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2017-09-28     레오 드 부아지송

작가 모옌은 최근 중국 TV에 출연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던 때보다 더 뭉클했던 순간은, 21세가 되던 1976년 입대통지서를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곳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그 또래의 많은 청년들이 그랬듯 당시 그에게 입대란, 무료한 고향마을을 벗어나 배불리 먹을 기회를 의미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군에서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이기는 했으나, 조용한 성격의 그에게는 성가신 구속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사실 그는 정치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다른 지식인들로부터 억압적인 체제에 굴종하는 나약한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모옌은 중국공산당을 직접 거슬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특유의 재치와 상상력으로 중국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문학작품으로 그려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출산장려 정책, 토지개혁, 식인풍습 등을 과감히 다룬다. 인민해방군도 <전우의 재회>에서 과감히 다룬다. 1992년 중국에서 출간한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전우가 등장한다. 귀향하는 장교 자오 진과 13년 전에 이미 죽었지만 유령이 돼 강둑 위 버드나무 꼭대기에 앉아있는 첸 잉하오. 모옌은 도입부에서부터 장교와 유령병사의 대화를 통해 현실과 환상 간에 긴장을 불어넣는 특유의 문체를 보여준다. 유령병사 첸 잉하오는 장교 자오 진보다 용감하고 무기를 다루는 솜씨도 뛰어났지만, 1979년 중국의 베트남 침공으로 한 달간 치렀던 전쟁에서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이 역사적인 에피소드는 두 전우의 기억으로 묘사되는데, 두 사람은 전쟁 중 자신들의 영웅적인 공적이 아니라 별난 사건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늘 그래왔듯, 모옌은 이들의 이야기를 노골적인 문체로 전한다. 이들 두 청년 전우는 애국주의 영화들을 보며 영웅신화를 꿈꿨으나, 영웅신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와 거리가 먼일들, 부대 내 아마추어 극단에서 완두콩을 던지거나 전투에 나가기도 전에 이질에 걸린 것, 병사들이 기어가는 진흙땅과 뱀장어들이 득실거리는 고향마을의 강 등이 교차한다. 비, 범람하는 강, 물고기, 지렁이들이 두 전우, 그리고 이들과 합류하는 구오 진쿠라는 이름의 얼굴부상병 주변에서 넘실거리며 움직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전설과 인간이 서로 얽히는 환상적인 마콘도와 비교될 만 한 모옌의 고향 마을 가오미는 소설 속에 직접 인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전우의 이야기에 현실성과 환상을 동시에 불어넣기 위해 작가가 그려내는 장소는 그의 고향을 연상시킨다. 첸 잉하오의 유령은 혁명의 순교자들이 묻혀있는 축축한 묘지 속에서 나이든 아버지에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중에 곁으로 와주세요”라고 부탁한다. 다소 구성이 모호한 이 단편소설은 모옌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몽환적인 현실, 냉소와 환상, 그리고 영웅과는 거리가 먼 이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 등 그의 재능을 빛내주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글·레오 드 부아지송 Léo de Boigisso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졸업. 역서로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