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가 꿈꾼 원대한 유럽통합
2017-10-31 레지스 드브레 | 작가
원대한 꿈(유럽통합을 의미-역주)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다. 그것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그의 사회철학은 유럽통합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역주)와 빅토르 위고(유럽합중국 창설을 주장했다-역주), 요컨대 기독교적 영감과 인도주의적 전망, 관대한 정신과 믿음직한 신뢰 등이 멋지게 버무려진 한 편의 훌륭한 꿈이었다. 과거 국민국가들이 지역통합을 추구하듯, 이제는 세계가 글로벌 거버넌스를 통해 국가 간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필연성과, 또 “뭉쳐야 산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신념이 이뤄낸 꿈이었다. 여기에 유럽인 폴 발레리(1)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폴 발레리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유럽은 현재의 유럽연합(EU)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이 아니라, 알베르 카뮈와 ‘정오의 사상’(절제와 절도를 표방한 카뮈의 사상. 카뮈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 지중해의 정신을 회복하고자 했다-역주)이 말하는 바로 그 의미의 유럽이었다. 비록 프랑크푸르트보다 로마에 더 가깝기는 해도, 지중해와 뜨거운 태양을 머금은, 고색창연한 가톨릭의 색채에, 훗날 인본주의적인 색채가 덧입혀진 바로 그 의미의 유럽 말이다. 그 유럽은 알제에서 출발해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베이루트로 향하고 아테네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이스탄불을 향해 전진하다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반도와 이베리아반도를 타고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하자면, 그 유럽은 언어와 기하학, 상상력에 대해, 흡사 현대인들이 다우존스지수나 법인세율을 대하는 것과 같이, 중대한 역할을 부여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라는 ‘가방’ 속에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계략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역사는 아메리카 팽창 원칙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메리카에 맞대응하는, 더 나아가 아메리카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유럽합중국에 맡겨버리는 얄궂은 장난을 벌이고 말았다. 그것은 말하자면 헤게모니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계획표를 타인이 세우게 만들다니!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랑의 기적이기도 했다. 세계대전 종전 후 젊은 아메리카는 당시 라이벌이던 소련과는 달리 한 몸에 사랑받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자는 반드시 사랑하는 연인을 모방하기 마련이니…. 그러니 유럽이 신대륙의 교리와 관습을 구대륙으로 끌어와 미래의 유럽연방을 건설하려 한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열렬히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토록 열성적으로 자신의 DNA를 이루던 모든 것을 해체하려 한 유럽. 가히 이 정도면 여느 비극작가의 귀를 쫑긋하게 할 이야기가 아닐까. 혹자는 유럽연합(EU)이 정치적 주체가 돼줄 것을 희망한다지만, 정작 EU는 반정치적인 기구에 불과하다. 또한 언젠가는 강한 권력을 얻기를 바라는 우리 소망이 무색하게, EU는 정작 모든 강한 권력을 획득할 기회를 번번이 차버리곤 한다.
결코 퇴장한 것이 아니다, 등장한 적도 없다
여기서 잠시 이 비극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극 중 두 주인공인, 사회민주주의와 기독민주주주의 세력들은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금 유럽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 “개별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내세우자”는 기막힌 구상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일국이 벌인 죄를 연방국 차원에서 속죄하겠다는 뜻이었다. 좋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결과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라고 우기는 자들은 어느새 사회복지제도를 해체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자산이나 마찬가지인 국가를 파괴하고, 공공서비스를 와해하고, 수익의 법칙을 최고법으로 제정하고 말았다. 그 사이 유심론을 표방하는 현장감독들은 영혼이나 정신이 모두 결여된 천박할 정도로 물질적인 세계만을 쌓아올렸다. 그 세계에서는 로비가 곧 왕이고, 난민이 곧 적이며, 여왕이 곧 휴대용계산기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은 결코 역사에서 퇴장한 게 아니다. 아예 등장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전장에서도 묵시록에 등장하는 성모의 머리에 씐 바로 그 둥그런 관 모양의 노란색 별들이 점점이 박힌 깃발을 높이 치켜든 군대가 진군하는 모습은 결코 지켜본 적이 없다. 또한 어떤 브뤼셀의 군사가 어떤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한다거나, 평화회담을 소집한다거나, 전쟁을 개시하고 끝내는 일도 지켜본 적이 없다. 그것은 유럽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 간 협정이나 주권국가 간에 이익을 주고받는 고전적인 협상을 통해 유럽 최고의 쾌거로 손꼽히는 에어버스나 아리안스페이스를 만들어내는 게 더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할 것이다.
사실상 무늬뿐인 저 작위적 기구에 비한다면 이렇게 탄생한 유럽기업이 여러모로 훨씬 더 대의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작위적 기구가 기여한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금융자본주의의 세계화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삼은 것이 전부이니 말이다. 그 모델은 콜베르주의(프랑스의 국가주도주의)나 독일의 라인모델(조합자본주의)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물론 1987년 에라스뮈스라 불리는 저 훌륭한 대학교류(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공로는 잊지 말아야 할, 찬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비록 제도의 현실은 보잘 것 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가령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국가는 무려 33개국에 달하지만, 정작 이 프로그램에 할당된 예산은 전체 유럽 예산의 1.3%에 불과하다. 또한 연간 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 수도 3천 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은 상경대학이나 공과대학에 집중돼 있으며, 수혜를 받는 프랑스 학생도 3%에 불과하고, 그중 1%가 유학생이다. 사실상 이런 측면에서는 중세시대가 현시대보다 훨씬 훌륭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 노력만큼은 가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유럽 통합주의를 향한 숭배는 최고의 세속종교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세속종교가 신도들에게 내줄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신분증뿐이다. 애당초 실현 가능성도 없는 어떤 공허한 공통의 서사로 신도들을 안도시키겠다며, 은행은 단일화폐란 것을 신도들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정작 그러면서 그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그저 국경을 더 멀리 확장하려는 꿍꿍이속뿐이었다. ‘집중성을 확장성으로 대체하라.’ ‘더 잘 하는 대신, 더 멀리 나아가도록 애쓰라.’ ‘젊은이여, 동쪽으로 가라(Go east young man).’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광대한 공간에 최소한의 다양성이 자리하고 있는 대륙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우리처럼 최소한의 공간에 매우 광대한 다양성이 자리하고 있는 대륙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소속감을 없애자고 덤비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로 인해 겪게 될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소수집단의 강력한 폐쇄성이다. 그것은 치료약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치명적인 독약에 가깝다. 정치적 종교들(비록 미약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유럽 통합주의도 그중 하나다)은 몸속에 수액이 부족하면, 특히 줄기를 떠받치는 지주, 즉 뭔가 수직적인 버팀목이 없으면, 금세 시들시들해지고 만다. 사실 유럽이라는 신화는 너무 빨리 시들어버렸다. 공통의 언어도, 기억도, 신화도 없는 곳에 헌법 조문이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이라 과신한 탓이다. 이런 알맹이가 없는 메마른 애국주의, 이른바 헌법에만 기초한 애국주의는 교역의 참된 의미를 무시한 채 교역 정신에만 자리를 만들어줬다. 말하자면 교역 정신만 중요시하고, 정신의 교역(교류)은 소홀히 했던 것이다.
영어가 깊이 침투한 유럽의 풍경
오늘날 우리의 유럽은, 과거 교회의 하얀 천막(라울 글라베르의 표현으로, 11세기 이후 기독교도들이 전부 낡은 목조건물의 교회를 모두 튼튼하고 거대한 하얀 석조건물로 개축하던 종교 열기를 의미-역주)을 계승하기라도 한 듯, 슈퍼마켓의 푸른 천막으로 온통 뒤덮여 버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영혼의 보완물인 양, 그저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루한 하품을 참고 발걸음 하는 곳일 뿐인, 벙커 형태의 박물관들만이 즐비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유럽은 대체 어떤 점에서 유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아일랜드 출신의 콜룸바누스가 유럽 각지에 수도원을 퍼뜨리던 대수도원의 시대에 유럽은 훨씬 더 유럽적이었다. 사부아인과 제노바인과 로마인과 베니스인과 이탈리아인이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의 지휘 아래 오스만투르크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러 달려갔던 레판토 해전 때에 유럽은 훨씬 더 유럽적이었다. 볼테르가 상수시 궁을 방문해 프리드리히 2세와 함께 카드놀이를 즐기거나, 디드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예카테리나 2세의 어깨를 허물없이 툭툭 치곤하던 바로 그 평화로운 계몽시대에 유럽은 훨씬 더 유럽적이었다. 클라라 체트킨(독일의 여성해방운동가-역주)이 프랑스 노동자들의 마음을, 장 조레스가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저 <꼭대기칸 승객들>(루이 아라공이 1942년 출간한 소설의 제목-역주)의 시대에 유럽은 훨씬 더 유럽적이었다. 사실상 1950년의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러시아어와 독일어 교육이 지금보다 훨씬(5배 이상) 활발했다. 프랑스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안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프랑스가 살아있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하루가 멀다고 미국 국정 변화를 열심히 관찰하고, 선거유세 중 기침 발작을 일으킨 힐러리 여사의 소식으로 뉴스를 시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루마니아나 체코의 풍경변화를 구경할 기회는 단 10초도 주어지지 않는다. 방송위성과 우리의 지적 게으름 때문에 비록 뉴욕은 우리 집 앞집처럼 무척이나 가까워졌지만, 바르샤바는 유라시아의 스텝 지대, 모스크바는 캄차카 반도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대화 상대자들과 글로비시(2)로 대화하는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과거 신에게는 스페인어로, 여인에게는 이탈리아어로, 남자에게는 프랑스어로, 자신의 말에게는 독일어로 이야기 했던 카를 5세에 비하면, 유럽인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유럽 산하 30여 개 기구 중 무려 21개 기구가 영어로만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이탈리아의 노동법도 ‘잡스 액트(Jobs Act)’라는 영문명으로 불린다. 게다가 EU의 공무원들이 ‘브렉시트’ 이후로는 회원국 중 단 한 국가, 아일랜드만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로 대화하는 모습이라니! 웃을 수도 없는 촌극이다.
그러니 누군가처럼 이 시끌벅적한 카르타고가 드넓은 스위스 같은 곳이 돼버렸다며 개탄할 게 아니라, 오히려 스위스를 모델로 삼을 일이다. 적어도 스위스에서는 서너 가지 언어를 주요언어로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실패로 끝나버린 이 오디세이 모험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해방 이후 중유럽과 동유럽이 지금처럼 일종의 작은 동아메리카 같은 곳이 돼버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 서점과 카페가 있던 자리를 온통 섹스숍이나 맥도날드가 차지하리라고는, 그곳에 미 국방성이 군사 전문가들을 주재시키리라고는, 그곳에 CIA가 비밀감옥을 설치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라틴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유익한 긴장 관계가 유럽연합국이 27개국으로 확대됨과 동시에 오로지 독일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로만 좁혀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상 속죄와 구원이라는 핑계로, 독일은 오늘날 유럽국 중 가장 미국적인 사회(경제중시, 도시개발, 연방조직, 사람이 아닌 법에 의한 정부 등)로 변신했다. 참새가 아무리 고양이와 친하게 지내도, 결국에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고 만다는 우화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적 독재에 맞선 유익한 대응이, 30년 후에는 더 견디기 힘든 경제적 독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한 거부로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게 될 것임을 누가 알았겠는가?
미 국방성에서 일하기 전 해군 전쟁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토머스 바넷 군사안보전략가는 최근 미국민들을 향해 이라크 전쟁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독려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만 열심히 전 세계에 미국의 DNA를, 즉 “현대 세계화의 소스코드”를 이식하라고 요구했다. 그 말은 곧 미국의 경제모델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라는 주문이었다. 사실상 오늘날 미국식 경제모델은 ‘도미노 효과’에 의해 자동으로 각국의 중산층에 자가복제되는 실정이다. 토머스 바넷은 “이제 관건은 미국이 세계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미국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니 우리의 군사안보전략가께서는 구대륙 유럽에 대해서라면 안심하시기를! 이미 목표는 충분히 완수됐으니 말이다.
글·레지스 드브레 Régis Debray
작가. 대표적인 저서로는 <Civilisations. Comment nous sommes devenus américains(문명. 우리는 어떻게 미국인이 됐는가)>(Gallimard·2017)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Paul Valéry: (1871~1945) 20세기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유럽문명의 미래를 위해 유럽 지식인의 화합이 필요하며 유럽인이라는 통합된 정체성을 통해 정치적 차원의 유럽연합이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했다.(-역주)
(2) Globish: 글로벌(global)과 영어(English)의 합성어. 비영어권에서 사용하는 간편하고 쉬운 영어를 말한다. 프랑스인으로 IBM 부사장을 지낸 장폴 네리에르가 제안한 언어로 사용 어휘는 약 1,500단어다.(-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