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카메룬·나이지리아 영토 분쟁 해결

나이지리아 '석유·어업자원 보고, 바카시 반도' 카메룬에 이양

2008-10-29     레옹 쿵쿠 | 연구원
2008년 8월 14일 나이지리아 남부 칼라바. 바카시 반도를 둘러싸고 15년 간 무력 충돌을 벌이고 수십 년간 법적 다툼을 벌인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의 갈등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나이지리아가 바카시 반도를 카메룬에게 이양하게 되었다.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사이에 벌어진 바카시 반도 분쟁은 유엔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중재에 나선 일이기도 하다. 일단 바카시 반도 문제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져 중재를 맡은 전문가들은 한 시름 덜긴 했으나, 이번 결정에 불만을 품은 나이지리아 무장 세력의 반발이 과제로 남아 있다.
 
 15년간의 갈등과 협상·중재
 1,000㎢에 이르는 바카시 반도는 석유와 어로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된 곳이어서 약 1세기 동안 카메룬과 나이지리아가 이 곳을 놓고 영토 분쟁을 벌였다. 서아프리카 식민지를 분할하는 데 참여했던 영국과 독일이 1913년에 체결한 협정에 따라 바카시 반도는 카메룬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식민지에서 독립을 한 후 다시 바카시 반도를 놓고 싸웠고, 결국 1974년에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또 다른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독재자 사니 아바차 대통령(1993-1998년)이 바카시를 무력으로 병합하면서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꼬여 갔다. 아프리카통일기구(OUA)가 중재에 나섰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카메룬의 폴 비야 대통령이 1994년에 유엔의 중재를 요청했다. 2002년 10월에 국제사법재판소는 바카시 반도를 카메룬에게 이양하라며 카메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004년 9월 중순에 생각지도 못한 놀랄 일이 벌어졌다. 2004년 말까지 바카시 반도를 카메룬에 이양하라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령을 나이지리아가 따르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영국, 독일, 특히 카메룬에 순찰 병력을 보낸 프랑스는 유엔을 동원해 압박을 가했고, 마침내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2006년 6월 12일에 뉴욕 근처의 그린트리에서 협정을 체결했다. 나이지리아가 한 발 물러난 덕에 국제사회와 유엔은 체면을 살릴 수가 있었다.
 해양 영토 문제를 해결하는 협상은 석유와 어로자원이 관계된 일이라 더욱 어려웠다. 더구나 바카시 반도는 칼라바에 위치한 나이지리아의 함대에 다가갈 수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해로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한 사안이었다. 오랫동안 밀고 당기기 끝에 카메룬 정부는 나이지리아가 계속 석유를 개발할 수 있게 허가하는 대신, 나이지리아로부터 사용료를 받기로 했다. 해양에 매장된 자원 때문에 바카시 반도 문제는 여전히 명확하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두 나라는 공동 개발 지역을 창설하기로 했다.
 카메룬은 바카시 반도에 대해서는 나이지리아에게 불리한 관세와 이민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고 나이지리아의 군과 경찰은 카메룬의 군·경찰과 합동으로 공동 개발 지역의 범죄를 조사하고 나이지리아 시민이 관련된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카메룬은 민간 선박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양 반대 세력, 폭력으로 저항

 그러나 나이지리아 정부와 카메룬 정부가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바카시 반도를 둔 무장 세력의 폭력과 공격이 끊이질 않아 양국은 정치·사회적인 긴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정부와 카메룬 정부는 바카시 분리주의자들이나, 석유 이권을 놓고 다투는 나이지리아의 무장세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2006년 8월에 토니 에네가 이끄는 무장단체는 바카시 반도의 자치권을 요구했다. 그보다 앞선 7월 21일에는 나이지리아의 주민들이 바카시 반도를 카메룬에 인도하는 바람에 경제가 어려워졌다며, 그린트리 협약을 철회하라고 나이지리아 최고연방법원에 요청했으나 기각 당한 바 있다.  
 바카시 반도에는 폭력이 끊이질 않았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국제 협약을 준수하고 싶어 했으나, 바카시 반도를 카메룬에 이양한 것에 반대하는 무장 세력의 투쟁으로 골치를 썩였다. 이들은 바카시 반도 문제를 논의하려면 정부가 자신들을 참여시키든가 주민 투표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년 만에 무려 수십 명이 폭력 사태로 사망했다.
 2007년 11월 12일엔 카메룬 병사 21명이 바카시 반도에서 살해당했다. 카메룬 정부는 이를 두고 "해적들의 급습"이라고 했다. 정보기관에서 열심히 조사를 벌였으나 결국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2008년 6월 9일에는 카메룬의 콤보-아베디모를 관할하는 포냐 펠릭스 모판 군수와 병사 5명이 아쿠아 야페 강에서 납치를 당한 후, 6월 13일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008년 7월 11일과 12일엔 카메룬의 군사 기지가 다시 공격을 당해 세 명이 중상을 입었다.
 바카시 반도를 이양하기 몇 주 전에도 무장 세력이 카메룬 해군을 공격하면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에 대한 카메룬의 보복으로 무장 세력 일원 10명이 사망했고 8명이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메룬 쪽은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바카시 반도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더구나 바카시 반도에는 석유와 어로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탐내는 사람들이 많아 폭력사태는 더욱 심했다. 나이지리아의 무장 세력은 바카시 반도에 있는 자원을 공정하게 나눠 가질 것을 요구하며 폭력을 일삼곤 했다. 더구나 이들은 정부 인사들이 마음대로 바카시 문제를 결정했다며 분노했다.
 나이지리아 무장세력인 '니제르델타 수호안보평의회'(NDDSC)와 '니제르 델타 해방운동'(MEND)이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의 권위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 만큼, 바카시의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이에 카메룬 정부는 치안군을 바카시 반도에 배치해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또한 바카시 반도의 치안을 위한 위원회와 기구가 최근에 창설되었다.
 
 반발 무마 위한 유화책과 이주 지원
 카메룬은 바카시 반도를 개발하고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긴급 프로그램 차원에서 370만 유로가 투입되었다. 예전에 나이지리아인들이 차지했던 지역에서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고, 카메룬 부대가 운영하며 무료로 치료를 해 주는 보건소 5곳과 석유를 시추하기 위한 작업소 5곳도 세워졌다.
 한편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도 바카시 반도에서 떠나 자국으로 들어오는 주민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은 유엔의 특사 울드 압달라가 세운 공동위원회의 뜻에 따라 협력을 하고 있다. 아울러 상호 우호 조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카메룬은 바카시에 있는 나이지리아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여러 정치적인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 바카시 반도 지역의 동쪽에 인접한 니제르 델타 지역에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어업을 하며 살고 있는데, 카메룬은 이들의 전통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나이지리아 정부도 바카시 반도에서 떠나 나이지리아로 와서 살려는 자국의 주민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바카시 반도 이양식 때 나이지리아 정부의 대변인은 "바카시 반도를 이양했다고 해서 나이지리아의 영토가 빼앗긴 것이 아니다"며 "국제법과 이웃과의 선린우호를 존중해 내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영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모범적인 사례"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과연 니제르 델타 지역의 반군들은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그게 숙제다.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