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구자를 탄압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2017-08-31 알랭 가리구 | 파리10대학 교수
프랑스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이 2017년 5월 9일 공문을 통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연구교수를 대학차원에서 보호한다는 규정을 공표했다. 5월 9일이면, 신임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이자 정권교체가 이뤄진 전날이다. 이는 정부의 추진력에 어느 정도 확신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이렇게 공문을 발표한다고 해서 부차적으로 여겨질 만한 정책을 홍보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을 ‘전략적 봉쇄소송’에서 보호한다는 규정의 경우, 홍보효과가 전제돼야 한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원고의 명백한 법적근거의 타당성보다는, 원고가 소송을 통해 반대자를 위축시키려는 의지와 더 관련이 깊다. 이미 그 위험성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인은 소송비용 앞에 평등치 않다
전략적 봉쇄소송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문구를 법원건물들 정면에 보란 듯이 새겨놓았건만, 이 명료한 원칙에 파렴치하게도 흠집을 낸다. 소송은 공짜가 아니다. 개인, 기업, 단체 등 부유한 권력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구조적 이점을 이용한다. 후자에게는 언제든 침묵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알까? 만약 자신이 물질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과학자라는 직업적 소명에 의한 행동일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영어로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을 일컫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몇 세기 전부터 진화를 거듭해왔다.(1) 주로 미국에서 발생하지만, 점차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필자는 파트릭 뷔송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그는 피해보상으로 16만 유로(약 2억 2천만 원)를 요구했는데, 당시 필자는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표현은 전혀 몰랐을 뿐더러 SLAPP이란 단어는 더더욱 몰랐다. 변호사 친구들도 이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좋은 변호사’를 대신 소개해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지인도 도움을 줬다. 이 상황을 말로 풀어내니, 혼자라는 느낌을 덜어낼 수 있었다. 행정법원장인 또 다른 지인은 공무원보호절차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줬다. 이런 경우보다는, 공무원이 민사책임을 지게 될 경우 신청할 수 있는 절차였다.
법원장 친구의 말에 따르면, 대학이 보호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일단 시도는 해봐야 했고, 얼마 전에 1심에서 승소하긴 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해서 원고가 뜻을 굽혔다면, 전략적 봉쇄소송은 일관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항소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학 측에서 내 신청을 받아들였다. 표현의 자유가 공무원보호절차에 적용된 첫 사례가 아닐까 싶다. 한 번은 세무법인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적도 있다. 이전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또다시 공무원보호절차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변호사가 구두변론에서 전략적 봉쇄소송을 거론했고, 이 표현이 법정에서 인정됐다. 이것 역시 첫 사례일 것이다.
항소재판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주머니에서 헛돈이 나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표현이 법적으로 기록된 것을 두고, 형식적인 승리에 불과하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결코 무시할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권잡지에서도 과학자에게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데 찬성하는 글을 게재하지 않았던가.(2) 2016년 6월, 티에리 망동 신임장관의 보좌관들에게 이 사건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3) 망동 장관은 조사위원회를 창설했는데, 이 조직은 리스크를 정확하게 밝히고, 체계적으로 대학교수들을 보호한다는 장점이 있다.(4) 5월 9일 공문은 그 첫 번째 결실이다. 위원회가 밝혔듯이 전체 시민 중 일부 계층밖에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지만 말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희소식은 그리 많지 않다.
부의 양극화는 갈등의 문명화를 방해한다
보호대상 범위를 확보하려면, 빙산의 일각만 봐서는 안 된다. 새로운 보호절차를 홍보하면, 소송을 방지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이제 교수들이 공적개입을 통해 관할 내에서는 체계적인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권력자들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대학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소송은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별것도 아닌 일에 유난을 떤다고 빈정대는 반대의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그들 입장에선 이보다 더 심각하고 시급한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한편, 무책임을 조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보호절차는 업무상 과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 무조건적이지 않다.
조사위원회는 보호절차 대상이 대학교수로 한정돼 있다는 한계점을 지적했지만, 신청자가 이 절차를 통해 ‘사소당사자 구성 고소(Plainte avec constitution de partie civile; 고소사건에 대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있을 때, 직접 수사판사에게 사소를 제기하는 방식-역주)’를 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기소가 된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전략적 봉쇄소송 제기자는 자신의 자금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소송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보석금 몇 푼 납부한다고 해서 단념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소된 것만으로도 확실히 위로가 된다. 연달아 발생한 정치 사건들만 봐도, 정치인들이 무죄의 증거라도 되는 냥 불기소 처분 받은 것을 부각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명예훼손 소송에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차이가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한 대선후보(프랑수아 피용)는 자신이 허위채용으로 기소된 사실을 한 소설가(크리스틴 앙고)가 거론하자, 소설가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점을 강조하며 결국 후보 자신과 똑같다는 잘못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예심판사들은 이미 법원에 통고한 이 기소 건이 기자나 교수들에게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이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보호절차가 확대돼야 한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권력자들의 호전성과 현재 우리의 여론체제를 감안했을 때 전략적 봉쇄소송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산림개발업체인 SOCFIN(아프리카에서 활동)과 RESOLU(캐나다에서 활동)가 프랑스에서 그린피스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도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RESOLU는 그린피스 캐나다 지부에 2억 유로(약 2,500억 원)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다른 경제 분야에서는 소송의 가혹한 면이 눈에 띈다. 과학자들의 비평보고서는 수십억의 이름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을 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온화한 상업이다.” 마르스크와 엥겔스도 몽테스키외의 온화한 상업이론을 조롱하며 식민지 학살을 두고 이렇게 빈정댔다.
비평가를 더 신속하게 제거하는 방법이 현대사회에서 더는 사용되지 않는다며 자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부의 양극화가 갈등의 문명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대로 빠르게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가혹함과 교만함을 부추길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정부와 사법부가 내놓은 최선책은 제지력이 부족하다. 포식적 자본주의의 파렴치한 규정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변호사 선임에 돈을 쓰고, 소송에 져도 여전히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다). 언제쯤 소송의 세심한 자금운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도덕적 질서가 세워질까?
대학연구에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일까?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더 공격적이고 까다로운 길을 걷고 있는데, 수많은 연구들이 민감한 주제라는 이유로 사장되고 있는데, 그 많은 분석 자료들이 지나친 신중함 때문에 결함이 생겼는데, 그 와중에 대학연구에 기대를 거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오늘날 변명할 여지는 더욱 없어 보인다.
글·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파리 10대학 정치학 교수, 저서로 <La Politique en France de 1940 à nos jours(1940년부터 현재까지의 프랑스 정치)> (La découverte, ‘Grands repères’ 총서, 파리, 2017)가 있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Slap’이란 단어는 ‘철썩 때리다’라는 뜻이 있으며, 콘트라베이스 줄을 찰싹 때리는 주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2) 제레미 메르시에Jérémy Mercier, ‘“Procédure bâillon”: Retour sur l’affaire des sondages de l’Elysée et la liberté d’expression des universitaires’, <La Revue des droits de l’homme>, Actualités Droits-Libertés, 2016년 3월 15일 온라인 게재
(3)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위험 경보’라고 부르기로 합의된 자리에 참석해준 모든 이들, 장-이브 마덱, 파스칼 라보리에, 토마스 클레이, 변호단과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4) 티에리 망동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의 지시로 작성된 전략적 봉쇄소송 보고서를 참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