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경제모델, 지옥같은 ‘독일기적’

2017-11-30     올리비에 시랑 | 기자
     

독일의 구직자 수는 현재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비정규직 구직자 수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중반에 실시된 독일 사회보장개혁은 실업자들을 가난한 노동자로 만들었다. 바로 이 개혁이 프랑스 정부가 행정명령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 개정의 롤모델이다. 

 
아침 8시, 독일 베를린 판코우(Pankow)지역 고용센터의 문이 열렸다. 이미 안내창구 앞에는 열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 50대 남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우리의 질문에 답했다. “제가 왜 여기 있냐고요? 만약 그들이 보낸 소환장을 무시한다면, 지금 받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돈마저 못 받기 때문이죠. 그들은 우리에게 제안할 일거리도 없어요. 징 박힌 바지를 파는 일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그의 얼굴에 메마른 웃음이 번졌다. 한 달 전, 교사로 일하다가 36세에 실직한 한 여성은 판코우 지역 고용센터에서 섹스숍 점원 구인에 지원하라는 권고와 함께, 이를 어길 시 처벌 받는다는 내용의 우편물을 받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이 일화를 읽은 한 여성은, 직권남용 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밝히며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저도 고용센터에서 별별 일을 다 겪었는데, 이건 정말 너무하네요.” 
 
실업급여 수급자에게 사생활 보호란 없다
 
어느 공영주택 주차장, 베를린 실업센터의 ‘이동식 지원창구’가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30세 여성 노라 프라이타크는 <고용센터에 맞서 어떻게 내 권리를 보호하는가>라는 제목의 안내책자들을 미니버스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정리하고 있었다. “이 일은 2007년 개신교 교회에서 시작됐습니다. 타당한 이유조차 위협으로 이해할 만큼 많은 실업자들은 이런 제도 앞에서 수없이 비참함과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한 60대 중년여성이 화난 표정에 망설이는 기색으로 다가왔다. 낯선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불편한 듯했다. 월 500유로가 안 되는 퇴직연금으로 생활하기 힘들었던 그 여성은 고용센터에서 보조금을 추가로 받았으며, 얼마 전부터 비정규 시간제 일자리(‘미니잡’)인 청소를 하며 월 340유로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여성은 나지막하면서도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좀 봐주세요. 고용센터에서 받은 편지인데, 제가 고용센터에 수입을 신고하지 않았다면서 250유로를 돌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돈도 없을뿐더러, 첫날부터 제 수입을 신고했습니다. 한 번 봐주세요. 오류가 생긴 게 분명해요.”
 
한 상담직원이 그를 개인 상담 장소로 데려갔다. 어디를 상대로 이의신청을 하고,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상담이다. 가끔 미니버스는 시선을 피해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피소 역할을 한다. 프라이타크가 현재 이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하르츠 개혁 4단계의 여파죠. 실업자를 향한 비난이 극심해서, 많은 이들이 다른 이들 앞에서 자기 상황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 합니다.” 
 
‘하르츠 IV’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사회민주당(SPD)-녹색당 연립정권이 2003~2005년 마련한 ‘어젠다 2010’의 일환으로 노동시장 규제완화 과정에서 나왔으며, 그 이름은 개혁 입안자인 페터 하르츠 전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하르츠 IV’ 단계와 개혁 마지막 단계에서 장기 실업자(1년 이상 실업상태)에게 지급되는 사회부조와 실업부조를 하나로 통합해 고용센터가 정액 급여를 지급하도록 했다. 2017년 기준 1인당 월 409유로를 지급하는데,(1) 그들이 ‘고객’이라 부르는 해당 실업급여 수급자가 이렇게 적은 금액으로 구직활동과 재취업을 하는 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또한 수급자의 능력과 희망직종에는 무관하게 저임금 일자리면 된다. 그리고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서는 유럽에서 가장 강제적인 관리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2016년 말, 하르츠 IV 수급자는 600만 명이며, 이 중 공식 실업자는 260만 명, ‘활성화 정책’(직업교육, ‘코칭’, 1유로 일자리, 미니잡 등등)으로 인해 통계를 낼 수 없는 비공식 실업자는 170만 명,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의 자녀 수는 160만 명이다. 노동을 예찬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들은 부족한 사람, 한량 또는 최악의 부류로 묘사되기도 한다. 2005년 당시 볼프강 클레멘트(SPD, 사회민주당) 경제노동부 장관의 서문과 함께 <성실한 사람들이 우선. 사회국가 내 악용, 사기, 셀프-서비스 근절>이라는 제목이 적힌 경제노동부 책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생물학자들은 다른 생명체에 피해를 주며 먹이를 챙기는 생물을 ‘기생충’이라 부르기로 합의했다. 물론 동물세계에서 나온 용어를 인간 생명체로 확대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독일 일간지 <빌트(Bild)>를 필두로 여러 저속한 언론에서 ‘기생충 하르츠 IV’라는 표현을 많이 차용한다.
 
하르츠 IV 수급자의 삶은 전투에 가깝다. 이들의 최저생계비로는 집세를 낼 수 없다. 고용센터는 국가에서 지역별로 정한 상한액을 넘지 않는 조건으로 이들의 최저생계비를 부담한다. 프라이타크는 “여기 오는 사람들 중 1/3은 주거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베를린을 비롯해 여러 대도시의 집세가 급등하면서 직업센터의 보조금만으로 집세를 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여기저기 떠돌거나, 식비를 줄여 집세를 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50만 ‘하르츠 IV’ 수급자 중 40%가 정부가 정한 상한액을 초과하는 집세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용센터는 긴급 보조금을 지급하기는 하지만 매우 인색하다. 고용센터는 법적보호를 받는 직업알선소나 다름없는 감시권을 부여받는다. 은행계좌, 구매명세, 이동, 가정생활 또는 심지어 애정생활까지…. 사생활 어느 부분도 조사관의 모욕적인 레이더망을 피하기 힘들다. 주도권이 있는 독일 내 408개 고용센터 중 일부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2016년 말 니더작센 주(州) 슈타데(Stade)시(市)의 고용센터는 임신한 독신녀에게 섹스파트너들의 신원과 출생일을 요구하는 설문지를 보냈다고 한다.(2)
 
실업자를 저임금 노동자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1999년 6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슈뢰더 총리가 서명한 선언문을 보면, 그의 철학에 이런 노동정책이 이미 잠재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두 선구자는 선언문을 통해 ‘사회 기득권의 안전망을 개인책임을 향한 승리로 바꿀‘ 필요성을 주장했다. <유럽: 신중도·제 3의 길>이라는 제목의 해당 선언문에 ‘시간제 근로 또는 저임금 노동은 실업에서 취직으로 이동이 쉽기 때문에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고 그 이유를 명시했다. 한 마디로, 일하는 가난한 자가 일하지 않는 가난한 자보다 낫다’는 것이다. 쾰른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원 크리스토프 부터베게의 말에 의하면 이 표현은 ‘비스마르크 시절 이후 독일 사회국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데올로기적 본보기 역할을 했다.(3)
 
12년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하르츠 법’을 향한 고용주와 언론, 정치계의 칭찬이 그치지 않고 있다. “독일은 엄청난 개혁을 했다”(4)며 호의적 입장을 보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도 ‘독일식 모델’에 대한 찬양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신문 논설위원들이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한 사설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의 개혁단행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스타트업 국가’라는 표현을 쓴 에마뉘엘 마크롱 당시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주필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경제 번영을 위한 개혁 단행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의 사설을 썼다.(5)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이 계획 중인 고용시장 대규모 개선작업에 마크 페라치, 필립 아기옹과 함께 참여 중인 경제학자 피에르 카윅도 ‘독일경제의 이례적 성공’을 극찬했다. 게다가 그는 ‘하르츠 IV’가 ‘최선의 고용정책’일 뿐만 아니라, ‘독일인들, 특히 최저소득층도 자신들의 상황에 점점 만족해하는 반면 프랑스인들의 만족도는 정 체하고 있으므로’ 긍정적인 기운을 확산하기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6)
 
설혹 ‘최저소득층’이 고용센터 앞에서 줄을 서며 즐거운 기분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마크롱 대통령의 계획이 ‘독일 모델’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연속 두 번 일자리 제안을 거부하는 실업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실업자 관리 강화’와 노동법 개정 내용을 보면 그렇다. 더구나 마크롱 대통령보다 ‘하르츠 IV’ 정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은 없는 듯하다. 지난 7월 3일,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마크롱이 한 발언만 봐도 그렇다. 그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들을 정부가 지원 하의 생활보조 대상자로 영원히 두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효과적으로 짊어질 수단을 제공하며, 경우에 따라 강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프랑스 ‘하르츠 IV’ 주창자처럼, 마크롱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았다. 그는 “우리는 사회부조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 이것이 우리 모두를 포용할 진정한 정책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슈뢰더 전 총리의 슬로건은 매우 간결했다. 다름 아닌 (가난한 이들을 향한) ‘격려와 요구’다.
 
페터 하르츠의 선택은 실수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페터 하르츠는 자신이 만든 법안에 대해 긍정적인 명성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그가 2007년 유죄판결을 선고 받았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 페터 하르츠는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노조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기업운영 위원회의 노조 간부들에게 뇌물, 열대지역 해외여행, 매춘부를 제공한 혐의로 집행유예 2년과 50만 유로의 벌금형 판결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해, 어떤 독일인도 페터 하르츠의 이름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페터 하르츠는 자신을 칭찬하는 청중을 찾아 프랑스로 도피한다.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는 정기적으로 페터 하르츠를 초청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페터 하르츠를 만나, 어쩌면 자문관으로 기용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7) 이제 페터 하르츠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마크롱 대통령에게 전달한다.(8)
 
그러나 슈뢰더 총리 개혁이 시작됐을 때, 페터 하르츠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그가 개혁의 기반이 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개혁을 총괄한 것은 베르텔스만 재단이다. 게다가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의 관심은 ‘어젠다2010’ 구상과정에 집중됐다. 전문인력 확보와 회의진행을 위한 자금조달 방식, 보도자료 배포, ‘선의’ 네트워크 구성 등이 이 과정에 속한다. 뒤스부르크 대학교 공법(公法) 교수 헬가 스핀들러는 “베르텔스만 재단에서 진행한 단계별 준비, 부속 및 후속 작업이 없었다면 하르츠 위원회의 제안과 법안 해석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평가했다.(9) 심지어 베르텔스만 재단은 위원회 위원 15명에게 실업자 관리 정책에 있어 선진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5개국(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영국)에 출장조사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10)
 
2002년 8월 16일, 페터 하르츠는 슈뢰더 총리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당시 슈뢰더 총리는 향후 2년까지 200만 명이 다시 일하고 있을 것이라 단언하며 ‘실업자를 위한 새로운 날’이라고 기뻐했다. 총 344쪽 분량으로 작성된 위원회 보고서는 영어식 독어 ‘뎅글리쉬(Denglish)’를 섞인 경영전문용어를 사용하며 13가지 ‘혁신 구성요소’를 담았다. 예를 들면 ‘Controlling’, ‘Change management’, ‘고령 경제활동을 위한 Bridge system’, ‘새로운 자활 근로와 자원봉사’ 등의 표현들로 가득하다. 해당 보고서에서 고용센터는 ‘고객을 위해 개선된 서비스’로 서술됐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2005년 1월 1일 발효된 법안은 노동시장 규제완화를 진두지휘하는 ‘어젠다 2010’의 다른 ‘개혁안’과 긴밀히 연결된다. 한 마디로, 실업자들을 임금 깔때기에 집어넣기 위해서 고용주를 위한 넓은 깔때기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저임금에 대한 면세, 월 급여 400~450유로의 미니잡 신설, 비정규직 고용 제한 해제, 장기실업자에게 일을 준 일용직 소개소에 보조금 지급 등이다. 돈을 향한 열망은 고용주를 사로잡았고, 특히 서비스 직종에서 두드러졌다. 고용센터로부터 원기왕성한 지원군을 얻은 고용주들은, 국가에서 하사한 횡재를 적극 활용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저임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용센터에 줄을 선 실업자들을 고용주들이 잘 활용한 결과, 비정규직은 2000년 30만 명에서 2016년 1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같은 시기, 월 979유로 이하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18%에서 22%로 증가했다. 독일은 2015년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는데, 2017년 최저시급이 8.84유로로 도입한 이후 인상 폭이 거의 없었다. 현재 경제활동인구 470만 명은 여전히 월 최대급여가 450유로인 미니잡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11)
 
결국, 독일은 실업자들을 가난한 사람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수급자의 자녀’로 낙인찍힌 청소년들
 
‘하르츠 IV’는 의무적으로 비정규직을 제공하는 부서처럼 운영된다. 제재의 위협으로 인해 ‘고객’들은 항상 함정 앞에 놓여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63세의 위르겐 쾰러는 평소 프리랜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한다. 대형회사와의 가격경쟁으로 인해 먹고 살기 충분할 만큼 일이 들어오지 않자, 고용센터에 등록한 그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고용센터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새벽 4시에 일용직소개소를 방문해,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당일 저녁 급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안전을 위해 공사장용 신발을 신고 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런 신발이 없을뿐더러 건설현장에서 일해본 적도 없습니다. 제 나이에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쾰러가 법정에서 정책의 부당함을 제기할 유일한 방법은 이의신청인데, 보통 이의신청 기한은 너무 짧다. 그는 보조금의 10%, 30% 또는 100% 삭감조치를 당하기 전에 이의신청 결과가 나오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고용센터의 압박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15~17세인 하르츠 IV 수급자의 자녀들조차도 말이다. 고용센터가 가족수당으로 월 311유로를 지급하는 대신, 고용센터는 수급자의 자녀들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 그들이 수업을 받는 시간에도 말이다. 고용센터에서는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경직된 분위기로 일자리에 대한 ‘조언’을 하는데, 만약 아이들이 상담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생활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행동을 이마에 ‘하르츠 IV’로 낙인찍힌 청소년에게 보장된 교육적 효과로 봐야 하는 것인가. 
 
독일통합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 회원인 위르겐 쾰러는 무료 변호인을 만나 제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이런 행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 2016년 고용센터는 약 100만 건의 제재를 집행했는데, 1인당 평균 108유로를 급여에서 선공제하는 방식이다. 고용센터의 감독기관인 독일연방노동청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해, 고용센터는 12만 1천 건의 소송을 당했고, 그중 60%는 기각됐다. “고용센터의 제재 사유는 정말 황당해서, 제대로 준비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업자들 중 대부분은 자기 권리를 잘 몰라서 변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변호를 전혀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쾰러는 설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2003~2004년, 수만 명의 실업자와 노동자들은 월요일마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 모여 슈뢰더 개혁을 저지하는 행진을 했다. 동독지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989년 가을에 일어난 정권에 반대하는 ‘월요일 시위’를 참고한 슬로건이 등장했고, 이후 시위는 신속하게 서독지역까지 확대되면서 뒤따르지 않으려 한 노동조합단체들을 덮쳤다. 베르디(Ver.di)의 경제분야 담당자 랄프 크래머는 설명했다.
 
“노동조합은 매우 주저했었습니다. 특히 독일 노동조합총연맹(DGB) 대표와 베르디(Ver.di) 대표가 하르츠 위원회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조합의 위치는 더욱 애매했습니다. 게다가 하르츠 위원회에는 국회의원 2명, 대학교수 2명, 고위 공무원 1명과 도이치 뱅크, 화학 기업 BASF, 맥킨지 연구소 컨설팅 등 ‘최고 경영자’ 7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노조 운동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당(SPD)과 매우 가깝습니다. 독일 집권 여당은 사회민주당이었기 때문에 슈뢰더 개혁은 분명히 강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항은 더 셌을 것입니다.”
 
2003년 11월, 노동조합 단체를 제외하고 열린 베를린 시위에 10만 명이 모였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많은 노동조합원들이 참여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베르디(Ver.di) 입장에서 슈뢰더 개혁은 저임금 시장 활성만이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지도부는 마지못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라고 랄프 크래머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5개월 후, 새로운 시위가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쾰른에서 열렸고, 개혁 반대자 5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전쟁 이후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이번에는 노조 지도부가 행진대열 앞에 섰다. 
 
“당시 시위 열기가 계속 이어졌다면, 아마 우리가 승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독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배권을 잃을 게 두려워, 이후 다른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시위’는 고립됐고, 결국 활력을 잃고 끝나버렸습니다. 역사적 순간이 될 수 있던 기회를 놓친 거지요. 독일 노동조합 문화에 대립은 없습니다. 민주적으로 뽑힌 정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 방식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아쉽습니다.”
크레머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에게는 프랑스가 롤모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독일노조는 그들의 실패를 바탕으로 전략 전환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비스노조 베르디(Ver.di)가 속했지만 금속·화학노조의 영향력이 더 큰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처럼 베르디(Ver.di)도 다를 게 없었다. 베르디(Ver.di) 노조 지도부는 ‘정치적’ 파업의 위법성 토론, 특히 노조가 임금 노동자 이해와 상충함에 따라 해롭다고 판단된 법에 맞서 작업 중단 파업을 금지한 독일 법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파업이요?” 독일노동조합총연맹 연방지도부 위원이자 경제 분야 담당 메어다트 파안데는 ‘총파업’이라는 말에 눈썹을 추켜세웠다. 이어 그는 “우리가 대표로 있는 산업분야에서 임금인상 협상에 실패할 때만 파업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의 정당성은 노동조합원들이지, 길거리가 아닙니다. 여기는 파업을 밥 먹듯 하는 남유럽 국가가 아닙니다.”
 
말이 많고 열정적인 파안데는 크래머가 묘사한 독일노조 문화를 잘 보여줬다. 그는 하르츠 IV 실업자와 원래 일하던 분야에서 밀려나 비정규직이 된 사람들보다, 자신이 아는 고용주에 더 관심이 많으며 ‘노조와 협력하는 고용주들의 능력’을 칭찬한다. 그는 힘줘 말했다. “저도 당연히 하르츠 IV에 포함된 제재방식과 비정규직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독일하원(Busdestag)에서 투표한 법은 우리 관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관련 합의 내에서 우리의 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안데가 말하는 ‘합의’에 속하는 분야는 금속산업, 화학산업 뿐이다. 이런 가운데, 서비스 산업은 점점 늘어나는 저임금 노동을 흡수하고 있다.
 
그래도 하르츠 법 반대 집회는 독일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2003년부터 당원 20만 명이 탈당하면서 휘청거린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반대시위 여파로 상당히 약해졌다. 또한 슈뢰더 전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 내 반대파가 2005년 독일 민주사회당(PDS)의 신공산주의자들과 통합해 좌파당(Die Linke)을 만들면서 정치풍경도 바꿔 놓았다. 현재 좌파당은 독일 하원에서 하르츠 법안 폐기를 요청하는 유일한 당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을 지키고 서로 돕기 위한 실업자들의 협력조직망이 확대됐다. 예를 들면 베를린 베딩(Wedding) 지역에 자리를 잡은 바스타(Basta)는 베를린 고용센터에 호전적인 방문객을 정기적으로 보낸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의 열정적 개혁주의자들을 막을 방법에 대해 논의 중이고, 이를 많은 독일노조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의 개혁은 저임금을 부를 위험이 있고, 그 여파가 우리에게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디(Ver.di) 간부 디르크 히르쉘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랄프 크래머가 덧붙였다. 
 
“우리에게 프랑스는 여러 측면에서 롤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는 비극적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노조가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고, 우리보다 더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기자, 『Boulots de merde! Du cireur au trader, enquête sur l’utilité et la nuisance sociale des métiers 빌어먹을 직업!: 구두닦이부터 트레이더까지 직업의 유용성과 사회적 문제에 관한 조사』(La Découverte, 2016)의 공동저자.
 
번역·윤여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하르츠 IV’ 수급자가 다른 사람과 동거할 경우, 지급액은 368유로까지 떨어진다. 여기에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의 연령에 따라(0~6세 237유로, 7~14세 291유로, 15~18세 311유로) 지급액이 추가된다. 
(2) ‘Jobcenter fragt nach Sexpartnern per Fragebogen’, Gegen Hartz IV 관련 정보 사이트, www.gegen-hartz.de
(3) Christoph Butterwegge, <Hartz IV und die Folgen. Auf dem Weg in eine andere Republik?>, Beltz Juventa, Weinheim, 2015.
(4) ‘Macron : “Je veux conforter la confiance des Français et des investisseurs”(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국민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길 원한다’, <Ouest-France>, Rennes, 2017년 7월 13일.
(5) Arnaud Leparmentier, ‘Les cent jours de Macron seront décisifs (남은 임기를 결정할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르몽드>, 2017년 5월 10일.
(6) Sophie Fay, ‘Macron va-t-il faire du Schröder à la française?(마크롱은 프랑스의 슈뢰더가 될 것인가)’, <L’Obs>, 파리, 2017년 5월 13일. 피에르 카윅 관련 기사. 엘렌 리샤르, ‘Théorème de la soumission (복종의 정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0월호.
(7) ‘L’ancien DRH de Gerhard Schröder ne conseillera pas Hollande (페터 하르츠, 올랑드 대통령에게 조언하지 않을 것)‘, <르몽드>, 2014년 1월 28일.
(8) ‘Peter Hartz : lettre à Emmanuel Macron (페터 하르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께 보내 편지)’, <Le Point>, Paris, 2017년 6월 21일.
(9) Helga Spindler, ‘War die Hartz-Reform auchein Bertelsmann-Projekt?’, dans Jens Wernicke와 Torsten Bultmann(sous la dir. de), Netzwerk der Macht -Bertelsmann. Der medial-politische Komplex aus Gütersloh, BdWi, Marbourg, 2007.
(10) Cf. Thomas Schuler, Bertelsmannrepublik Deutschland : eine Stiftung macht Politik, Campus, Francfort, 2010.
(11) 출처: 독일연방노동청; 독일 경제사회학연구소(WSI) 보고서 제 36호, 2017년 7월.
 
박스기사
행복한 빈곤층

“일을 할 수 있지만, 원치 않는 사람은 결코 연대의 권리를 누릴 수 없다. 독일에는 게으를 권리가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인터뷰, 독일 일간지 <빌트(Bild)>, 2001년 4월 6일.

“임금 비용은 임금 노동자에게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고용주들의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 정부 지출을 줄이고, 개인의 책임을 격려해야 하며, 각자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해야 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연방의회 연설, 2003년 3월 14일.

“가난은 금전적 빈곤이 아닌 정신적 빈곤이다. 하위계층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교양이 없는 것이다. (…) 빈곤은 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바로 하위문화의 결과다.”
발터 뷜렌베버, 논설위원, 독일 주간지 <슈테른(Stern)>, 2004년 12월 16일.

“빈곤은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 한 가정에서 중요한 것은 돈을 잘 쓸 줄 아는 것이다. (…)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나쁠 뿐 아니라, 제철 채소로 스튜를 해 먹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든다.”
레나테 슈미트, 독일 가족부장관(사회민주당, SPD), 독일 일요신문 <빌트 암 존탁(Bild am Sonntag), 2005년 2월 27일.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권리도 없다.”
프란츠 뮌터페링, 사회민주당 당수, 부총리 겸 연방노동사회부장관, 독일 연방의회에서 사민당원들 앞에서 연설, 2006년 5월 9일.

“만약 당신이 몸을 씻고 면도를 하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쿠르트 벡, 사회민주당 의장, 한 실업자를 향한 발언, 독일 신문 <비스바데너 탁블라트 (wiesbadener tagblatt)>, 2006년 12월 13일.

“한 연구원이 다음 내용을 확인해줬다. 사는 데 월 132유로면 충분하다!”
독일 일간지 <빌트(Bild)> 기사 제목, 2008년 9월 6일.

“하르츠 IV 수급자 증가는 담배와 주류 산업에 기여했다.”
필립 미스펠더, 기독교민주연합당(CDU) 국회의원, 하르츠 IV 월 급여 4유로 증가에 대한 연설에서, 2009년 2월 15일.

“하르츠 IV를 둘러싼 논쟁은 사회주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 (…) 국민을 향해 노력 없는 번영을 약속하는 것은 또 다른 로마 쇠퇴로 가는 길이다.”
귀도 베스테벨레, 독일 자유민주당(FDP) 총재, 부총리 겸 외무부장관, 독일 일간지 <디 벨트(Die Welt)>, 2010년 2월 11일.

“실업급여를 받는 대신, 사람들은 공익적인 일을 해야 한다. (…) 베를린의 경우 개똥을 개주인이 제대로 치우는지 감시하기 위해 분야별로 20명의 하르츠 IV 실업수급자를 고용할 수 있다. (…) 이는 일석이조다. 실업자에게는 새로운 일,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도시를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
클라우디아 함머링, 녹색당 국회의원, 독일 일간지 <빌트(Bild)>, 2010년 4월 6일.

“우리는 고용주들에게 값싼 인적 물자를 제공한다.”
베를린 고용센터 직원, 독일 일간지 <디 쥐트도이체 차이퉁 (Die Süddeutsche Zeitung)>에서 인용, 2015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