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착용이 촉발한 종교적 페미니즘 vs. 세속적 페미니즘

2017-09-28     베네딕트 뤼토 | 종교 전문기자

2017년 1월 5일, 사회당 1차 선거 후보 마뉘엘 발스는 프랑스 2 TV ‘에미시옹 폴리티크(정치방송)’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 앞에는 소위 ‘무슬림이자 페미니스트’인 랄랍 연합회원 아티카 트라벨시가 앉았다. 진한 황록색 히잡으로 머리를 감춘 이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은 지난 2016년 4월, 히잡을 “여성의 굴종”이라고 평가한 발스 전 총리의 발언에 “상처받고 모욕당했다”고 밝혔다. 발스 전 총리가 “강요된 히잡 착용이 하나의 패션으로 무마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며, 히잡은 정치적 상징으로 착용되고 있다”고 반론하자, 트라벨시는 “당신은 나를 향한 폭력을 유발하는 담론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은행에 가면 히잡 착용을 금지당한 채 어째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나는 자유의지로 히잡을 착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발스 전 총리가 ‘정교분리원칙(Laïcité)’을 논하면, 트라벨시는 ‘이슬람공포증’으로 대답한다. 동문서답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한다.

이 방송장면이야말로 오늘날 히잡 착용 문제를 둘러싼, 서구 페미니즘을 뒤흔드는 단절을 잘 보여준다. 이제는 세속적(정교분리원칙에 입각한) 페미니즘이 종교적, 특히 이슬람 페미니즘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을까? 사실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여성의 랍비직 허용 투쟁으로 잘 알려진 델핀 오르비외르의 ‘나는 내 자유의사로 히잡을 쓰기로 결정했다: 종교적 페미니즘의 한계’라는 칼럼이다(2017년 1월 17일, BibliObs.NouvelObs.com). 이 방송에 대한 반응으로 작성된 이 기사는 히잡 쓴 여성들의 “공동체적 주장”을 비난한다. 오르비외르는 설사 이 여성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하더라도, 이는 프랑스공화국 덕분이며 정교분리원칙 덕분이지, 종교나 히잡 덕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종교적 페미니즘이 존재하지만 세속적 페미니즘이 그보다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이 기사가 왜곡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한다. ‘모스크 안의 여성’ 단체의 전 대변인 아난 카리미의 반응은 특히 더 격렬하다. “나는 이 기사가 (델핀 오르비외르가) 페미니스트 내셔널리즘의 대열에 입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본다. 정부가 내셔널리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남녀평등의 수사학을 가로챈 시점인 셈이다.”(Les Inrocks, 2017년 1월 18일)

이슬람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이란에서 탄생해 이후 북아프리카 및 중동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나라마다 요구가 달랐는데, 코란의 ‘페미니즘적’ 해석, 여성을 향한 폭력과의 투쟁, 결혼관습 개혁, 상속문제 등이 그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신식민주의적’이라 판단되는 법, 즉 학교에서 종교적 상징물, 즉 히잡의 착용금지법에 대한 반발로서 2004년, ‘무슬림 페미니즘’이 생겨났다. 이에 역사학적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무슬림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위한 페미니스트’라는 단체로 연합했다.

 

회유에 주의하라

그러나 이런 예기치 않은 연합은, 세간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2012년 이후로 별개의 행사 두 가지가 3월 8일 낮 파리에서 열렸는데, 하나는 세속적 성향의 전통적인 페미니스트 행사, 또 하나는 ‘모든 여성을 위한 3월 8일(8 Mars Pour Toutes)’이라는 여성단체가 이끈 훨씬 작은 행사였다. 2015년 5월에는 소수파 여성단체인 ‘페미니즘을 단행하라!’가 ‘히잡을 단행하라!’를 슬로건으로 삼고 분연히 일어섰다. 2010년 이후로 이란 출신의 작가이자 사회학자 차흘라 사피크는 이슬람 페미니즘의 개념에 관해 경고해왔다.(1) 특히 2016년에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의 정치적 회유를 주의해야 한다. 정치적 이슬람은 개인의 자유에 이로운 민주적 모델이 절대 될 수 없으며, 특히 여성의 자유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재차 주장했다.(2)

2016년은 특히 혼란스러운 해였다. 3월에는 여성 폭력에 관한 토론이 파리 20구 구청에서 열렸는데, 사회당 출신 시장 프레데리크 칼랑드라는 아프리카 출신 페미니스트 로카야 디알로에 대해 “(이슬람적) 체제보수주의에나 유용할 얼간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출입을 거부했다. 디알로는 “나는 (이슬람) 개종자가 아니며, 히잡 찬성파라기보다는 각자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쪽에 가깝다”며 놀란 심정을 드러냈다. 지난 4월, 파리 고등정치학교 학생들이 주최한 ‘히잡의 날(Hijab day)’은 논란을 재점화했다. 이 행사는 이슬람교도를 막론한 학생 전원을 초대했으며, ‘차별의 희생자인’ 히잡 쓴 여성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온종일 히잡을 쓰고 다닐 것을 촉구했다. 여름에는 ‘이슬람 패션’의 범람과 부르키니 사건이 흥분을 촉발했는데,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세 가지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여성부 장관 로랑스 로시뇰을 중심으로 한 진영, 다른 하나는 문제가 된 의복 브랜드의 보이콧을 촉구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진영, 부르키니를 시대착오적이라 규정하는 ‘반부르키니’ 법령을 비난하는 페멘이나 셰브첸코의 진영으로 말이다. 셰브첸코는 이런 사건들이, “무엇보다 무슬림 여성을 향한 인종차별”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쾰른 사건  

그렇지만 이슬람교 내부의 여성 처우 문제에 관해, 좌파 내에서 가장 뿌리 깊은 불안을 드러내 보인 것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독일 쾰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이 수백 건의 성폭행 중 대부분은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온 남성들이 자행한 것이다. 이에 관해 어느 남성 작가가 보인 반응은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가 카멜 다우드가 <르몽드>지에서 아랍의 무슬림 세계 내의 “여성과 육체, 욕망에 대한 병적인 태도”를 비난했던 것이다. 다우드의 칼럼은 프랑스 학계에서 “이슬람 공포증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으며 반론을 일으켰다.

페미니스트들 또한 현 상황의 해석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페미니스트 투쟁가 클레망틴 오탱은 “1945년 4월부터 9월 사이, 2백만 명의 독일 여성들이 병사들에게 강간당했다. 이슬람만의 잘못일까?”라는 트윗을 남겼다. 이 트윗은 유명한 독일 페미니스트이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친구 알리체 슈바르처를 분노케 했다. “카이로에서 그들은 잘 알려진 방식을 실행했다. 그들의 목표는 공공장소에서 이 ‘화냥년’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질 케펠이 묘사했던 ‘아랫동네의’ 지하드다.”(3)

세대나 출신에 관련한 단절을 넘어, 이제 이 두 진영의 화해는 불가능한 듯 보인다. 한편에는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카롤린 푸레스트, 알리체 슈바르처, 심리학자 후리아 압둘라드, 혹은 ‘창녀도, 순종적 여성도 아닌’의 전 대변인이자 <샤를리 에브도>의 전 기자 지네브 엘-라주이로 대표되는 ‘보편주의적’이자 ‘세속적’인 비타협적 페미니스트들이 자리한다. 특히 엘-라주이는 ‘이슬람 파시즘’에 득이 되도록 행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을 ‘(나치)협력자’로 취급하길 서슴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는 ‘차등주의(Differentialism)’ 혹은 ‘후기식민주의’를 표방하는 ‘네오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이들은 ‘자민족중심주의적인’ 다수파 페미니즘이 -정교분리원칙과 함께- 인종차별주의 및 이슬람공포증이라는 목적의 도구가 된다고 본다.

이 진영 또한 아주 다양한 인사들로 대표되는데, 특히 이 가운데 ‘프랑스 원주민’ 반식민주의 운동연합의 대변인 후리아 부텔자, “서구 페미니즘의 특정한 오만”(4)을 비난하며 코란의 재해석을 촉구하는 전문의이자 작가 아스마 랑라베는 1977년 시몬 드 보부아르와 공동으로 전문지 <누벨 케스티옹 페미니스트(페미니즘의 새로운 문제)>를 창간했다. 여기에는 ‘역사학적 페미니즘’의 대모라 불리는 75세의 크리스틴 델피까지 합류한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에 발표한 한 칼럼(5)에서 델피는 “이슬람 공포증과 공모한” 옛 투쟁 동지들을 비난했다.

 

손을 내밀다

그럼에도, ‘페미니즘과 지정학’ 회장 마르틴 스토르티를 비롯한 일부 인물들은 두 진영 간에 다리를 놓고자 시도했다. 스토르티는 자신의 에세이 <이원론에서 벗어나라>(미셸 드몰 편, 2016년)에서 “여성의 해방은 서구의 어느 데이터도 아니요, 신식민주의의 또 다른 이름도 아니다. (…) 히잡이라는 이슈에 관해서는 정교분리원칙을 관건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자유를 관건으로 삼아야 하며, 자유란 신체, 성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런 간극은 이슬람에 관해 프랑스 좌파가 지닌 분열, 즉 ‘세속적 공화주의자’ 대 ‘공동체주의에 더욱 근접한 이슬람 지지자’라는 분열을 그대로 드러내는 셈이다. 이 후자는 영미권 국가에서 더욱 유효한 모형이다. 게다가 이런 간극은 페미니스트들 간에서 또 다른 영원한 반목의 주제, 즉 ‘매춘’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페미니즘 역사학자 미셸 리오-사르시는 이 같은 위기가 특히 훨씬 더 근본적인 징후를 보여준다고 본다. “사람들은 식민주의의 트라우마를 등한시했다. 식민주의는 근대주의가 일궈낸 초기 성과를 계승한 셈인데, 만인에게 해방의 이념으로 작용했던 이 근대주의는 결국 막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역사학의 두 가지 조류를 양립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이념적인 단절을 만드는 셈이다.”  

 

베네딕트 뤼토 | 언론인

<르몽드 데 를리지옹> 기자로, 바티칸에 상주하면서 종교관련 글을 주로 쓰고 있다. 

 

번역 | 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Chahla Chafiq, ‘Gender jihad: les impasses du féminisme islamique(젠더 지하드: 이슬람 페미니즘의 진퇴양난)’, <Les Temps Modernes>, 2010. 샤피크는 특히 <Islam, politique, sexe et genre. À la de l'expérience iranienne(정치적 이슬람, 성별과 젠더: 이란의 경험에 비추어 보다)>(PUF, 2011)의 저자다.  

(2) ‘Le problème avec le féminisme islamique(이슬람 페미니즘과의 문제)’, Chahla Chafiq, L'Obs, 2016년 3월 8일 자. 

(3) ‘Sous le voile, des féministes(히잡에 관해, 페미니스트들)’, Le Point, 2016년 12월 29일자. 

(4) ‘Les hommes font une lecture sexiste du Coran(남성들은 코란을 성차별주의적으로 해석한다)’, <Le Monde des Religions>, ‘이슬람 세계의 여성들’ 특집호, 2015년 5~6월호.

(5) ‘Feminists are failing muslim women by supporting racist french laws’, Christine Delphy, The Guardian, 2015년 7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