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입맛대로 남용되는 국가비상사태 조항

2017-08-31     라파엘 켐프 | 변호사

지난 6월 11일 총선 1차 투표 당일 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여당의 승리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프랑스 국민이 “테러위험에 따른 새로운 치안 요구에 대한 법제화에 분명한 지지를 보낸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의 발언은 6월 7일 프랑스 정부가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테러방지와 국내치안 강화’ 법안을 연상케 했다. 이 법안은 2015년 11월 13일 파리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날 밤에 선포된, 국가비상사태에 따른 예외적 비상조치들을 정식 법규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 혐의만으로 경찰과 내무부가 거주지정, 가택수색, 전자팔찌 착용 등을 명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는 일시적인 체제에 불과하며,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종료돼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행정적 이유를 거론하며 향후 테러 발생 시 정치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비상조치를 영구화해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비상조치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거나 영장 없이 가택수색을 가능하게 하므로, 사법당국을 부차적 존재로 만든다. 비상조치를 법제화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경찰에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는 법의 적법성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 혐의에 근거한 가택수색이 법에 따라 이뤄진다 할지라도, 이는 여전히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비시 정권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조치

국가비상사태 관련법의 역사를 살펴보자. 알제리 독립운동 시작과 함께 도입된 이 법은 ‘불법 독립운동조직’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령 선포 대신 마련됐다.(1) 이는 알제리의 전쟁 상황을 진압하고자 프랑스와는 별개인 특정 국가의 상황에 적용 가능한 법 도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55년 프랑스 정부는 이렇게 해서 내무부 장관과 경찰청장을 통해 시민의 가택수색 및 거주 지정, 또는 체류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권한을 국가(때에 따라 경찰)에 부여했다. 국가비상사태 관련법은 경찰이 사전감시 없이 독자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위배한다. 형법 규정과 달리, 이 법에 따른 조치들은 개인의 행위가 아닌 가정된 위험, 즉 혐의에 근거할 뿐이다. 

좌파 의원들은 정부 기관들을 현 상황보다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위험을 분명하게 감지했다. 1955년 3월 30일 레이몽 기요 공산당 의원이 ‘파시스트 법안’을 고발했다. 그다음 날, 동료인 사회당의 프랑시스 발스 의원은 지금까지의 군사독재를 대체하는 ‘경찰 계엄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토론 내내 비시(Vichy) 정권(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를 1940~1944년 통치한 정권-역주) 시대를 겪었던 프랑스인들은 현 상황을 비시 정권에 빗대어 비난했다. 

알리스 스포르티스 오랑 지역 공산당 의원은 이 법에 따라 “비시 정권 하에서 겪었듯이 독재정권 체제 하에서 주어지는 과도한 권한이 경찰에 부여될 것”이라 지적했다. 사회주의자였던 폴 발렌티노는 이 법으로 인해 ‘정부에 반대의견을 표명할 수 없어질 것’이라 말했다. 1955년 3월 31일 이 법안은 찬성 379표, 반대 219표로 통과됐다. 60년이 지난 현재, 프랑스 의원들은 선임자들이 지녔던 정신력과 자유에 대한 의지가 없는 듯하다. 2015년 11월 19일, 단 6명의 의원만이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는 법안에 반대했다. 비상조치에 따른 큰 성과는 없다. 2016년 12월에 발표된 의회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가 시행된 지난 15개월간 이뤄진 가택수색은 4,326건이며 이 중 20건만 기소됐다고 한다. 

이 법은 1955년 채택되자마자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데 쓰였다. 알제리 카빌리의 교사이자 공산주의자로, 알제리 민중 구호단체(Secours populaire algérien: 프랑스 식민지 탄압정책의 피해자 지원 단체-역주)를 위해 활동한 장 갈랑은 체류금지조치의 대상이 된 초기 피해자다. 2년 후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투사들을 변호한 알제리 변호사 14명을 감금했다. 경찰 당국이 이들의 행위가 ‘치안 혹은 공공질서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가 이 조치를 위법으로 판결하기 전까지 약 2년 간 감금돼 있었다. 최고행정재판소의 사후 통제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예다. 최고행정재판소가 개입했지만, 너무 늦었다!

혐의만으로 전자팔찌를 채울 수 있다고?

열띤 토론을 거친, 테러 혐의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법안 시행은 이제 거의 확정적이다. 지난 5월 3일, 마린 르 펜 국민전선 대표와의 대선후보 토론에서 마크롱 현 대통령은 “경찰력과 프랑스 정보당국의 테러위험인물 리스트인 ‘S파일’에 올라있는 인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를 포함한 대책들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 이 S파일은 프랑스 정보당국이 실제 감시 없이 단순 혐의만으로 ‘국가안보’ 항목에서 찾고자 하는 인물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일례로, 여러 해에 걸쳐 집회 현장을 방송해온 타라니스 뉴스(Taranis News)의 설립자, 가스파르 글랑은 ‘급진적 극좌 운동에 가까울 것’이라는 이유로 S파일에 이름이 올라 있다. 재판관들은 법원서류에 S파일이 등장하면 이를 믿을 만한 증거라고 여기는 것 같다. 경찰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확실한 근거가 없는 자료는 지극히 신중하게 취급해야 함에도 말이다.(2)

국가비상사태와 단순 혐의의 역학관계는 헌법에 따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재판관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 역학관계는 또한 새로운 사법 논리의 특징을 보여주는 ‘형사-행정’ 범죄를 통해 확산한다. 가장 최근의 테러방지법, 국가비상사태, 그리고 필리프 내무부 장관이 제출한 법안은 사실상 구속력이 있는 다양한 행정적 의무(거주지정, 경찰서 출석 등)를 포함한다. 내무부 장관이 결정하는 이 조치들은 정보당국의 그 유명한 ‘흰색 노트(White notes)’에 근거하는데, 노트에 표제, 날짜, 서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흰색’이라 부른다. 법을 준수하지 않는 이 조치들은 형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재판관은 단순 혐의만으로 내려지는 조치의 위반사항을 처벌한다. 그런데 이때 판사의 역할은 자유침해 조치의 적법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해당 조치를 받은 사람이 거주지정의 목적으로 지정된 시간에 출석했는지 여부, 또는 출국금지의 목적으로 여권을 제때 제출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13일 시행된 카즈뇌브법(Loi Cazeneuve)은 해외 테러행위에 가담할 것이라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담고 있다. 출국금지조치의 대상이 되는 시민은 신분증명서를 프랑스 당국에 24시간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4개월의 수감형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2016년 11월 23일 한 남자가 24시간이라는 아주 짧은 제출기한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 수감형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에 따라 단순 혐의가 실제 범죄로 귀결된다. 

용의자법(혐의법)은 일단 합법화되면 다양한 사유로 쓰이게 된다. 2015년 11월 이후 프랑스 정부는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 조항을 600번 이상 이용했다. 이렇게 하면서 경찰은 테러방지를 위해 부여된 권한을 정치반대세력를 제어하는 데 사용했다. 가차 없는 경찰 권력의 피해자(3)의 위헌제청신청에, 헌법위원회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4) 그러나 헌법위원회는 그 직후 국가비상사태 연장이 예상되는 2017년 7월 15일까지 이 조항이 적용된다고 명시했다. 기본권에 어긋나는 조항들이 법질서에 남아있음에도, 헌법위원회는 상기와 같이 명시함으로써 ‘입법자들이 확인된 위헌사항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주장을 폈다. 즉, 경찰의 체류금지조치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채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놀라움을 감출 길 없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 규정을 같은 종류의 다른 규정으로 대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6월 7일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이 연속선상에 있다. 만약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가택수색, 지속적 거주 지정, 혹은 ‘위험인물’로 인식된 사람들에게 강제로 전자팔찌를 채우는 것이 허용될 것이다. 이들이 범법행위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 법안은 사법당국을 소외시키는 측면보다는 이렇게 국가가 경찰에 추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데에 그 위험성이 있다. 1789년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이 상기시키는 바처럼, 자유가 원칙이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예외적이라면 기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예외를 합법화하지 않는 것이다.  


글·라파엘 켐프 Raphaël Kempf  
파리 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국가비상사태 제정 법안 주석, 프랑스의회, 1955년 3월 22일 세션. Cf. Sylvie Thénault, <L’état d’urgence(1955~2005). De l’Algérie coloniale à la France contemporaine: destin d’une loi(국가비상사태(1955~2005). 알제리 식민통치부터 현대 프랑스까지: 법의 운명)>, Mouvement social(사회운동), n° 218, Paris, 2007.
(2) 두애(Douai) 고등법원, 가스파르 글랑에 대한 사법통제 관련 판결, 2016년 11월 30일, n° 16/03653. 저자는 가스파르 글랑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이다. 
(3) 저자는 그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이다.
(4) 2017년 6월 9일자 결정, n° 2017-635 Q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