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지 않는 법을 배우다
2017-09-28 클레아 샤크라베르티
20세기 초 메이지(明治)시대. 열다섯 소녀 이치는 어느 날 부모에게 떠밀려 규슈 구마모토현에 있는 유곽에 팔려간다. 이치는 남자 경험이 없었으나 유녀로서의 소질이 보였는지 오이란(花魁)(2) 신분인 시노노메의 밑으로 들어간다.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시노노메는 ‘살아있는 저금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시노노메는 이치에게 성적 기교를 가르치며 오이란으로 키우려 한다. “오이란이 돼야, 이치도 빠른 시일 내에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유녀들은 포주에게 고용되는 순간 빚을 지게 된다.”
1945년생으로 <백년가약(百年佳約)>(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8월의 광시곡(八月の狂詩曲)>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한 작품)을 포함해 유명소설을 여러 권 집필한 무라타 기요코는 이 작품 <유녀>에서 이치의 눈을 통해 유녀들의 일상을 그린다. 작가는 유녀에 대한 자료 조사에 특히 공을 들였고, 유녀들이 잠시나마 즐길 수 있는 휴식시간(손님이 뜸할 때 공중목욕탕에 가거나 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사거나 놀음을 하는 시간), 유녀들의 사생활과 불안한 마음(성병에 걸릴까봐, 혹은 유곽에서 쫓겨날까봐 등등)을 엿볼 수 있다. 결국에는 쇠락한 창녀로 전락하는 것이 유녀들이 감내해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손님들을 받고 병에 걸리거나 가난해지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죽는 운명.
이치는 ‘여학교’라 불리는 곳에도 다닌다. 여기서 유곽 소속 유녀들이 고향 사투리를 버리고 자세 잡는 법, 미소 짓는 법, 남자들을 유혹하는 법을 비롯해 읽고 쓰는 법을 배운다. 영리한 이치는 곧 테츠코 선생의 총애를 받게 된다. 테츠코 선생은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이다. 여학교는 이치와 동료들에게 조금씩 해방과 자유를 열망하게 하는 자극제가 돼 간다.
소설 <유녀>는 유녀들이 유곽을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를 폭로한다. 호기심 있고 운명을 개척해가는 주인공 이치만이 동료들을 부추겨 독립을 꿈꾸라고 한다. “밖에서 이곳을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치가 단시(短詩)에서 자문해본다. 이치의 하이쿠(俳句)(3)는 테츠코와 시노노메의 하이쿠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다. 해방을 노래하는 하이쿠는 매우 정치적이기도 하다. 소설 <유녀>에는 작가가 신교육과 서구화를 주창하며 일본 근대화를 이끈 사상가로 통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가르침에서 영감을 받은 구절이 많이 보인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은 테츠코는 여성과 빈민의 권리에 무심한 스승을 비판하기도 한다.
마침내 테츠코는 생활조건에 분노한 이치를 비롯한 학생들이 조직한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1872년 창기(4) 해방령이 선포됐으나 이는 유명무실했고, 유녀들은 여전히 가축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유녀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렵고, 금액이 부풀려진 빚을 갚으려고 허덕인다. 이치와 동료들은 파업을 강행하고 청원서를 돌린다. 시노노메가 청원서에 서명하는 순간, 이치와 동료들은 마침내 투쟁에서 승리했음을 예감한다. 지위와 출신에 관계없이 이치와 동료들은 하나로 뭉친 끝에, 주저 없이 유곽의 문을 나선다. 비로소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치가 쓴 하이쿠 한 편을 발췌해 소개한다.
윗입술을 / 벌리지 않고 웃을 때 / 아래 입술도
똑같이 벌리지 않고 / 웃는다 / 웃는다 / 웃는다
글·클레아 샤크라베르티 Cléa Chakraverty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원제는 ゆうじょこう. 프랑스에서는 <Fille de joie>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2) 오이란(花魁)은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유곽지대인 요시와라의 유녀(遊女)중에서 최고 지위에 있는 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3) 일본 고유의 단시형으로 5·7·5의 17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4) 창기와 유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