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상류층, 그들만의 세계

2017-10-31     리차드 V. 리브스 | 브루킹스 연구소 경제연구원

2015년 1월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짧지만 혹독한 정치적 시련의 순간을 맞아야 했다. 의회에 막 회부한 예산안이 표결에 부쳐지기도 전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것은 대통령이 스스로 성공의 싹을 애초에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자녀의 대학 학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상품에 가입할 때 가계에 부여한 세금혜택을 폐지한다는 초기의 발상은, 그 신중성으로 빛을 발했다. 이는 특히 부유한 가계에 제공한 혜택을 제거함으로써(1) 보다 일관성 있고, 무엇보다 더욱 공정한 비과세체계의 구축수단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이는 여러 면으로 좋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미국인의 정치생활에서 중상류층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했다. 그 계획안이 공개되자마자 현재 상원의원인, 메릴랜드 주의 당시 하원의원 크리스 밴홀런과,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인 민주당 원내 대표 낸시 펠로시를 포함해 대통령에 반기를 든 민주당의 엘리트들이 결집했다. 밴홀런 의원이 전화로 대통령에게 경고를 보내던 그 시간에, 낸시 펠로시 의원은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상공을 비행하던 에어포스 원에 오바마 대통령과 탑승 중이었다. 대통령 전용 보잉기가 리야드에 착륙하기도 전에, 펠로시 의원은 대통령이 개혁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이 예화는 정치에서는 합리적 선택이 항상 적절한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그 선택을 평가하고 분석하며 논평할 권한을 부여받은 의원들이, 그 선택을 통해 바로잡으려는 제도의 특혜를 누리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말이다. 펠로시 의원과 밴홀런 의원은 모두 부유하고 교양 있는 자유주의적 유권자층을 대표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절반 정도가 연간 10만 달러(8만 3,000유로)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밴홀런 의원은 그 당시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구 의원이었고, 따라서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폴 월드먼이 <워싱턴 포스트>에 운영하는 블로그(2015년 1월 28일)에서 지적했듯이, 무산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법안은 ‘불만을 표출할 위험이 다분히 있는 유권자층, 즉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자금과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기에 충분한 표를 보유한 중상류층을 겨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법안으로 인해 치솟은 분노는,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국민의 1/4과 나머지 국민 간에 더욱 깊어지고 있는 골, 미국 사회에서 가장 메우기 어려운 골을 엑스레이로 투시하듯 보여줬다.

가장 부유한 이들을 향한, 부유한 이들의 비난

 사회적 불평등은 민감한 정치 사안이 됐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토론은, 미국인 ‘하위’ 99%가 동일한 집단인 것으로 치부하면서 가장 부유한 ‘1%’에 지나칠 정도로 초점이 맞춰진다.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자리 잡은 소수집단을 가장 격렬하게 비방하는 사람들이 그 집단에 가장 가까운 사회계층에 속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2011년 5월 1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움직임에 부응해 행진했던 시위대의 1/3 이상이 10만 달러 이상의 연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었다.(2)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좌측으로 결집하고 티파티(Tea Party)를 따라 우측으로 동원된 정치세력의 상당 부분도 중상류층에 속한다. 슈퍼리치들보다 부를 조금 적게 누리는 엘리트들은 슈퍼리치의 호사에 과도한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에 제기되는 문제를 교묘히 피해갈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인 다수는 중상류층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연 소득 11만 2천 달러 이상을 올리는 상위 20%의 가계가 나머지 국민들과의 격차를 벌린다. 그들과 서민층의 차이는 은행잔액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교육과 가족구조, 건강, 평균수명, 심지어 사회·공동체적 영향에서도 드러난다. 경제적 격차는 계층 간 불평등의 골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 서민층의 지지를 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는 부동산 거물로서의 자산을 고려하면 놀라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승리의 비결은 재산보다는, 계층을 겨냥한 그의 연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자 문화에 아첨했고 그로 인해 호감을 샀다. 그의 지지자들은 억만장자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동경한다. 그들의 적은 억만장자들보다 덜 부유한 엘리트들, 즉 기자와 대학교수, 전문 관료, 경영인, 관리들인데,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지위 덕택에 권력의 주변부에서 특혜와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속한 사회계층에 표출하는 불만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이는 근거가 있는 불만이다. 우리는 자유무역과 기술의 발전, 이민에 찬성한다.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적자본’을 보유한 우리는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아주 평온하게 발전할 수 있다. 우리에게 편안한 주거지역은 우리 재산을 보호하고, 우리보다 불운한 사람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비숙련 노동력 착취에 초점을 둔 이민정책과 직업체계 덕분에 우리는 노동시장에 맹위를 떨치는 가혹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에 놀라워할 이유가 없다.

빈곤의 덫보다 확고한 ‘부의 덫’

 정치인과 대학교수는 미국에서 사회계층 간 이동이 어렵다는 사실에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실상, 빈곤 가정의 자녀가 훗날 부모보다 나은 환경에 진입할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희박하다. 그러나 가장 희박한 것은, 최고 부유층에 속한 이들이 다른 계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이다. “어쩌면, 빈곤이 대물림되는 ‘빈곤의 덫’보다 더 우려해야 할 것은, 반대편 사회계층에서 변함없이 부가 대물림되는 부의 덫”이라고 경제학자 게리 솔론이 기술한다.(3) 계층이 나뉜 것은 물론, 그 계층이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의 ‘선책(善策)’을 유지할 수단을 확보하는 데 대한 불안감 없이, 우리의 지위를 통해 확인하고 선점할 수 있는 일자리를 독점하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연줄을 이용해서든 상속을 통해서든 가족에게 대학입학의 기회나 기업의 인턴직, 직위를 마련해줄 때마다 우리가 보유한 수단을 얻지 못한 이들의 발아래 놓인 카펫마저 빼앗는 셈이 된다. 

 계층에 관한 한, 우리는 불평등한 권력을 거머쥐고 있다. 우선은 우리가 80%에 육박하는 선거참여율을 가진 열성적인 유권자라는 점에서 그렇고, 또한 우리 영향력이 투표율을 충분히 넘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강하다. 왜냐하면, 버트런드 러셀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여론의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세계, 즉 언론과 대학, 과학계, 광고계, 여론조사 기관, 예술계 등의 요직 또는 그에 상응하는 직은 중상류층이 차지하고 있다. 중상류층이 그들의 지위와 속성을 강화하는 일에 권력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만큼, 그 아성은 더욱 강해진다.

 백인이 지배하는 최근 미국 역사에 관한 저서에서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는, ‘중상류층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근거리에서 보고, 변화할 방법을 고민하도록 자극할 시민 대궐기’를 호소한다.(4) 저자는 중상류층이 덕행을 권장하고 성숙한 소비방식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 외에 그들에게 정확히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그는 “중상류층에게 사익을 희생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할 마음은 없다”며 조심스럽게 주의를 환기한다. 하지만 안 될 게 뭐 있겠는가? 다만 어떻게 될지 보기 위해 우리의 이익을 조금, 아주 조금 포기하는 일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 머레이가 우리에게 그만큼 호의를 보였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어쨌든 그의 책을 읽고 충고를 따라야 할 사람은 우리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국가를 변화시킬 정치력을 구축하길 원한다면 중상류층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유권자층을 공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좀 더 영향력이 적은 집단이나 할 말이 없는 집단을 목표로 삼는 게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은 빈자와 이민자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하고, 좌파는 ‘1%’의 슈퍼리치가 미국을 망친다고 갈수록 거듭 언급한다. 물론 중상류층은 양측이 초래한 성가신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구조를 깨는 걸 두려워한다면, 대다수가 점점 더 큰 난관에 직면할 것이다. 이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실질적 변혁에 적합한 정치적 분위기를 만드는 최우선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글·리차드 V. 리브스 Richard V. Reeves
브루킹스 연구소 경제연구원. 저서로 <Dream Hoarders(꿈 과점자들)>(Brookings Institution Press, Washington, DC, 2017)이 있으며 이 책자에서 본 기사가 발췌됐다.

번역·이상순 leesangsoun@hot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이 경비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예금자에게 주어지는 세금혜택의 90% 이상이 미국의 상위 25%에 해당하는 가계에 돌아간다. <An analysis of section 529 college savings and prepaid tuition plans>, 미국 재무부, 2009년 9월 9일. 참조. 
(2) Adam Levine, <American Insecurity: Why Our Economic Fears Lead to Political In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7. 
(3) Gary Solon, <What we didn’t know about multigenerational mobility>, Ethos, n° 14, Boston, 2016년 2월. 
(4) Charles Murray, <Coming Apart: The State of White America>, 1960~2010, Crown Forum, New York,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