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실업을 막을 수 있을까?

2017-11-30     샤를 마티유 | 마르세유프로방스 도시발전위원회 공무

폐업 위기에 처한 회사의 직원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회사를 인수하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라 파브릭 뒤 쉬드와 스콥티, 두 경우를 보면 이 역시 만만치 않다.

“응급의학과 의사여서 잘 안다. 아픈 사람은 살릴 수 있어도,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다.”
마르세유프로방스 도시발전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했던 르노 뮈즐리가 2011년에 한 말이다.(1) 1년 전 2010년 9월 다국적기업 유니레버는 엘레팡 차(茶)를 생산하고 있는 프랄립 공장의 폴란드 이전을 발표했다. 마르세유 동쪽 제므노스 시(市)에 위치한 프랄립은 당시 홍차와 허브차 3천 톤, 티백 15억 개를 생산하며 수익을 내는 공장이었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실직 위기에 처한 182명의 프랄립 공장 노동자들을 구제하는데 소극적이었다. 프랑스노동총연맹(CGT) 대표로 기업운영위원회에 참여했던 제라르 카조를라는 지적한다. “공장폐쇄는 경제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계산 결과, 노동자들은 연평균 8개월을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

사회적 연대 경제의 강점과 한계

제므노스에서 서쪽으로 수백 킬로 떨어진 카르카손 시(市)에 위치한 필파 아이스크림 공장 역시 모기업인 영국의 R&R 아이스크림이 2012년 7월 작업장 폐쇄를 결정할 당시에도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4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실업률이 12%가 넘는, 주민 수가 4만 7천 규모의 소도시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R&R 아이스크림은 공장폐쇄 발표가 있기 겨우 몇 달 전에 3A 유제품 협동조합으로부터 필파를 매입했다. 당시 회사의 CTG 노조 대표였던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R&R의 관심은 오로지 새로운 브랜드를 손에 넣어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데만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이미 3개의 프랑스 아이스크림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던 R&R은 상표권과 특허권 사냥기업으로 유명하다. 필파 공장을 매입했던 이유도 필파가 가지고 있던 오아시스, 디즈니, 시스템 U 브랜드 때문이었다.  

프랄립 공장이 그랬던 것처럼 필파에서도 몇 명의 직원이 손 놓고 공장 폐쇄를 기다리는 대신 생산자 협동조합(SCOP)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CGT 노조가 지원을 약속했지만 퇴직보상금 협상, 자본금 확보, 공장부지 매입, R&R과의 합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의 지원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필파는 운이 좋았다. 여러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것이다. 우선 도시발전위원회가 공장부지를 매입해 낮은 가격에 협동조합에 빌려줬고, 랑그독 루시용 지방은 보조금 12만 유로를 지원했다. 여러 은행협동조합에서도 저금리 대출을 허용했고, 당시 산업부 장관이었던 아르노 몽트부르는 산업부 직원을 현장에 파견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2년 안에 협동조합 설립을 완료할 수 있었다. R&R 아이스크림은 기계설비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협동조합이 PB상품(2)을 생산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라 파브리크 뒤 쉬드(La Fabrique du Sud) 생산자 협동조합은 2014년 4월 생산을 개시했고, 라 벨 오드 아이스크림을 내놓았다.    

반면 프랄립 직원들의 투쟁은 힘겨웠다. 유니레버와 협상을 끝내고 생산을 재개하는데 무려 1,336일이나 걸렸다. 2년여의 협상 끝에 2012년에 마르세유 도시발전 위원회로부터 공장부지 매입을 약속받았지만 분기마다 임대료를 높이는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2015년 7만 유로였던 임대료가 2017년 올해는 21만8천 유로로 뛰었다. 신생 협동조합에게는 숨 막히는 금액이다. 더구나 최근 이 지역이 수해위험지역으로 정해져 사실상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 것을 고려한다면 과도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계획을 포기시키기 위해 부당한 인수조건을 일부러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제 스콥티(Scop Ti) 협동조합의 회장이 된 제라르 카조를라가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니레버 역시 비협조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이 지치고 투쟁 참여가 저조해지자 협상을 2년 더 끌다가 상징적으로 1유로를 받고 공장설비 양도에 동의했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식민지 무역의 마지막 유산인 엘레팡 상표를 스콥티가 사용하는 것은 끝까지 거부했다. 스콥티는 제품의 상표를 ‘1336’으로 정했다. 

필파와 프랄립 두 경우 모두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후 직원 수가 대폭 감소했다. 필파 공장은 폐쇄 무렵 9개의 생산라인에서 124명의 노동자가 연간 2천5백만 리터의 아이스크림을 생산했다. 하지만 124명 중 퇴직보상금을 협동조합 설립에 투자한 이는 1/5에 불과했고, 2014년 협동조합 출범 당시 조합원은 25명, 그중에 직원은 19명에 불과했다. 기계 운전 담당자이자 조합원인 세바스티아나 로페즈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공장폐쇄 발표 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보상금을 받고 떠나거나 조기퇴직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었다.” 프랄립도 마찬가지였다. 프랄립 공장 노동자 182명 중 57명이 퇴직보상금을 스콥티 자본금에 투자했고, 그들 중 28명만 직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41명까지 늘어났다. 
 
두 협동조합은 급료체계를 단순화했다. 라 파브리크 뒤 쉬드에서 일반노동자는 1,350유로(세후) 숙련노동자는 1,450유로와 1,560유로, 간부는 1,880유로를 받는다. 스콥티의 경우 일반노동자는 1,600유로, 숙련노동자는 1,670유로, 간부는 2,000유로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치를 통해 과거에 매우 중시된 수직적인 위계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생산과 관리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견고하다(예외가 없지는 않다. 일례로 스콥티에서 배송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교육 받은 후 회계부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두 협동조합은 출근기록계를 없앴고, 또 몇몇 업무를 교대로 근무하는 멀티 업무시스템을 도입했다. “주문처리, 생산, 배송, 관리부서에서 돌아가며 근무할 수 있다. 주문한 상품을 처리하다가 회계나 배송 업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 파브릭 뒤 쉬드의 막심 자른 재무관리 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1993년 필파에 생산책임자로 입사했다. 스콥티 역시 조직이 개방적이고 수평이고 명령이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동조합 법에 따라 경영전략을 포함한 주요결정은 조합원 전원이 참석하는 총회에서 결정된다. 조합원 1명 당 1표를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조합원 수가 많은 스콥티에서는 이사회와 운영위원회가 회사경영을 책임진다. 두 기구의 위원들은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선출한다. 라 파브리크 뒤 쉬드의 경우는 총회에서 집단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매달 열리는 조합원 회의에서 현재 상황, 주요 실적, 목표치에 대해 논의 한다”고 숙련노동자이며 생산라인 책임자인 베로니크 앙셍은 말한다. 한마디로 경영, 인사, 의사결정방식, 업무분배, 급여 등 조합과 관련한 모든 사안은 조합원들이 결정한다. 

예전 주인이었던 거대식품회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두 협동조합은 품질에 승부를 걸었다. 1336차는 천연 아로마로 만들고 허브차는 운송기간 단축을 위해 인근의 유기농 농가에서 재배한 원료를 사용한다. 라 벨 오드 아이스크림의 원료는 분유가 아니다. 오트 루아르에서 전지유, 마다가스카르 산 바닐라, 코트디부아르나 베네수엘라 산 초콜릿으로 만든다.

대형 유통업체는 협동조합의 중요한 판로다. 라 파브릭 뒤 쉬드의 막스 자른 부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아이스크림은 틈새상품이 아니다. 대중에게 판매되는 제품이다. 조합의 생존과 확장 그리고 조합원 수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대형 매장과 일해야만 한다. 우리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유통할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시라! 기꺼이 수용하겠다.” 스콥티는 르클레르, 시스템 U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PB상품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에 더 많이 진출해 있다. 카조를라 회장은 “보다 많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할 방법은 대형마트밖에 없고 유통경로를 다양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콥티는 에티카블, 비오쿱, 산토리즈, 르 탕 데 스리즈 등 유기농 매장에도 납품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합원과 직원의 생활을 보장할 만큼 충분치 않다. 스콥티는 2016년 PB상품용으로 80톤, 스콥티 제품으로 26톤을 생산했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타협도 필요했다. 스콥티는 최근 회사의 급여정책에서 벗어난 ‘2천 유로를 약간 웃도는’ 급여를 제안하며 조합원이 아닌 영업 담당자를 외부에서 영입했다. “그렇다. 영업책임자를 고용했다. 회사 내부에 적임자가 없다면 외부에서 능력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카조를라 회장의 목소리에서 불편함과 짜증이 묻어났다. 라 파브리크 뒤 쉬드 협동조합의 경우는 여름 성수기에 임시직원 고용을 해야 했다. “노동시간을 1년 기준으로 계산하거나 필파 공장에서처럼 여름에 작업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 방식은 직원들에게 피로와 스트레스를 가중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막스 자른 부장의 설명이다. 

라 파브릭 뒤 쉬드나 스콥티 모두 노동조건을 불평하는 조합원이나 직원은 없었다. 익명으로도 불평하지 않았다. 함께 결정한다는 점, 주주가 아닌 나를 위해 일한다는 점, 위계가 없다는 점 등이 생산자협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한편 종종 자신이 직장인인지, 투사인지 아니면 자원봉사자인지 혼동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원해서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추가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제품을 판촉할 때 우리는 모두 투사처럼 강한 신념을 가지고 한다.” 브랜드를 알리는 일이라면 스콥티와 라 파브리크 뒤 쉬드 직원들은 시계를 보지 않고 일한다. 각종 축제, 전시회, 마트 판촉 등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말이다.  


글·샤를 마티유 Charles Mathieu (가명)
마르세유프로방스 도시발전위원회 공무원

번역·임명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왜 책을 읽는가> 등이 있다. 
(1) <라 프로방스>, 마르세유, 2011년 9월 24일.
(2) Private Brand goods: 유통업체가 개발한 고유 브랜드. 필파는 카르푸, 르클레르, 오샹에 PB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기사박스 1
협동조합, 일반기업보다 지속성 높아

● 2015년 프랑스 협동조합은 총 2,855개였다. 전년과 비교해 6% 신장한 수치다. (동일 기간 일반기업의 증가는 4%였다.) 고용인 수는 5만 1,500명이고 그 중 2만 7,330명이 조합원이다. 매출액 45억 유로를 기록했다. 

● 전체 협동조합의 65%는 독자적으로 설립된 것이고 13%는 건재한 기업이, 11%는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것이다. 나머지 11%는 단체가 전환된 것이다. 

● 직원
전체 66%의 협동조합이 10인 이하의 소규모 작업장으로 전체 협동조합 고용의 13%를 차지한다. 26%는 10~49명(전체 고용의 29%), 8%는 50명 이상 (전체 고용의 58%) 고용 중이다. 생산자 협동조합(SCOP)은 평균 21명,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SCIC)는 7명을 고용하고 있다.

● 업종
서비스: 1,350개 조합, 1만 8,400명
건설: 500개 조합, 1만 1,850명, 14억 유로 매출
산업: 375개 조합, 9,000명
교육, 건강, 사회복지: 250개, 5,550명
상업: 250개, 1,800명

● 수익
2014년 말, 협동조합 10개 중 7개가 수익을 내고 있다. 2015년 생산자 협동조합의 3년 생존율은 전년에 비해 3% 증가한 80%이다. (프랑스 일반기업의 3년 생존율은 71%다.) SCOP와 SCIC의 5년 생존율은 65%다. (프랑스 일반기업 50%)
출처: SCOP 총연맹, ‘2015년 활동보고서’. SCOP, SCIC, 기타 협동조합 


기사박스 2
회사 파산 시 직원들의 회사 인수는? 

회사가 파산할 경우 직원에게 우선매수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쟁취해야 할 사항이지만, 파산 전 재무상태가 악화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 행동에 나서는 것이 용이하게 회사를 인수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적 연대 경제에 관한 2014년 7월 31일 법(아몽법)의 주된 내용 중 하나다. 이 법은 회사가 매각될 경우 직원들이 인수제안을 할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사전정보를 제공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마크롱법에 의해 2016년 1월 1일부터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다. 사전 정보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행위무효 처벌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벌금만 내면 된다.  

생산자 협동조합 지역연맹(Urscop)은 ‘에코플라(Ecopla)법’ 채택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이 법은 회사의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인지돼 직원에게 경고절차가 개시됐을 경우, 직원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론알프 지방연맹 로랑스 뤼팽 회장은 법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상사법원이 개입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절대적으로 관련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 에코플라의 경우처럼 재무 상태가 명백하게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직원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분명 온당하지 않다.” 특히 기업의 청산절차가 개시됐을 경우 현행법은 직원의 일자리 구제에 앞서 채무 변제를 절차완료의 유일한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새로운 법규가 필요하다. 매각 계획안처럼, 일자리 유지가 상사법원 판결의 근거가 되도록 하는 새로운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