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의 초호화 혼례식

2017-10-31     쥘리에트 클뢰지우, 이자벨 오하욘 | 역사학자, 파리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유례없는 자금 유동성 상승과 새로운 소비패턴 확산이 나타났고, 이는 결혼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 변화의 피해자들은 주로 서민층이다. 큰돈을 공개적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을 따르기 위해 많은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단순화하기는커녕, 오랜 관습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 중심가, 이곳에 위치한 한 집 마당에 수십 개의 테이블이 놓였다. 테이블에는 각종 애피타이저를 비롯해 과일과 빵, 각종 탄산음료 등이 가득했다. 토요일 아침 7시,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8월의 태양 아래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어 플로브(타지키스탄의 전통음식으로 쌀에 양파, 당근, 고기 등을 넣고 찐 일종의 필라프)를 먹고 있었다.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 중인 주인은 새신랑 코부스 씨의 부모였다. 흰색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수 놓인 검은색 전통모자를 쓴 손님들은 성대한 아침 식사를 거하게 즐기고 있었다.

코부스 씨는 어제 물라(이슬람 종교 지도자) 앞에서 혼인을 서약하기 위해 새 신부의 집에 다녀왔다. 오늘도 신부 집을 방문하는데, 오늘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데려오는 날이다. 이동하는 동안, 오늘을 위해 빌린 하얀 리무진과 벤츠 차량이 신랑신부를 에스코트했다. 두 사람은 먼저 관공서에 들러 혼인신고를 하고, 이후 두샨베의 한 식물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쏟아지는 촬영 세례를 받으며 플라타너스 그늘의 낭만적인 산책길을 거닐었다. 곳곳에는 빨간 하트모양과 에펠탑 모형 등 플라스틱 장식들이 꾸며져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사랑(LOVE)’이라고 적힌 흰색의 대형 문자조형물도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는 신랑의 집으로 신부를 데려가면 이 신성한 여정은 마무리된다. 잔치 자리에는 새로운 가정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친지, 친구, 이웃, 직장동료 등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결혼식 사회를 맡은 한 가수는 여러 음악가와 댄서들의 무대를 소개했고, 잔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주위의 이웃들과 아이들도 함께 잔치를 즐겼다. 마당 안쪽에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수많은 선물과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토록 성대한 예식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는다. 타지키스탄의 혼례식은 첫 아이가 태어나는 날까지 총 17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코부스 씨 가족의 월 소득은 400달러 정도지만, 혼례식 전체를 위해 내야 하는 총비용은 7천 달러에 달한다. 신부 쪽의 경우는 더 낮은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무려 9천 달러를 내야 한다.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서 결혼식, 할례식 등 손님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는 모든 전통혼례식의 비용은 점차 증가해왔고, 이는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에 관련법을 제정했고, 8년 뒤에는 타지키스탄 정부 역시 공개적 또는 개인적인 축하연에서 진행시간과 하객 수 등을 제한하는 법을 마련했다. 특히 일부 예식의 경우에는 친지들만 초대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기도 했다. 처벌 정도도 엄격하다. 공무원이 해당 법을 위반할 경우에는 최대 해임 처분을 받게 된다. 또한, 지난 2015년 여름에는 한 청년이 두샨베에 위치한 술집에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었다가 63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1) 이는 타지키스탄 최저임금의 2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2)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한 이후 중앙아시아의 많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자국보다 서너 배 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말 이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내총생산(GDP) 중 해외 노동자의 송금액은 30~5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터키 등지로부터의 수입이 활성화되면서 각종 소비재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결혼비용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결혼을 위해서는 현대적인 가구들과 최신 가전제품을 필수적으로 사야 하게 됐다.

성대한 결혼식으로 ‘연줄’에 투자한다?

타지키스탄의 평균 월 소득은 137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결혼비용(준비부터 예식까지)은 보통 1만 달러를 호가한다. 그나마도 부유한 특권층의 결혼비용은 아예 논외다. 이들은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결혼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카자흐스탄의 경우,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최근 자원경제가 하락세를 보이자 결혼을 통한 ‘투자’라는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의 결혼비용은 평균적으로 8천만 텡게(2만 5천~3만 달러)에 달한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 국가들에서의 결혼비용은 그 집안의 권위를 증명하고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채무의 형태로라도 단 기간에 그렇게 큰돈을 모아 지출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인맥(친척, 이웃, 직장동료 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드러낼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들의 도움 없이는 결혼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타지키스탄 카로테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마틀루바 씨는 “러시아로 나간 가족들 없이 어떻게 결혼식에 그렇게 큰돈을 들일 수 있겠어요? 여기에는 돈도 없고, 그 비용을 댈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남자들이 결혼비용을 모으려고 전부 해외로 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녀는 이런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사회적 압박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예비부부에게 큰 금액을 지출하라는 사회적 명령이 가해지고 있는 것은, 가족 구성원이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로 떠난 가정이 3가구 당 1가구꼴인 현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중앙아시아의 결혼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이지만, 그 증가 폭이 급격하게 가속된 것은 1991년이었다.(3) 당시 공공서비스(교육, 교통, 보건 등)가 붕괴한 만큼, 개개인의 사회적 반경을 유지 또는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일례로 1990년대 카자흐스탄의 경우, 정부가 그리 고액도 아니었던 공무원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공무원들은 종종 주변 지인들에게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했다.(4)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지금까지도 대학입학, 주택구매, 결혼준비 등 목돈이 들어가는 경우를 대비해 가족들끼리 비공식적인 일종의 계를 하기도 한다.(5)

게다가 이 지역에서는 부패한 특권층의 측근들이 각종 회사나 가게 등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한 만큼, 사치스러운 지출을 통해서라도 연줄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중대한 사안으로 여겨져 왔다.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조금 덜하긴 하지만 키르기스스탄 등에서는 대통령의 측근들이 국가의 핵심 경제 분야(광물채굴, 공업, 통신, 항공, 대형유통 등)를 장악하고 있으며 나아가 경쟁사들을 ‘기습합병’해 자신들만의 제국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타지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사이드풀로 씨 역시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 중 하나다. 몇 년 전, 그는 러시아에서 힘겹게 일하며 모았던 전 재산을 쏟아부어 두샨베 시내에 식당을 하나를 열었다. 2년 후 식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어느 날 고위직 지인들을 등에 업은 한 사업가가 나타나 식당을 채갔으나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식당을 인수하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인수금액조차 정할 수 없었습니다. 선택권 자체가 없었죠. 결국 지금은 저와 제 아내의 생계를 위해 아들이 러시아에 가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함께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가계저축도 붕괴했고, 이는 기존에도 높은 편이 아니었던 금융기관에의 신뢰를 더욱 무너뜨렸다. 결국 가지고 있는 자금을 은행에 맡길 수도 없고 기업에 투자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자, 관습적 예식으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중요한 ‘투자’로 탈바꿈하게 됐다. 다른 투자처들이 위험해진 만큼 예식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 더욱 매력적인 투자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민·빈곤층의 ‘의무’가 돼버린 특권층의 사치

그런데 예식비용 증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부유한 특권층들이었지만, 이것은 곧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의 의무가 되고 말았다. 예식을 위해 각종 소비재와 음식 등을 사면서 돈을 개인의 저금통에 쌓는 대신 사회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시켜야만 하게 된 것이다. 만일 이 의무를 저버리고 잔치를 열지 않는 가정은 사회적 불명예를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타지키스탄에서 목축업을 하는 샴쇼드 씨는 할례식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어느 날 병원에 두 아들을 데려가 포경수술을 시켜버렸다며 빈정 조로 말했다. “그 날 한잔한 덕택에 그럴 용기가 난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다음 날 염소 한 마리를 잡아서 이웃들에게 염소고기를 돌려야 했죠.” 빈곤층 가정들은 힘겹게 빚을 내면서라도 이런 예식에 돈을 쏟아부어 선망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사회에서의 관습적 예식의 역할은 19세기 말과는 크게 달라졌다. 예식에서 오가는 물건의 상대적 가치와 양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런 성대함은 사회 각층에 스며들었다. 결혼, 생일, 장례, 할례, 성지순례 등을 기념하는 모든 예식이 과시적 지출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됐다. 1970년대까지도 흔히 주고받던 가축, 곡식, 기름, 설탕, 면직물 등은 점차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믹서기 등(교역과 소비형태가 세계화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품들)으로 대체돼 갔다. 대부분 예식을 치르기 수년 전부터 모으곤 하는 이 물건들은 곧 해당 집안의 명망을 의미하며, ‘보기 좋은’ 잔치의 필수적 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예식들이 교류의 의미를 지녔지만, 이제는 경쟁의 의미가 더 커지고 있다. 잔치에 참석하는 이들조차 유감스러워할 정도로 오늘날 이 지역의 예식과 잔치들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됐다. 타지키스탄 동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40대의 굴나라 씨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최근 딸의 첫 아이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아들이 지난 2년간 러시아에서 일하며 모아온 돈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했다. 굴나라 씨는 “그 돈을 아들 학비로 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도 “하지만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는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과도한 예식을 제한하는 법을 교묘히 빠져나가곤 한다.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도 결혼식 비용을 제한하는 법이 공포된 지 2년 만에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 바 있다. 당시 유튜브를 통해 이 결혼식 장면이 유출되기도 했으나 해당 동영상은 곧 검열 후 삭제됐다. 한편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킨 결혼식도 있었다. 지난 2016년, 라흐몬 대통령의 경쟁상대로 알려진 타지크 족 출신의 러시아 백만장자 일홈 쇼키로브가 딸 마디나 쇼키로바를 위해 초호화 결혼식을 연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최고급 호텔에서 열린 이 결혼식에는 900명이 넘는 하객이 참석했고, 신부는 스와로브스키 보석으로 수 놓인 60만 달러를 호가하는 명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신랑은 우즈베키스탄의 새 대통령인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다.(6) 일홈 쇼키로브는 지난 2010년에도 아들을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열었었다. 아들의 신부는 우즈베키스탄의 루스탐 아지모프 제1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의 딸이다.(7) 국가의 통치권을 쥐고 있는 가문들조차도 이런 결혼식을 국가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소비를 통해 과시할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글·쥘리에트 클뢰지우 Juliette Cleuziou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소속 역사학 연구원
이자벨 오하욘 Isabelle Ohayon
파리10대학 비교사회학·민족학연구소 소속 인류학 객원 연구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Farangis Najibullah, ‘Facebook photos help convict Tajik “Birthday boy”’, RadioFreeLiberty/RadioEurope, 2015/08/25, www.rferl.org.
(2) 타지키스탄의 최저 임금은 2016년 기준 월 250소모니(약 30달러)다.
(3) 본지 프랑스어판 사이트 참고, ‘Production privée et “prix de la fiancée” en Union soviétique’(소비에트 연방의 민간 생산과 “신부값”)
(4) Cf. Cynthia Werner, ‘Household networks and the security of mutual indebtedness in rural Kazakhstan’, Central Asian Survey, vol.17, no.4, Milton Park(England), 1998.
(5) Cf. Boris-Mathieu Pétric, Pouvoir, don et réseaux en Ouzbékistan postsoviétique(소련붕괴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권력, 기부, 네크워크), PUF - Le Monde, coll. <Partage du savoir>, Paris, 2004.
(6) ‘Is this the most extravagant wedding ever? Russian oil tycoon’s daughter marries in a lavish ceremony that includes private jets, a 10ft cake and a £500,000 bridal gown’, The Daily Mail, London, 2016/11/01.
(7) ‘Big fat Tajik wedding hides nest of Central Asian intrigue’, Eurasianet.org, 201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