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와 영어의 범람
UAE, 소수 지배민족의 낯선 시름

2010-05-10     아크람 벨카이드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유명 쇼핑센터 중 하나인 마리나몰 안, 12살 남짓한 아이가 뒤꿈치 부분에 바퀴가 달린 운동화를 신고 대리석 바닥에서 미끄러지며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전통 의상인 흰색 디시다샤를 입은 아이의 아버지가 위층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서 있다가 아랍어로 아이를 재촉했다. 아이는 아버지의 말을 못 들은 듯, 바로 옆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백인 두 명을 따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짜증이 난 아버지는 이번에는 영어로, “말을 안 들으면 신발을 압수하겠다”고 소리쳤다. 아이가 즉시 아버지 말에 따라 계단을 오르는 사이, 아버지는 친구들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외국말인 영어 때문에 우리나라가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 보쇼. 우리 애는 내가 아랍어로 말하면 못 알아듣는 척해요”라고 한탄했다.

옆에 앉은 연방정부(1) 공무원 유세프 알아이사는 “영어가 마치 아랍에미리트가 처한 각종 문제의 해결책인 양 홍보한다”고 말했다. “농담이지만, 사원 승려들이 기도 시간을 알릴 때 반드시 영어로, 기왕이면 영국식 억양으로 해야 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009년 11월 연방국가 수립 38주년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문기관인 국가위원회(위원회의 구성원 절반이 선거로 선출된다) 압둘 아지즈 알구라이르 대변인은 단호히 말했다.

 영어로 말해야 말을 듣는 아이

 

“아랍에미리트가 개방적인 사회인 것은 분명하나, 우리 정체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세계화라는 물결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을 것이다. 퀘벡주 사람들은 퀘벡인으로 살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 될 이유는 없다.”

 

같은 날, 정부 내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진 셰이크 나히안 벤 무바락 고등교육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정체성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영어가 현재 첨단기술과 과학의 언어인 것은 부정할 수 없고,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아랍에미리트의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영어로 진행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2010년 2월 아부다비 최고의 싱크탱크인 ‘아랍에미리트 전략연구센터’에서 개최한 대학졸업자 취업 세미나는 논란이 끝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칼리파 알수와이디 교수는 “예전에는 대졸 실업은 대학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다음에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니, 해외 대학을 유치해 영어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졸 실업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가고 있다. 영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업자는 실업자일 뿐이다”라고 했다.

 영어를 둘러싼 정부 안의 논쟁

자칫 걸프만 국가만의 뻔한 사회현상으로 보기 쉽지만, 이 논쟁은 좀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다. 두바이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2) 아부다비의 엄청난 재정 덕분에 아랍에미리트는 여전히 세계 최고 부국 중 하나로 남아 있다. 2010년 국민총생산 증가율은 5%에 달할 것이며, 최근의 금융위기에도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변화가 없었다. 2009년 10월 발표된 공식 집계를 보면 외국인 인구는 모두 500만 명으로, 아랍에미리트 전체 인구의 약 83%에 달한다. 숙련 노동자든 단순 노동자든 간에,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높은 의존성은 정체성과 관련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공직자는 이렇게 털어놨다. “아랍에미리트에는 200개에 이르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거주해, 우리는 우리나라에서조차 소수를 점하고 있다. 자칫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외국인에 둘러싸여 구석에 몰린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정체성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영어로 하는 교육이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국가 건설을 위해 도움을 청했던 사람들(외국인 노동자)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국민으로 남고 싶다.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쓴다는 것은 외국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전통 의상을 의무화할 만큼 전통을 고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체성 보존에 대해 고심하는 현지 전문가들은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인구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향후 경제성장 시나리오가 어떻든, 아랍에미리트는 끊임없이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아랍에미리트 국민은 자국 영토 안에서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오는 2020년이면 아랍에미리트 국민이 전체 인구의 10%밖에 안 될 것으로 전망한다. 고등교육 전문대학(College for Advanced Education)의 가멜 모하메드는“한시라도 빨리 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을 찾지 않으면 언젠가는 걸프만 지역의 아랍 민족이 지역토착 민족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수적 열세 때문에 타 문화의 전통과 가치를 수용해야 했던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처럼 될지 모른다”라며 경종을 울렸다.

이런 우려는 일부 이민그룹이 국민의 권리를 요구함에 따라 점차 확산되고 있다. 3세대에 걸쳐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살고 있는 인도계 이민그룹이 그중 대표적인데, 이들은 “아랍에미리트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국적 취득을 허용하라”고 요구한다. 통신업계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낸시 나티암은 “여기서 태어났고, 인도에는 가본 적도 없다. 인도는 부모님의 고향일 뿐, 내겐 두바이가 고향이고 아랍에미리트가 모국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국외로 추방당할 수 있는 처지다. 이건 공정치 못하다”고 말했다.

 2020년 원주민 10%에 불과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정부 지도층은 외국인, 특히 아시아계의 국적 취득 확대를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단호히 하고 있다. 아부다비의 한 고위 공무원은 “귀화 외국인에 섞여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 청년층의 현지 취업을 장려해,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이며, 이웃한 바레인의 마지드 알 알라위 노동부 장관의 말을 인용했다. “걸프만 지역 국민에게 외국인 노동력은 핵폭탄이나 이스라엘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아시아계뿐 아니라 아랍권 국가 출신 외국인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48년경 아랍에미리트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처럼 일부 아랍권 국가 출신 외국인에게 국적을 허용한 사례가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다. 한 두바이 은행가는 “이집트나 마그레브 지역 출신 외국인에게 국적을 허용하면 아랍에미리트의 아랍이슬람 정체성 수호에 기여하는 부분이 일부 있을 것이다. 인도계 이민자에게 묻히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조차 이에 회의적이었다. 아랍권 국가 출신 외국인이 아랍에미리트 국적을 취득하는 동시에 정치적 요구를 해올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편, “혹시 외국인이 아랍에미리트 내부에 통합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외국인을 배척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랍에미리트는 합당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환영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이 끝난 노동자는 연방을 떠나야 한다. 아랍에미리트는 프랑스나 캐나다와 달라서, 몇 년간 거주했다고 국적을 부여할 수 없다. 인구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귀화 외국인이 지나치게 많으면 자칫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국적 허용 요구에 난색

 다히 칼라판 타밈 두바이 경찰청장은 대중매체를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이 현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몇 안 되는 유력 인사 중 하나다. 타밈 청장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수십만 명에 이르는 영주권자에게 시민권을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아랍에미리트 국민이 모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게 하는 것이 과연 인권존중이라 할 수 있는가?” 매번 이 문제에 대해 질의를 받을 때 그가 하는 답변이다. 그는 “이민자들이 아랍에미리트의 인프라 건설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이익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인도인이 다음 대선에 출마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2009년 봄, 두바이에서 연방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 정체성 포럼에서 타밈 청장의 발언은 크게 화제가 되었으며, 이후 인구 불균형과 관련해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고 있다. 이는 연방정부를 비롯해 토호국의 지배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2011년 12월 독립 40주년을 맞이할 아랍에미리트연방에 어떤 해결책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id
주요 저서로 <알제리에 대한 차분한 시선>(Un regard calm sur L’Algérie, Seuil, Paris, 2005)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아랍에미리트연방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움알카이와인, 아지만, 라스알카이마, 푸자이라 등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며, 수도는 아부다비다.
(2) 이브라힘 와드, ‘두바이의 모래성은 계속 무너진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