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선거인명부에선 이름이 잘 사라진다!

2017-10-31     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 언론인

내년 7월, 멕시코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멕시코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있다. 투표방식 면에서 부정행위가 만연하다. 여러 증거로 뒷받침 된 이러한 부정행위로 번번이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좌파 후보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이다.


“왜 촬영하십니까?” 
“제 투표용지가 이 투표함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려던 행동이 불법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모두 다시 세야 하는데도 당신은 봉투를 개봉했군요!”
3천 시간 이상 촬영, 편집한 다큐멘터리 <부정행위>(2006년 작, 2007년 멕시코 출시)에서, 아마추어 작가 루이스 만도키는 2006년 멕시코 대선을 얼룩지게 한 다양한 부정행위의 베일을 벗겼다.(1) 기득권층이 저지른 부정행위는 모두 민주혁명당(PRD, 중도좌파)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즉 암로(‘AMLO’, 긴 이름의 첫 글자를 딴 약칭)가 당선으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 자행됐다.

투표 전 몇 달 동안 미디어에서는 비겁한 공격이 난무했다. 암로는 제도혁명당(PRI, 중도우파)과 국민행동당(PAN, 우파) 소속 경쟁 후보들의 공격뿐만 아니라 경영자들의 공격 또한 감내해야 했다. 멕시코의 가장 큰 경영인단체 기업조정이사회(CCE)(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한다-역주)는 선거법을 위반해, 거대 미디어 그룹인 텔리비사(Televisa)와 TV 아스테카(Azteca)를 통해 암로에 비우호적인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 멕시코시티 시장인 암로를 비난했다. “암로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는 더 많은 빚을 지게 될 것이며, 경제위기 및 평가절하, 실업을 겪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집과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위기에 투표하지 맙시다.” 또 다른 경영인단체 멕시코 경영자연맹(Coparmex)은 극좌파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민주혁명당 후보인 암로의 이미지를 결합한 영상에서 볼리바르 혁명(차베스가 이끈 사회주의 운동이자 정치 이념으로 포퓰리즘 독재라는 오명을 받았다-역주)을 내세워 유권자들을 겁박했다. 

선거인 명부에서 내 이름이 사라졌다!

2006년 7월 2일, 4천 1백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투표를 했다. 그런데, 수천 명의 유권자들이 선거인 명부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 하는 일이 일어났다. 신경이 곤두선 한 시민은 카메라 앞에서 목청껏 소리 질렀다. 

“이건 속임수다! 나는 등록돼 있지만 명부에 이름이 없어서 투표할 수 없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IFE)는 우리에게서 막대한 세금을 강탈하면서도 우리를 조롱했다. 위원회는 우리에게 펠리프 칼데론(국민행동당 후보)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모든 게 계획적이었다!”

몇 주 전, 기자들은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정부와 유착 관계를 맺고, 칼데론 대통령 처남의 소유였던 한 기업에 유권자 데이터베이스 관리를 위탁한 사실(2002~2005년 거의 1억 5천만 달러의 계약이 체결됐다!)을 밝혀냈다. 선거를 감독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의 루이스 카를로스 우갈데 위원장은 밤 11시에 승자의 이름을 결정짓기에는 선두에 오른 두 후보자 간 득표 차가 너무 적다고 발표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과거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그 악몽이란, 1988년 대선 때의 기억이다. 당시 ‘컴퓨터시스템 고장’을 이유로 1주일간 대선 결과 발표가 지연됐고, 이후 좌파 동맹은 승리를 빼앗겼다. 1주일은 승부를 조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2006년, 긴장감이 지속되는 며칠 동안, 제도혁명당과 국민행동당 지도부는 부정행위를 획책했다. 전국에 설치된 13만 개의 투표소에서 취합된 선거자료들을 보면, 절반 이상의 장소에서 부정행위가 저질러진 정황이 포착됐다.(2) 민주혁명당 대표는 TV에 나와서 이 중 하나를 예로 들어 비난했다. “누에보레온주 11구역의 397번 투표소에서 작성된 조서에는 유효표가 961장이라고 돼 있다. (…) 모든 것이 당연한 듯 보이나, 선거법은 투표소당 투표용지가 760장 이상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칼데론 혼자서 786표를 얻었다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그런데도 이런 엉터리 결과가 최종집계에 반영됐다.” 

현장에서 민주혁명당 대표들은, 개표와 재집계 당시 규탄받았던 부정행위 의혹을 (머릿수로) 몰아낸 자신들의 적수 앞에서 소외됐다. 봉인 위반 및 유효표의 무효화, 300% 이상의 참여율을 보인 조서, 가득 찬 투표함 등 수많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장면을 촬영했다. 예를 들면, 베라크루스 주 12구역의 한 개표참관인은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우리는 이 투표용지가 선거일에 사용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투표용지에는 접힌 자국이 전혀 없다. 접지 않고는 투표함 구멍으로 넣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출처를 알 수 없거나 증발해버린’ 투표용지가 150만 장에 달한다고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연구가인 루이스 모찬이 설명했다. 나중에 암로는 “우리 전략은 투표 참여 독려에 있었다. 집계결과에 대한 보안을 강화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것이 우리의 실수였다”라고 인정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나흘이 흐른 뒤,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암로의 패배를 공식화했다. 칼데론은 겨우 0.58%p 앞선 35.89% 득표율로 승자가 됐다.  

몇 달 동안, 수도 도심지 일부가 민주혁명당 지지자들로 마비됐다. 한때 200만 명의 사람들이 결집하기도 했다. 이들은 ‘투표소마다 한 표 한 표’를 외치며 재집계를 요구했다. 소송이 선거재판소에 제기됐으나, 선거재판소는 모든 표에 대한 재검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구역에서 선거 물품이 있던 창고 안의 투표함 봉인이 파손되고 투표함 일부가 개봉된 것이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사실로 반드시 (투표용지에 대한) 부적절한 조작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 선거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결론지을 만한 그 어떤 요인도 발견되지 않았다.”(2006년 9월 5일 판결). 9월 초, 판사들은 칼데론의 당선 유효성을 인정했다. 

3천 개 가짜 트위터 계정의 선거운동

6년 후 대통령 임기가 끝날 무렵, 국민행동당은 여당으로 집권했던 지난 12년 동안 국민들에게 너무나 많은 실망감을 안겨서 승리할 기회가 극히 적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보주의 운동’의 수장인, 암로는 특히 제도혁명당 후보인 엔리케 페냐 니에토(약칭 ‘EPN’)를 상대로 다시 한번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았다. 흠잡을 데 없는 미소, 정성스레 기름을 바른 머리카락, 바로 얼마 전 텔레노벨라(드라마) 출신의 매력적인 여배우와 재혼한, 가장 젊은 후보(46세)인 니에토는 오랜 역사를 지닌 3색당(당의 상징색이 국기색과 같은 적색, 백색, 녹색이다-역주)인 제도혁명당에 붙은 부패 꼬리표를 떼어내길 바랐다. 그는 거대 미디어의 호의를 기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암로는 자신을 반민주주의자처럼 소개하는 언론의 몰매를 또 다시 견뎌야 했다.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그가 마치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됐다고 말한 것처럼 교묘하게 편집되기도 했다.  

2012년, 홍보전쟁은 더 이상 미디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니에토 후보의 홍보 전문가들이 사용한 3천 개의 가짜 트위터 계정 중 하나는 “암로의 여론조사 결과가 높아질수록, 페소화가 평가절하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3)

제도혁명당이 당의 인기전술 및 부정선거에 관한 오랜 기술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 제도혁명당은 국민 대다수가 겪는 빈곤을 이용해, 후에 ‘소리아나(멕시코 유통회사명)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유권자 매수공작을 대대적으로 획책했다.(4) 선거를 앞둔 몇 달 동안, 제도혁명당이 이끄는 몇몇 주는 사회보장프로그램을 위해 마련된 공금을 횡령해 대형마켓체인인 소리아나에서 구매한 식료품 상자를 극빈층에 공급했고, 이렇게 납세자의 등에 업혀 좋은 이미지를 얻어냈다. 매수 공작에 들어간 비용은 4억 4천만 달러로 추정된다.(5) 

전자지갑으로 유권자 매수, 빙산의 일각

또한, 니에토가 승리할 경우 대선일 다음 날 사용 가능한 일정 금액(20~40달러)이 들어 있는 수천 개의 소리아나 전자지갑이, 지지 약속이나 심지어 유권자 투표카드와 교환됐다. “일요일 아침 투표소에 가기 전에 누군가 내게 이 전자지갑을 줄 테니, 제도혁명당에 투표하라고 요구했다.” <텔레수르> 방송에서 한 멕시코 시민이 설명했다(2012년 7월 4일 TV뉴스). 국제뉴스채널과 SNS에서 증언이 쏟아졌다. 니에토의 반대자들은 ‘유권자를 대량 매수’했다고 규탄했다.(6) 

소리아나 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캠페인 불법자금조달에 금융그룹 모넥스(Monex)와 건설 및 공공사업 분야의 브라질 거대기업인 오데브레히트(Odebrecht)뿐 아니라 마약밀매조직과 직접 연관된 기업도 연루돼 있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었기 때문이다.(7) 3억 4천만 달러(즉, 법으로 허용된 한도액의 6배 이상)의 초과비용과 함께, 제도혁명당의 사치스러운 캠페인은 당의 적수에게 어떤 기회도 남겨주지 않았다. 2012년 7월 1일 일요일, 소란스러운 하루가 끝날 무렵에 페냐 니에토가 선거 결과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다양한 시민단체에 의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투표함 절도, 투표소 관계자 감금, 총격 등의 부정행위가 1천 건 이상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 발데스 쥬리타 연방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늦은 밤 텔레비전 방송에서 멕시코가 ‘모범적이고, 참여율이 높으며, 평화롭고, 매우 이례적인 선거일’을 보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5일을 지체해 공식집계 결과를 발표했고, 미주기구(OAS)의 옵서버 대표단의 승인과 유효표 38%를 얻은 카메라 잘 받는 후보 니에토의 승리를 인정했다. 6% 포인트 이상 추월당한, 암로는 수백만 표가 매수됐다고 추정했다. 그는 ‘대대적으로 조직된 선거 범죄’ 공작을 규탄했다.(8) 그의 당은 새로이 제소했으나 여전히 소용없었다. 선거재판소는 관찰된 부정행위가 투표의 유효성을 문제 삼기에 부적절하다고 간주했다. 8월 말, 선거재판소는 선거절차의 합법성 및 제도혁명당의 승리를 인정했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문서보관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구실로, 2012년과 2006년 선거에서 사용된 투표용지 폐기를 요청했다.

2017년 6월에 페냐 니에토의 사촌인 알프레도 델 마조 마자는 멕시코 주의 주지사 선거에서 암로가 속한 당의 지역 지도자인 델피나 고메즈 알바레즈와 경쟁해 승리를 거뒀다. 자신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후보자와 경합하기 위해, 제도혁명당 소속인 그는 2006년과 2012년에 썼던 수단들을 동원해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로는 2018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글·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Luis Alberto Reygada
언론인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상반되는 정보를 제외하고, 뒤따르는 인용문은 이 영화에서 발췌했다.  
(2) John M. Ackerman, Más allá del acceso a la información. Transparencia, rendición de cuentas y Estado de derecho, Siglo XXI, Mexico, 2008.
(3) Jordan Robertson와 Michael Riley, Andrew Willis, ‘How to hack an election’, <Bloomberg Businessweek>, 뉴욕, 2016년 5월 31일. 
(4)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추락시켰던 워터게이트사건 참고.
(5) ‘Estados compraron $ miles de millones a Soriana en despensas’, 2012년 7월 6일, http://aristeguinoticias.com
(6) ‘Repudian en 16 estados la “compra masiva de votos” a favor del PRI’, <La Jornada>, 멕시코, 2012년 7월 6일.
(7) ‘Cártel de Juárez, proveedor del PRI y financiador en la campaña de Peña Nieto (Reportaje especial)’, 2016년 3월 16일, http://aristeguinoticias.com
(8) Luís Prados, ‘López Obrador acusa al PRI de comprar cinco millones de votos’, <El País>, 마드리드, 2012년 7월 9일.
(9) Pedro Miguel, ‘부정행위’, <La Jornada>, 2017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