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장을 점령한 마케팅의 손길

2017-09-28     김지연 | 예술에세이스트

새로 이사 온 가족. 친절하고 선량해 보이는 그들과 서로 좋은 이웃으로 교류하며 마음을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신상품 판매를 위해 가족처럼 구성된 판매팀이었고, 나는 그 전략 안에서 계속 물건을 구매해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영화 <수상한 가족>의 이야기다. 

새로운 이웃인 존스 가족은, 각 상품군의 판매촉진에 적합한 직원들로 이뤄진 가짜 가족이다. 아버지 존스는 자동차와 골프용품을, 어머니 존스는 주방·인테리어용품과 식품을, 딸 존스는 10대용 패션잡화와 화장품을, 아들 존스는 음료와 게임기, 스포츠용품 등을 각각 맡아 해당 상품의 타깃을 대상으로 멋지고 완벽한 이웃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상품을 보여준다. 이들을 좋아하는 이웃들에게 그 상품들은 따라 사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일종의 ‘스텔스 마케팅(Stealth Marketing)’이다. 은폐기술이 뛰어난 전투기 ‘스텔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기업이 마케팅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근하여,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상품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방법이다. 기존에 자동차를 판매하던 방식으로 제품의 성능과 장점을 이웃에게 설명했지만 판매실적은 부진했던 아버지 존스에게, 본사에서 내려온 상사가 충고한다. “더 이상 물건을 팔아선 안 돼. 여기서 팔아야 하는 건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야.”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마케팅 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조금 섬뜩하지만, 오히려 최근의 소비자들은 이것을 이용해 진부한 광고를 무감각하게 보는 대신, 기업이 제공한 마케팅의 재미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 은밀한 방식은 소비자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 필요한 지점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나도 모르게 그들이 만든 역할극 속에서 한 배역을 수행하며 판매 전략에 휘말린 것을 뒤늦게 알았다면, 과연 여전히 즐거운 기분일까. 

이와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유명인에게 협찬하는 패션브랜드의 전략은 최근 더욱 발전하여, 제품을 직접 노출하는 단순한 마케팅 대신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특유의 철학을 홍보함으로써,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자연스레 구매로 이어지는 전략을 사용한다. 명품 브랜드들이 신흥 브랜드와 차별을 두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이 ‘헤리티지 마케팅(Heritage Marketing)’은, 브랜드 박물관이나 전시회, 히스토리북 등을 이용해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한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지난 7월에 오픈한 디올의 창립 70주년 전시가 전형적인 방식인데, 이런 전시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디자인 철학, 역사를 보여주는 오리지널 디자인들, 앞으로 추구할 방향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최근 해외 명품 브랜드가 주최한 국내 전시로는, 2015년 디올의 <디올정신>(동대문디자인플라자)과 2016년 에르메스의 <파리지앵의 산책>(디뮤지엄), 그리고 지난여름 한꺼번에 찾아온 샤넬의 <마드모아젤 프리베>(디뮤지엄), 까르띠에의 <하이라이트>(서울시립미술관), 루이비통의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을 전시했던 <하이라이트>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브랜드의 역사와 디자인 철학을 주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또한 국내 주요 전시장을 이용한 꽤 큰 규모의 전시임에도 무료공개됐는데, 이는 접근성을 높여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해당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차별적으로 제고하려는 전략이었다. 심지어 에르메스와 샤넬의 브랜드 전시는 아시아 최초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의 전시가 아시아의 중요한 시장인 국내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일종의 불황타개책이었다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전시 그 자체로서 흥행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전시에 관객이 몰리는 바람에 여름방학이면 가득 차던 다른 대형 전시장은 한산했고, 업계 흥행기준인 10만 관객을 넘긴 전시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전시업계의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사실 이미 블록버스터 전시와 일반 현대미술 전시의 관객층은 꽤 구분돼 있다. 계절이나 시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현대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미술애호가가 있는가 하면, 애호가는 아니지만 때때로 친목이나 데이트를 위한 문화생활, 또는 자녀교육을 위해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객들도 있다. 주로 대형전시장이나 국공립미술관을 대관해 여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찾는 이들로, 여가와 문화생활로서 전시를 소비하는 관객층이다. 이들에게 있어 전시관람이란, 영화관에 갔을 때 상영 중인 영화를 골라 보듯, 현재 개최 중인 전시들 중에서 마침 여유 있는 휴일과 날짜가 맞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몰취향적 선택이라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드나들 기회가 적은 이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비슷해 보이는 전시들 중에서 마침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브랜드명이 걸려 있고, 재밌는 볼거리가 많으며 심지어 무료라면 당연히 선택과정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물론 개별관객의 선택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과정으로 일상의 이벤트가 브랜드 전시로 대체됐고, 그것이 나머지 전시들의 흥행 실패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게다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전시 관람방식, 혹은 소비방식은, 전시장을 산책하듯 누비며 인상적인 장면이 될 만한 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를 이루는 개별작품과 콘텐츠의 충실함도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주제나 분위기가 주는 강렬한 인상이 매우 중요하며, 덧붙여 얼마나 예쁜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명품 브랜드의 전시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철학을 새기고 멋진 디자인을 관람하면서 우선 예술전시를 누린다는 형식적 충족이 가능하다. 또한 해당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1)처럼 멋지게 연출된 전시장이자, 한편으로는 규모 있는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고급스럽고 패셔너블한 이미지와 문화적 수준을 동시에 획득하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그 곳에서 ‘있어 보이는’ 사진을 남기고 ‘#샤넬’, ‘#루이비통’과 같이 ‘있어 보이는’ 해시태그까지 걸며 또 다른 욕구를 충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무료로 말이다. 

볼거리 제공과 흥행 여부에 치중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들도 문제는 많다.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블록버스터 전시와 명품 브랜드의 전시들을 한데 묶어 안이하고 상업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명품 브랜드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미적 가치와 고유한 디자인 철학을 갖고 있기에, 작품 퀄리티의 우위를 다투자는 것은 아니다. 덧붙여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전시기획도 그 수요와 필요가 분명 존재하기에 잘못만은 아니다. 다만 기업이 전시 후원으로 이미지를 제고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시 자체를 홍보수단으로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품 판매로 직접 이익을 얻는 회사가 전시라는 방식을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관객의 머릿속에 브랜드의 가치를 깊게 각인시킨 뒤 그것을 곧장 매출로 연결시키는 방식 말이다.

예를 들면 예술의 전당에서 어떤 디자이너의 전시를 열고 디자인 철학과 작품, 혹은 제품들을 소개할 수는 있지만, 그 전시는 제품의 판매실적과는 상관없는 제3의 전문가가 기획한 것으로, 디자인사적 의미와 예술적 탁월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주최사는 많은 자본이 투입된 대형 전시에서 상업적 성공을 노릴 것이고, 자본력을 위해 기업의 후원을 받아 그들의 로고가 전시장에 드러나기도 하고, 기업들도 예술 후원을 통해 각자 노리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전시의 목적은 해당 디자이너 브랜드의 판매실적 상승이 아닌, 전시 자체의 성공이다. 앞서 언급한 명품 브랜드의 전시와 비슷한 디자인 전시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기획 의도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다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종류의 전시들을 자주, 꾸준히 접해온 관객이라면, 전시의 목적과 맥락을 발견해 각각의 차이를 구분하고 선별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 정도로 자주 미술관을 찾지 않는다. 게다가 당장의 전시관람에 중요하지 않은 주최사나 후원사에 대해서는 잘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다시 생각해본다면 참 아이러니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이들과 함께 즐기는 금쪽같은 여가생활의 장소는 자본의 최전선에 있는 명품 브랜드가 고도의 마케팅 전략으로 계산해 만든 공간이며, 브랜드 로고와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도배된 그 곳에서 볼거리들을 제공받으며 휴일을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브랜드 철학에 대한 이해와 좋은 이미지인 것이다. 

사실 그 곳은 예술 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광고판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디자인들을 전시하는 방식은 그것이 마치 진귀한 예술품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결국 아우라도 자본이 생성해낼 수 있는 것인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기괴하고 기묘한 전시장이다. 명품 브랜드의 아름다운 디자인만 감상하고, 슬며시 숨겨 놓은 상업적 신호는 거르고 싶지만 관객은 너무 바빠 그것을 선별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무료로 멋진 볼거리를 제공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벌여 놓은 마케팅의 게임판 안에서 자발적으로 소중한 여가를 제공하며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도 모르는 삶의 곳곳에 교묘하게 기업의 마케팅이 스며들어 있다. 이것이 결국 예술이나 개인의 여가까지 잡아먹는 것은 아닐까. 

사실 자본과 예술은 이미 불가분의 관계다. 특히 미술시장이 그리 활발하지 않은 국내에서는 미술계의 자력으로 해외전시를 유치하거나 대형 전시를 치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협찬·후원은 원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이 됐다. 그리고 기업은 이를 통해 부가적인 효과를 원하므로, 그 과정에서 웃기 힘든 상황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구입하거나 예술상을 제정해 신진작가를 지원하고, 미술관의 전시나 문화예술 단체의 활동에 후원하는 등 적절한 방법으로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들도 다수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까르띠에의 <하이라이트>전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열린 샤넬, 루이비통의 전시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평소 실험적이고 탐구정신이 강한 작품을 우선으로 지원한다고 알려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들을 전시했는데, 국내에서 보기 힘든 세계적 작가들의 흥미로운 작품이 많아 미술전시로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또한 경제와 생태, 이주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시각예술가, 영화감독, 대중음악가, 도시학자, 생태음향가 등이 협업하여 다룬 작품을 제시했다. 물론 큰 그림에서는 이것 역시 기업의 홍보전략이기에,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공공기관의 협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자사 브랜드를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을 참여시킨 다른 브랜드 전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국내 기업의 비슷한 사례라면 주식회사 삼탄의 송은문화재단이 있다. 송은문화재단은 미술상을 제정해 매년 신진작가들을 선발·지원하고 있으며, 갤러리 공간을 마련해 신진작가들의 전시와 도록제작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적인 유명공연이나 블록버스터 전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다른 기업들과는 한 발 더 나아간, 조금 더 길게, 멀리 보는 방식이다. 

예술이나 전시라는 형식을 이용해 마케팅의 장을 열고, 이를 선별하기 어려운 대중을 현혹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기업 스스로가 깨닫기를 바라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예민하게 살펴야 한다. 관객이 그것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마케팅의 손길은 언제든 틈새를 비집고 교묘한 제스처를 취할 것이다.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석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2006~2008년) 싸이월드 페이퍼와 올리브TV홈페이지 등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했다.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Gravity Effect)>의 미술비평공모에 입상했다.

(1) Flagship store: 반응이 좋은 특정 브랜드를 앞세워 전체 브랜드군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으로, 일반 매장보다 더 넓은 공간을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특유의 인테리어로 꾸미고 제품에 대한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플래그십’은 해군 함대의 기함으로서, 기업의 주력상품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