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을 거듭하는 아프리카의 식량문제

2017-10-31     데이비드 비슬리 |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2015년, 국제연합(UN)은 2030년까지 기아와 영양실조를 뿌리 뽑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기아종식 캠페인인 ‘제로 헝거(Zero Hunger)’ 프로젝트를 UN의 17개 지속가능 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 두 번째 목표로 삼았다. 사실 기아에 허덕이는 절대다수 인구는 아시아에 거주하지만, 항상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인구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굶주림은 인류의 여명기부터 우리를 위협해왔다. 가장 오래된 기아 현상은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파라오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에서 흉작을 묘사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엄밀한 의미에서 ‘결핍’은 예전보다 드문 일이 됐으나,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어떤 지역들은 세상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소리 없는 굶주림’을 겪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역들은 명명백백한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4개국의 2천만 명 이상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 4개국 중 3개국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로(네 번째는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예멘), 올해도 ‘기근’이 여름을 강타했으며, 남수단, 나이지리아, 소말리아는 70년 동안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 국가들은 분쟁지역에 속해, 전쟁과 불안정한 상황이 인도주의적 개입을 저해하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여기에는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도 포함된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근을 묘사한 이래 여러 세기 동안 어떤 대륙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굶주림은 무엇보다 빈곤과 연결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전쟁이나 자연재해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기아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영양 부족으로, 전문가들이 정의하는 식량 불안정이나 영양실조처럼 자칫 불명확해 보일 수 있는 전문용어에 앞서는 개념이다. 쉬운 말로는 흔히 ‘굶주림’이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어떤 상태를 설명할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식량 불안정은 더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의미로는 사람이 날마다 넉넉하고, 충분히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배고픔을 겪거나, 이런 문제에 부딪혀 다소 지속적인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삶에 두려움을 안겨주는 식량 불안정

이런 두려움을 이해하려면 한 사람의 일상에서 두려움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야 한다. 잠시 아프리카의 한 농부가 돼보자. 2만m2의 땅을 가진 당신은 1만m2의 땅을 가진 이웃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당신은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고 약간의 푸성귀도 키운다. 암소 한 마리에 염소도 두 마리 있다. 앞으로 점점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가족들은 이따금, 특히 1년에 몇 달은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몇 달 전에 옥수수를 수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를 내다 팔았다. 당신의 농장에서 키우지 않는 식량 살 돈과 아이들 학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팔고 남은 것은 가족들과 먹으려고 곳간에 저장해뒀으나, 이제는 남은 것도 별로 없다. 옥수수 가격이 낮고 한 동네 농사꾼들이 전부 한꺼번에 옥수수를 팔기 때문에, 옥수수를 팔아도 큰돈을 쥘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곳간에 저장해둔 작물 품질이 썩 좋지 않아 몇 달 지나면 썩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흉년이 시작된다. 수확한 작물을 판 돈은 바닥나고, 식료품점의 물건들은 턱없이 비싸다. 남은 것은 2주 정도 버틸 식량뿐이다. 당신은 강낭콩을 심었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날마다 밭에서 일하지만 6주 동안은 내다 팔 게 없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에게 뭘 먹여 살릴지 암담하다. 당신과 배우자는 아마도 끼니를 거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비축한 식량으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식사량도 좀 더 줄여야 한다. 이렇게 1~2주는 더 버틸 수 있다. 돈을 빌려볼 생각도 있지만 마을에는 은행이 없으며, 도시의 은행들은 담보가 없는 농부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동네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리면 얼마간 먹고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무슨 수로 그 돈을, 그리고 40%나 되는 이자를 갚는단 말인가?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당신은 가진 것을 팔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염소고기를 먹이고 싶었지만, 염소 한 마리를 팔면 몇 주를 충분히 버틸 옥수수를 충분히 살 수 있다. 1년 중 이때는 염소가 다소 야위는 시기라 가장 낮은 값을 받겠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다 낫다. 당신은 부근에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할 것이다. 이웃의 큰 농장주가 하루 몇 시간씩 당신을 고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품삯은 박하고 그나마 마을에는 일자리도 없다. 당신은 ‘결국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겠지’라고 혼잣말을 할지도 모른다. 몇 주만 지나면 다음 수확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이때 재앙이 발생한다. 해충인 밤나방과(科) 나방 애벌레가 이 지역에 출몰해 사상 초유의 피해가 속출한 것이다. 수확할 작물은 모조리 파괴되고, 이제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아이들 학교도 그만두게 해야 할 판이다. 아이들은 일할 수 있고 빨래를 하거나 가축을 칠 수도 있으며, 땔감을 해오면 내다 팔 수도 있다. 즉 돈을 벌어올 수 있다. 아이들의 미래가 공부에 달려 있다는 건 당신도 잘 안다. 하지만 미래는 아득히 멀어 보이고, 가족에겐 당장 돈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굶기는 일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결국 한 마리씩 남은 염소와 암소마저 팔기로 한다. 보건소 직원들이 아이들 성장에는 우유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우유를 못 먹어 아쉬울 것이다. 거기다 남은 우유를 팔아 얻는 얼마 안 되는 수입마저 끊기고, 염소고기도 못 먹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도시로 올라가야겠다고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고향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몇 달 동안 가족을 못 볼 수도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시에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웃 중 다섯 명은 벌써 떠났는데, 몇 주 동안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당신은 식용버섯, 나물, 작은 열매 등 집 주변에서도 먹을 만한 것을 찾아볼 것이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발붙이고 사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뭐라도 좋다. 땅을 조금 팔면 다음 옥수수 수확기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만, 농사지을 땅이 줄면 앞으로의 수확량도 줄어든다. 당신은 다시 한 번 동네 대부업자에게 가볼 생각을 하지만 돈 빌리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빠져나올 수 없는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웃을 여럿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굶주리는 걸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대출 이후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올해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뒤집어쓴 아프리카

이것은 한 개인에게 식량 불안정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평범한 사례에 불과하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대다수 인구가 겪고 있는 기아의 근본 원인을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는 빈곤을 비롯한 농업, 경제, 사회, 정치 부문의 불충분한 발전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에 따라 기본적인 서비스 이용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서비스가 제한된 농촌 지역에서는 가뭄, 장례, 입원 중 한 가지만 터져도 한 가족의 얼마 안 되는 수입이 몽땅 사라질 수 있다. 굶주림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노동력이 떨어지고,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이는 다시 영양실조로 이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또한 적절한 보건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에 감염되고 있다. 환자들은 건강보험을 들 수 없고 치료비를 지불할 방법도 없는 극빈층이 대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소말리아,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같은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전쟁이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전쟁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면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길러 살림 밑천을 마련할 수 없다. 전쟁으로 경제는 왜곡되고 물가는 치솟는다. 교육, 보건, 상업 체계도 무너지고, 생계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기후변화를 들 수 있다. 과학자들과 농학자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피해를 우려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은 아프리카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보다, 부유한 나라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훨씬 크다. 그러나 그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이 점점 잦아지고 그 정도도 점차 심해져서 아프리카 전체가 생활에 피해를 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연결돼 이 땅을 고갈시킨다. 각 가구는 생산성 향상에 전혀 보탬이 안 되는 비효율적인 도구를 가지고 척박해진 땅을 일구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있다. 비록 수치로 보면 우려할 만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프리카 주민들의 상황은 많이 호전되고 있다. 인구증가를 고려했을 때 기아로 고통 받는 인구의 절대 수치는 증가했을지 모르나 그 비율은 20년 전부터 감소추세에 있다. 아프리카 각국 정부들과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WFP) 같은 원조 기구들은 이런 진전에 박차를 가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대륙 면적이 넓고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상황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중앙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반면, 서아프리카는 지난 20년간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 비율이 24%에서 10%로 절반 넘게 감소한 것이다. 이미 양호한 형편이었던 남아프리카는 적절한 가뭄 대비로 2016년의 재앙을 피해간 덕분에 계속해서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프리카도 진전을 보이고는 있으나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에티오피아는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달성했음에도 소아 영양실조로 연간 국내총생산의 16.5%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1)  



글·데이비드 비슬리 David Beasley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번역·조민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1) 아프리카연합(AU), 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새로운 협력체(NEPAD), 세계식량계획(WFP), UN 아프리카 경제위원회(ECA), <The Cost of HUNGER in AFRICA. Social and Economic Impact of Child Undernutrition in Egypt, Ethiopia, Swaziland and Uganda>, 아디스아바바, 2017 참조. http://fr.wfp.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