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창조도시의 비인간적 실험실
2017-10-31 브누아 브레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파리에서 런던까지, 시드니에서 몬트리올까지, 암스테르담에서 뉴욕까지 전 세계의 모든 대도시는 역동적이고 포용력이 있고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창의적이고 연결성이 높은 곳이고 싶어 한다. 그렇게 구매력이 높고 젊고 고학력인 '재능 있는 인재들'을 사로잡으려는 것이다. 기업과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콧노래를 부르는 시애틀처럼 말이다.
“이곳에 분노가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개의치 않아요, 당신이 우리 이웃인 게 좋아요.”, “인종, 출신, 성적 성향,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는 모든 손님을 환영합니다.”
시애틀에 있는 많은 가정집의 정원에 세운 팻말이나 상점의 유리창에 때때로 아랍어, 스페인어, 한국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2017년 6월, 성 소수자 인권의 달(LGBTQ Pride Month,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퀴어의 권리를 주장하는 최대 축제)을 맞아 무지개 깃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거리 모퉁이마다 달린 이 깃발은 다소 가격대가 높은 7색 스페셜 컬렉션을 출시한 신발브랜드 닥터 마틴의 매장 진열장도 장식했다. 무지개 깃발은 1962년 만국박람회의 유산으로, 바늘 형태의 탑에 비행접시를 올린 듯한 스페이스 니들과 스타벅스 본사 꼭대기에도, 시청 앞 게양대 성조기 밑에도 걸려 있다.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시애틀은 주민의 87%가 지난 11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법률적 저항이 시작된 곳으로, 개방과 관용, 다양성을 도시의 가치이자 표상으로 삼고 있다. 이 세 가지 미덕은 도덕적 의무인 동시에 상업적 전략이자 성장의 지렛대이며, 도시의 ‘비교우위’이기도 하다.
“출신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도시와 같은 곳에서 서로 어울려 지내면 그들의 아이디어가 서로 만나고 뒤얽혀 풍성해집니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여 우리 주민으로 어우러지면, 도시에는 활기가 넘칩니다.” 브라이언 서랫 도시경제발전부장의 말에 이어, 새뮤얼 아세파 도시관리계획 부장도 나섰다. “우리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재능 있는 인재를 끌어모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방적인 도시여야 하지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습니다. 포드가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짓자 사람들이 디트로이트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30년, 40년, 50년을 일했습니다. 지금 젊은 임원들은 우선 살고 싶은 도시를 선택합니다. 창의적이고 포용력 있고 자연과 가깝고 야외 활동과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시를 선호합니다.”
구매력의 70%를 보유한
‘창조계급’을 잡아라
아세파 부장은 아디스아바바 태생으로 매사추세츠주 공과대학교(MIT)에서 도시관리계획을 전공했다. 서랫 부장과 아세파 부장 모두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로부터 이론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대다수 동료에게서 비난받는 이 토론토대학 교수는 15년 전부터 도시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1)이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2002년부터 끈질기게 되풀이된 그의 이론은 실상 간단하다. 한 마디로, 산업, 제조, 채굴로 대표되는 ‘구식경제’는 이제 ‘창조경제’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목표는 더 이상 고속도로와 콘퍼런스 센터를 짓고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혁신, 발명, 그리고 포괄적으로 지적 자산을 활용해 부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능 있는 인재’, 즉 예술가, 엔지니어, 저널리스트, 건축가, 경영자, 자본가, 법학자, 연구원, 정보기술자, 의사 등이 필요하다. 즉, 서랫 부장과 아세파 부장, 이 두 사람처럼 명망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정권을 지닌 자리에 올라, 높은 보수를 받는 이들을 도시로 끌어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연봉은 각각 13만 2천 달러, 16만 7천 달러이다.(2)
플로리다 교수의 과감한 계산에 의하면, 미국 경제활동인구의 30%가 ‘창조계급’이고 구매력의 70%가 그들에게서 나온다. 이 핵심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플로리다 교수는 그들의 이미지에 걸맞은 도시를 재창조하자는 ‘턴키(turn key)’ 해법을 제안한다. 대부분 젊은 고소득자인 이들은, 더 이상 예전 화이트칼라처럼 교외에 정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고 새벽 3시에도 문을 연 식당이 있으며, 공정무역 제품을 살 수 있는 유럽식의 ‘다이내믹한 도심지’를 선호한다. 그들은 특히 ‘활기 넘치는 거리, 독립카페, 예술, 음악, 야외활동’은 물론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즐긴다. 그러므로 그들이 유입되길 원하는 도시는 이런 조건에 맞춰 자전거도로와 콘서트홀, 박물관을 세우고 차별을 철폐하고 높은 수준의 대학교를 지원함으로써 도시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
플로리다 교수는 ‘경제적 성공을 위한 세 가지 T인 포용(Tolerance), 재능(Talent), 기술(Technology)로 자신의 이론을 포장했다. 그리고 잡다한 자료(동성커플, 외국인, 가시적 소수자의 비율, 출원된 특허와 스타트업의 숫자, 대졸자 비율 등)를 섞어 각종 지표(‘게이’, ‘보헤미안’, ‘재능’ 지수 등)와 순위표를 만들고 (각 도시가 개선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유럽과 캐나다까지 대상 지역을 확대했다. 그의 방법은 ‘창조계급’에 해당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론, 공공정책 결정권자, 기업대표들은 플로리다 교수를 예찬했고 그는 세계 방방곡곡으로 초청돼 강연했다. 그가 (대략 2년에 한 권씩) 출간하는 책은 찬미와 강연 초청장을 불러 모아 그의 권고 사항은 국제도시 간 경쟁에서 ‘모범 실천 방안’의 지위를 차지했다. 시드니에서 파리, 몬트리올에서 베를린까지 모든 대도시는 이제 역동적이고 혁신적이고 지적이고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연결된 곳이길 원한다.
창조도시에서 탈산업화에 맞서 살길을 모색하려는 10여 개 미국도시는 플로리다 교수와 그의 컨설팅업체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Creative Class Group)’에 도움을 청했다.(박스기사 참조) 창조 노선으로 이미 접어들었던 다른 도시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받아 기뻐하며 지적노동자를 불러 모으기 위한 노력을 배가했다. 플로리다 교수가 2003년 시장의 초청으로 강연을 했던 시애틀이 바로 그런 경우다. ‘에메랄드 시티’ 시애틀과 인근 지역은 오랫동안 ‘구식경제’로 생계를 이어왔다. 주위 환경을 이용한 산림업, 북미의 가장 대표적인 항구를 활용한 조선업과 항만업, 특히 지역산업의 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잉사를 중심으로 영화를 누린 항공 산업 등이다. 당시 기업은 다양성 대신 넉넉한 보수로 흑인 중산층의 단합을 이끌었다. 1970년, (시애틀이 속한) 킹 카운티 내 아프로 아메리칸 중 49%가 자택을 보유했는데 이는 인종과 무관하게 전체 인구를 통합한 전국 평균(42%)보다 높은 수치였다.(3)
재능 있는 인재가 넘쳐나는 에메랄드 시티
오늘날 이 수치는 28%에 불과하다. 30년이 넘게 시애틀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투쟁한 존 폭스 ‘시애틀지킴이연합(Seattle Displacement Coalition)’ 설립자는 “신기술 붐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하며 “1970년대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보잉사는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애틀 인구도 감소했고 부동산 시장은 무너졌지요. 땅값이 비싸지 않으니, 도심지를 ‘재개발’하려는 민간자본이 유입됐습니다. 1980년대부터 사무실 건물이 곳곳에 들어섰고 전문직 청년층과 딩크족들이 들어왔지요”라고 설명했다. 이야기의 소재는 ‘재능 있는 인재’로 이어졌다.
1986년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시애틀 북동부 레드먼드로 옮겼다. 당시 ‘캠퍼스’의 6개 동에서 일하던 직원 수는 800명이었으나, 이제 4만 4천 명으로 늘었다. 1987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사를 차려 트렌디한 카페를 필두로 세계를 공략하고 나섰다. 그리고 1994년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설립했고, 소박한 온라인 서점에 불과했던 아마존은 곧 전자상거래의 거인으로 거듭났다. 플로리다 교수의 베스트셀러 저서가 출간된 2000년대 초반, 시애틀은 (다양한 지수를 종합한) ‘창의성’ 지수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이제 시애틀은 스스로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대도시의 전범으로 여기고, 관광청에서는 시애틀의 전통적인 애칭인 ‘에메랄드 시티’를 음성 약어 ‘See@L’로 대체하려는 계획안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았다.(4) 시애틀의 대담한 시도에 반한 플로리다 교수는 자기 이론의 모델로 시애틀을 꼬박꼬박 언급한다. 시애틀도 이에 호응하듯 도시 정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근거로 플로리다 교수의 이론을 내세운다.
15년 전부터 미국 도시는 인재유입 전쟁에 뛰어들었고, 시애틀은 두려운 경쟁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애틀은 ‘세 가지 T’를 갖추기 위해 무엇이든지 한다. 애지중지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낡은 공장을 번쩍이는 사무실로 변모시킬 도시계획을 짜고, 자전거도로를 마련하며, 공동생태정원 개발을 지원한다. 또한 ‘스타트업 시애틀’ 프로그램과 매년 시청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위켄드’를 통해 ‘스타트업 정신’을 고취한다. ‘인종·사회적 정의를 위한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도적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이 투쟁에는 기업도 동참한다. 스타벅스는 ‘시애틀 시어터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아마존은 ‘LGBTQ 공동체’를 위한 ‘글라마존(Glamazon)’, 여성을 위한 ‘위민@아마존’, ‘흑인 노동자 네트워크’, ‘장애인을 위한 아마존 피플’ 등의 프로그램으로 사무실 내 다양성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마존 워리어’라는 전역 전투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이런 노력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시애틀이 ‘2012년 창조성 순위’에서 오스틴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한 것이다. 같은 해, 여행 전문지 <트레블+레저>는 ‘힙스터를 위한 최고의 도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시애틀에 부여했다. 다른 경쟁자로는 이웃 서부 도시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가 있었다. 4년 후 재평가될 이 순위는 마케팅연구사 ‘인포그룹’에서 타투이스트, 자전거 판매상, 독립 카페, 수제 브루어리, 빈티지 패션샵, 음반 가게 등의 숫자를 반영한 ‘힙스터 지수’를 통해 평가한다.(5) 한 지역 월간지의 표현을 빌자면 시애틀은 이제 ‘사람들이 혁신을 이루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대체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웃과 함께 지내려고 오는 곳’(6)이 됐다.
고학력, 부유층, 백인남성 중심의 ‘다양성의 도시’
전 세계 대학졸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애틀의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몇 년간 이런 추세가 강화됐다. 2015년 7월에서 2016년 7월까지 2만 1천 명이 새로 이주해 현재 인구는 총 70만 명에 달한다. 한때 ‘제트 시티’로 불리던 시애틀은 해를 거듭할수록 고학력에 부유층인 백인 남성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또 수많은 현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정보기술자, 알고리즘과 마케팅 천재, 광고업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인구조사에 의하면, 시애틀에 거주하는 25~44세 남녀 성비는 118대 100이다. 센트럴 디스트릭트처럼 1970년 73%에 이르렀던 흑인 인구 비율이 20% 미만으로 급감한 지구도 있다.(7)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시애틀에서는 대부분의 인터넷 대기업이 식당, 미용실, 스포츠룸, 의료시설 등을 갖춘 자급자족 체제의 종합단지를 교외에 세운 실리콘밸리와 대조적인 모델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곳 기업들의 상당수가 한때 노동자 지구나 산업 지구였던 도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 웹사이트에는 플로리다 교수의 영향을 받은 말투로 “교외에 정착하는 편이 더 저렴하겠지만 시애틀 도심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습니다. (…) 우리 직원들은 도시 중심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직원 중 15%는 사무실 근처 주택단지에 살고, 20%는 걸어서 출근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아마존은 자신의 ‘도심 캠퍼스’에 자부심이 강해서 일주일에 2회 무료견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참여하려면 석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거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은 현재 에메랄드 시티인 시애틀에 건물 33채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건물도 신축 중인데 대표적으로 150m에 달하는 고층건물 4채와 유리로 된 거대 돔형 건물 3채가 있다. 회사는 이 돔형 건물이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이며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설계된 미래형 사무실이라고 소개했다. 차도로 둘러싸인 친환경 보석상자가 될 이 ‘바이오돔’에는 식물과 나무 300종, 식물벽, 연못, 정보기술자들이 새집처럼 높은 곳에 있는 콘퍼런스 룸에 가기 위해 지나게 될 현수교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현재 아마존 시애틀 본사에는 4만 명이 일하고 있다. 고용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신입사원을 위해 ‘회사 오는 길’ 안내판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이 운영하는 부동산개발업체 벌컨의 도움을 받아 아마존은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지역에 촘촘한 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베조스는 2012년 벌컨을 통해 건물 11채를 10억 달러 이상 지불하고 구입했다. 한때 창고, 작업실, 자동차 판매점으로 북적이던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지역은 이제 개방형 쇼핑센터와 흡사한 모습이다. 완벽하게 가지치기한 관목으로 꾸미고 종잇조각이나 담배꽁초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보도가 신축된 것이다. 거리는 저녁과 근무시간에는 한적하지만 점심시간이면 파란색 명찰을 목에 건 아마존 직원들로 북적인다. 화창한 날이면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다양한 출신의 청년들이 이국적인 메뉴, 유기농 음식, 글루텐프리 식단을 즐기러 푸드트럭과 식당으로 향한다.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인접 지역에서는 크레인과 포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한 구획씩 밀고 들어오다가 마지막 남은 서민주택단지마저 철거하고 새로운 복합단지를 세우고 있다. 이 복합단지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지닌 고객층의 구미에 맞는 서비스로 채워질 예정이다. 가장 최근 지어진 건물에는 옥상정원, 반려동물을 목욕시킬 수 있는 공용 공간, 셰프를 초대해 노하우를 배우는 시연용 주방 등이 갖춰져 있다. 다른 건물에서는 유기농 식용닭을 키우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해먹이 놓인 일광욕실과 포커룸을 마련했다.
시애틀의 마트 계산원은
시애틀에 살지 않는다
다른 건물에서는 수제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장비를 대여하고 반려동물을 위한 스파와 아마추어 목수들을 위한 창의력 실험실이 될 공방을 운영한다. 가격 또한 ‘창의적’이다. 이 럭셔리 건물에서 가장 작은 원룸의 월 임대료는 1천 5백 달러(한화로 약 169만 원-역주). 시애틀 시청이 용도지역 규정을 개정하고 저층 주택 중심의 주거지역이었던 곳에 고층건물 신축허가를 내주면서 예전에는 도심지에서 주로 발생했던 부동산 투기가 도시 전역에 확대됐다.
“우리는 ‘밸러드화(化)’라고 불러요.” 린다 멜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현상에 자신의 이름을 내준 밸러드 지역에 사는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주택을 두서너 채 구입하고 15~20개의 원룸이 있는 건물을 세워 비싸게 임대합니다. 그러면 녹지는 사라지고, 주차공간은 부족해져 거리마다 교통체증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결국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게 되지요.” 린다 멜빈은 무미건조한 기하학적 형태의 신축건물을 가리키며 “이런 건물들을 보면 레고 블록이 연상된다”고 덧붙였다.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는 어느 건물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작은 정사각형 유리창이 가지런히 뚫린 그 건물의 모습은 교도소를 연상시켰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은 이걸 ‘마이크로 아파트’라고 불러요. 학생 등 1인 가구 임대용이지요.” 주방과 욕실까지 포함된 약 10㎡의 공간이 월 800~900달러(한화로 약 90~100만원-역주)에 임대된다. 시애틀에서 거주하기에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공원 한복판이나 다리 밑이나 고속도로 램프 근처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해결하는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킹 카운티의 노숙자는 1만 7백 명. 유례없이 높은 숫자인데 2016년에 비해 8% 증가한 것이다.(8) 아마존 붐 이후, 시애틀의 부동산 가격은 매년 10%씩 상승했다. 이에 대해 폭스는 설명했다. “집주인들이 원하는 대로 임대료를 올려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9) 시애틀은 점점 서민층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과 상점 계산원도 그곳에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시애틀에 살 수 없는 이 사람들은 켄트, 렌턴, 투퀼라, 오릴라 등 점점 더 먼 교외에 자리 잡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만난 단순노동자들(소수민족 출신의 여성이 다수) 중, 시애틀에 사는 사람은 없었다. 슈퍼마켓 직원, 우버 운전자, 개인주택 가정부, 은행 야간 경비원, 패스트푸드점 판매원, 박물관 매표소 직원 등 이들 모두 일터로 가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2014년 시의회는 2021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 “시장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경제순환을 위해 노동자용 주택도 공급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크샤마 사완트 시의원은 마르크스주의적인 표현을 쓰며 설명했다. 그는 2013년 민주당 출신 7명과 함께 시의원에 당선됐고 1877년 이래로 시청에 입성한 최초의 ‘사회당원’이다. 2016년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경제학 박사 출신의 사완트 시의원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료를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을 심화시킨 시애틀의 진보주의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도시 또한 ‘자기모순’과 씨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진보주의를 지지하며 민족, 보건 또는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상 서민층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재능 있는 젊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된 민족적, 성적 다양성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간접적으로 사회적 다양성의 후퇴로 표출되고 있다. 종이봉투에 부과되는 환경 부담금과 520번 다리를 이용하는 교통량을 줄이기 위한 통행료도 저소득층에 유독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전거도로가 마련되고 ‘친환경’ 건물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곧 임대료가 오른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풍자적인 사례는, 다름 아닌 ‘비만과의 전쟁’이다. 다른 ‘스마트’ 도시(버클리,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의 선례를 따라 시애틀도 2017년 6월 탄산음료세를 도입했다. 2리터 당 약 1달러가 부과되는 이 세금은, 서민층에서 많이 소비하는 탄산음료를 주로 겨냥하고 있다. 시의회는 탄산음료처럼 열량이 높은 우유가 들어간 음료, 다시 말해 유행을 선도하는 계층에서 즐겨 마시는 ‘라테’나 ‘프라푸치노’ 같은 음료는 세금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진보주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인 시애틀이라면서 환호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독하게 불평등한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민층을 위한 살 곳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부동산개발업자는 시청을 제집 드나들 듯합니다. 워싱턴주에서는 소득세가 없으니 미국에서 가장 후진적인 조세제도를 운용하는 겁니다. 부자들의 소득 중 각종 세금과 공과금으로 들어가는 비율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적습니다.”
토비 세일러는 이렇게 개탄했다. 은퇴한 변호사로 ‘밸러드화’ 중인 프리몬트 지역에 사는 그는 민주당 내 좌익에서 활동한다. 그는 특히 시애틀이 상당수의 이웃 도시들과는 달리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개발영향부담금(Impact fee)을 부과하지 않아서 유감스럽다고 했다. 수많은 주민단체가 그의 주장에 동조한다. “부동산개발업자들이 계속 건물만 지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로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지기 위한 비용도 지급해야 합니다. 학교를 짓고 대중교통을 마련하고 도로를 만들고 하수도를 관리하고 방화시설을 마련해야지요.” ‘시애틀의 공평한 성장(Seattle Fair Growth)’ 단체 회원이자 최근 부동산개발업자들의 투자가 시작된 월링퍼드 주민인 수산나 린은 설명했다.
선거유세 활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벌컨 리얼 이스테이트, R.C. 헤드린, 시티 인베스터스 LLC 등 로비기업(10)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시의원들은 ‘대협상’이라 불리는 ‘주택 구매능력과 거주 적합성 어젠다(HALA, Housing Affordability and Livability Agenda)’계획에 사활을 걸었다. 시청이 도시개발계획을 수정하고 저층주택 지구에 고층건물 신축을 허가해 부동산개발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그들은 개발계획 지구에 (지역에 따라) 2~9% 비율의 저가주택을 의무적으로 건설하거나 부담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이로써 향후 10년간 5만 주택이 신축됩니다.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겁니다.” 시애틀의 비즈니스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만난 서랫 부장은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린은 이에 반박했다. “우리는 성장을 향한 무한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대협상’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부동산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릴 겁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와 협의하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강요한 결정입니다.” 이 계획을 수립한 위원회 구성원 28명 중에서 18명이 부동산개발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지역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는 1명에 불과했다.
워싱턴주보다 서쪽에 있는 그랜트 카운티와 리츠빌 카운티에서 무지개 깃발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요가 클럽과 LP 레코드 판매점도 마찬가지다. 산업지구이자 시골인 이곳에는 미국을 횡단하는 트럭만 지나는데, 이곳 유권자들은 워싱턴주의 가장 가난한 카운티 24개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다양성을 표방하며 창의적인 사람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제조업을 포기하고 고학력자의 사회로 전환하고, 지역경제는 목재와 토사를 집중적으로 활용해 이뤄진다. 따라서 친환경 개발을 예찬하는, 시애틀에서 유행하는 진보주의는 이곳에서 어불성설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And How It’s Transforming Work, Leisure, Community and Everyday life>, Perseus Book Group, New York, 2002 (개정판, Basic Books, 2012). 초판의 국문 번역본으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2002년)과 <신창조계급>(2011년)이 있다.
(2) 1달러는 약 0.85유로, 한화로 약 1,125원. 즉 13만 2천 달러는 한화로 약 1억 4,850만원, 16만 7천 달러는 약 1억 8,790만 원이다.
(3) Gene Balk, ‘The rise and dramatic fall of King County’s black homeowners’, <The Seattle Times>, 2017년 6월 12일.
(4) Serin D. Houston, ‘Ethnography of the city: Creativity, sustainability, and social justice in Seattle, Washington’, <Geography-Dissertations>, Paper 69, Syracuse University, 2011.
(5) Katrina Brown Hunt, ‘America’s best cities for hipsters 2012’, <Travel+Leisure>, New York, 2013년 11월 및 ‘Study: Seattle tops Portland as most “hipster” city in US’, 2016년 7월 27일, www.infogroup.com
(6) Rachel Hart, ‘Sanctuary pages’, <Seattle Magazine>, 2017년 4월.
(7) Gene Balk, ‘Historically black Central District could be less than 10 % black in a decade’, <Seattle Times>, 2015년 5월 26일.
(8) Vernal Coleman, ‘Homeless in state increased last year’, <Seattle Times>, 2017년 6월 7일.
(9) 임대료 인상률이 10%가 넘는 경우, 60일 이전에 통지만 하면 된다.
(10) Cf. Casey Jaywork, ‘How Amazon and Vulcan bought their way into city hall this year’, <Seattle Weekly>, 2016년 3월 8일.
박스기사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자신의 저서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성공을 금전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재주가 있었다. 언론 덕분에 전문가 대열에 합류한 그는 15년 전부터 방송에 빈번히 출연하고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파이낸셜 타임스>, <USA 투데이>, <더 애틀랜틱>등의 일간지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 사용자 140명’으로 꼽은 <타임 매거진> 등의 정기간행물에 기고를 늘렸다. 이런 명성을 바탕으로 플로리다 교수는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설립했다. 전 세계의 도시(멤피스, 샌디에이고, 탬파, 로체스터, 디모인, 엘패소, 밀워키, 오스틴, 볼티모어,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더블린, 팜플로나, 브리즈번, 케이프타운, 예루살렘)를 비롯해 박물관, 재단, 대학, UN, 미국 노동부, 아부다비 글로벌 시티 포럼 등이 그의 고객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플로리다 교수는 트렌드 리더 고객층을 사로잡으려는 민간 기업과도 함께 일한다. 그는 ‘창조계급’의 입맛에 딱 맞는 광고를 제작하려는 주류업체 바카디, 캐나다를 역동적인 나라로 홍보하려는 에어캐나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자사 공연을 유치할 만한 북미 도시를 파악하려는 엔터테인먼트 그룹 ‘태양의 서커스’ 등에게 컨설팅을 해줬다. BMW 자동차, 컨버스 운동화, 앱솔루트 보드카 술, 르메르디앙 호텔, 구글 검색엔진, 컴퓨터 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등에도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그룹의 손길이 닿았다.
플로리다 교수는 보고서 발행과 더불어 유료 강연에도 적극적이다. 강연 요청이 워낙 많아서 일정조율을 위해 그는 비서(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투자 대비 최대수익’을 올리기 위한 최적의 입지를 찾는 부동산개발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도 있고, 기업대표나 인사팀장 등을 상대로 ‘재능 있는 인재를 영입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비법을 공개하는 ‘인재영입 전쟁’ 관련 강연도 있다. ‘창조계급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관한 강의에서는 이 소비 집단에 속한 이들의 특징을 자세히 짚어준다. 강연 안내서에는 “플로리다는 그들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읽고 소비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결정을 좌우하는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한 수년에 걸친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또 ‘다양성 추구 노력을 부가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강연도 있다. 이런 강연의 강연료는 얼마일까? 회당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까지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