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방울에 스며든 세계화
제3의 인클로저 폭풍 속으로

2010-05-10     마티외 카세/오렐리 트루베

 2009년 가을 내내 이례적인 ‘우유 파업’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를 휩쓸었다. 우유 수송은 14일간 중단되었다. 업계 최대 조합으로서 평소 파업 활동에 적대적이던 전국농업조합연맹(FNSEA)의 집계에 따르면 우유 생산자의 7%, 독립유제품생산자연합(APLI)에 따르면 50% 이상 파업에 동참했다. 이번 시위를 개시한 독립유제품생산자연합(2009년 창설)은 각종 시위를 주도하고, 우유를 들판에 뿌리고, 국민에게 유제품을 무료로 배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유제품 생산업의 현실을 알리는 단체다.

이번 항의시위의 원인은 생산자에게 지불하는 우유값 폭락 때문이었다. 2008년 4월 톤당 310유로던 우유값이 1년 뒤 220유로로 떨어졌다.(1) 원가가 톤당 260유로 안팎이어서(2) 노동력에 대한 보수가 미미했으며, 농민 대부분이 최저빈곤선 아래로 내몰리게 되었다.

들판에 내다버린 우유

유제품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영향 아래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공동농업정책의 와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2003년까지만 해도 별 변화가 없던 유제품 시장이 이후 느닷없는 규제완화를 초단시간에 경험하게 됐다. EU는 먼저 버터와 분유의 최저가격 보장 수매량을 대폭 제한했다. 최저가격 보장 수매 방식은 비축량 확보와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던 터였다(이와 관련해 EU는 낙농업자에게 수매량을 제한하는 대신, 직접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유제품 쿼터제를 2015년까지 철폐하기로 했다. 1984년 도입된 쿼터제도에 힘입어 생산량과 수출량이 조정되고, 유럽의 재정지출이 대폭 감소했다.

이에 따라 규제 장치를 잃은 생산자는 유제품 산업과 대형 유통업체에 대해 심각한 경제적 의존관계에 놓였고, 이들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됐다. 유럽회계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7년 중반 사이 유제품의 명목 소비자가격은 17% 오른 반면, 생산자에게 지급되는 명목가격은 6% 떨어졌다.(3)

값 폭락… 최저 빈곤선 아래로


세계 제1의 우유 생산자인 EU는 그동안 지구촌의 ‘비축지’ 역할을 수행해온 장치를 내던졌다. 이제 세계시장의 변화에 맞서 가격과 생산량을 조절하는 수단마저 없어졌다. 2007년에는 아시아 국가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와 몇몇 수출국의 생산량 폭락으로 가격이 폭등했지만, 당시 EU는 ‘비축량을 소진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에 대항해 생산자들은 생산량을 증대시켰다. 이는 쿼터제가 사라지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생산량 증가는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서 가격 폭락을 유발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시장의 신호’에 대응하기 위해 ‘연착륙’을 추진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모든 주체에게는 고통 속의 착륙이었다. EU는 공적 개입이 필수인 민감한 부문에서조차 시장자유화를 추진한다. 미국은 직접보조금, 국경보호, 고정가격제, 쿼터제 등을 통해 여전히 유제품 생산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프랑스는 생산지역을 제한하는 비상업적 성격의 쿼터제를 지방 단위로 실시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점차 폐지될 것이라, 농식품 기업은 매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북서부 지방에만 생산을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각종 환경적 위험이 뒤따를 것이다.

유럽 유제품 부문의 규제 완화는 생산성 우선주의와 대형화를 통한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프랑스는 현재 8만 8천 개로 집계된 낙농업 농장이 2015년에는 6만 개, 2030년에는 2만 개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4) 반면 농장의 평균 규모는 3배 이상 커질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기계를 멈추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미래 낙농업 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트랙터와 대형 설비, 농장 로봇이 활개치지 않을까? 가족 중심 농장의 값비싼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에게 일손을 요청하지 않을까?

가족 중심 농장의 종말

영국은 생산자에게 최저 협상가격을 보장하기 위해 창설된 유제품판매위원회를 1994년 대처 내각이 해체해버렸다. 역학관계는 농민에게 불리해졌다. 유제품 쿼터제가 유지되었지만 상업적 성격을 띠면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가운데 생산자 간에 거래되었다. 이는 심각한 집중화로 이어졌으며, 가족 중심 모델은 종말을 맞았다. ‘농업경영’은 끔찍한 여건에서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는 동유럽 인력을 활용함으로써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5)

동일한 모델이 적용된 미국을 보면, 캘리포니아의 우유 공장에서 멕시코인이 하루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생산비가 훨씬 적게 드는 곳은 아르헨티나이다. 이곳에서는 값싼 유전자변형 콩을 사료로 사용하며 현지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쥐어짜고 있다.(6) 한편 (가족 중심 농가가 우세한) 프랑스와 독일에 비해 영국, 덴마크, 미국, 아르헨티나, 오세아니아의 노동력·기계·시설 비용은 2분의 1, 심지어는 7분의 1 수준이다. 축사에는 환경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

이른바 ‘현대화’는 농업의 두 가지 과제와 상충한다. 2050년까지 90억 명에 이를 전세계 인구의 식량을 보장하는 한편, 자연 자원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농업의 과제다.(7) 이미 대형농장은 목초를 바탕으로 한 사료 시스템을 포기하고 옥수수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방목을 전혀 실시하지 않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자리잡은 생산성주의 모델은 헥타르당 가축 수를 늘리고 대규모 목초지를 축소하는 가운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투입 요소를 소비할 뿐 아니라, 강력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의 배출을 늘려놓았다. 또 유전자변형 콩을 사용한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산 동물 사료의 수입량이 증가한다. 이 사료들은 해당 국가의 산림을 파괴하고 오염을 일으키며 소농장의 황폐화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세계 제일 낙농업의 식민화

이에 대한 해법으로 프랑스 농업부는 생산자와 산업 간의 균형 있는 역학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일종의 계약체결 제도를 제안했다. 그 목표는 높이 살 만하지만, 강력한 공적 규제부터 민간 부문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어떤 시스템이 탄생할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필요한 조치는 생산자가 좀더 높은 우유값을 받을 수 있도록 마진 분배를 개선하는 것이다. 경제적 환경이 안정적이라면 이러한 가격 정책이 생산성주의 모델의 퇴출을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 지방의 사례는 전적으로 일반화할 수 없지만, 길잡이가 될 만하다. 이 지역에는 일반 우유 생산자뿐만 아니라 콩테치즈 제조용 원유 생산자들이 있다. 이들은 200여 개 치즈협동조합 회원으로서 해당 조합과 우유 정제업체, 기타 관련 업체를 아우르는 연합조직을 구성한다. 소비 수준에 맞추고 과잉생산을 피할 수 있는 적정한 시판량이 매년 이 조직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현지 계획방식은 EU의 자유경쟁 규칙에 위배되지만 지금까지는 ‘원산지 명칭 통제’(AOC)의 일환으로 허용되고 있다.(8)

비료 살포와 외부 사료 구매를 제한하고, 유전자변형 콩 사용을 금지하는 등 환경보호를 보장하는 각종 지침이 생산에 적용된다. 이처럼 콩테치즈 생산자는 가공 단계의 상당 부분을 직접 통제하고 있다. 이들은 농식품 업계와 좀더 균형 잡힌 역학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최종 생산품에서 40%에 달하는 마진을 취하며(일반 우유 생산자는 20%), 더 높은 수입을 올리면서도 조직은 더 작고 공해를 덜 유발하며 더 많은 고용을 유발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규제와 협상을 통한 가격 결정은, 농민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되는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합리적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생산량을 통제하려면 유럽 내 지역별로 식품 수요와 생산 잠재력에 맞춰 바람직한 생산 수준을 할당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EU공동농업정책이 초창기에 구현한 내용(가격 안정화와 시장 보호를 통한 농민의 공정한 수입 보장, 유럽의 식량 자급자족 달성)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농민에게 충분한 보상 가격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 꼭 대단한 사회적·환경적 진보를 이룩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규정만 훨씬 엄격하게 적용해도 비료 사용을 늘리는 대신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보조금도 헥타르가 아니라 농장 근로자 수에 따라 지급된다면 자본이 아닌 고용이 촉진되며, 농장의 자율성을 증진시키고 유통단계를 축소할 수 있다. 농업 활동 지역의 재정비만이 농업의 다양성을 유지해주고, 이를 통해 소비 지역까지 운송비를 최소화하고 생산자·소비자·현지 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지역단위 규제·협상이 대안

물론 세계시장 경쟁력을 제1의 목표로 설정한 유럽에서 이와 같은 농업·식품 정책을 실시하기는 쉽지 않다. 각종 자유무역 협정을 재검토하고 연대 및 식량주권에 기반을 둔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런 접근 방식만이 생산 단계를 보호하고 식량 자급을 확보하며, 자연 자원을 보존하는 관행을 도입하는 동시에 농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보장할 수 있다.

글•마티외 카세 Matthieu Cassez
<식량주권: 유럽은 무엇을 하는가>(Sylepse·파리·2009)의 공저자

오렐리 트루베 Aurélie Trouvé
반세계화 국제 단체인 국제금융과세 연합(Attac)의 공동대표.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GEB-목축연구소, ‘세계 유제품 시장, 호황에서 침체까지’, <Le dossieréconomie de l’Elevage>(낙농업 경제) 386호, 파리, 2009년 2월 참조.
(2) 여기에서 원가는 노동력과 자기자본을 제외하고 부담하는 일체의 비용이다. 인건비나 농장 이송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후 제시된 모든 수치는 ‘원산지 명칭 통제’(AOC)가 적용되는 제품을 제외한 일반 우유에 대한 낙농업계의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한 것이다. ‘프랑슈콩테 지방의 낙농업계’, <Fréquence Ré seau>(업계 주파수) 27호, 롱스르소니에, 2009년 6월 참조.
(3) 유럽회계감사원, ‘우유·유제품 시장 운영도구들이 주요 목표를 달성했는가?‘, 특별보고서 14/2009호, 룩셈부르크, 2009.
(4) GEB-목축연구소, ‘2015년 프랑스의 낙농업: 지역 격차의 심화를 향해’, <Le dossier économie de l’Elevage>, 391호, 2009년 6월.
(5) Vincent Chatellier, Christophe Perrot, ‘유럽연합 북부 낙농업체들의 생산성과 노동에 대한 보상: 모델들의 차이’, <Sciences sociales>(사회과학), 프랑스 국립농학연구소(INRA), 파리, 2007년 1월.
(6) 파리목축업연구소가 실시한 낙농업 국제 연구 www.inst-elevage.asso.fr 참조.
(7) Stéphane Parmentier, ‘그리고 갑자기 기근이 재등장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1월호 참조.
(8) Joël Santoni, Jean-Charles Deniau 다큐멘터리 필름 <우리가 죽이는 이 치즈들>, 몽파르나스, 파리, 2009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