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2017-11-30     베르나르 프리오 | 사회학자

지난 200년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이룬 성과는 여러 분야에서 똑같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나마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지만, 경제적 주권 획득은 매우 요원한 이야기다.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진보세력의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펼쳐온 기본전략은 노동자 계급이 직업과 출신, 성별과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어 통합하는 것, 즉 생산자의 지위를 얻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생산자의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곧 단순 제조업자와 영상제작자, 엔지니어와 공장노동자, 제빵사와 교사가 하나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누가 부를 창출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라고 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자계급을 구축해, 방어적 투쟁을 끝내자

이런 계급의식을 깨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은 1970년대부터 이중적인 공세 전략을 써왔다. 우선 이념적인 면에서, 1946년 노동운동이 어떻게 사회보장제도의 전면적인 실시와 전기-가스설비 노동자들의 생산자 지위 인정을 가져왔는지 그 기억을 잊게 만드는 전략이다. 1946년 이후 거액의 사회보장기금(1)이 조성되고 1960년대까지 노동자 스스로 기금을 관리운용하게 되면서 기존에는 ‘비생산적’으로 여겨지던 병간호, 퇴직자의 사회활동, 자녀교육 등의 활동에도 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후 (노동운동이) 수십 년간 거둔 쾌거 몇 가지만 살펴봐도, 지배계급에게 사람들의 의식에서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1960~70년대에 공무원과 퇴직자에 대한 평생 급여 지급, 은행대출이나 주식 담보가 필요 없는 병원과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이로 인해 사회보장 분담률은 상승했다), 병원 등 기관에 대한 비자본주의적 지위의 부여 등이 이뤄졌다(이 지위는 아직 설계단계였지만, 병원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공동소유하게 됐다). 당시 노동계는 가치의 분배가 아니라 다른 성격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투쟁했다. 노동총연맹(CGT) 산하 금속노조연맹 위원장이었고 1945년 11월에 사회보장법 시행을 책임지는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앙브루아즈 크루아자는, 1946년 8월 법으로 자녀교육을 생산노동의 위치로 격상시켰고, 금속산업 노동자의 시급을 기준으로 산정한 가족수당을 지급했고 수당의 인상도 임금인상과 연동시켰다. 덕분에 현재 두 자녀가 있는 엄마는 ‘고용시장’에 고용되지 않고 고용주에 종속되지도 않은 채(남성 우월주의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지만), 매월 225유로를 받고 있다.(2) 이렇듯 사회보장제도는 ‘유용하지만 비생산적인’ 노동이 아닌,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난 노동에 가치를 생산한다. 고용주와 주주가 없는 노동, 사회화된 임금노동,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노동…. 공산주의 사회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무엇이 노동이고, 무엇이 노동이 아닌가

세상의 변화에 맞선 부르주아지의 두 번째 공세는 생산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통합을 막는 것이었다. 위정자들은 지난 50년간 끊임없이 노동을 자본의 가치를 높이는 경제활동으로만 국한해 정의했다. 자유주의 개혁주의자들은 건강보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건강보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용만 지출할 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 인력의 임금은 노동에 따른 급여가 아니라, 동료 노동자들의 ‘연대’ 기금에서 나온다는 주장이다.

생산자들의 세계를 붕괴시키려는 부르주아지의 첫 시도 대상은 ‘청년들’이었다. 임금을 전체적으로 올리는 초봉 인상을 막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여러 정책을 통해 초봉의 인상속도가 둔화했고 1990년대 말 25세 청년의 임금은 1960년대 말과 비교할 때 절반으로 줄어들었다.(3) 그 결과, 고용정책에 있어 새로운 범주의 노동자들이 만들어졌다. 레몽 바르 총리가 1977년에 ‘청년’이라는 범주를 만들기 전에는 고용시장에 ‘청년층’은 없었다.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은 16~18세 청년들에게 약자의 이미지를 덮어씌워, 정상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연대’라는 명목으로 도움을 줘야 할 계층으로 만들었다. 이전에는 연령과 무관하게 누구나 단체협약에서 정한 임금을 받았었다. 또한 실업자, 미혼모, 저학력자, 낙후지역의 주민 등을 특정범주로 묶어 ‘생산자’라는 공동의 지위를 박탈하려는, 같은 방식의 시나리오가 지난 40년간 되풀이됐다. 특정 부르주아지는 사회계층을 희생시키고, 자본가들의 ‘연대’를 촉구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일괄과세로 징수하는 조치들을 도입했다. 이 같은 (노동자 계층의) ‘분할’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조의 저항은 무력했고, 약자를 위한 연대 투쟁도 무기력했다. 

마크롱 대통령,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세계와 싸워 이기려면 투쟁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리한 토양에서 싸우는 것이다. 약자의 토양이 아닌 생산자의 토양에서 돈이 아니라 노동을, 부의 분배가 아니라 생산의 분배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무한한 인간의 활동 중 ‘노동’으로 인정될 가치가 있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 ‘합의’ 밖에 없다. 자녀를 등하교시키는 일을 부모가 하면 경제적 가치로 보지 않지만, 보모가 하면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다. 똑같은 일인데도 말이다. 자본주의자들이 부모의 자녀교육, 퇴직자들의 사회활동, 의료인들의 구명 활동이 지닌 효용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산이라는 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고용주에게 종속돼 자본을 창출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활동만을 의미한다. 어떤 활동이든, 사회적으로 노동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계급투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활동이 노동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자는 생산에 대해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들이 누가 무엇을, 그리고 비용을 얼마나 어떻게 들여 생산하는지 결정한다. 지배계급은 노동을 통제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므로, 노동에 대한 통제권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통제권이 없다면 이윤도 없기 때문이다.

저항의 방식을 개선하라, 주저하지 말라!

이런 이유로 지배계급에 승리하려면, 노동운동을 통해 생산, 연구, 기업, 노동을 변화시키겠다는 무력한 저항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전후 노동계가 쟁취한 강력한 제도의 힘을 우리 모두 경험하지 않았던가! 자유주의 개혁가들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 분담금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세전(稅前) 급여에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분담금과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945년에 비해 2배 증가했다. 또한 1959년 국내총생산의 15%에 해당했던 사회보장 지출액은 32%로 늘었다. 평생급여의 경우 현재 18세 이상 인구의 1/3이 관련 대상자다(공무원, 평생급여 계약자, 몇몇 산업직종 종사자, 퇴직자의 절반). 1946년에는 평생급여 수혜자가 일부 퇴직자를 포함해 약 50만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보모 등 비(非)상품 생산 분야에 국한됐다. 반면 자본은 전쟁 후에도 계속 상품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이 빗장을 거둬내는 것이 우선 과제다.    

부르주아지가 혁명세력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들은 18세기 말,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며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라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참여하면서 그때까지 태어나면서부터 나뉘는 인간의 법적 지위를 통합했다. 그러나 절대 특권을 포기할 수 없는 부르주아지가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인간, 국토, 환경에 기반을 둔 가치를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 노동자들 스스로 가치 영역에서 자신들의 자유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각자의 경제적 지위를 합쳐야 한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성인이 되는 모든 개인에게 새로운 세 가지 권리, 즉 가치 생산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① 평생급여 수령, ② 생산수단의 소유, ③ 경제활동조정기구 참여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이 권리는 사회보장보험 모델에 따라 분담금을 원천징수해 급여기금과 투자기금이라는 새로운 기금을 조성함으로써 보장받을 수 있다.(4) 

① 평생급여는 각 개인의 직능 그리고 근속연수와 직무평가에 따라 책정되고 고용주가 아니라 급여기금에서 지출된다. 그래서 급여는 더 이상 고용과 관련이 없게 된다. ② 생산수단의 소유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노동이 이뤄지는 곳에서 생산이 관리된다. 즉 노동자들이 단체를 구성하고 투자, 상품, 생산요소, 시장, 파트너와의 관계, 국제 노동정책 등을 결정한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 행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③ 노동자들이 투자기금 의결에 직접 참여해 주요 경제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 확장돼야 한다. 투자기금은 주주를 대신해 투자를 결정하고 분담금을 배정하며, 은행 대신 화폐를 만들어 새로운 계획을 지원하거나 무상 공공서비스 비용을 지급한다.(5) 

위의 세 가지 권리는 시민경제주권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1789년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7조(“소유권은 불가침의 신성한 권리이므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에 명시된 정치력을 생산자에게 부여한다. 우리는 누구나 급여를 받고 우리의 생산수단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 이것이 프랑스 경제인연합(Medef)과 마크롱 대통령의 처방에 저항하는 행위의 핵심이다. 이 투쟁에는 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표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포함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상품 경제 분야에서 시민주권을 확대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하려면, 먼저 해고의 공포에서 해방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영업자들을 설득하려면, 불경기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즉 그들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경기의 부침에 소득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농민의 경우, 농업지원금으로 설득할 수 있다. 현재 100억 유로에 달하는 농업지원금이 농지면적이나 농산물에 지원되고 있다. 이를 농민에게 직접 지급하면, 약 50만 명의 농부가 2만 유로의 연봉을 받게 되며 이는 평생급여의 시발점이 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소유권 포기는 소유주에게 할복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설득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현 체제를 지지하는 중소기업가들도 대출이자나 임대료 등으로 고통 받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체제에서 기업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다. 기업은 소유주의 자산이 아니고 직원(이들 역시 그들 소유가 아니다)과 공동 소유하는 생산수단, 즉 공동자산이 된다.

물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새로운 경제구조를 다른 국가에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자유무역과 유럽연합(EU) 체제와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 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저하기 시작하면 지친다는 것이다. 지난 40년간 우리는 적이 정한 규칙에 따라 싸우면서 패배의 쓴맛을 봤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단기 전략과 자본주의를 소멸시킬 장기전략. 시간상으로 거리가 있는 투 트랙 전략은 효과가 없다. 자본주의를 소멸시킬 방법은 아마 마법밖에 없을 것이다. 단기 전략이 계속되면 장기 전략이 되는 게 아니라, 현상유지만 될 뿐이다. 생산자 계급은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경제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구축되고 공고해진다. 

우리의 목표와 우리가 가는 길은 같다. 우리의 목표가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는 길은 절대 단조롭지 않다. 앞서간 선배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하려면, 혁명은 완벽하게 명확한 제안이 수반돼야만 한다.  


글·베르나르 프리오 Bernard Friot
이 글은 2017년 10월 5일 출간된 베르나르 프리오의 저서 <Vaincre Marcron(마크롱에게 승리하기)>에서 발췌 종합한 것이다.

번역·임명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Bernard Friot et Christine Jakse, ‘Une autre histoire de la Sécurité sociale(사회보장제도의 또 다른 이야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2월호.
(2) 이 주제와 관련해 특히 Louis Alvin, <Salaire et sécurité sociale(임금과 사회보장제도)>,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1947 참조.
(3) Christian Baudelot et Roger Establet, <Avoir 30 ans en 1968 et 1998(1968년의 서른 살과 1998년의 서른 살)>, Seuil, Paris, 2000.
(4) Bernard Friot, ‘La cotisation, levier d’émancipation(사회보장제도, 해방의 지렛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2월호.
(5) 투자기금과 관련해 <Émanciper le travail(노동해방)>, La Dispute, Paris, 2014와 연구교육단체 Réseau salariat의 자료 <Caisses d’investissement et monnaie(투자기금과 화폐> (www.reseau-salariat.info)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