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망령
2017-09-28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매일 150만 부 이상 발행되는 독일의 유력일간지 <빌트>는, 하인리히 뵐이 1974년 발표한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폭로한 저널리즘의 폐해, 즉 ‘밀고’라는 언론의 구습을 되풀이했다. 소설 속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수배 중이던 한 남자를 숨겨준 죄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리고 경찰 권력과 종속적 관계에 있는 언론의 선동으로 카타리나는 파멸되고 만다.
그로부터 43년이 지난 지금,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반대시위와 함께 각종 충돌이 일어난 다음 날인 7월 10일, <빌트>지 1면에는 시위참가자들의 사진이 실렸다. 기사에는 이들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이 실렸고, 그 위에는 이런 타이틀이 붙었다. “수배 중! 이 G20 범죄자를 아십니까? 가까운 경찰서로 연락바랍니다.” 그 뒤에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시위참가자들의 사진과 신고 독려가 이어졌고, 신고자의 익명성은 보호된다는 약속이 빠짐없이 덧붙었다. 이러한 촉구 후에는 격려가 이어졌다. 기동대원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한 어린이의 사진이 지면 하나를 가득 채운 것이다. 그 위에는 ‘경찰과의 연대’라고 적힌 띠를 두른 <빌트>지 로고와 함께 “경찰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커다란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인 7월 11일, <빌트>지는 승리를 선포했다. 전날 신문표지에 돌을 던지는 사진이 실리며 얼굴이 노출된 한 시위참가자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빌트>지가 소속된 미디어 그룹 ‘악셀 스프링거’는 “경찰에게 도움을!”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으며 전례 없는 후원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투입된 경찰들은 쉴 새 없이 시위대와 맞서 싸워야 했고, 때로는 폭력적인 범죄자들과 맞닥뜨리기도 했다.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부상을 입은 경찰의 수는 500명에 달했다. 이에 <빌트>와 경찰조합은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경찰부상자들을 돕고 싶다면, 아래의 본사 후원계좌로 송금(동전 한 푼도 관계없다)하면 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7월 15일, <빌트>지는 그 결과를 자축했다.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G20 정상회담 당시 부상을 입은 모든 경찰에게 포상휴가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루 전인 7월 14일, 한 인터넷 정보 사이트는 “경찰부상자 수가 476명이라는 발표는 조잡한 부풀리기”라고 폭로하고 나섰다.(1) 하지만 이 발표는 이미 전 세계 언론에 의해 사실 확인 없이 인용보도된 후였다. 실제로 476명이라는 숫자는 6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G20 정상회담을 위해 동원된 경찰 중 부상자 및 병자의 수를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G20 반대 시위가 있었던 7월 6일부터 9일까지 부상당한 경찰의 수는 231명에 그쳤다. 그나마도 경찰 측이 인정한 것처럼 탈수, 혈액순환이상, 경찰이 사용한 최루가스 노출로 인한 증상 등이 포함된 숫자였다. 실질적으로 기존에 발표된 476명 중 455명은 현장에서의 간단한 처치 후 당일 또는 다음 날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부상을 입은 시위참가자 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다.
하인리히 뵐은 소설 서두에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저널리즘의 행태가 <빌트>지의 그것과 유사하게 나타날지라도, 이는 의도한 바도 우연한 것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것일 뿐이다”라고 적고 있다. 실로 시대를 초월한 현상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언론개혁 포럼 ‘미디어 비평 행동(ACRIMED)’ 회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Marcus Engert, ‘Während der G20-Proteste wurden weniger Polizisten verletzt, als die Polizei behauptet’, BuzzFeedNews, 17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