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는 누구인가

2010-05-10     르 디플로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지속적으로 글을 써왔다. 그가 <르 디플로>를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런 인연과 닿아 있다. 촘스키의 발언 중 상당 부분은, 본지에 기고한 글을 포함해, 미국의 대외정책 비판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사상과 관심 분야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그가 썼던 글들을 골라 발췌한다.

세계는 변화한다
최근의 역사적 사건 중에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성운동은 어떨까? 내 할머니에게 자신이 억압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그녀는 질문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같은 질문을 내 어머니에게 해보면 어떨까? 그녀는 자신이 억압받는다는 느낌을 가졌겠지만 드러내놓고 항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결코 아버지와 내가 부엌일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부엌일은 우리 몫이 아니었으니까. 남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공부 같은 것 말이다. 그 외의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이번엔, 내 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너희가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토론이고 뭐고 없다. 바로 문밖으로 쫓겨날 테니까. 이는 최근에 생긴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적 관습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40년쯤 전만 해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복도를 오가는 학생의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입은 백인 남학생이었다. 그들은 선배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오늘날 복도에 걸어다니는 학생의 반은 여성이며 3분의 1은 백인이 아니다. 옷차림도 훨씬 자유분방하다. 이는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니며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중략)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나의 할머니, 어머니, 딸 세대를 거치며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친절한 정부가 여성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채택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보다는 좌파 젊은이의 운동에 빚진 바가 크다. 1960년대 징집거부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전쟁터로 떠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매우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열여덟 살의 젊은이가 보장된 장래를 포기하고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조국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대단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젊은이의 운동이 일반적으로 성차별주의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자는 (베트남에) 가지 않겠다는 남자에게 ‘No’라고 말하지 않는다.”(Girls don’t say no to boys who won’t go.) 당시 포스터에는 이런 구호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남성이 거리를 행진하며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는 동안, 여성은 사무실에 앉아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여성운동가의 눈에는 남성운동가 역시 억압자의 일원으로 보였다. 이 경험은 당시에 강력하게 대두된 페미니즘 운동에 중요한 영감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권력과 지배의 구조를 이해하고는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역사 속 변화는 이런 식으로 도래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모두가 그런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선의의 독트린: 데이비드 바사미언과의 대담>(Fayard·Paris·2006)에서 발췌

이기주의는 인간을 지배하지 못한다
굶주린 사람 한 명이 거리를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자신처럼 허기져 보이는 아이가 빵 한 조각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본다. 주위에 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아이의 빵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따르는 행위일까? 그가 만약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우리는 썰물 때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변에 남은 돌고래를 구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이 힘든 조건을 마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이들의 행동을 이기주의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자연선택은 같은 종끼리의 협력과 상호 이타주의를 낳게 된다는 식의 좀더 정교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역사와 경험을 보면,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이들이 다른 현대 사상가처럼 이기주의를 찬양하긴 했지만- 의 가정, 즉 타인의 안녕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인간 본성에 내재됐다는 생각이 틀렸다고 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공감과 연대, 상호부조의 원칙 위에 건설된 사회제도를 해체하려는 부자와 권력자에겐,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을 지배한다는 식의 생각이 편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믿음에서 그들은 사회보험제도를 파괴하고 보건정책이나 교육 등 그동안 민중의 투쟁으로 쟁취한 제도를 해체하려는 야만적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 제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그들의 재산과 권력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은 본래부터 이기적이라는 식의 환상을 이론화한다. 이들에 따르면 마을 반대편에 사는 장애인 과부가 제대로 밥은 먹고 사는지, 혹은 앞집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지 걱정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 된다. (혹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심지어 ‘나쁜’ 짓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확실한 근거가 있는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

인간 본성과 사회질서
현재의 사회질서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유일한 체제라고 가정한다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이런 체제가 등장한 것이 최근의 일이며, 영국과 그 밖의 나라가 이 체제를 다른 국가에 힘으로 강요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략)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인간을 좀더 쉽게 죽일 수 있는 도구를 지녔다고 해서 사회를 어떻게 조직할지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과 과학, 논리학 등 어떤 것도 역사 속 특정 사회 체제가 인간 본성을 필연적으로 반영한다고 주장하지 못한다. 곤충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인류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이 먹히지 않는다.

활동가와 미디어
활동가는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언론은 세계사회포럼(WSF)에 거의 관심이 없으며, 이따금 조롱하는 투의 보도를 내보낼 뿐이다. 그렇다고 포럼에 참가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고 자신이 시간 낭비를 한 것이라고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 포럼 참가자에게는 언론이 그들을 중상모략하고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왜곡할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체해주는 게 나을지 모른다. 경찰이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도 언론의 행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전해들은 바로는 그렇다. 어쨌든 집회의 목적은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회는 교육, 조직, 저항, 대안 제시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일 뿐이다. 따라서 집회가 성공했는지 여부는 이런 활동의 목표가 달성됐는지에 달려 있다. 이들이 현존하는 지배권력 구조를 지지하는 기관으로부터 중상모략을 듣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내 나름으로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지만 이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지배구조 혹은 권력구조를 파악하고 그 정당성을 물은 뒤 정당하지 않다고 판명되면 그 구조를 넘어서려 노력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의 경향을 가리킨다.

엔터테인먼트와 정보 조작
내가 <뉴욕타임스> 등 유명 일간지를 항상 주의 깊게 읽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신문들이 주요 시사 문제를 결정하면 다른 신문이 그 뒤를 따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다음 이유는 이 신문들이 지배적 지식인 문화의 일부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도 관심이 많다. 의심할 여지 없이, 현재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노동자에게 무뇌아적 복종을 강요하는 테일러식 생산 시스템이 노동 내적(On Job) 관리라면 인포테인먼트 산업은 노동 외적(Off Job) 관리를 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소비 트렌드와 같은 피상적 것’에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그들에게 ‘경박함의 철학’을 주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나는 그 결과를 내 저서에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내 지식은 별로 대단치 않지만 굳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럴 만한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까지 굳이 연구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 문화나 주요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엘리트 지식인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분석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략) 내가 보기에, 문제제기 자체가 민중 대다수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바탕을 둔다. 민중이 엘리트 지식인보다 프로파간다에 훨씬 잘 속아 넘어간다고 생각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 반대라고 생각할 근거는 충분히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쿠바에서 ‘정치적 자유의 제한’ 덕택에 공공보건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반대로 쿠바의 정치적 자유 제한이 미국이나 동맹국, 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큰 성공을 거둔 공공보건 시스템을 파괴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런 주장은 민주적 선거제도가 공공보건제도나 식량 공급 문제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내 생각은 이와 정반대다. 정치적 자유와 사회복지는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는커녕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중략) 서구사회에서 선거가 이젠 ‘무의미한’ 것이 돼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사적 권력이 집중되면서 정치적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하던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져버렸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무의미한 놀이’가 돼버렸다고 생각하거나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신자유주의를 물리칠 수 없다고 단념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우리는 선거를 통해 인류 복지에 이바지하는 진보를 이뤄낸 경험이 있으며, 그 성과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분명 그런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이 훨씬 힘든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해낸 일을 서구 국가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단지 몇 가지 실천상 제약 때문에, 지난 몇 세기 동안 투쟁을 통해 쟁취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장 브리크몽 & 쥘리 프랑크, <촘스키>(Cahiers de l’Herne·n°88·Paris·2007)에 인용된 촘스키의 글

포스트모더니즘의 과학 비판
‘백인 남성의 과학’(White Male Science)이라는 개념은- 미안한 말이지만- 내게 ‘유대인의 물리학’이라는 개념을 연상시킨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저술을 읽을 때 그 저자가 백인인지 남성인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학교 강당이나 사무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나는 백인이나 남성이 아닌 내 학생, 동료 교수 혹은 친구가 이런 개념에 크게 감명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개념은 그들의 사고나 이해 방식이 “그들의 문화, 젠더, 인종의 차이”로 인해 “백인 남성의 과학”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접하면 ‘놀라움’ 이상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중략) 상당수 과학자는 당시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노동자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수학, 과학, 그 밖의 주제에 대한 대중적 저술을 집필함으로써 문화 교육자 역할을 수행했다. 오직 좌파 지식인만이 이런 활동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좌파 지식인이 ‘계몽 프로젝트’가 이미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함으로써 민중에게서 배움의 즐거움뿐 아니라 그들의 자기해방 수단마저 빼앗아버리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가 과학과 이성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이 이제 과학과 이성의 도구를 독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성과 자유>(Agone·Marseille·2010) 중 ‘과학과 이성’에서 발췌



노엄 촘스키는 누구인가?


노엄 촘스키는 소쉬르 이후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9살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부교수가 되었고, 32살에 정교수 자리에 올랐다. 1955년 ‘언어이론의 논리 구조’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통사구조론>(Syntactic Structures·1957)은 그의 출세작이며, 한국에는 <변형생성문법의 이론>(1966)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은 언어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론이다. 촘스키는 언어 구조를 ‘표면구조’와 ‘심층구조’로 구분해서 보았다. 이를 통해 겉으로는 같은 구조이지만 심층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의미 맥락을 갖는 언어의 특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했다. 같은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외국어로 쓰는 사람 사이에 이해도가 다른 것도 언어의 이런 특성에서 비롯된다.

언어학자로 명성을 쌓은 촘스키는 1964년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를 지지하면서부터 세계 문제와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강대국의 폭력과 인권유린을 고발함으로써 ‘살아 있는 미국의 양심’, ‘진정한 지성인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국제 테러리즘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비판하는 글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숙명의 트라이앵글>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불량국가> <테러리즘의 문화>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여론조작>(에드워드 허먼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