangchuck) 가문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37)이 왕비, 왕자와 함께 있는, 아주 행복한 분위기의 사진이다. 마치 우리에게 ‘행복한 나라 부탄에 잘 오셨습니다’하고 인사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다. 어느덧 왕과 ‘정’이 들어버린다. 그는 가는 곳마다 나타났다. 대합실에도, 커피숍에서도, 호텔에서도, 방에서도 왕을 만났다. 그는 이 나라 어느 곳이든 존재했다. 적어도 부탄 내에서 그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없을 듯했다. 나는 아직 북한은 가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녀본 나라 중 부탄처럼 최고 권력자의 사진을 빈틈없이 곳곳에 걸어둔 곳은 없었다.
문득 발터 벤야민이 떠올랐다. ‘아우라’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진품에서만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예술노동의 결과물이다. 권력은 이 ‘아우라’를 원한다. 그래서 전당을 짓고, 아우라를 뿜어내는 진품들을 수집해 전시한다. 대중들은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아우라를 보며 권력의 위대함을 절감한다. 그리고 복종한다. 이것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기술한 아우라의 본질이다. 그는 광적으로 미술품을 모으고 전당을 지은 히틀러와 나치를, 글자 그대로 ‘죽도록’ 증오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한다. 그런데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통과가 좌절됐고, 이에 절망한 벤야민은 자결한다.
이렇듯, 나치에 붙잡히느니 죽음을 선택할 만큼 나치를 증오했던 발터 벤야민. 그는 히틀러를 ‘아우라에 사로잡힌 독재자’로 일찌감치 규정했다. 그리고 그 독재에 맞설 무기로 제안한 것이 바로 사진이다. 기계복제 되는 예술. 무한복제 되기에 원본을 필요 없게 만드는 예술. 그리하여 원본만이 지닌 아우라가 붕괴돼버린 예술. 그것이 벤야민의 파악한 사진의 본질이다. 이렇게 사진은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독재의 이데올로기에 맞설 만한 무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회 안에, 특정한 인물의 사진들이 곳곳에 빠짐없이 배치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도처에 놓인 사진들이 이 왕의 권위를 벗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다한 시각점유를 통해 인식마저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왕의 사진을 보는 이들은 어느덧 세뇌가 돼버린다. 왕은 언제, 어디에서든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왕의 신민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지 감시할 것이다. 게다가 그 왕이 매우 선량하(게 보이)며, 사심 없이 백성을 사랑한다면(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한다면), 그의 모습을 보는 이에게 윤리적인 갈등까지 선사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부탄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 왕좌를 내놓고 권력을 국민들에게 내놓은 선량한 왕. 2008년, 왕추크 가문이 왕위를 계승한 지 100년 만에 입헌국주국으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왕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연금생활자를 택했다. 현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아버지에 이어 그런 순수한 이미지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외부자의 정보 부재로 인한 편견일 수 있다. 실상 부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진을 통해 느끼는 행복
현재 전 세계에 왕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5개국 밖에 없다. 부탄은 반(半) 독립상태로 영국과 인도에 절대적으로 의지하지만, 이웃 네팔처럼 언제 왕정 자체가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감이 있었다. 4대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추크(62)는 저개발과 빈곤, 자원부재 등을 안고 언제까지 가문을 이어나갈지에 대해 고민했고, 결국 쇄국 대신 개방을 선택했다. 하지만 개방은 결국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직면할 것이기에 왕조 100주년에 맞춰 입헌국주국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 판단은 2008년 있었던 첫 총선에서 왕당파인 부탄평화번영당(DPT)이 전체 47석의 하원의석 중 90%가 넘는 44석을 차지하며 완승함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렇다면 왕은 정말 권력을 국민들에게 이양한 것일까?
실상 그렇지 않다. 왕당파인 DPT가 집권기간 동안 왕과 마찰을 빚자 이번에는 야당 인민민주당(PDP)이 2013년 실시된 총선에서 과반 의석 획득에 성공,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PDP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4대 국왕 싱계에게 누이 4명을 한꺼번에 시집보낸 전 총리 싱가이 응게덥이다. 부탄의 전형적인 지주집안 출신인 그는 가난한 농부들의 땅을 빼앗듯 사들여 부를 축적한 인물로,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다. 물론 부탄에는 여러 정당이 있지만 이 두 개 정당이 사실상 전부에 가까우며, 둘다 왕당파다.
4대 왕 싱계와 그 아들 5대왕 남기엘은 여전히 권력을 누린다. 다만, 간접지배방식을 취할 뿐이다. 특히 4대왕 싱계가 주창한 국민행복지수는 현재 부탄 국민을 한 데 모으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도무지 비교할 대상을 알 수 없는 대다수 농민 백성들에게, 행복한 지 묻고는 스스로 1위라고 답하는 이런 방식은 실제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행복지수 평가 97위라는 결과와 큰 차이가 있다. 사실 부탄은 문맹률 35%, 도시 실업률 30% 이상, 영아사망률 1천 명 당 33.9명이다. 한 마디로, 외견상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무상교육은 초등학교까지만이며, 소수 기득권층만이 대학에서 유학까지 지원을 받는다. 정치참여는 대졸자 이상만 가능하다. 무상의료 역시 우리 보건소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탄 국민 91.2%가 “나는 행복하다”고 답변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외부인이 ‘사실 당신은 행복한 게 아니야’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행복한 국왕의 사진을 보며 왕의 행복한 백성으로 소박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문화상대주의의 혐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 하지만 부탄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외부와의 접촉에 점점 눈을 뜨고 있다. 특히 도시 젊은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으로 힘겨워하며 호시탐탐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군대도 없고, 경찰력을 동원한 폭력적 지배가 존재하지 않는 부탄에서, 이들을 통제할 유일한 방법인 사진 이미지를 통해, 국민을 행복에 취하게 하는 ‘사진 아우라’라는 아이러니함을 발견한다.
벤야민이 살아돌아와 부탄을 방문한다면, 저 해맑게 웃는 국왕 사진이 뿜어내는 저 선한 권력의 아우라를, 뭐라고 해석할까?
- 파로(부탄)에서
글·사진 이상엽 작가
다큐멘터리 사진가 겸 르포라이터. 프레시안 기획위원. <레닌이 있는 풍경>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등을 쓰고, <이상한 숲 DMZ> 등의 개인전을 했다.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지금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로 ‘비정규 노동자의 얼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