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러시아 세력에 포획된 트럼프

2017-08-31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번에는 러시아 차례인가? 세계의 화약고는 종종 미국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다. 도발적인 발언으로 인해 더욱 국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은 점점 더 군사적 밀어붙이기로 외교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러시아와의 문제에서도 그는 전쟁파에 한껏 포위당한 상태다. 특히 거기에는 트럼프의 정적과 정보기관과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달이었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 조치를 내리고, 겨우 정상화된 쿠바 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이란 핵 협정을 혹평하고, 파키스탄에 경고장을 날리고, 베네수엘라에 군사개입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북한을 향해 “여태껏 본 적이 없는 화염과 분노로 타격할 준비가 됐다”고 선언하기까지는, 고작 몇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 1월 20일, 백악관의 주인이 바뀐 이후로 미 정부가 관계를 개선한 나라는 필리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정도다.

나날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미국의 대외관계는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지난봄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명하고, 시리아 공군기지에 미사일 59발을 발사했을 때는 공화당 내 네오콘 세력도, 민주당 의원도, 언론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1) 반면 그가 러시아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저지당했다. 심지어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제재 조치를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즉 미국 대외정책이 지금의 균형점에 이르게 된 것은, 이란·쿠바·베네수엘라 등을 향한 공화당의 공포증(종종 민주당 세력도 동조한다)과 러시아·시리아를 향한 민주당의 혐오증(대다수 공화당 세력도 지지한다)이 날마다 합산된 결과였다. 정녕 워싱턴 정가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것일까. 확실한 사실은 지금은 그런 정당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토론 때만 해도 미국의 유권자는 자국이 제국주의적 경향과 결별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2) 대선 운동 초기만 해도 트럼프는 대외정책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러다 마침내 그가 대외정책에 대해 입을 열었을 때 당시 그가 주장했던 것은 워싱턴 정가의 기득세력(군, 전문가, 싱크탱크, 전문지)이나 오늘날 대통령 본인이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정반대되는 행동노선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정학적인 고려보다 더욱 우선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때 그가 그런 발언을 통해 다가가고자 했던 대상은 바로 탈산업화로 인해 증가한 경제애국주의 세력(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그리고 15년간 계속된 전쟁이 오히려 정세악화와 총체적 혼란(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만 가중했으니 이제는 현실에 눈을 떠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현실론자들이었다. “우리가 지난 15년간 중동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았어도 지금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3) 2016년 4월 트럼프 대선 후보는 말했다. 그는 미국의 “오만이 재앙에 재앙을 불러왔고, 미국인 수천 명을 희생시켰으며, 수조 달러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런 말이 공화당 후보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그런 진단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세력의 주장과 상통했다. 로널드 레이건과 그의 직계 후계자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위해 주옥같은 연설문을 작성했던 대통령 연설담당관 페기 누넌도 당시 이렇게 지적했다. “대외정책 면에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보다도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 힐러리는 군사력을 사용하지 못해 안달이 난 호전적이고 분별력 없는 인물이다.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가 민주당 상대후보보다 더 좌파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마 현대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향후 상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다.”(4)

물론 지금도 여전히 상황은 흥미진진하게 돌아가고 있다. 단 누넌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 의미에서 말이다. 자고로 ‘좌파’는 평화란 다른 나라를 겁박해서가 아니라, 각국의 균형 있는 관계를 통해 안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제여론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신과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을 위해, 더 나은 ‘거래(딜)’에만 정신 팔린 ‘악덕사업가’처럼 행동하고 있다. 가령 그는 현 군사동맹에 대해서도 전쟁을 억지하는 순기능보다 분쟁을 더욱 조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미국인에게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을 안긴다고 문제 삼는다. 열심히 방위비를 대느라 미국이 이제 “제3세계 수준의 국가”가 됐다고 주장한다. 2016년 4월 2일 유세현장에서도 그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구다. 우리는 일본을 위해 싸운다. 독일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 일부밖에는 지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떠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금세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언제든 협상 테이블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리한 거래를 할 수 없다.”

‘유리한 거래’, 그것이었다. 미 대통령이 러시아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만일 IS 척결을 목표로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러시아의 안보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정해줌으로써 러시아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악화된 양국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현재 미국은 러시아 정권에 대해 거의 광적인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시리아에 대해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나섰을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의 위험을 그다지 심각하게 평가하지 않았던 기억은 어느새 흔적 없이 잊혔다.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은 즉흥적 사건에 불과하며, “점점 자국의 품을 벗어나려는 속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5)일 뿐이라고 일축했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러시아는 우리를 상당 수준으로 변화시키거나 약화시킬 힘이 없다. 러시아는 작은 나라, 힘없는 나라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생산품 중에 다른 나라의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것은 없다. 기껏해야 석유, 가스, 무기뿐이다.” 사실상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국가수반에 대해 두려워한 점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푸틴이 트럼프나 트럼프의 추종세력에게 불러일으키는 호감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목소리를 드높였다. “공화당 지지자의 무려 37%가 KGB(국가보안위원회) 국장을 지낸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한다. 로널드 레이건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6)

 
 
다른 동기, 같은 적… 대동단결한 세력들

그러나 2017년 1월 이후 레이건은 다시금 편안한 영면에 들 수 있었다. 푸틴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대통령이 왔다 떠나기를 반복하지만, 정작 정책이 바뀌는 법은 없다”고 평가했다.(7) 사실상 미국 정보국과 민주당 내 클린턴 세력,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 그리고 트럼프에 반감을 품은 언론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돼 대동단결했다. 그들이 그처럼 하나로 합심한 몇 달간의 시간은 아마도 언젠가 역사학자들의 좋은 연구거리가 되리라. 그렇다면 당시 그들을 결집시킨 공동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러시아 정부와 미국 정부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뭉치게 한 각자의 동기는 제각각이었다. 먼저 미 정보기관과 일부 국방부 인사들은 행여 트럼프가 푸틴과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향후 IS척결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 다시 적으로 삼을 만한 만만한 대상이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 한편 클린턴 지지세력의 경우에는 예기치 못한 선거패배의 원인을 급하게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돌리기를 원하고 있던 참에 때마침 러시아의 민주당 이메일 해킹이 안성맞춤으로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푸틴을 증오하며, 이스라엘의 안보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8)하는 미국의 네오콘들은 트럼프가 표방한 신고립주의에 심한 반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은 현대판 워터게이트 사건을 꿈꿨다. 그들은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교양 있는 부르주아 도시민)이 신임 대통령을 열렬히 증오한다는 사실을, 그의 천박함과 극우적 성향, 폭력성과 무식함을 죽도록 경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9) 그래서 그들이 새 대통령을 탄핵이나 강제사임에 이르게 할 온갖 정보나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즉,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처럼, 모두가 같은 대상을 노리는, 각각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대상을 노리는 이들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음모를 작당하기는 더 쉬웠다. 존 매케인 미 상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필두로 한 공화당 매파와 군산복합체의 공모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미국의 최근 제국주의 모험의 설계자로서, 그들은 트럼프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비웃던 2016년 대선전을 악몽처럼 기억했다. 공화당 지식인과 공직자 50여 명은 자신들이 공화당원임에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공화당 후보는 절대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클린턴의 상대후보에게 표를 주기도 했다.(10)

그렇다면 언론은 어떠했을까? 언론은 트럼프의 미숙함으로 인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크게 뒤흔들릴 것을 우려했다. 미국의 언론은 현대판 십자군 전쟁에 별로 반감이 없었다. 더욱이 그것이 인도주의, 국제주의, 진보주의 등을 앞세운 전쟁이라면 말이다. 사실 위와 같은 기준에 비춰 볼 때, 푸틴과, 우익 민족주의 세력에 우호적인 푸틴의 성향은 분명 꼬투리를 잡힐 요소가 충분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스라엘은 그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반러시아 색채가 강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만 믿으면 됐다. 이스라엘도 거의 모든 미국 매체의 전적인 지지를 기대할 만 했다. 이스라엘이 극우 정권이라는 사실쯤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취임하기 일주일 전, 기자이자 변호사인 글렌 그린왈드(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방위 사찰에 관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큰 역할을 했다)는 당시 돌아가는 형국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 언론에 대해 미 정보기관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수단’이 됐다고 일갈했다. 이제 “대부분의 언론은 미 정보기관을 위해 부역하고, 정보기관에 무한한 숭배와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당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긴 지난 대선 패배의 충격”으로 인해, “거의 이성을 잃은 채, 아무 억측이나 마구 늘어놓고, 무슨 전략이든 칭송하며, 어떤 불한당과도 마구 결탁”할 태세가 된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11)
 
트럼프의 온갖 약점들을 러시아가 쥐고 있다?

반러시아 연대가 아직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이미 그린왈드는 ‘딥스테이트(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권력 집단-역주)’의 야망을 알아챘다. “지금 이 순간, 역대 대통령이 숱하게 들고 나는 와중에도 터줏대감처럼 워싱턴 정가를 지킨 강력한 비선출 권력 집단과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당당하게 선출된 대통령 간에는 한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백악관의 새 주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든 정적들은 정보기관이 제기한 의혹에 잔뜩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양국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옥죌 수도 있을 온갖 더러운 비밀(금융, 선거, 섹스 등)을 러시아가 손에 쥐고 있다는 소식이었다.(12)


클린턴을 지지하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이른바 ‘트럼프-푸틴 정권’이라고도 짧게 표현한, 러시아와 트럼프의 검은 거래 의혹은 결국 반러시아 운동을 돌연 대통령을 겨냥한 국내정치공작의 수단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극보수주의 진영 외에 다른 유권자들 사이에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반트럼프 노선의 은거지가 돼, 끊임없는 정보유출을 통해 트럼프와 일전을 벌인 후, 좌파운동가가 FBI(연방수사국)나 CIA(중앙정보국)의 옹호자로 변신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관찰됐다.

우리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지목한 민주당의 이메일 해킹 사건이 왜 그토록 민주당과 언론을 매혹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사건은 트럼프의 선출이 부당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러시아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개선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을 좋은 구실인 것이다. 그러나 외세가 다른 나라의 국내 정치, 심지어 선거에까지 개입했다며 미국 정부가 길길이 뛰다니? 정말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일까? 멀지 않은 과거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통화내용을 도청한 것이 러시아가 아니라 오바마가 이끄는 미 정부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마침내 전 CIA(중앙정보국) 국장 제임스 클래퍼를 심문했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공화당 의원 톰 틸리스가 지난 1월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무려 81회나 다른 나라의 선거에 관여했다. 물론 미국이 자국에 유리한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쿠데타나 ‘정권교체’를 모사한 사건은 빠져있는 수치다. 그에 반해 러시아가 선거 개입을 한 횟수는 36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만으로 <뉴욕타임스>가 러시아의 사기행각에 터뜨린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그런 기대는 금물이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이 일간지가 젊은 독자들에게 밝히기를 꺼린 사실이 어디 그뿐이랴. 이 일간지는 1999년 푸틴을 후계자로 지목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그로부터 3년 전 알코올 중독을 앓는 중에도 미국 대통령의 공공연한 지지와 미국 전문가들의 조언을 등에 업고 부정선거 끝에 재선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러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1996년 7월 4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어 옐친의 당선을 축하했다. “민주주의와 개혁 세력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승리일 뿐,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라고 당시 <뉴욕타임스>는 논평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역사상 최초로 자유 러시아는 자국의 지도자를 자유의사에 따라 선출했다.”

오늘날 이 뉴욕의 일간지는 대러시아전을 준비하는 심리전에도 선봉장으로 나섰다. 그러나 현재 어디에도 저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우파 쪽에서도, 가령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8월 3일 “미국은 이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에스토니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의 침략위험을 언급하고, 조지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찬성하는 한편, 최근 몬테네그로의 NATO 군사동맹 합류를 축하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두 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이런 도발적 행위에 대해 우려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만 붓고 있다.

트럼프의 무능력을 확인한 
러시아의 깨달음

가령 지난 8월 2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다시금 민주주의 국가들을 그들을 위협하는 국가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것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펜스 부통령의 생각에 “정작 함께 일하자며 백악관으로 그를 초대한 인물이 동조하거나 치하하지 않는 것”을 몹시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현재 미국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갈 힘이 없다. 이런 트럼프의 무능력을 확인한 러시아도 불현듯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지난 9월, 러시아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가장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단행했다. 우크라이나와 발트해 국가 주변에 육·공·해 병사 10만여 명을 동원해 대규모 훈련을 벌였다.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에 톱기사 거리를 제공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른바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를 놓고 광적인 비판을 쏟아내던 지난 2001~2003년과 똑같은 반러시아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때와 다를 게 없었다. 빠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먼저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우리를 위협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깨닫는다”는 한 미국 대령의 비장한 선언이 있었다.

또한, ‘정보전’ 능력으로 더욱 무시무시해진 러시아의 무기 목록도 있었다. 독일에서 불가리아로 가는 길목에 잠시 “장갑차를 세우고 어린아이들을 태우거나”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주둔 목적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자상한 나토군에 관한 일화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끼워넣기식 저널리즘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뉴욕타임스>가 자국 영토와 벨라루스에서 벌인 러시아의 군사훈련에 대해 보도하면서, 정확한 훈련지역을 “NATO의 주변 지역에서”(13)라고 표현한 일일 것이다.

어느덧 네오콘 기득세력은 미국의 정가를 장악한 데 이어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매체의 지지를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제 프랑스나 독일이 주도하는 러시아와의 모든 평화 중재 노력을 “1938년 뮌헨협정 정신의 발로”라고 폄훼할 것이다. 가령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도 추락에 대해, 그들의 강박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허울 좋은 핑계를 찾아냈다. “프랑스 내에서, 특히 좌파 사이에서, 별로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두 인물, 도널드 J.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V. 푸틴을 성대하게 맞아준 것은 결코 마크롱 대통령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14)

유럽 국가들은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는 현 군사적 긴장을 과연 완화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일까? 어쨌든 한반도 위기를 계기로 유럽은 미국이 자국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일어나는 피해쯤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동아시아에서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지난 8월 1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북한과 전쟁이 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는 것이지, 이곳에서 죽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넌지시 흘렸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대통령도 같은 생각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이렇게 부연했다.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마이클 클레어, “트럼프 치하의 미 우선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프랑스어판, 2017년 1월.
(2) 브누아 브레빌, “미국의 비(非)개입주의는 어디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6년 5월호‧프랑스어판 16년 4월호.  
(3) 도널드 트럼프, 투데이쇼, NBC, 2016년 4월 21일.
(4) Peggy Noonan, ‘Simple patriotism trumps ideology’, <르피가로>, 파리, 2017년 5월 31일.
(5) ‘The Obama Doctrine’, Jeffrey Goldberg와의 인터뷰, <The Atlantic>, 보스턴, 2016년 4월.
(6) 2016년 12월 16일 기자회견.
(7) <르피가로>, 파리, 2017년 5월 31일.
(8) Michael Crowley, ‘GOP hawks declare war on Trump’, <Politico>, 알링턴, 2016년 3월 2일.
(9) 세르주 알리미, ‘미국 인텔리겐차의 오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12월호.
(10) ‘Statement by former national security officials’, www.globalsecurity.org.
(11) 폭스 뉴스, 2017년 1월 12일. 방송 전날 그린왈드는 2017년 1월 11일자 <The Intercept> 기사, ‘The deep state goes to war with president-elect, using unverified claims, as Democrats cheer’에서 좀 더 상세히 그의 발언을 전했다.
(12) ‘백악관의 러시아 스파이’, ‘공습의 배후정부’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7년 1월과 5월.
(13) Eric Schmitt, ‘US troops train in Eastern Europe to echoes of the cold war’, <뉴욕타임스>, 2017년 8월 6일.
(14) Adam Nossiter, ‘Macron's honeymoon comes to a halt’, <뉴욕타임스>, 2017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