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우울증

2017-10-31     구에나엘 르누아르 & 마리 린 다르시 | <르몽드 디플

포르투갈 정부는 유럽 구제금융의 ‘트로이카’를 능숙하게 요리하면서 긴축정책에서 벗어났다. 유럽연합(EU)의 독재로 넘어진 포르투갈이 EU의 요구를 교묘히 피하며 서서히 일어서고 있다. 


“흡혈귀가 다 빨아 먹을 것이다. 흡혈귀가 다 빨아 먹을 것이다. 흡혈귀가 다 빨아 먹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테주 강변에서 멀지 않은 리스본의 관광명소 코메르시우 광장에 <흡혈귀>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스피커가 낡았는지 음질은 썩 좋지 않다. <흡혈귀>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포르투갈의 국보급 가수인 주제 아퐁수(José Afonso)의 노래다. 1987년 세상을 뜬 아퐁수는 사회참여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1974년 7월 25일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그의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는 ‘카네이션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2년 작곡된 <흡혈귀>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모든 시위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2017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몇십 명의 사람들이 플래카드 아래서 <흡혈귀>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있다. 재무부 청사 앞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임시교사, 연구원인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단체인 ‘불굴의 비정규직’이나 포르투갈 노동자 총연맹-전국노조(CGTP-IN) 소속 노조원들이다. 포르투갈 정부의 추산에 의하면 공공분야 비정규직의 수가 10만 명에 달하지만, 그날 밤 시위자 수가 적었던 것은 대규모 시위에 어울리지 않는 포르투갈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다.      

실업률과 재정적자를 감탄할 만큼 낮추다

“드디어 숨통이 트인 것 같다. 포르투갈인들은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북부 도시 비아나 두 카스텔루의 사회당 시장, 주제 마리아 코스타가 웃으며 말했다. 비아나 두 카스텔루는 인구 8만의 소도시로 조선업과 서핑하기 좋은 해변으로 유명하다. “4년 동안의 고생이 끝나고 경기가 살아나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리스본 버스 운전사이자 노조원인 54세의 페르난도 고메스 역시 같은 말을 한다. 6년 전인 2011년 3월 포르투갈은 스페인, 그리스와 더불어 유로존의 문제아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국내총생산의 7.4%를 차지하는 재정적자, 7%가 넘는 이자율, 신용등급 하락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일랜드에 이어 780억 유로 상당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 후 포르투갈은 소위 ‘트로이카’라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에 모든 것을 다 내줘야 했다. 게다가 2011년 6월 조기 총선 결과로 사회민주당(PSD)과 국민당(CDS-PP)의 우파연합이 집권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그로부터 6년 후, 그리고 사회당 집권 2년 후 포르투갈의 경제지표는 유럽 국가들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많이 개선됐다. 여러 해에 걸쳤던 경제침체를 벗어나 2.8%의 연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2013년 16.2%(86만 명)였던 것이 올해 7월에는 9.1%(44만 1천 명)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는 유로존의 평균 실업률(동일기간 9.3%)과 프랑스의 실업률(9.6%)보다 낮다. 재정적자도 포르투갈이 프랑스보다 양호하다. 2015년 국내총생산의 4.4%였던 재정적자가 2016년에는 다른 국가가 부러워할 수준의 2%에 그쳤다. 프랑스의 3.5%보다 낮고, ‘유럽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SGP)’이 정하고 있는 3%보다도 낮다. 더 감탄할 만한 점은 2020년 균형예산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현재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산업설비와 자동차부품 수출, 직물 등 전통산업, 그리고 관광산업 3가지 분야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관광산업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6년 1,140만 명의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찾았고 같은 해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1/3이 관광산업에서 만들어졌다. 리스본의 카페와 레스토랑, 지하철에서는 주말이면 포르투갈어보다 불어, 영어, 독일어가 더 많이 들린다. 거리는 어디나 시멘트 더미와 임시가설물로 어수선하고, 오래된 건물은 어김없이 공사 중이다. 리스본 시민들은 아파트들이 모두 계절 임대아파트로 변해버렸고, ‘툭툭(삼륜 택시)’이 도로와 리스본 구시가를 점령했다고 불평한다. EU 집행위 역시 올해 5월 포르투갈이 2009년 시작된 초과 재정적자 시정절차(EDP)를 졸업했다고 긴축예산 성공을 축성했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경제담당 EU 집행위원은 “포르투갈에 큰 희소식”이라고 운을 띄우며 재정적자 축소가 일시적이지 않은, ‘지속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EU는 우리를 믿지 않았다”

포르투갈이라는 요람을 지켜보고 있는 유럽의 시선이 항상 너그러웠던 것은 아니다. 2015년 가을 포르투갈의 사회당, 좌파블록(le Bloc de gauche), 공산당, 녹색당이 전대미문의 연합을 성사시켰을 때 EU와 독일은 화들짝 놀랐다. 사회당 출신이며 리스본 시장이었던 안토니우 코스타 신임 총리가 제시한 로드맵은 당시 유럽 상황에서는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EU의 요구사항 특히 재정적자 축소를 실현할 것, 동시에 4년간의 긴축정책으로 짓눌린 구매력을 높일 것….’

“EU는 우리를 믿지 않았다.” 페드로 누노 정무장관은 그때를 담담하게 회상했다. 좌파블록의 정치국 위원이고 마리사 마티아스 유럽의원의 보좌관이며 경제 전문가인 주제 구스망은 “첫 예산을 협상할 때 매우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더구나 안토니우 코스타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곧바로 통과시켜야 했다. 그런데 포르투갈 새 정부에 대한 EU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재정적자가 3% 이상인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국가들보다 우리에게 더 가혹했다.” 유럽의 경고, 압력, 근심 어린 혹은 무시하는 듯한 논평은 새 정부가 내놓은 첫 예산에 그치지 않았다. 2016년 6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포르투갈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새로운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한 달 후 발디스 돔브로스키스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과도한 2015년 재정적자를 이유로 구조기금을 동결하겠다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위협했다. 2015년이라면 사회당 정부가 집권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코스타 총리는 ‘능수능란한’ 정치가로 지금까지는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EU와 긴축정책과의 결별을 원하는 좌파연합을 능숙하게 요리하고 있다. “좌파연합이 합의한 것은 유럽의 요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국민의 소득 특히 빈곤층의 소득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주제 구스망의 설명이다. 

‘트로이카’ 체제와 우파 정부 하에서 개인 소득은 지속해서 감소했다. 포르투갈 역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의 실제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월 최저임금은 세금 전 485유로(14개월 기준)로 동결된 반면, 2013년부터 사회보장보험금이 인상됐다. 공무원 퇴직연금과 임금도 삭감됐다. 처음에는 고소득 봉급자에게만 해당했는데 나중에 13개월과 14개월 보너스가 폐지되면서 모두에게 적용됐다. 세후 급여액도 퇴직연금 분담금과 사회보장 보험금이 상승하면서 줄어들었다. 이외에도 초과근무수당이 반으로 줄고, 보너스도 자취를 감추고, 실업수당 금액과 수령 기간도 축소됐다. 소득세의 과세표준은 8단계에서 5단계로 줄었고 그 결과 저소득층의 세금부담이 커졌다. 임금인하, 연금축소, 보건, 교육 등 공공서비스 예산삭감, 공기업 매각 등 가혹한 시절이 이어졌다. 

리스본 버스 및 전차 노동자조합(ASPTC)의 사무실에서 만난 페르난도 고메스(54세), 빅토르(45세), 주앙 피스쿠(41세)(운전경력이 차례로 29년, 11년, 18년)는 5년 전까지 매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주앙 피스쿠는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크라테스(1) 정부 하에서 이미 초과근무 수당이 월급의 50%가 아니라 25%만 가산지급 됐다. ‘트로이카’ 체제에서는 평균임금이 1,100유로에서 900유로로 떨어졌다. 카리스(리스본 대중교통 회사)가 은행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대중교통 서비스 투자를 중단했다. ‘트로이카’가 입성하자 카리스는 지출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였다. 운행 버스의 수, 운영비 등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직원의 근속 연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교통요금을 올렸다. 운전사들은 이민을 갔다. 은행 대출금을 더 이상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 운행 횟수도 줄고 폐차의 부품을 재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고장 수리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빅토르도 덧붙였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스트레스를 받은 이용자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운전사들도 돈 문제, 가족 간 불화,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 시기에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 운전하기 편했다는 것이다.”

모두 코스타 총리를 반겼다. 우파정부가 민영화하려고 했던 카리스는 리스본시가 운영관리를 맡게 됐다. 2개월 보너스가 되살아났고 초과근무 수당도 50% 가산지급 됐다. 내년 1월부터는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제가 다시 시행될 것이다. “직원들과 이용자의 상황이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회사는 새 직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70명, 올해 100명이 새로 들어왔다. 승객 수도 늘어났다. 일자리가 늘어나자 사람들이 일터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노인 요금도 부활했다. 하지만 버스의 수는 여전히 부족하고 나는 2011년보다 매월 200유로 덜 받고 있다.” 빅토르의 설명이다. 

대량이민 사태를 낳은 
긴축정책과 우파정권

그렇다고 2년 만에 모든 긴축정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매력 상승도 더디다. 코스타 총리 정부는 ‘잔걸음 정책’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공산당과 죄파블록의 압력으로 예상보다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당은 최저임금을 월 600유로로 올리겠다고 약속했었다. 임기 절반이 지난 지금 최저임금은 월 557유로(세전, 14개월 기준)까지 올라왔다. 공무원 연금과 임금은 긴축정책 이전의 수준을 되찾았고 인상됐던 세금도 내렸다. 특히 전기와 가스, 식료품, 레스토랑의 부가가치세가 6%에서 23%로 인상됐는데 전기와 가스는 이전 세율로 인하됐고 레스토랑도 13%로 내려 소비자의 부담을 조금 줄였다. “최저임금과 연금의 소폭 상승으로 소비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고 주앙 비에라 로페스 상업과 서비스 연합(CCP) 대표가 소비 상승을 반겼다. “한 달에 20~30유로 더 벌게 된 사람들은 식료품, 외식, 옷 구매비로 돈을 썼다.” 중소상인연합은 코스타 정부를 비난하지 않는 유일한 고용자 단체다. 이유가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상업과 서비스 분야 회사의 97%가 소규모 사업장이고 이들이 긴축정책의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가장 심각할 때는 매일 1백 개가 넘는 상점이 문을 닫았다. “‘트로이카’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은 매우 교조적이었다. 자신들의 요구가 심각한 경기침체를 낳는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비에라 로페스 대표는 EU 관계자들과 협상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트로이카’의 긴축정책과 PSD-CDS 우파정권의 결합은 1960년대와 유사한 대량이민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고학력 젊은이들이 국가를 빠져나갔다. 노동사(史) 전문가인 리스본 신(新)대학교의 라쿠엘 바렐라 교수에 의하면 “50만 명이 포르투갈을 떠났으며 이 수치는 경제활동 인구의 10%에 해당하고 대부분 고학력 젊은이들이다.” 정부도 젊은이들을 부추겼다. “사회적 긴장이 높아지면 이민이 진정한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바렐라 교수는 덧붙였다. 포르투갈 사회는 인력 유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구구성이 활기차지 않으면 국가에 큰 위기가 된다”고 경제학 교수 주앙 두케는 말한다. 모어 텍스타일의 아르투르 수티누 회장은 “숙련된 인력을 찾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모어 텍스타일은 역사가 깊은 도시 기마랑이스에 소재한 홈 텍스타일 전문 업체로 미국과 유럽의 브랜드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중견 기업이다. 긴축정책의 적극 지지자인 두테 교수와 수티누 회장은 임금 인하 정책과 2012년 제정된 노동시장 유연화 법을 찬성하면서도 인력 부족을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티누 회장은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정상 임금을 지급하고 피고용자의 휴가일에서 연간 200시간까지 추가 근무와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은행’ 제도를 정부가 문제 삼을까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좌파블록, 공산당, 포르투갈 노총 내에서 아직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CGTP-IN 포르투갈 노총을 포함해 좌파진영은 개혁이 더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빌라 노바 드 파밀리캉의 도밍구 쿠스타 공산당 시의원도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 지역의 실업률은 전국 실업률에 비해서는 낮다. 하지만 고용이 주로 비정규직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해고와 임금인하가 정당화된다. 하지만 경기가 되살아나도 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뜨거운 감자인 단체협약 협상도 답보상태다. 협상 기간이 축소된 데다가, 협상이 실패하면 협약은 사문화된다. 비정규직 문제도 진전이 없다. 

“이 분야에서 얻어낸 것이 거의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다. 사실 현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매우 훌륭한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혀 문제를 제기할 의사가 없다. 이것이 분쟁의 소지가 될 것이다.” 좌파블록의 경제전문가 주제 구스망이 안타까워했다. 현재 코스타 총리는 더 신속하고 더 많은 분배요구를 받고 있다. 아직은 그 목소리가 높지 않지만 점점 커질 것이다. “에너지, 주택, 식품과 같은 무역적자가 큰 분야 위주로 공공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소비가 늘면 수입이 늘고, 수입이 늘면 경상수지 적자는 악화한다.” 이것이 코스타 정부의 정책 딜레마라고 주제 구스망은 지적했다. 사회당 정부는 공공투자를 축소해 구매력을 회복시켰다. 2016년 공공투자는 30% 감소했다. 70년간 최저 수준이다.   


글·구에나엘 르누아르 Gwenaëlle Lenoir
마리 린 다르시 Marie-Line Darcy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주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2005. 3. 12-2011. 6. 22)와 사회당 대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