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노동법은 가능하다!

2017-10-31     알랭 쉬피오 | 콜레주드프랑스 교수

현재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들이 (극우파에 대한 반감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적극 권장하는 개혁에 찬성하기 때문에 자신을 선출했다고 주장하며, 노동시장 규제를 더욱 완화하려 한다. 시위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가장 친정부적인 노조들조차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노동법 개정은 균형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인간의 실제 노동리듬을 고려하면서 새롭게 조정된 작업환경과 법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노동법을 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다면, 전면적인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인류역사상 기술의 변화는 언제나 제도의 개정을 가져왔다. 무산자계급화와 식민지화, 전쟁과 대량살상에 이은 산업화의 문이 열리면서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국제법 개정과 사회국가(사회정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역주)의 건설을 이끈 산업혁명이 이에 해당한다. 전후 유럽 국가들이 영위한 국내 안정과 번영의 시기는, 새로이 등장한 사회국가와 이를 떠받치는 세 지주, 즉 통합적이고도 효율적인 공익사업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직업을 통해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보호를 약속한 노동법 덕분에 도래했다. 
 
 2차 산업혁명에서 태동한 이 노동법은 현재 안정성을 상실했고, 그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고 있다. 사회·경제·환경적 차원의 국제적 경쟁을 지속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들뿐만 아니라 노동환경을 노동력 시대에서 ‘두뇌 작업’(1), 즉 ‘온라인’ 작업 시대로 전환한 정보혁명도 이 법에 회의를 품는다. 이제는 온라인 작업자가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신호에 실시간 반응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것을 기대하는 시대다. 이런 정책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들이 현실에서 서로 결합해 있다. 그러나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가역성을 띤 정치적인 선택인 반면, 정보혁명은 다양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 가능한 불가역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로봇화나 노동의 종말, 우버화(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직거래 시스템-역주)에 대한 오늘날의 담론을 낳은 이 기술변화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헌장에서 규정한 ‘실로 인간적인 작업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테일러리즘(미국의 기계공학자 테일러가 주장한 경영관리법으로, 노동자의 움직임, 동선, 작업범위 등의 표준화를 통해 생산효율성을 높이는 체계-역주) 하의 노동으로 일어난 인간성 상실을 가속하기도 한다. 국제노동기구 헌장에 의하면, 직업은 노동자에게 ‘기술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공공복지에 최대한 이바지함으로써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2) 이런 조망은 ‘노동의 상품화’로의 회귀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 모델의 기준을 높이자는 의미일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고용이 거래의 의미로 굳어졌다. 즉 안전을 담보로 순응하는 것이다.(3) 노동자는 임금에 대한 단체협상과 계약기간, 직업상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노동현장에서 모든 자율성을 포기한다. 모든 산업국가에서 다양한 법률적 형태 하에 시행된 이 모델은, 사회정의의 범위를 노동과 임금의 교환이라는 양적 측면으로 단순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노동과 노조의 자유를 신체적 안전으로 축소했다. 노동은 테일러리즘이라 불리는 ‘과학적 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에 자율성이 개입할 자리는 없었고, 자율성은 경영진과 자유직업인의 전유물로 남게 됐다. 
 
인간의 두뇌까지 파고든 테일러리즘
 
 정보혁명은 모든 노동자에게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유 직업인이나 간부, 정신노동자 등 노동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을 인간성 상실이 가속화된 환경에 몰아넣는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사실, 정보혁명은 신기술 사용을 일반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경제 권력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기도 한다. 경제 권력의 무게중심은 생산수단의 물질적인 속성보다는 정보 시스템의 정신적인 속성에 더 쏠린다. 또한 실행해야 할 명령보다는 도달해야 할 목표에 따라 더 많이 이동한다.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가 육체적 업무를 대신했던 과거 산업혁명에서와는 달리, 이제 인간의 두뇌활동을 능가하는 기계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지력, 즉 기억력과 계산능력을 대신해 준다.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 신속하며 순종적인 최신기계들은 정보학자 제라드 베리가 종종 언급하듯 그만큼 멍청하기도 하다.(4) 따라서, 이 기계들로 인간은 노동의 ‘창작활동’ 부분, 즉 상상력이나 민감함, 창의력을 요구하므로 프로그램화할 수 없는 부분에 집중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만약 컴퓨터를 인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대신 인간의 작업을 컴퓨터의 작업 모델에 맞춰 조정하려 한다면 정보혁명은 또 다른 위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컴퓨터에 맞춘 작업조정이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의 논리에 따른 경영(5)이 이뤄진다. 그리하여 테일러리즘이 신체에만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이제 이 영향력이 두뇌에까지 확대된다. 인간의 프로그램화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는 인간을 실제 경험에서 단절시킨다. 이는 정신건강(6)의 위험수위가 급속히 높아지고 기만이 팽배하는 원인이 된다. 이와 같은 기만은, 충분한 양의 가죽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고스플랜(1921년 설치된 구소련의 최고계획경제기관인 국가계획위원회-역주)이 요구하는 품질의 장화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 치수의 장화 밖에 만들 수 없었던 소련의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드러난 기만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도달할 수 없는 목표 달성에 쫒기는 노동자는 결국 우울감에 빠지든지 현실과 동떨어진 수행지표를 이행하면서 기만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두뇌학적 상상에서 유래한 수의 논리에 의한 경영은 전체화를 이루겠다는 신자유주의적 약속, 즉 시장 지상주의의 원리에 따라 ‘거대한 개방사회’를 자동제어 하겠다는 약속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세계인권선언이 명명한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해치면서까지 그와 같은 경영이 일반화된다. 그러므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대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정보화 도구를 장악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게끔 하는 법적 수단을 진부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서 찾기를 기대할 수 없다. 40년 전부터 모든 국가에 다량으로 처방된 이 신자유주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즉 천연자원을 과도하게 개발하고 금융이 경제를 포식하며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세계, 전쟁과 빈곤에서 탈출한 이민자가 대량증가하고 종종 종교적 격분과 정체성 혼동이 표출되며, 민주주의가 쇠락하고 사상은 빈약하고 힘만 센 인물이 집권하는 세계 말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이런 참담한 결과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처방한 ‘구조적 개혁’을 우리 사회에 기계적으로 실행하면서 실수를 반복하는 대신, 그 결과들로부터 무엇보다 법적인 부분에 대한 교훈을 얻기 원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법도 상품으로 만든다
 
 신자유주의가 과거의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특징은 세계 법률시장에서 노동법을 경쟁하는 법률상품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래서 법 쇼핑(Law shopping: 포럼쇼핑이라고도 불림.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는 데 있어, 다수의 국가 또는 주(州)의 법원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법원을 취사선택하는 것-역주)이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대신했고, 그 결과 경제가 법의 보호를 받는 대신 법이 경제적 효용의 방패 아래 놓이게 된다. 동일 현상이 세법과 노동법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법률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벽과 지붕, 문과 창문, 고유기능을 가진 공간들을 갖춘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골조를 가진 집이 실생활에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법은 시민의 삶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집 벽이 흔들리고 카펫은 발에 들러붙으며, 바닥은 내려앉고 문과 창문이 매일 자리가 바뀌듯 법을 경제적 효용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꾸는 것은 법의 안정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런 건물에 갇힌 자는 그 건물을 부수려 할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상, 오늘날 노동법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위대한’ 단순주의자들(Simplificateurs: 문제의 핵심을 깊이 따지지 않고 단순화시키는 사람들-역주)은 해가 갈수록 부단히 노동법을 무겁게, 까다롭게 만드는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막 수정한 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음 수정안을 작성한다. 통화 억제, 무역장벽 통제, 환율, 공공지출과 같이 고용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거시경제의 모든 강력한 수단을 박탈당한 정부는 수중에 남은 것, 즉 고용에 장애가 되는 노동법에 열심히 매달린다. 어떤 연구도 이와 같은 입장이 바람직하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1986년에 해고에 대한 사전허가를 폐지한 이래(네덜란드에서는 이 제도가 여전히 유효하며 실업률은 5.1%), 고용시장에 유연성이 생기는 만큼 고용창출이 이뤄질 것이라는 장밋빛 약속이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유럽에서는 남유럽 국가들(7)의 실업률이 높은데, 이들은 고용 유연성이 높았던 국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된 사회법(예를 들어, 주주들이 자본을 파괴하고 투자를 약화시키면서도 자신들의 지분에는 손실을 입히지 않고 부를 확대할 수 있게 하는 주식매입 허가)과 회계법(예를 들어,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안정성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8), 금융법(이를테면, 너무 거대해서 파산할 수 없기에 오늘날 부채국가에서 불가침성을 누리는 민간 은행의 존재)에 대한 재검토를 경계한다. 이처럼 많은 개정법이 투자와 고용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들을 드러냈다. 조지 오웰 식의 신어적 표현을 빌자면(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가 오세아니아에서 사용하던 기존의 영어를 ‘신어’라는 새로운 공식언어로 교체함으로써 오세아니아 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함-역주), 부당 해고에 대해 보상의 상한을 정하는 것은 ‘용기 있는 개혁’이 될 것이고, 그 부당 해고를 통해 경영자가 부여받을 수 있는 스톡옵션을 통한 차익에 상한선을 두는 것은 ‘민중 선동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개혁적이었던 오루법(Auroux)이 1982년 제정됐으나, 노동법은 의미 있는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9) 이 대목에서 점진적인 변이(Transfornism)와 급격한 개혁(Reformism)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부여한 의미대로라면, 점진적인 변이는 다수 대 소수의 대립을 극복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권력진입 유지를 위해 외부의 강압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향이 없는 정치를 가리킨다. 반면, 급격한 개혁은 보다 정의로운 세계의 평화적 도래를 희망하는 계획에 고무된 정치적 행동을 지칭한다. 오늘날 확고하게 노동법을 개정하려는 의지는 어느 정도 경제적 민주주의를 조성하려는 열망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제적 민주주의가 없다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법 개정이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새로운 사회 보장, 즉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올리되 임금과 소비능력은 높인 포드주의 모델에서 나온 수동적인 사회보장을 보완하고 자주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사회보장 도입을 통해 노동자 개개인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데 있을 것이다.(10) 그러나 1981년 이후 노동환경과 기업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노동법 개혁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맹목적 종속관계를 부르는 목표중심 경영
 
 이와 같은 개정의 우선 조건은, 노동법이 그 이름에 걸맞게 모든 형태의 노동과 고용 관계를 아울러 노동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청년에게 벤처기업 모델과 자유직업, 소규모 협동조합을 통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율성의 축소를 초래하는 주종관계 속에 갇힌 노동자들을 직장인 또는 자유 직업인으로 구분하는 거북함을 느끼는 현실이다. 
 
 컴퓨팅 플랫폼이 실행하는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자 간 중개기능이 자유직업의 새로운 토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우버사 기사들의 아주 성공적인 조직과 집단행동으로 반박된 바 있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의 여러 법원에서 우버 운전기사들의 계약을 노동자 계약으로 판결했다.(11) 에마뉘엘 도케가 이끄는 법률가 집단이 막 출간한 <노동법에 대한 제언>이 권하듯, 이와 같은 변화에 발맞춰 실제 경제적 종속 정도를 노동계약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12) 이 기준을 채택하면 노동자에 대한 보호수준을 노동자의 종속 정도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동시에, 노동법을 단순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와 실적에 따른 경영은 토지 사용을 허용한 지주에게 소작인이 충성할 수밖에 없는 ‘맹목적 종속관계’와 같은 진부한 법적양상을 불러온다.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 시스템을 소유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타인의 노동을 통제할 수 있게 하므로 이와 같은 주종관계가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주종관계는 네트워크상에서 경제에 대한 법률적 토대를 구성하고, 노동환경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즉, 주주나 주식 매매주문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기업주들에서부터 항시 대기상태로 반응하도록 유연성을 요구받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주종관계 속에 있게 된다. 우버화에 대한 논쟁은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이런 국면에 내재하는 과도한 착취의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법적 근간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개정을 통해 노동법의 무게 중심을 기업의 협상에 둔다는 주장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온당치 않은 것인지 알게 된다. 이와 같은 선택은 뉴딜 정책을 배경으로 국가노동관계법 채택을 주도한 1935년의 미국 상황에 적절했을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초국가적인 네트워크상의 노동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는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와 같은 노동 현실을 고려한다면 완전히 또 다른 개혁 프로그램을 만드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예시밖에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노동의 개념과 범위부터 재설정해야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노동자가 노동의 의미와 내용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절차에 관한 것이다. 오루법이 인정한 노동자의 집단 의견표명의 자유가 그 길을 열었는데, 이 길은 노동의 정의와 노동환경을 단체협상 및 개별적 감시의 대상으로 삼아 다시 정비해야 한다. 작업조정으로 인해 자살이나 심리사회적 장애가 발생하게 되는데도 오늘날 이 문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이 문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하며, 더욱이 예방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또한 단체협상은 부분적으로나 기업 차원에서만이 아닌 다양하고 타당한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 차원들 중 특별히 정의하고 구체화할만한 가치가 있는 두 가지는, 생산공급 라인 및 생산 공급망과 지역차원이다. 이런 류의 단체협상은 우위기업으로부터 자사 노동자의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는 하청기업 고유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아니면 특정지역과 관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협상에서는 한 기업, 한 분야의 고용주와 노동자 간 토론이 더 이상 적절하지 않으며 협상 테이블에 또 다른 주체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개정에 관한 세 번째 주제는 기업 네트워크 내 책임분배에 관한 것이다. 기업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하청기업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경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책임문제 때문에 이 네트워크에 소속된 구성원 각자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한다.(13) 보호를 가장한 간섭이 자유주의에 존재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에도 사회·환경적 책임(RSE)(14)이 존재하는데, 이를 감안한 법 개정이 그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법 개정을 통해, 지배기업은 그들이 고안해 관리하는 조직과 관련해 발생한 손실에 연대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ILO 헌장 전문에 언급된 모든 결과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전문에 의하면 “어떤 국가든지 참으로 인도적인 노동조건을 채택하지 않을 시, 이는 다른 국가들이 자국에 기울이는 노동조건 개선 노력에 장애가 된다.” 또한 국제 노동 분업과 지구의 생태환경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들에게 규범을 따르지 않는 환경에서 생산한 제품의 시장 폐쇄를 허용할 권한을 가진 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기구가 상정하는 것처럼 이 사회·환경적 규범은 국제무역 규범과 동등한 법적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제품에 대한 불매 동맹과 같이 새로운 형태로 집단행동을 동원하는 것은 노조 및 결사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또 하나의 자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U는 유럽사법재판소처럼 회원국 간 사회·재정적 경쟁에 불을 붙이려는 노력을 멈추고, 여전히 EU 조약들에 명시돼 있는 ‘소송에서의 평등’이라는 목표로 돌아가 이 같은 개혁에 앞장선다면 정치적 정당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심찬’ 노동법 개정을 위해서는, 경제지수에서는 간과됐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비상업적 노동’을 고려해야 한다. 자녀를 교육시키거나, 연로한 부모를 보살피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인공조명의 발명으로 밤낮 없는 24시간 노동이 가능해진 이래, 사생활 보호의 권리를 존중하고 인체리듬에 부합하는 시공간적 노동기준을 구축한 것이 바로 노동법이다. 이 기준은 오늘날 노동력의 상품화를 목적으로 결탁한 신자유주의와 정보과학으로 위협받고 있다.(15) 인간의 삶을 상품화함으로써 발생한 주말노동과 야간노동 문제에 집중하느라, 교육적 차원에서 지불하게 될 엄청난 대가는 단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글·알랭 쉬피오 Alain Supiot
콜레주드프랑스 교수,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의 미래 글로벌 위원회> 위원. 저서로 <La Gouvernance par les nombres(수의 논리에 의한 경영)>(Fayard, Paris, 2015)이 있다.
 
번역·이상순 leesangsoun@hot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Pierre Musso가 지도한 <L’Entreprise contre l’État(국가 vs 기업)> 중, Michel Volle의 <Anatomie de l’entreprise. Pathologies et diagnostic(기업 해부: 병리와 진단)>, Manucius, Paris, 2017.
(2) 필라델피아 선언(1944).
(3) Danièle Linhart, ‘소속되지 못한 노동자를 상상하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7월호, 한국어판 2017년 8월호. 
(4) Gérard Berry, <Pourquoi et comment le monde devient numérique(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는 디지털화 됐나)>, Annuaire du Collège de France(콜레주드프랑스 연감), Paris, 2007~2008. 
(5) Alain Supiot, <Le rêve de l’harmonie par le calcul(수의 논리로 균형을 이룬다는 허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2월호, 한국어판 2015년 3월호
(6) 1989년 6월 12일 EU 지침서에 명시된 ‘인간에 맞춘 업무원칙’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자살이나 과로사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노동사무국의 보고서, <Stress au travail. Un défi collectif(공동과제: 직장 스트레스, )>(제네바, 2016년(온라인 배포), Loïc Lerouge, <La Reconnaissance d’un droit à la protection de la santé mentale au travail(직장 내 정신건강 보전을 위한 권리 인식)>, Librairie générale de droit et de jurisprudence (LGDJ), Paris, 2005. 참조.  
(7)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의 공식 실업률은 각각 11.1%와 17.8%, 21.8%에 달한다. 
(8) 과거의 회계 안정성 원칙을 대체하는 이 법은 기업의 자산가치를 기업의 가상 시장가격에 연동시킴으로써 순전히 가상의 부가 출현하도록 한다. Jacques Richard, <Une comptabilité sur mesure pour les actionnaires(주주 맞춤형 회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11월호 참조.  
(9) 노동부 장관 장 오루(Jean Auroux)의 이름을 딴 이 법은 특히 위생·안전‧노동조건 위원회(CHSCT) 발족, 임금 및 노동기간에 대한 의무적 연례 협상, 기업위원회에 총임금의 0.2% 할당 등을 이뤄냈다. 
(10) 이런 새로운 안전을 고안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Au-delà de l’emploi. Transformations du travail et devenir du droit du travail en Europe(고용을 넘어: 유럽의 노동 변화와 노동법의 미래)>, Flammarion (2판), Paris, 2016. 참조. 
(11) 이 법적 분쟁에 따른 후속 조치는 http://uberlawsuit.com 사이트에 업데이트 돼 있다.
(12) Emmanuel Dockès(지도 교수), <Proposition de code du travail(노동법에 대한 제언)>, Dalloz, Paris, 2017. 
(13) Alain  Supiot et Mireille Delmas-Marty(지도 교수), <Prendre la responsabilité au sérieux(책임 감수하기)>,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PUF), Paris, 2015. 참조.
(14) EU가 채택한 정의에 의하면, RSE는 ‘기업들이 이해당사자와의 관계와 상업 활동에 자발적인 사회·환경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15) Laurent Lesnard, <La Famille désarticulée. Les nouvelles contraintes de l’emploi du temps(해체된 가족: 일과, 또 하나의 속박)>, PUF, 200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