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스 신부의 라틴어 <역경>

문명교류의 비밀 텍스트(3)

2017-10-31     안재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잊힌 문헌”에 대한 이야기다. 소개할 문헌은 라틴어 <역경(易經)>이다. <역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으로, 레기스 신부와 예수회 소속의 다른 신부들의 번역한 것으로 줄리우스 모올이 편집했다.


책은 1736년에 완성된다. 이 책이 빛을 보기까지 숱한 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책은 세 사람에 의해 필사됐다. 출판을 위해 필사본들을 모아 최종 편집자 모올에게 준 이는 레뮈자(Abel-Remusat)이며, 책이 모올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다. 라틴어 <역경>이 주목받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라틴어 번역이 독특하다. 건괘(乾卦)의 괘사(卦辭)를 읽어보자.

Magnum, Penetrans, Conveniens, Solidum.
1.2.3.4. (라틴어 <역경>, p.163) 

원문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전통적인 해석은 개별 연구자에 따라 제각기인데, 이기석은 “건은 크게 형통한다. 곧으면 이롭다”라고 해석했다.(이기석,<주역>, 서문문고 1975, 5쪽) 반면 레기스의 라틴어 번역은 “크고, 통하고, 마땅하며, 단단하다”이다. 이 번역에 18세기 서양의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각로(閣老) 장(張)에 따르면, 문왕은 이 괘사를 통해서 하늘의 통치방식을 모범으로 삼는 최고 통치자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특히 사물의 생성과 관련해, 통치자의 마음에 있는 덕이 하늘과 일치한다. “(통치자의 덕은) 어떤 것이든 닿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크다. 모든 생성의 작용자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사물에 유익함을 제공하며 사물 각각에 맞게 마땅함을 취한다. 단단하고 작용함에 있어서 결코 물러남이 없다. 굳건하고 한결같다.”(라틴어 <역경>, pp. 163-4)

세 가지 관점에서 조금 깊게 들어가 보자. 먼저,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 ‘최고 통치자’는 천주 혹은 상제를 지칭하는 언표다. 이탈리아 선교사 인토르체타(Prospero Intorcetta, 1626~1696)의 주해를 소개한다. “개상제지주재(蓋上帝之主宰). 모든 것이 최고 통치자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다는 뜻이다. 팔괘와 그것들의 결합과 대립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팔괘의 반복을 통해서 열여섯이 생겨나고, 열여섯에서 다시 서른둘이, 서른둘에서 마침내 육십사괘가 생겨난다. 개별괘는 팔괘가 둘이 한 쌍을 이루어 완성된다. 다른 자리에 놓이거나 다른 순서에 따라 배치되거나, 상호 조합을 통해서 말이다.”(인토르체타의 <중국인 철학자 공자> 서문 8)

천주 혹은 상제에 대한 레기스의 견해가 인토르체타의 그것을 이어받고 있다. <역경>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유사성을 추적했던 색은주의(figurism)의 기원을 조아심 부베 이후의 예수회 신부들이 아니라, 한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가 인토르체타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음으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따져보자. 군주의 덕목을 하늘의 성질에 의탁해 정당화한다. 이와 같은 정당화 시도는 동양 독자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늘과 군주를 직접 매개하는 시도는 18세기 근대 서양의 독자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물론 서양 역사에서도 하늘과 군주를 매개시킴으로써 군주의 통치권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재위 기원전 27년~기원후 14년)를 들 수 있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에서의 황제숭배 전통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카노사의 굴욕 사건(1077) 이후 중세유럽의 왕들이 아랍이나 동양의 황제처럼 하늘의 매개자가 될 수 없었고, 하늘을 대신할 수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책을 소개한다. 모노드(P. Kl. Monod)가 지은 <왕권: The Power of Kings: Monarchy and religion in Europe 1589~1715(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London, 1999)과 칸토르비취(E. H. Kantorowics)가 지은 <왕의 두 몸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eval Political Theology(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1957)>이 그것이다. 두 책은 17~18세기 유럽의 왕들이 왕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자는 왕들의 초상화와 그림을 통해서, 후자는 정치 신학의 관점에서 왕권이 어떤 방식으로 강화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후자의 다음과 같다. 왕에게는 두 개의 몸이 있는데, 하나는 물리적 몸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혹은 영적인 몸이다. 이 몸은 지상의 것을 초월하고 신적인 통치권을 이용해 국가 지배를 정당화하는 상징으로서의 몸이다.
 
이들 두 책은 기본적으로 주권확보를 위해 왕이 몸이 어떻게 상징화됐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왕권과 교권의 갈등이 첨예해진다. 이들 책에 의하면, 이 시기 유럽의 왕들은 그 정통성을 한편으로는 정치신학적인 상징을 이용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으로부터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서양의 역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세속의 정치가들과 학자들 중 어떤 이는 급진적으로 그리스의 민주정, 어떤 이는 로마의 공화정, 어떤 이는 로마제국의 황제정을 주창했다. 이와 같은 논의과정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과 권위는 신이 아닌 인민으로부터 확보됐다. 중국의 황제들에 비해 유럽의 왕들이 누렸던 권위가 약했던 것은 사실이다. 왕들의 권위가 얼마나 약했는지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잘 드러난다. 무대에서 클라우디우스 왕이 살해되는 장면이 직접 제시됐으며,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통쾌해하며 손뼉을 쳤을 정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럽의 왕들에게 중국황제들의 통치방식과 이들이 누리던 권위는 당연히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 부베가 루이14세에게 헌정한 <강희제 전기>(1697년, 파리)의 출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마지막으로 자연학의 관점에서 보자.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라틴어 번역은 자연 현상에 대한 일종의 메타원리로 이해됐다. 통치자의 덕목인 원형이정의 원리가 자연의 법칙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고, 모든 개별에 통하고, 모든 개별에 마땅하며, 언제나 같음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레기스는 해석했다. 첫 번째 괘는 건이라 부르며, 천을 대신한다. 이는 당연하다. 천은 하늘의 몸체, 곧 실체를 뜻한다. 하지만 건은 그것의 덕성 혹은 고유함 혹은 성질을 뜻한다는 점에서 개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 두고 중국인은 양이라 부른다. <역경>의 주해자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중국 저자들의 자연학을 그 자체로 해명하기 위해서다. 건은 덕이다. 작동하는 성질이다. 오히려 하늘의 물리적 성질이다. 중국의 자연학자들은 그렇게 이해한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명확하며 가장 세밀한 사물의 작동자이다. 혹자는 이를 양이라 부른다. 이를 유추하면 일종의 빛이다. 이보다 더 빠른 것은 없다. 이보다 더 두루 통하지 않은 것도 없다. 이보다 사물들에 더 넓게 두루 펼쳐진 것은 없다.(라틴어 <역경>, p.165)

하늘이 물리적인 실체로 언표되고 있다. 서양의 독자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언명이다. 의인화된 인격신이 머무는 공간이 아닌 물리적 실체로 파악하는 인식은 특히 당대 서양의 자연학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줬다. 참고로, 17~18세기 서양의 자연학자들이 열광하며 탐독했던 책과 이론은 에피쿠로스의 유물론적 사상을 라틴어로 전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해>이고 이론은 원자론이었다. 루크레티우스는 합리성과 이성과 정확한 계산에 입각한 과학의 기치를 내걸고, 종교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늘을 물리적인 실체로 파악하고, 이를 측정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게 된 사고의 변환 과정에서 서양 지성계에<역경>의 등장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다시 부베의 말을 들어보자.

“복희의 제자들 중 최고의 제자들이 그랬듯, 나(부베)도 확신한다. 복희의 체계가 모든 다른 학문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말이다. 내가 연구해보니 실제는 다음과 같다. 복희의 체계는 수에 대한 형이상학이다. 혹은 학문들의 완전하고 일반적인 방법론이고, 그것은 수의 연산과 관련된 세 종류의 규칙들과 기하학의 모양과 비례와 정지상태를 재는 규칙들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규칙들은, 그것들이 복희의 체계처럼 하나의 단일하고 일치하는 체계를 구성함에 있어 필수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의 과업에 대해서 놀라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 근거를 제고하고 모든 학문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창조주는 그의 창조물들에 있는 모든 규칙들을 관찰하고 만물을 수와 무게와 척도에 따라 창조하셨다.”(<서간집> p. 279)

이런 부베의 주장은 지금 읽어도 대담할 정도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의 창조주 하느님이 지은 세계를 수와 무게와 척도로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서양의 중세와 서양의 근대를 가르는 준거 중 하나인 서양의 근대 자연과학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하늘에 대한 이와 같은 입장은 당시 교회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경>을 해석하는 동양의 전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상수(常數)역학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의리(義理)역학 전통이다. 자연학의 관점에서 역학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부베의 독법은 독특하다 하겠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가 시급하다.

그러면, 라틴어 <역경>의 주해방식을 살펴보자. 참고로, 라틴어 <역경>은 <주역대전전의>를 번역한 것이다. 정자의 세주(細註)도 그대로 직역했다. 필요에 따라 장거정의 <역경 직해>도 참조했다. 서양의 독자를 위해 서양 고전문헌들을 이용해 <역경>을 주해하고 있다. 여기에서 라틴어 <역경>의 고유함과 학문적 독창성은 오롯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다음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元)이라는 글자가 원인과 원리를 또한 뜻할 수 있는 것은 말이다. 그것의 크기와 범위는 모든 생물의 생성을 모두 아우른다. 이것들의 원인은 보편적인 것이다. 이는 마치 토마스 아퀴나스가 태양이 만물의 원인이라 말한 것과 같다. 또한 마크로비우스가 우주의 힘, 즉 세계의 힘 혹은 덕이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더 나아가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는 우리 종족(유럽)들의 철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이집트인 오이디푸스>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하늘을 가리키는 이 이름을 통해서 모든 최초의 원리와 원인으로 작동하는 힘의 탁월함이 표시되는데, 이는 마치 세상의 시초에서 하느님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틴어 <역경>, p. 168)

원(元)의 의미와 우주의 힘과 세계의 힘의 내포가 같을지에 대해서는 상론이 요청된다.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는 주해 방식에 주목하겠다. 일단, 레기스의 주해는 거칠고 투박하며 대담하다. 이 대담함으로 인해 주해는 학술 가치를 드러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근래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동서비교연구에서는 접하기 힘든 거시의제들에 대한 섬세한 미시개념들의 비교사례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섬세한 미시개념들의 대조-검증을 통해서 거대의제들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그 시도가 자연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지의 여부를 떠나서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을 규정하는 세계관의 밑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는 근본개념들에 대한 비교-논의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원천에 있어 근본이 다른 동양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며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 원천에 대한 확인-검증 과정은 필수적인데, 이 점에서 라틴어 <역경>의 비교-주해는 그 자체로 또한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에 많은 그리고 전통적인 해석 전통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생각거리들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인류문명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거대 담론을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수많은 틈새 논의를 라틴어 <역경>의 주해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보충하자면, 인간이 자연에서 벗어나는 과정 혹은 자연 안에서 자연을 인간의 방식으로 끌어들이는 방식들 일반이 문명이다. 이는 네 과정으로 나눠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사물과 사태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개념화하며 이론화하는 과정이 있다. 이어서 개념화와 이념화의 과정을 맥락화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맥락화 과정에는 제도화와 역사화 과정이 포함된다. 두 과정을 바탕으로 개념과 이념들은 물질로 현실화되는 과정으로 나간다. 하지만, 현실화 과정에는 만남과 충돌을 통한 융합화와 표준화의 과정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것이 문명화의 과정이다. 문명화 과정에 대한 논의기제의 설정과 관련해서, 라틴어 <역경>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기축문명, 이를테면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이 각기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했는지, 그 초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비교사례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정치사상의 주요개념들이 문명의 초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념화되고 맥락화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 라틴어 <역경>인 것이다. 라틴어 주해 중 사례 하나를 살펴본다.

 “친척과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해 보여준 무왕의 넘치는 인자함은 사람들의 존경을 샀다. 여기에, 폭군의 박해를 받았던 옛 가문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의 인자함도 한몫했다. 이들에게 무왕은 제후의 명예와 통치권을 부여했다. 그는 새로운 황제로서 탁월한 자비를 베풀었다. 민간인 살상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이 끝난 후 삶의 방식을 바로 잡았다. 이렇게, 무왕은 이방의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제거했다.(…) 우리가 아우구스투스에게서 경이롭게 여기는 것을 무왕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적어도 중국인들은 그렇게 믿는다.) 수에토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개개인은 악행이나 잘못을 범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군주들은 의혹조차도 받으면 안 된다.” 나라를 돌보는 새로운 군주의 마음이 자신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키웠다. 자신이 제정한 법률과 업적으로 나라에 옛 영광을 되찾았다. 중국인들이 말하듯, 사해로 영토를 확장했다. 물론 이는 과장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기록들, 그 이상 과장된 사례들을 유럽의 예찬연설이나 시인의 노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의 노래 중 일부를 들어보자. “저 로마는 자신을 기울여 영토를 바다에 담그고, 정신들을 올림포스에 맞춘다.” 중국인들이 배천지(配天地)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늘과 땅에 나란히 한다는 뜻이다. (라틴어 <역경>, p.31)

비교연구에 관해 주목해야 할 언명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자비(Clementia)로, 이는 황제의 덕성이다. 무왕이 지닌 자비가 아우구스투스의 자비에 비교되고 있다. 물론 동양의 자비와 서양의 자비가 정치사에서 어떤 맥락과 구조를 지니는지 따져봐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종류의 분석을 통해 동양의 자비와 서양의 자비 간에 유사성과 차이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권위(Auctoritas)다. ‘권위’라는 개념의 비교를 통해 문명이 어떻게 제도화되는지 살필 수 있는 사례다. 예컨대 동양과 서양에서 왕권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의 정치체제가 역사적으로 지닌 특징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국(Imperium)’이다. 이는 소수 종족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문명의 표현단위다. 제국의 모습과 관련해 하늘과 땅에 의해서 경계를 가진다는 언명은, 그것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유사하게 나타남을 보여주는 주해를 통해 제국의 정당화에 깔린 세계관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논리적 성격을 가진 것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인용에 의하면, 제국은 공간을 구획하는 기준과 준거를 정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의 닫힌 경계를 바탕으로 삼는 정치체제다. 

이처럼, 통치의 권위와 통합의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는지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라틴어 <역경>은 흥미로운 책이다. 적어도 세계를 통합하는 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논리적, 이론적 근거를 서양의 비교사례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이와 같은 비교 사례는 현생인류(Homo sapiens)의 문명이 초기에 어떻게 시작하는지, 즉 개념화와 이념화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가졌던 세계에 대한 생각과 상상력을 잘 보여준다. 기축시대(基軸時代)의 세계관을 비교-주해를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라틴어 <역경>이다. 


글·안재원
서울대 서양고전학 협동과에서 석사(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타난 호메로스의 수용과 변용 연구)학위를 받은 뒤 독일 괴팅엔 대학 서양고전문헌학과에서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의 수사학자인 ‘알렉산더 누메니우의 <단어-의미 문채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키케로의 <수사학>(2006), <Hagiographica Coreana 2> (2012), <인문의 재발견>(2014),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공저, 2016) 등의 저술과 <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편지에 나오는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인가?>(2016), <서양고전문헌학과 동양고전문헌학의 만남> (2017)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