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총회에 약소국이란 없다!

2017-09-28     로뮈알드 시오라 | 불·미 에세이 작가, 다큐멘터리
UN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나, 전 세계의 모든 국가를 소집하는 유일한 세계포럼이다. 비록 그 유명한 UN의 관료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UN총회는 진보적인 국제법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주역들의 생생한 경쟁무대이기도 하다.

 “UN총회에 약소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시마 윌리엄스가 뉴욕의 UN 본부 건물, 대형 유리창에 뒤덮인 이 ‘유리집’의 집무실에서 힘줘 말한다. 그레나다의 대사를 지내고 UN총회 의장의 특별 보좌관이 된 그는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단어들을 또렷하게 발음했다. 우리의 회의적인 태도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다름 아닌 샌프란시스코 헌장(UN 창립헌장)에 모든 회원국은 평등한 주권국가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한 국제관계 안에서 각 국가들이 처한 현실은 신중을 기하게 한다.

지난 2016년 6월 13일,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한 사건이 구태의연하던 UN총회의 연례회의에 변화를 가져왔다. 임기 1년의 총회의장 선거가 이례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UN총회 의장국은 UN 내 5개 지역그룹별로 순환되며, 대륙의 단일후보를 압축한 뒤 총회에서 합의 추대한다(박스 기사 참조). 그러나 합의 추대가 어려웠던 이번 의장직은 정식으로 투표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서방세계의 지지를 받던 키프로스의 안드레아스 마브로이아니스는 한 약소국의 대표, 피지 대사 피터 톰슨에게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찬성 94표, 반대 90표). “톰슨 의장의 선출은 열강들에 보내는 신호다. 특히 기후변화에서 불평등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지인들은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표를 UN총회의 수장으로 뒀다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 아시아 외교관이 말했다. ‘1국 1표’ 원칙이 적용되는 UN총회의 표결방식에는 수의 법칙이 지배한다. 

UN총회의 수장이 된 ‘약소국’ 피지의 대표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권위로 때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위기를 해결하기도, 악화하기도 하는 안전보장이사회에 가려 UN총회는 대개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UN총회는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총회의 연례회의가 열릴 때마다 “많은 논의가 되풀이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논의 속에 새롭고 중요한 아이디어들도 있어, 그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고 ‘아이디어의 파종자(播種者)’ 역할을 한다. 따라서 UN총회는 군비감축과 신기술, 우주 폐기물 관리, 아동보호, 자연재해 감소 등과 같은 모든 세계적 주제들에 대해 국가들이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라고 테레즈 가스타우트 교수가 설명한다.(1) UN총회는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국제법을 제정하고 있으며 2015년 12월에 체결한 파리기후협약과 같은 300개 이상에 달하는 조약들(2)의 산실이 되고 있다. 뉴욕과 제네바에 위치한 UN 본부에서 매일 수백 개의 실무회담이 이뤄진다. “총회는 국제적 합의가 공들여 익어가는 가마솥 같은 곳입니다”라고 한 UN 출입 기자가 알려준다. 

길이 남을 명연설들

UN총회는 중요한 의견을 나누고 본질적인 요구를 표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의 정책을 토의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국민의 권리는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조항(UN헌장 제2조 제1항)에 따라 채택된 선언은 식민지국들의 독립을 합법화했다(1960년 12월 14일, 아시아-아프리카 43개국의 식민지해방선언안). 특히 오랫동안 영국이나 프랑스, 포르투갈의 신탁통치하에 있던 아프리카 국가 등 10여 개 신생국들의 탄생을 가능케 한 탈식민지화로, UN총회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193개 회원국과 2개의 비회원 참가국인 교황청과 팔레스타인)가 회합하는 유일한 세계포럼이 됐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UN총회는 기억 속에 길이 남을 연설들의 무대가 된다. 1961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에 핵실험 협상을 제안하는 연설을 하고, 1972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서구자본의 지원을 받아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대기업을 고발하는 연설을 한다. 1974년 11월 13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평화를 위한 대규모 제안을 하며 “오늘 나는 한 손엔 올리브 가지를, 다른 한 손엔 자유의 전사의 무기를 들고 왔습니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가 떨어지게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외친다. 이 연설은 그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다. 1974년 11월 22일, UN총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및 주권 인정안을 가결한다. PLO는 UN의 영구 옵서버 지위를 획득한다. 결국 2012년 11월 29일, UN총회는 팔레스타인에 ‘비회원 참가국’ 지위를 부여한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식 회원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런 법적장치로 팔레스타인의 국제적 지위가 보장되며, 국제형사재판소에 재소하거나 협약에 조인하는 일 등이 가능해진다. 좀 더 최근인 2015년 9월 연례 정기총회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슬람국가조직(IS)에 맞서 “나치처럼 악과 증오를 조장하는 세력을 근본적으로 타파할 태세가 된 국가들을 하나로 집결시킬 반 히틀러동맹 같은” 국제 동맹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UN총회 결의안의 집행 권한을 가진 국제경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의안은 대개 실질적 결과를 낳지 못하고 단순한 원론적 차원의 입장 표명에 머문다. 그러나 탈식민지화를 이뤄낼 때 그랬던 것처럼, 결의안이 의식을 개선하고 지정학적 갈등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실질적 정책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빈국들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일찌감치 UN총회에 가입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1967년에 결성된 ‘G77+중국’은 경제·사회적 논의를 진행할 때 133개 개발도상국의 이름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1968년부터 수차례의 선언문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을 비판하고 남아프리카와 무역하는 서방국가들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1994년 10월 3일, 뉴욕을 방문한 넬슨 만델라는 잊지 않고 감사를 표했다. “오늘 우리는 이 연단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인종차별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린 공동투쟁에 우리 국민 모두와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힘을 합친 UN 회원국들과 UN에 경의를 표합니다.”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와 동일시한 결의안이 1975년에 표결되고 1991년에 폐기됐는데, 이 결의안처럼 어떤 결의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UN총회 산하 기구인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정부가 위임한 외교관들만 참석할 수 있었던 국제토의에 1960년대부터 ‘시민사회’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 기관 덕분에 비정부기구(NGO)라는 지위가 생겼고 NGO가 UN이 주최하는 회의와 협상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대표를 임명(대표들에게 결정권은 없음)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NGO’라는 용어는 상용어가 됐다. 1,300개 단체가 시민사회 연계 서비스를 갖춘 UN의 승인을 받았다.(3) 단체들은 UN총회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고 투쟁을 확대하는 장으로 여긴다. UN총회가 2017년 6월 뉴욕에서 개최한 해양 콘퍼런스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의 수정에 앞서 단체들은 10여 년 전부터 UN총회가 개최하는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4)

“그곳에서 채택된 결의문은 UN총회가 전혀 구시대적이지 않으며 계속해서 국제사회에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톰슨 의장이 평가한다. 공해(公海)연맹이라는 단체의 조정관으로 있는 페기 칼라스가 그 말을 확인시켜준다. “우리는 여러 정부와 협력하며 일해 왔다. UN의 해양 및 해양법 사무국의 사이트는 우리의 견해와 제안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UN총회가 이와 같은 공간을 민간 주최들에 제공한다 하더라도, 시민사회가 해당 기구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기에 선택받은 비정부기구들에 대표성이 존재하는가라는 민감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존재감 드러내는 UN총회

역사가 폴 케네디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국제사회 속에서 “UN총회는 인류의 의회에 가장 근접한 기관이다”라고 했다.(5)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위기에 관한 결정은 안보리가 내린다고 UN헌장에 명시돼 있기에 그 공동가치의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UN 안보리는 저 유명한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더불어 세계포럼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자의적으로 구성된 주요 20개국 또는 G20 역시, 세계포럼의 역할을 한다고 자처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국제사회에 등장한 G20은 이를 결성한 열강들의 수중에 있다. 물론 인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신흥국들이 G20에 속하지만 이들 또한 부국들의 최종 지명을 통해 결정된 것이다. 반면, UN총회는 “국가들의 이익을 공평하게 관리한다”고 설명하면서 윌리엄스는 “식민지주의는 그곳에 발붙일 수 없다. 우리는 UN총회에서 발언권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국들은 때로 사안을 깊이 연구할 수단이 충분치 않다”고 상기시킨다. 2005년,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주도로 개최된 세계정상회의를 통해 UN총회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며 일종의 G193 같은 진정한 전 세계 ‘국가들의 의회’가 됐다. 

“다자간 공동 정책은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UN 주재 프랑스 대표부의 아르노 길루아가 지적한다. “대화를 이끌어내고 강대국들에게 대화를 통해 얻을 것이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거의 UN총회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UN 기후변화회의라는 거대한 연례 세계회의는 UN총회의 산물이다. 2015년, 최대 환경 오염국들을 비롯해 모든 국가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채택된 최종 결의안이 대단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소국들이 다수다.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톰슨 의장이 지적한다. “기후와 관련해 그해에 이룬 진보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우려하던 바와 달리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는 주요 조항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결속을 오히려 더 강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그가 기대하던 효과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몇몇 대표들은 빈국들을 책임지기 싫어하는 부국들에 대한 유감을 주저하지 않고 표명한다.

개발 관련 논의와 결정들은 UN총회의 역량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2000년 9월, 새천년선언은 빈곤퇴치를 위한 세계적 노력을 통괄해야 하는 새천년개발계획 8대 목표를 위한 길을 제시한다. 첫 결실들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즉, 53억 명이던 세계인구가 75억 명으로 증가할 때, 극빈자 수는 19억 명에서 8억 4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보건과 교육, 식량, 필수적인 공공업무 접근성이 놀랄 만큼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6) 그러나, 결과는 대륙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국가 간 불균형과 국가 내 불균형이 심화된 측면은 평가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2015년, 새천년개발목표는 기후의 중요성을 고려하고 목표를 보편화하며 ‘현장의 현실에 더 가까이’ 가도록 개정됐다. 이제 지속가능개발 17대 목표가 새천년개발목표를 대체 한다(빈곤과 기아 퇴치, 양질의 교육, 양성평등 등). 3년간 70개 국가가 용어를 정의하는 데 협력하고, 8백만 명이 사전조사에 응했다는 사실은 그 정책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수행할 업무를 통합한 2030개발의제는 중국의 지지를 받았는데, 중국은 이 개발의제를 ‘보다 균형 잡힌 포괄적 협력’을 위해 필요한 단계로 생각한다.(7)

그러면 금융기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국제경제질서(NIEO: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역주)의 목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1974년, UN총회는 세계적 차원에서 부를 공평히 분배하고 UN의 주도로 경제 전략을 변화시킬 것을 촉구하는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관련 내용은 원유가 안정, 천연자원에 대한 주권행사, 교역조건 개선 등이다. 신국제경제질서는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빈국의 채무 급증, 열강들의 무성의로 실패하고 말았다. 신국제경제질서의 실패는 UN총회의 개입 능력을 벗어난 이데올로기적 갈등관계의 변화, 제3세계국가들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NGO를 협상에서 더 타협적으로 참여하게끔 부추김으로써 어쩌면 NGO의 참여 목적이 흐려졌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워싱턴 합의’를 통해 1980년대부터 인정받고 있다. 경제학자 피에르 자크모가 지적하듯, “불공정 무역, 광적인 자본화, 생물종 다양성 감소 등과 같이 불평등을 일으킨 근본적 원인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아 지속가능개발목표를 통해 기대하던 대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8) 또한, 일반 대중에는 익숙지 않은 약자(略字) 남용, 불충분한 통계, 전적으로 회계에 치우친 ‘추적조사 및 평가’, 현대적 기관들의 관료주의가 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많은 의결기관들에 판치고 있는 ‘관료주의’가 UN총회도 장악했다고 주장하는 노암 촘스키는 미국 의회에서도 같은 일탈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UN의 힘이 미치지 않는 세계기구들 중에는 국제금융기구들이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 이후 UN과는 별도로 발전해왔다. 한편, UN은 브레튼우즈 회의 수개월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설됐다. 특별기구들(세계보건기구,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등) 및 프로그램들(개발프로그램, 환경프로그램 등)과 달리 금융기구들은 UN 산하 기구들에 적용되는 공동규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금융기구들은 부국들에 결정권을 부여하는 경영자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계속해서 경제사회이사회의 감독을 거부해왔다. 따라서 이 금융기구들과는 항상 함께 토의하며 협상해야 한다. 그것이 UN경제사회이사회(Ecosoc)가 1998년 이래 주최해 오고 있는,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공조를 가능케 하는 Ecosoc ‘춘계 회의’의 목표다. 

금융기구들은 이미지 개선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까? 국제금융기구들은 완전한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UN과의 관계를 향상시키려 노력한다.(9)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가 개발목표의 재정을 토의하기 위해 5월 UN총회에 참석했다. 톰슨 의장은 UN총회 의장으로서의 특권을 최대한 활용해 국가들에 비용 부담을 촉구한다. “우리는 개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고 이 목표들이 업무의 핵심축이 되게 한 의장께 감사한다”라고 데이비드 도나후 아일랜드 공화국의 대표가 힘주어 말한다. 총회 의장의 임기는 1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5년 임기의 안토니오 구테헤스 신임 사무총장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업무의 지속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기력한 지속가능개발을 굴러가게 하는 곳이 벼랑 끝이라는 사실을 각자가 인식해야 하고” 테이블 위에 필요한 수단들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톰슨 의장은 설명한다. “경비는 국가들이 지급해야 할 것이다. UN총회는 조명의 방향을 결정해 문제들을 비추기만 한다. 내 역할은 후임자에게 이 직무를 지속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강제적 수단이 없는 UN총회는 먼저 일종의 사회적 압력을 가해 최종 결정권을 가진 국가들이 입장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성적 소수자 권리에 대한 토론과도 같은 큰 관심사다. 국제적 합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프랑스 상임대표인 프랑수아 들라트르 대표가 지적한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기본권 침해로 꾸준히 지탄받는 국가들이 여전히 그 체제를 다지려는 단체들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UN 인권이사회에 보고서 제출을 강요받는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가 2017년 5월 2일 UN여성지위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됐을 때처럼 이따금 부조리로 인해 치를 떨게 된다. 

UN이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일은, 매우 폭넓은 분야에서 완수하는 일상 업무 때문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관료주의와 일부 UN의 권력남용(10)으로 인한 경우가 더 많다. “UN 안보리가 조명을 받는 역할을 한다면, UN총회는 원자로의 노심(爐心)처럼 UN의 가려진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들라르트 대표가 요약해 말하면서 다국적 배경과 UN 체제를 지지하는 것이 프랑스의 입장이라고 상기시킨다. 프랑스는 전 세계적 대형 이슈들을 확대시키는 공명상자 역할을 한다.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아직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위에서 테러 퇴치에 대한 토의를 했다면, UN총회는 이미 1972년에 이 문제에 대한 첫 논의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UN총회는 2006년 9월,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행사한 폭력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함에 따라 테러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제시하지 못한 채 세계반테러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분쟁과 정치적 배제, 사회·경제적 소외처럼 테러의 원인이 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한다. 비록 관련국들이 가결한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UN이 채택한 권고에 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략은 사실상 국가 및 지역 차원의 반테러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한편, ‘테러행위’로 이스라엘의 규탄을 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폭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곳이 바로 UN총회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년 전부터 국가들은 2015년에 불거진 난민 문제 같은 특정 위기들에 대한 ‘해결사’를 임명하는 일이나 고위급 회담 개최 등의 임무를 점점 더 많이 UN총회 의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총회 의장 비서실 소속인 그리스 외교관 이오아니스 브라일라는 이와 같은 현상이 각 사안의 당사자들을 연결하는 UN총회의 능력과 업무를 인정하는 ‘중요한 추세’라고 평가한다. UN 주재 유럽 차석 대사였던 그는, 따라서 “개발은 분쟁을 예방하는 한 수단이다”라고 강조한다. 전문가적 능력을 보유한 UN총회는 보건, 개발, 환경 등에 관한 특별기구들의 업무를 통괄할 수 있다.

강대국들 간 합의 부족으로 UN총회의 역할 커져

2016년 UN 사무총장직에 선출된 구테헤스에게 유례없는 역할이 부여됐다. 전통적으로 회원국 대표들은 UN 안보리가 추천하는 후보를 표결 없이 승인만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 대표단이 한층 개방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요구했다. 그래서 총회의장은 최종 결의안 작성을 안보리와 협상하고, 사무총장 후보자들은 청문회를 거쳤다. 브라일라는 이런 혁신에 대해, “UN에 속한 조직들이 현시대의 도전에 적응하고 쇄신할 필요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런 요구와 UN총회의 역할증대는 시리아 내전의 긴장 고조에 대한 강대국 간 합의 부족에서 기인했다고 분석된다. 국제위기그룹의 리차드 애트우드는 말한다.

“서방국가들이 국제법을 침해하거나,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코소보(1999)나 시리아(2011) 문제에 개입해, 무력행사 억제 규정에 이견을 보인 5개 상임이사국 간 신뢰가 위기에 빠졌다.”

마찬가지로 2016년 12월 9일, UN총회는 시리아에서 모든 국가들이 국제인권법을 존중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함으로써, 무엇보다 원조단체들이 시리아 국민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특정 상황 속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안보리의 기본적 권한이기 때문에 UN총회의 이와 같은 개입은 극히 드문 일이다.(11) 

전 세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통해 부여받는 정당성을, 하나의 민주국가 의회의 정당성과 비교해볼 때 UN총회는 세계의회라고 볼 수 없다. 국제사회의 이질성을 고려하면 ‘세계의회’라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국제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능력(예기치 않았던 톰슨 의장의 당선, 소국들과 중국의 결집 등)을 갖추고, UN 헌장에 명시된 대로 집단안보를 위해 권력욕을 억제하는 데에 가치를 두는 곳은 UN총회가 유일하다. 지정학적 재편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시대에, UN총회는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국제질서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포럼이다.   


박스기사

세계의 포럼

샌프란시스코 UN헌장 4장은 총회를 UN의 심의 정치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 헌장 10조에 의하면 ‘총회는 이 헌장의 범위 안에 있거나 또는 이 헌장에 규정된 기관의 권한 및 임무에 관한 어떤 문제 또는 어떤 사항도 토의할 수 있다.’ 따라서 총회의 권한은 확대됐다. 다만 유일한 제약은, ‘분쟁이나 사태’를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헌장 12조에 따라 ‘분쟁과 사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다룬다. 9월에 열리는 연례 회기에서는 주최국인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부 수반들이 참석하는 토의가 열린다. 이 기간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기관에 언론의 조명이 쏠린다. 

193개 국가가 모이는 유일한 기관인 총회는 국가들의 법률적 평등을 원칙으로 한다. 각 국가 대표단은 5명까지 보낼 수 있으나 모든 국가는 총회에서 한 표만을 행사한다. 수치상으로 보면 리히텐슈타인 시민의 한 표는 중국 시민의 4만 배에 해당한다! 예산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과반수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다른 문제들은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헌장 7장에 의거한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과는 달리 총회의 결의안은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고 강제적인 조치를 동반할 수 없다. 그러나 총회 결의안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지표다. 결의안은 또한 국제적 힘의 관계 속에서 국가와 단체에 도움을 주고 있다.     
 
총회에서는 UN의 예산(5번째 위원회)과 새로운 회원국 승인을 표결한다. 최근에 가입 승인된 회원국은 2002년 스위스, 2006년 몬테네그로, 2011년 남수단이다. 총회는 또한 기금과 프로그램들(UN개발계획, UN환경계획, UN아동기금등)의 예산을 평가하고 승인하며, 재단과 기금에 이에 대한 권고를 한다.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천한 사무총장을 선출한다. 총회의 의장은 UN의 의전 서열 1위다. 총회의 업무를 활성화하는 역할 이외에도 의장은 뜨거운 현안이나 위기에서 중재자와 실무자를 지명할 수 있다. 의장은 주제별로 다양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 또한 차고스 제도에 대한 영국과 모리셔스의 분쟁 당시처럼 의장은 난국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총회는 샌프란시스코 헌장에 쓰인 공평한 지리적 분배원칙에 따라 기능한다. 총회에는 5개의 지역그룹(아프리카, 동유럽,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제도, 서유럽과 기타, 아시아태평양)이 있고 5개 그룹별로 직위와 임무가 분배된다. 

글·로뮈알드 시오라 Romuald Sciora
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번역·김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