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대통령을 막을 대안투표제
2017-10-31 샤를 페라쟁 | 저널리스트
장 뤽 멜랑숑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 명을 선택하는 대신, 각 후보에게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대선이 진행됐다면 가능했을 결과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투표방식으로는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것이다. 이 놀라운 결과를 넘어서서, 유권자들의 바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투표방식 연구진의 관심사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있었던 4월 23일, 스트라스부르 증권거래소의 대규모 홀에서 유권자들은 두 차례에 걸쳐 투표했다. 프랑스 국민의 의무를 마친 이들은 두 가지 대안투표방식 체험에 나섰다. 첫 번째 방식은 각 후보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이고(평가투표제), 두 번째는 아무에게도 표를 주지 않거나, 한 후보, 또는 원하는 모든 후보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찬성투표제: 기권, 단수, 복수 투표를 포함), 가장 많은 표나 점수를 얻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게 된다. 5개 행정구역(스트라스부르, 그르노블, 에루빌-생 클레르, 크롤, 알르바르)에서 모두 합해 6,358명이 새로운 투표방식을 체험했다. 프랑스의 여러 대학과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 모인 7명의 연구원이 이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투표’ 작업을 지휘했다.
바람보다 승산에 투표하게 되는 현행방식
지난 의회의 구성을 보면 우파와 좌파 야당은 소수의석을 차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제를 일부 도입하기로 약속함으로써, 표의 분산으로 정부의 안정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국민 대표제를 개선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적용비율에 대한 논쟁을 재점화하고 있다. 나아가, 2002년부터 수학자, 경제학자, IT 전문가 10여 명이 1명의 후보에게만 표를 줄 수 있는 현행 투표방식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장-프랑수아 라즐리에 CNRS 및 파리경제대학원 연구원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1차 투표에서 전략적 투표(의사 표명을 위한 투표가 아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투표-역주)를 할 것인가? 이상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목표는 겹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제시하는 방안은 그 같은 경우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2002년부터 프랑스에서 새로운 투표방식을 시험하고 있는 라즐리에 연구원은 규범경제학(가치판단에 따라 마땅한 당위적인 경제상태(당위)를 추구하는 경제학-역주)의 계승자로, 15년 전부터 개인의 선택으로부터 집단결정이 도출되는 방식을 분석해왔다. 그는 “전략적 투표 행동 때문에 상당수의 득표율이 정치적 선호도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투표의 결과, 승산이 더 높다고 여겨지는 후보자들이 더 많은 표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들이 유권자들의 우선적 선택 대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8세기 말 니콜라 드 콩도르세는 이 역설을 지적했다(‘투표의 역설(voting paradox)’이라고도 불리는 콩도르세의 역설은 최다득표제가 유권자의 선호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컬음-편집자 주).(1) 2명 이상의 후보가 참여하는 선거에서 한 후보자가 과반수득표를 할 수도 있다. 다른 후보자들과 일대일 맞대결할 경우에는 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즉, 결선투표제에서는 1차 투표에서 제외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결선투표에 오른 두 후보와 맞붙었을 경우 이 둘을 모두 누르고 당선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역설을 제거해보고자 ‘다른 방식으로 투표하기’ 팀은 기권표를 던지는 유권자를 포함, 유권자들에게 다수의 후보를 선택하거나 다양한 가치평가표를 이용해 각 후보자의 점수를 매겨볼 것을 제안했다. 긍정적인 점수(0, 1, 2)만을 주거나 아니면 부정적 점수(-1, 0, 1)를 줄 수도 있다.
방식을 바꾸면 결과는 어떻게 바뀔까?
이렇게 되면 대선후보 중 과연 누가 1위가 될까? 찬성투표제(한 차례만 투표가 이뤄지든, 결선투표제이든)였더라도 마크롱이 승리했을 것이다. 반면 공식선거에서 4위에 머물렀던 멜랑숑은 평가 투표제의 몇몇 경우에 승리하게 된다. 가치평가표가 달라지면 승자가 바뀐다. 테스트한 9개의 시나리오 중 5개에서 멜랑숑 후보가 승리했고, 나머지 4개에서 마크롱이 이겼다. 그리고 부정적 가치평가제에서 마크롱은 더 불리해진다. 마크롱뿐만 아니라 마린 르 펜과 프랑수아 피용 후보도 부정적 가치 평가제(-2, 0, 1)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각각 8위, 9위). 전략적 투표의 위험성에서 자유로운 브누아 아몽 후보는 모든 경우 3위로 도약하는데, 이 경우 1, 2위는 자동으로 마크롱과 멜랑숑이다.
마지막으로, 대선에서 기권표를 던진 유권자의 75%가 평가투표제하에서 후보에 대한 선호도를 표명한다. 나머지 25%는 모든 후보에게 최저 점수를 준다.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은 대안 투표제에서 주어지는 더 많은 의사 표명의 기회를 쉽게 활용하면서 주저하지 않고 여러 후보(평균 2~3명)에게 지지 의사를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평가투표제는 후보에 대한 찬성 정도를 미묘하게 차이를 주며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반자본주의신당(NPA)의 필립 푸투 후보의 지지는 대체로 멜랑숑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소규모 정당의 후보들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한 다른 후보들에 의해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일회성 테스트만으로 프랑스 국민이 새로운 투표제도에 적응하는 방식을 일반화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 또한 이 새로운 방식이 기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끌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도 곤란하다. 그렇지만 스트라스부르 투표 체험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더 ‘폭넓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그리고 ‘여론조사의 영향을 덜 받는’, 혹은 ‘더 진정성 있는’ 의사 표명을 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11가지 시나리오 중 6개에서 대안투표방식으로 승자가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대안투표는 자동으로 순위를 뒤바꾼다. 지난 15년간 시행된 투표 테스트를 보면, 중도파, 환경파 후보들이 부상했지만 국민전선 후보의 지지율은 낮아지는 추세다.(2) 선거방식이 바뀐다고 해서 과연 정당 간의 상대적 힘이 달라질까? 이 질문에, 툴루즈 경제대학원 소속 경제학자인 카린 판 더 스트라튼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것 외에 대선 1차 투표를 통해서도 정당 간 힘의 관계가 드러난다. 또한 중요한 사회적 과제들(환경, 이민, 안보 등)도 부각된다. 이것은 이후 내각 구성이나 향후 선거 때 어떻게 연합할 것인지 협상하는 데도 중요하다. 나아가, 일반적으로 프랑스 사회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치학자인 니콜라 소제는 정치경쟁의 역사적 변천에 관해 연구하는데, “현재의 결선투표제하에서 선거유세가 진행된 이후에 새로운 투표방식 실험이 이뤄진 경우이므로, 우리는 실험 결과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투표방식이 정치적 연설, 정당 구조,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정치를 하는 방식에 일차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갈구하면서 의견을 주장하는 데 급급한 언론이 새로운 투표방식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제는 “결국 단지 표를 모으는 방식만이 정치 판도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선거 일정이나 선거구 획정에 따라 선거결과 및 정당의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완벽한 선거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20세기 중반부터 사회적 선택 분야의 이론가들(미국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가 그중 가장 대표적 인물)은, 전략적 선택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3) 그리고 콩도르세의 역설과 같은 역현상에서 자유로운(4) 완벽한 선거방식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리화했다. CNRS 및 스트라스부르대학교 경제 연구원인 에라드 아이게르사임은 말한다.
“하지만 모든 투표제도가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투표방식을 실험하는 이유는 이론을 완성하고, 투표방식이 어떤 방향으로 유권자의 행동을 결정짓는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어떻게 투표방식을 이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일례로 평가투표제가 채택되면, 향후 유권자들이 최종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최고 또는 최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이렇게 전략적 투표 행동이 다른 형태로 재현되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투표방식 도입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없다. 판 더 스트라튼은 이렇게 분석한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일부 유권자들의 선호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유권자 그룹이 당신에게 적대적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제재는 없으며, 그들이 당신을 거부하기 위해 투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단기(單記)투표제는 안보나 지방색을 옹호하는 자들이 목표 집단을 독점할 수 있는, 선거에서 확연히 주목받는 ‘독점적’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 반면, 평가투표제의 경우 부정적 점수의 영향을 받을 위험 때문에 일부 유권자층만 겨냥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들에게는 선거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판 더 스트라튼은 “국민들이 모든 선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절차는 아마도 훨씬 더 포괄적인 선거 정책과 유세를 장려하게 될 것이며 과격한 정치적 대립 양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판 더 스트라튼은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정당의 연설이 인종 간 대립을 더 폭력적으로 부추기는 아프리카 베냉에서 찬성투표제를 시험해봤다. 보통선거가 치러지는 1백여 개의 국가 중 80%가 소선거구제나 1차 혹은 2차로 이뤄지는 단기명(單記名) 절대 다수제(한 후보만을 기표하며 과반수 득표자가 당선)를 사용한다. 소수의 국가만이 국가수반 선출을 위해 대안선거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유권자들이 모든 대선 후보의 순위를 매긴다. 호주나 파푸아뉴기니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한다. 샌프란시스코와 여러 미국 도시의 지방의회 의원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영국(2011년)이나 캐나다(박스기사 참조) 같은 국가들은 선거제도 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치판은 여전히 투쟁의 장이고, 선거는 분열을 조장하는 의식(儀式)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글·샤를 페라쟁 Charles Perragin
저널리스트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Nicolas de Condorcet, Essai sur l’application de l’analyse à la probabilité des décisions rendues à la pluralité des voix(다수결 확률 해석 시론), 1785.
(2) Cf. Antoinette Baujard, Herrade Igersheim, Isabelle Lebon, Frédéric Gavrel and Jean-François Laslier, Who’s favoured by evaluative voting: An experiment during the 2012 French presidential election, Electoral Studies, n° 34, 2014.
(3) Cf. Allan Gibbard, Manipulation of voting schemes: A general result, Econometrica, vol. 41, 1973, and Mark Satterthwaite, Strategy-proofness and Arrow’s conditions: Existence and correspondence theorems for voting procedures and social welfare functions, Journal of Economic Theory, vol. 10, n° 2, 1975.
(4) Kenneth Arrow, 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2012.
박스기사
트뤼도 캐나다 총리, 공약 불이행
2015년 연방 총선 유세 당시 캐나다 자유당의 저스틴 트뤼도 대표는, 이번이 ‘마지막 소선거구제 선거’라고 밝혔었다. 트뤼도가 총선에서 승리한 후 캐나다 의회는 2016년 봄 의회로 진출한 5개당을 포함하는 선거개혁위원회를 구성했다. 12명의 위원이 6개월간 전문가와 함께 모든 지방에서 지역 자문 회의를 개최하고 온라인에 설문지를 올렸다. 결국 선거개혁위원회 소속인 알렉산드르 불러라이스 신민주당 대표는 다음과 같은 유감을 표명했다.
“트뤼도 총리가 처음에는 선호투표제(순위)를 언급했다. 하지만 자유당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선거개혁은 잊혔고,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사회 전반에 선거개혁과 관련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서 2019년 선거는 원래 방식대로 치러질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앙드레 블레 몬트리올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트뤼도가 선거개혁 공약을 내건 당시 여론조사에서 자유당 지지율이 매우 낮았다. 이 공약을 내건 이후에는 끝내 39%의 득표율로 의석수의 55%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그가 제출한 보고서에 특정 선거방식이 권고 사항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블레 교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자유당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자유당에서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선거제도를 재검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 추첨을 통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민 160명으로 구성된 선거개혁위원회가 이 지방에 순위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60%가 찬성표를 던졌고, 2%가 미달해 이 개혁안은 통과하지 못했다.
트뤼도 총리가 개혁 논의에서 발을 뺀 이후, 신민주당과 녹색당이 다시금 개혁 의지를 드높이고 있는 가운데, 뉴브런즈윅주에서도 선거제도개혁위원회가 발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