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차모르, 잠재적 체르노빌인가?

아르메니아 원자력발전소 방문기

2017-11-30     다미앵 르포코니에 | 기자

1986년 체르노빌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대중에게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원자력 에너지 확산 움직임을 저지했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가 탈원전을 망설이고 있는 데 반해 어려운 국가에게 원자력 에너지는 좀 더 까다로운 문제이다. 심지어 아르메니아처럼 원자로가 지진대에 위치한 곳도 말이다.

아르마비르 인근 메차모르 원자력발전소 울타리에서 약 100m 떨어진 토마토밭. 한 무리의 여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채소밭으로 둘러싸인 냉각탑 4개는 거대한 아라가트 산(4,095m) 속에 있다. 아르메니아 내 최고봉은 북으로 35km 떨어진 곳에, 터키 내에서 가장 높은 정상인 아라라트 산(5,165m)은 남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다. 토마토가 가득한 양동이를 들고 여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저희 남편들은 다 발전소에서 일하는데,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어요.” 50대로 보이는 아이게고차칸의 말에, 그의 친구 디드도라가 덧붙였다. “물론, 또 지진이 일어날까 겁나기는 하지요.”

메차모르 발전소는 소비에트연방 시절 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닿은 고위험 지진대에 지어졌다. VVER-440형인 첫 번째 원자로는 400MW급으로 1976년부터 전기를 공급했고, 1979년에 발전용량이 같은 두 번째 원자로가 작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988년, 여기서 북쪽으로 7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스피타크 시에서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해 2만 5천 명 이상이 목숨을, 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정부는 예방차원에서 원자로 2기의 작동중단을 결정했다. 

1991년 독립한 아르메니아는 극심한 에너지난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1)과 그때부터 시작된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봉쇄 조치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1995년 정부가 원자로 2호기 재가동을 결정하면서, 이웃 나라에 우려를 끼치고 있다. 훗날, 유럽연합(EU)의 한 특파원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원자력발전소는 연식과 지진 활동도가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전 유럽에 엄청난 위험이 되고 있다.”(2) EU는 해당 발전소 폐쇄에 1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금액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로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안전규정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최단시간 내에 가동이 중단돼야 한다는 집행위원회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EU 대외활동부 샤론 자르브는 설명했다.

“안전하다”면서도 공개는 거부하는 담당자들

발전소에서 30km 남짓 떨어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사무실에서 만난 아레그 갈스티안 에너지인프라 천연자원부 전직 차관이자 현직 고문은 “우리에게 이 발전소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정리했다. “1990년대 초반에 아르메니아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습니다. 세반 호의 물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나무를 엄청나게 베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와 환경을 위해 재가동이 절실했습니다.” 현재 공식적인 수치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가 아르메니아 에너지 수요의 40%를 공급한다.

현지 비정부기구(NGO)가 국민들에게 발전소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기적으로 비난하는 가운데, 우리는 발전소 방문 허가를 받았다. 메차모르 주민들에 의하면, 발전소 가는 길을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관용차 행렬이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직원들은 검색을 받고 금속 탐지기를 지나야 한다. 건물 사이사이로 군인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순찰 중이었다. 소비에트연방 시대의 개방형 원자력 ‘박물관’으로 들어선 우리는 곧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 우리를 맞이한 모브세스 바르다니안 소장은 “1988년 지진 발생 시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았으며, 1995년부터 1,400번 이상 기술개선 작업이 이뤄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시적인 작업 중에서는 지진 발생 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원자로 외벽에 덧댄 금속 보강판, 그리고 원자로와 터빈이 있는 건물 등의 단을 지지하는 커다란 가새(벽체구조에서 수평 방향의 힘에 대한 보강재로 대각선 방향으로 빗대는 경사부재)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발전소 운영진은 이 거대한 발전실의 ‘아래쪽’ 사진 촬영을 전면금지했다. 뒤엉킨 파이프 무더기 속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다. 1989년 가동 중단됐지만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원자로의 먼지 쌓인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가동 중인 원자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연결로가 하나 있었다. 이 원자로는 중단된 원자로와 똑같은 모양이었지만 유지관리 상태는 한층 나은 듯했다. 임시로 수리한 흔적처럼 보이는 금속 재료편이 증기관 접속부에 널려있었다. 발전소의 고위험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설비 하부에 일본기술로 제작된 유압완충장치가 64개 설치됐다고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완충장치가 파도를 탈 겁니다.” 바르함 페트로시안 아르메니아원자력연구소 아르마톰 소장이 서프보드를 타는 흉내를 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바르다니안 소장은 “발전소는 지반가속도 0.35g, 최대 0.47g 상태에서 정상 모드로 작동 가능합니다”라고 건물의 지진 위험도 산정에 쓰이는 수치인 최대지반가속도까지 언급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국 전력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1988년 지진이 일어났을 때 “발전소 근처 최대지반가속도는 0.50g을 넘었고 1g까지 올라갔을 수 있다”고 했다. 1970년에 많이 쓰였던 바늘과 다이오드로 수치를 나타내는 아날로그식 표시창이 빽빽한 관제실에서, 전력 출력계 바늘이 빨간 색으로 표시된 258~362MW 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관제실 곳곳에 산재된 표시등과 동일한 값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이 보였다. “디지털 비상구조시스템으로 외부에서도 원자로를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소장이 자랑했다. 원자로실 주위에 격납계통이 없는 이유에 대해 묻자 바르다니안 소장은 “기초 지반이 그 무게를 감당 못할 것”이기 때문에 격납용 구조물을 건설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1976년부터 발전소 내에 보관된 방사성 폐기물 역시, 또 하나의 민감한 과제다. “경험상 방사성 폐기물을 50년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방사성 폐기물 저장 부지의 상태를 보여 달라는 요청은 거절했다. 메차모르를 수차례 방문했던 프랑스 방사성폐기물관리기구(Andra) 국제부장인 제라르 우주니앙은 “폐기물 드럼통이 발전소에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에 방사선이 주변으로 누출되지 않도록 적재돼야 합니다. 발전소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폐기물을 쌓아뒀다가 발전소 해체철거 시 폐기물과 함께 처리하는, 구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처리 방식을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드럼통이 노화해서 애초에 설계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작업이 수월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을 300년간 보관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남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있는 메차모르 시. 발전소 직원 1,700명과 그 가족들의 거주를 위해 세워진 이곳은 낡은 고층 건물들로 가득했다. 주민 대부분은 IAEA의 정기 방문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이 기구의 전 세계적인 명성에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1977년부터 제염기술자로서 메차모르에서 일하고 있는 62세 에밀리아는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IAEA는 보통 2년에 1회 전문가 집단을 이곳으로 파견한다. 국제연합(UN) 산하에 있는 이 기구의 원자력안전부 부장 그레그 르첸트코프스키는 “지진대비 조치를 마련하고 일부 안전시스템을 업데이트한 점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원자로의 상태, 아르메니아의 작업 방법, 지진 위험성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 파견단장인 그는 “IAEA의 인터뷰 규정 때문에 보다 기술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없어서 죄송하다”고 답변했다.

장애를 얻은 아이들, 피폭으로 인한 것인가?

피폭 관련 루머가 돌고 있었다. ‘아르마비르의 발전을 위한 구심점’이라는 이름의 현지 NGO 대표인 나이라 아라켈리안은 발전소 인근에 사는 가족 30세대 아이들의 장애가 피폭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들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단체 모임을 마련했다. 그러나 발전소 임원진도 초대된 그 자리에서, 누구 한 명 나서서 발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좀 더 조심성을 발휘해, 집에서 만난 초비나르 하루티우아니안이 털어놓았다. “몇 년 동안 자주 모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모이지 않아요. 시력을 잃은 아이 둘, 또 다른 장애가 있던 아이들이 기억나네요.” 그는 우리에게 지적 장애가 있는 20세 아들 로스톰을 소개하며 말했다. “유전병일 수가 없어요. 우리 집안에도 남편 집안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거든요. 남편이 장비 운전사로 발전소에서 일해요. 위험지역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었나봐요.” 하루티우아니안은 말을 이어갔다. 예레반 시장(1992~1996)과 대통령 자문(1996~1998)을 지낸 바하근 하차트리안은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발전소 노동자였던 그의 친구가, 우리와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발전소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로 발전소 옆을 지날 때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자로의 금속소재 연식을 고려하면, 더 우려를 떨칠 수 없어요.”

2012년 지진 위험성과 관련해 아르메니아 정부를 지원하려고 방문한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의 연구원들은 아르메니아 ‘원전 사고 발생 시 국민 보호대책‘의 일환으로 배포된 안전지침을 보고 놀랐다. “그들이 제공한 안전지침에는 (…) 건물 1층에 있거나 지하실로 대피하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강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 내부에 있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여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나면 우선 대피로를 확보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지진 위험성을 평가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단층(斷層: 외부의 힘으로 인해 지층이 끊어져 어긋난 지질구조-역주)의 인접성이다. 공식적으로 가장 가까운 단층은 “발전소로부터 19㎞ 이상 떨어져 있으므로, 발전소는 충분히 지진 영향권 밖에 있다”고 평가됐다. 의원 출신으로 ‘아르메니아 녹색연합’이라는 NGO 소장을 맡은 하코프 사나사리안은 정부가 1992년 러시아 과학학술원의 물리연구소 소속 연구원 4명이 아르메니아 지진대책부서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에는 “발전소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바로 근처에 있다. 아라가츠-스피타크 판과 남-예레반 판이 접하는 곳에 있어서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단층인데, 발전소에서 동쪽으로 50㎞ 이내로 떨어진 곳에서 851년부터 893년까지 적어도 메르칼리 진도 Ⅸ, 리히터 규모 6.5의 치명적인 강진이 연속 발생했고, 이는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나았다”라고 기술돼 있다. 11세기 역사가 토브마 마르크루니도 메차모르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구 수도 드빈을 무너뜨린 893년 지진을 언급한 바 있다.(3) <아르메니아 내셔널 아틀라스>에 따르면 9세기부터 발전소 주위 반경 80㎞ 이내의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5.5에서 7.5 사이의 지진이 스무 차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1830년에 규모 6의 지진이 있었다는 언급도 있는데 발생한 곳은 바로 메차모르 지역이다.

위험 속에서도 포기하기 힘든 원자력의 유혹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우즈베키스탄 과학학술원의 발렌틴 이바노비치 울로모프 교수는 “우리의 전문 분야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파견 답사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른 공저자인 모스크바 과학학술원의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로고진 교수에게 연락했지만 당시 파견단이 단층의 존재 여부를 현장에서 확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지진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연락한 에너지부의 아르템 페트로시안은 “해당 문서는 일반인이 열람할 수 없다”고 답했다. 

방사선에 피폭됐을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의료 시설은 메차모르 종합병원이다. 경영진은 주민들에게 배포할 요오드 알약을 비치하고 있다고 확인해줬다. 하지만 건물 상태를 보면 그 말에 의구심이 든다. 위층은 낡았고 벽에는 전부 곰팡이가 슬었다. 게다가 큰 구멍까지 보였다. 종양학과 책임자인 사무엘 알렉사니안은 “러시아인들이 떠나면서 발전소 당국은 더 이상 병원에 지원할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산부인과는 문을 닫았고, 방사선과도 마찬가지였지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예레반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로 옵니다”라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위험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아르메니아는 원자력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2015년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를 2026년까지 연장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자금을 지원받아 현재 발전소 위치에 새로운 발전소를 신축하는 기간이다. 갈스티안 전직 차관은 설명했다. “새로 건설되는 원자로의 용량은 600~1,000MW, 아니 확실히 1,000MW급입니다. 그러니, 기술과 규모와 용량을 결정하기까지 대략 9년 남은 셈이지요.” 


글·다미앵 르포코니에 Damien Lefauconnier
기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필립 데캉 Philippe Descamps, ‘Etat de guerre permanent dans le Haut-Karabakh(영원한 분쟁지역 카라바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12월호.
(2)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아르메니아-유럽연합 협력 전략 2007-2013 관련 문서 참고.
(3) Emanuela Guidoboni과 Jean-Paul Poirier이 저서 <땅이 흔들렸을 때(Quand la terre tremblait)>(Odile Jacob, Paris, 2004)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