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동성혼 합법화하나

2017-10-31     에바 아잉 & 알리스 에라이트 | 정치학 박사과정

중국 정부는 타이완을 ‘하나의 지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타이완은 1949년 이후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2019년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려 한다. 그러나 2012년 프랑스처럼 타이완에서도 이와 관련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타이완 사회는 여전히 효(孝)와 안정적인 가족제도를 기틀로 하는 유교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7년 5월 24일 오후 4시 타이베이. 타이완 최고법원 근처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판결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환호하는 동성혼 찬성론자 무리 위로 갑작스레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중화민국(타이완이 사용하는 공식 국호-역주) 최고법원이 이성 간의 결혼만을 허용하는 현행 민법이 시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같은 시간, 최고법원 건물 앞에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법 심리를 중단하라! 시민이 결정하게 하라!”

위헌 결정으로 타이완 입법원은 2년 안에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하며, 만약 개정되지 않더라도 해당 기간이 지나면 법 조항에 상관없이 동성혼이 허용된다. 타이완 최고법원은 동성혼이 머지않아 합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부터 타이완을 이끌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1)은 이제 결집할 순간이라며, 위헌 결정 직후 페이스북에 “이번 판결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찬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모두 형제자매라는 인식을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민주화 속에서 용기를 얻은 동성애자들

이 같은 위헌 결정은 2015년에 제출된 두 개의 청원서에서 비롯됐다. 타이베이 시청과 타이완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운동가인 치 치아-웨이가 제출한 청원서가 바로 그것이다. 타이완 시청은 동성 커플 세 쌍의 혼인신고를 거부한 이후 시작된 소송의 테두리 속에서 관련법에 대한 해석을 요청했다. 이어 당시 57세였던 치 치아-웨이는 자신과 동성 동거인과의 세대 등록을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적 있는 치 치아-웨이에게 이번 결정은 커다란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이완 스스로 진보적 국가라고 자부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이들이 타이완을 아시아권 LGBT 투쟁을 대표하는 국가로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전만 해도 타이완에서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1986년 치 치아-웨이가 체포됐을 때 타이완은 계엄령 하에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타이완의 역사적 뿌리를 인정하자고 부르짖는 당와이(黨外, 당의 외부인)의 반대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중국 대륙으로의 회귀를 꿈꿨던 당시 유일당인 국민당(KMT)과 달리, 당와이는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다른 타이완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했으며,(2) 이후 1988년 민주진보당(PDP, 민진당)으로 결집됐다. 당시 집권정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당와이’ 후보들, 그 가운데 특히 ‘(한족) 본성인들’(3)의 당선과 검열 회피에 일조했다. 이런 식으로 타이완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동성애의 ‘부도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들이 증가했다. 1970년대 청년 동성애자들의 삶의 궤적을 그린 <크리스털 보이즈>(4)가 1983년에 출간됐다.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처벌하는 법은 없지만, 많은 동성애자들이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스테판 코르퀴프 프랑스 현대중국연구소(CEFC) 타이완 지국장은 “2003년 타이베이에서 처음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 게이 전용 사우나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1987년 7월 15일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 총통이 계엄령을 해제한 시점과 1996년 시행된 총통 직접선거 사이에 이뤄진 민주화 분위기에 힘입어, 많은 진전이 있었다. 통쮜이(同志)(5) 예술의 대중화는 동성애자 수용에 일조했다. 1990년에는 타이완 최초의 레즈비언 잡지인 <Between us(我们之间)>(1999년 폐간)가 발간됐다. 그 당시 성 소수자들이 이례적으로 부각됐으며, 성 소수자 차별과 금기(Taboo) 철폐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2010년 타이베이 다음으로 큰 도시들에서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렸다. 2012년 민진당의 요우메이뉘(尤美女) 의원이 동성혼 관련 법안을 제안하면서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요우 의원은 “이번 기회에, 의회와 사회에서 동성혼 관련 논의를 시작하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1차 심의 후 격한 반대에 부딪혀 폐기됐다. 2016년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면서 동성혼 허용 논의가 재점화됐다. 차이 총통은 선거유세 초반부터 동성혼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같은 해 10월 의회에서 동성혼 법제화 논의가 재개됐다. 타이베이, 타이중, 가오슝의 번화가를 걷다보면 ‘결혼을 위한 작은 꿀벌들(婚姻平权小蜜蜂)’과 계속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거리에서 대중에게 동성혼을 홍보하는 청년 자원봉사자들로, HIV 감염검사, 심리적 지원, 행사 기획, 조직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타이완통쮜이 핫라인, LGBT 인권선언연맹, 동성혼합법화추진연맹(6)과 등 관련 단체들은 활동을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젊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성 소수자 운동가들은 점점 더 활발하게 투쟁하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표면적으로 이 모든 상황은 타이완 사회가 이전보다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믿게 한다.
 
동성애와 전통적 가치는 양립할 수 없나

그렇지만, 동성혼 반대론자들도 결사적이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타이완 동성혼허용반대 가족보호연맹’ 깃발을 나부끼며 반대시위를 벌인다. CEFC의 타이완 청년 및 정치운동 전문가인 탕기 르프장은 “이 연맹이 프랑스의 마니프 푸르 투스(Manif pour tous: 동성혼 반대단체들의 연합회-역주)를 구성하는 전통가톨릭사회만큼 강력한 반대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대체로 기독교신자들(타이완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탄탄한 재력과 일부 미국 로비업체들로부터 받는 지원 덕분에 활발히 활동한다)로 구성된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동성애를 비정상적이라 여기지는 않지만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많은 불교, 도교 신자들도 이 연맹에 참가한다. 장 자오헝 타이완 도교협회 사무총장은 “동성연애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성 간의 결혼을 통해서만 인류의 번식과 안정적인 가정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7)

이 같은 비판적인 시각은 정부에 쌓인 종교단체들의 실망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최근 시행되는 환경보호 관련 조치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관습들, 특히 물건을 태우는 행위를 상당 부분 제한하고 나아가 금지하기도 한다. 이렇게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적극적 행동주의에 가려 국민당과 민진당 간의 오랜 정치적 간극이 드러나지 않았다. 사실 이 두 거대 정당은 정체성과 연관된 모든 사안에 있어 대립해 왔다. 우선, 중국과의 화합을 꾀하는 국민당은 유일무이한 중국문화를 옹호한다. 반면  민진당은 다양성에 기반을 둔 타이완의 정체성을 표방하면서 국제 협력 노선을 다양화할 것을 주장한다. 가족이라는 전통적 유교 가치에 집착하는, 계엄령 하에서 성장한 구세대 그리고 계엄령 시대 이후 인권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신세대 간의 대립이다.

젊은 세대는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환경에서 교육받고 사회화됐다. 즉, 이들은 권리 주장이 거세지는 상황을 목도해온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진 가치관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LGBT 인권운동은 이 같은 상황과 맞물린다. 2004년부터 진행돼온 ‘성 관용 교육프로그램’이 그 예다. 탕기 르프장은 “이 모든 활동을 통해 동성애가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이들은 동성혼과 전통적 가치(효, 가족, 혈통)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코르퀴프 CEFC 지국장은 “가장 큰 걸림돌은 부모성(Parenthood: 생물학적, 사회적인 현상. 생물학적으로 부모성은 어린이를 양육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자녀에게 가족과 후손집단에 성원의 의무와 권리를 전해 주는 것-역주)”이라고 말했다. 

 
동성혼 허용,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카드?

따라서 프랑스에서처럼 동성애 찬성론자보다 반대론자들이 인공수정과 대리모 출산과 같은 주제들을 더 많이 언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성 커플의 입양권리를 옹호하는 요우 의원조차 “이 주제들을 동시에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자신이 발의한 민법개정안에 인공수정이나 대리모 출산을 언급하지 않았다. 모두가 동성혼에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동성이 결혼할 권리의 범주를 넘어서는 이 주제들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요우 의원은 기나긴 투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차별 철폐, 젠더평등교육 진흥 등과 같이 아직 할 일이 많다.” 또 다른 LGBT 운동가인 이리스는 양측의 관점이 양립 불가능하다면서 교육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에게 성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신의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사회가 성적 다양성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

위헌 결정 다음 날, 중국 관영매체들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논의 끝에 가장 무반응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코르퀴프 CEFC 지국장은 “이번 위헌 결정은 고유 영토로 생각하는 타이완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중국에 엄청난 역선전”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할 다음 아시아 국가는 중국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논의가 있었다.

그렇지만 요우 의원은 “동성혼을 허용함으로써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두 명의 동성혼 찬성론자(웨이 쑤안, 무 흐어쓰)도 이에 동의한다. 이들은 이번 결정으로 타이완의 진보적 이미지가 높아질 것이며, 이는 인권을 신장하는 한 방법이라고 본다. 반면, 이리스는 타이완이 이미 ‘성적 관용도가 높은 국가’로 알려져 외교적 반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범적인 인권존중국가의 이미지를 통해, ‘국제사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타이완 정부가 구사하는 외교 전략의 일환이다. 이를 통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념적 측면에서는 중국정부에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글·에바 아잉 Eva Aing & 알리스 에라이트 Alice Hérait  
국립대만대학교(National Taiwan University)의 정치학 박사과정생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Cf. Brice Pedroletti, <À Taïwan, la nouvelle présidente veut défendre la démocratie taïwanaise face à Pékin(타이완 신임 대통령, 중국에 맞서 타이완 민주주의 지킨다)>, <르몽드> 2016년 1월 16일자, &Tanguy Lepesant, <Taïwan en quête de souveraineté économique(경제 주권을 모색하는 타이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5월호.
(2) Jens Damm <Same-sex desire and society in Taiwan, 1970-1987>, <The China Quarterly>, n° 181,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년 3월호.
(3) ‘(한족) 본성인(本省人, bensheng ren)’이란 표현은 1945년 이전에 타이완으로 이주해온 조상을 가진 타이완인을 지칭한다. 1945년 이후 가족이 타이완으로 이주해온 경우에는 ‘외성인(外省人, waisheng ren)’이라고 한다.
(4) Pai Hsien-yung, <Garçons de cristal(Crystal boys, 孽子(Niezi))>, Flammarion, Paris, 2004년 출간.
(5) 통쮜이(Tongzhi, 同志, 문자 그대로 ‘같은 길을 추구’)는 1980년대 타이완과 홍콩에서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유행했다. Cf. <Cinéma et littérature tongzhi à Taïwan(타이완 통쮜이 영화와 문학>, Aurore formosane, 2017.
(6) 각 단체의 공식 영문명은 Taiwan Tongzhi Hotline Association(台灣同志諮詢熱線協會), Lobby Alliance for LGBT Human Rights Declaration, Taiwan Alliance to Promote Civil Partnership Rights(台灣伴侶權益推動聯盟).
(7) <Doit-on continuer de soutenir le changement politique et social de Taïwan si les conciles religieux s’opposent au mariage pour tous? (종교계가 동성혼에 반대할 경우 타이완의 정치, 사회 변화를 계속 지지해야 하는가?(중국어))> The Initium, 2017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