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통합국가를 향한 끊임없는 열망

2017-11-30     히참 알라위 | 하버드대 연구원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된 시대에서도 아랍의 통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단일 아랍국가를 향한 이상은 20세기 초부터 그 모습을 갖추고자 했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 덕분에 아랍 국가들은 협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범아랍주의에 대한 오랜 꿈은 사라졌지만, 보다 나은 정치·경제적 통합의 꿈은 아랍국가에서든, 비아랍국가에서든 중요한 목표로 남았다. 

사실상 관련국들 대부분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자국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국가들 간에는 차이점이 많다. 인구의 경우, 이집트는 약 1억으로 작은 왕국 바레인 인구의 100배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알제리 같은 나라는 탄화수소 자원이 매우 풍부하지만, 튀니지나 요르단 같은 나라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기관도, 정치적 의지도 부족한 나라가 있는 반면, 일자리는 없어도 교육받은 시민들이 투쟁하는 나라도 있다.(1) 한쪽에서는 전 세계로 식량을 수출하기 위해 농업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아랍세계는 복잡하게 뒤얽힌 지역이지만 교류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곳이다. 보다 나은 지역통합은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경제동맹은 교역 및 투자 면에서 세계 다른 지역과의 갈등 관계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국가들이 문제해결에 있어 폭력을 최소화하고 외교로 해결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경제동맹은 평화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물 공급, 환경, 난민수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촉진할 수도 있다. 

무엇이 아랍 통합국가를 가로막는가?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가장 높은 산맥은 아랍 국가들의 경제적‧사회적 상호협력이 어렵다는 점이다. 근동지역과 북아프리카지역은 북아메리카와 대다수의 유럽 국가, 라틴아메리카나 동아시아처럼 동질성이 높은 지역에 비해 협력이 어려워 보인다. 이 지역 국가의 관세장벽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국제교역이 매우 부진한 편이다. 인프라시설과 도로교통망을 봐도 그렇다. 이 지역 국가 간 투자는 매우 낮으며, 그나마도 걸프만 지역 왕국의 주도 하에 있다. 학제 및 대학 시스템의 경우, 각 제도 간 호환성이 거의 없다. 경제구조를 다각화하지 않았고, 석유 수익 중 상당 부분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국민들을 억압하거나 전쟁을 선동하는 정책에 사용됐다. 이렇게 석유 수익은 계속 악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랍 세계의 분열이 심해졌고, 지도층과 국민들 간의 골이 더 깊어졌다.

정치적 장벽도 존재한다. 이들 국가 대부분이 군주국이거나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지역통합이 장기적으로 이롭다 해도 그보다는 정권유지에 주력할 것이다. 또한 어느 때보다 외세의 개입이 심각해 그로 인한 지정학적 분열이 심각하다. 복잡하게 얽힌 수니파 동맹과 시아파(수니파에서는 시아파를 위협으로 간주함) 간의 내전이 한창이다. 수니파 내부에서도 3가지 진영, 즉,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술탄’, 이슬람주의 운동, 그리고 IS로 대변되는 살라피 지하디즘이 대립 중이다. 시아파는 이란,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 이라크(쿠르디스탄 제외) 및 예멘의 후티 반군과 연합하고 있다. 하지만 분열의 원인이 되는 쟁점이 뒤덮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니파 내부에서 술탄과 무슬림형제단은 완전히 상반된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지하디스트를 향한 적대감은 같다. 술탄은 사회의 보호자이자 국가의 수호자로서 군대와 군주제의 역사적인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간 갈등에서도 드러났듯, 항상 후계자들이 이 전통에 합의된 견해를 가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에 대한 공동의 가치를 중시하며, 대중주권을 강조한다. 

경제통합의 경우, 유럽모델을 모방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유럽은 강력한 국가를 기반으로 건립됐다. 그리고 국가는 흩어져있는 영토와 국민들을 통합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정치 엘리트가 지휘한 이 과정은, 국내 부르주아지의 이익과 상반됐다. 정치 엘리트는 자신들의 영역확장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프러시아의 통일,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어로 ‘부흥’이라는 뜻)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재산업화는 물질적인 진보이자 민주적인 진보로 해석될 수 있다. 재산업화는 정치와 다원주의를 구성하는 두 주요축인 노사 관계에까지 경제적 영향을 미쳤다.
 
반면 아랍권은 유럽의 통합과정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아랍의 봄’이 지나고 6년 후, 아랍지역은 내전으로 분열됐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위기는 그 중 일부에 불과했다.(2) 이라크가 몇 번이나 내부적으로 무너질 뻔했고, 그 동안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 여러 국가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IS와 또 다른 지하디스트 단체가 갑작스럽게 출현하자, 자국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이들 단체를 매력적으로 받아들였다.

‘아랍성’에 내포된 독보적인 경험과 힘

하지만 아랍권은 다른 지역이 거의 겪지 못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랍성이라는 개념에는 공통의 언어나 정치규범 등의 문화를 널리 전파하는 힘이 있다. 통신기술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중반 범아랍주의가 급속하게 확산한 것을 보면 국경을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정치적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십 년이 흐르고 이슬람교는 같은 방식으로 확산됐지만, 원대한 국가를 향한 꿈은 종교적 공동체에 대한 약속으로 대체됐다. 현재의 무슬림형제단과 IS는 이 과정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아랍통합은 아랍세계를 구분 짓는 경제 및 정치적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확고한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아랍 국가들은 문화적 유사점과 언어적·지리적·역사적 유산을 공유한 동일 문명에 속한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국가에 대한 생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오스만 제국 말기였다. 현지의 사상가들은 일체의 외세 지배를 거부하고 긍지를 찾은 사람들을 기반으로 하는 ‘공통된 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아랍연맹이 창설되고, 이집트에서 가말 압델 나세르가 정권을 잡으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다자간 포럼을 만들고 협력을 촉진하려 한 아랍연맹은 식민지 독립 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첫 번째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1967년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군에게 참패한 6일 전쟁 이후 범아랍주의라는 이상은 무너졌지만, 오늘날까지 기억 속에 남아 그 반향이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초 이후 20년 동안 이 이상을 구체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의 합병에 따른 아랍연합공화국의 수립을 꼽을 수 있다. 아랍연합공화국은 2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지만, 1963년에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를 연합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1958년에는 요르단과 이라크의 하심 왕국끼리의 아랍 연방이 결성됐으나 얼마 가지 못했고, 1972년에는 아랍공화국 연방에 이집트, 수단, 리비아가 합류했으나 이 역시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게 관심을 쏟기 전에 주변국들(튀니지,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에 연합을 제안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 연방결성의 원대한 꿈은 종말을 고했다. 요르단의 ‘검은 9월’ 내전, 서사하라를 둘러싼 모로코와 알제리 간 분쟁, 이란혁명, 이라크-이란 전쟁 및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체결로 인한 아랍합의 파기 등…. 이와 같은 지정학적 충돌은 그렇지 않아도 멸망 직전이던 범아랍주의 이상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후 10년 간 아랍세계는 걸프협력회의(CCASG), 아랍마그레브연합(AMU)과 아랍협력위원회(ACC)와 같이 아랍연맹보다 소규모인 다자간 기구를 신설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이 단체들 중 현재도 그 역할을 지속하는 곳은 걸프협력회의(CCASG)가 유일하다. 1990년대에 발발한 걸프전으로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범아랍주의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한 아랍국가가 다른 아랍국가를 침입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부국과 빈국 간의 오랜 반목에 불이 지펴졌고, 석유를 생산하는 왕국과 그렇지 못한 국가들 간의 갈등이 계속 깊어졌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 사건은 지역 내 서구 개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석유 권력’의 쇠퇴, 그로 인한 변화들

그러나 범아랍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범아랍주의의 문제는 애초에 그 창시자들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독일의 민족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교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독일 국민의 문화적인 ‘순결함’과 다른 이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이론화한 교리였다. 범아랍주의 역시 자신들의 우월의식으로 인해 쿠르드족, 유대인, 기독교인, 베르베르족 등의 민족적·종교적·언어적 소수자를 편입시키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했다. 범아랍주의는 지도자들의 독재적 행보에 곧잘 이용됐다. 지도자들은 아랍민족 간 국경을 폐지하는 데는 찬성했으나, 권력분립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범아랍주의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그것은 도덕적 가치나 낭만적인 이상만으로 새로운 지역통합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취약하고 실패한 지역을 범아랍주의로 통합하려면, 기존의 국경에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같은 공간 내에서 다양한 지역이 고르게 이익을 얻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범아랍주의가 더 이상 소용없다고 해도, 국가 간 대립을 해소하려는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아랍국가 간 상호이익 추구는, 경제적 측면에서 더 많은 통합을 가져올 것인가? 오히려 석유와 가스 수익이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는 것을 보면 긍정적인 답변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독재정권이 석유 수익을 임금과 보조금으로 분배하면서 억압정책 자금으로 활용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석유‧가스 수익은 외국인보조금, 이민노동자기금에 투입되는 등의 방식으로 아랍세계 내에서 순환돼왔다. 하지만 석유 수익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석유수출국이 이를 이용해 끊임없이 주변국의 문제에 개입하며 분쟁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급락하면 사회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없어지므로, 개입에 대한 열의가 줄게 된다. 빈국에는 석유수출국들의 원조와 이주노동자 기금의 분배가 중대한 자원이기 때문에, 빈국은 이 불안정한 효과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난 20년간 석유수출국들은 수익 중 상당 부분을 국부펀드에 투자했는데, 그 금액이 1조 달러에 달한다. 그 결과, 각국 정부는 자국의 경제발전보다는 일반적으로 해외에 있는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데 더욱 몰두하고 있다. 풍부한 석유의 적법한 소유자가 누구인가, 즉 왕실, 왕실가족, 국영기업, 이들의 자금을 보유 중인 외국은행 또는 그 국가 전체 중 누구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대두된다. 여하튼 아랍세계는 석유수입의 하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다. 활용 가능한 매장량은 미래 전 세계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인도와 중국의 중산층 증가와 함께 에너지 수요도 늘어났다. 하지만 석유 수요는 재생가능자원 개발, 그리고 특히 기후온난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동차산업의 기술발전으로 다소 주춤하다. 그리고 전 세계 시장에 셰일가스가 등장하면서 유가하락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게다가, 유가결정 메커니즘이 크게 변화했다. 석유의 화폐가치는 이제 더 이상 생산량(아랍의 석유수출국들이 강점을 가짐)보다는 정제변화 및 파생상품으로의 변환(플라스틱이나 석유화학 재질 등)에 따라 평가된다. 이 때문에 세계 에너지 시장의 세계화가 촉진됐고, 석유의 원산지는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그리고 석유채굴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아랍 국가들의 영향력은 계속 감소했고, 그 대신 시장 중개인의 힘이 세졌다. 오래전, 원유가격을 좌지우지했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제 유가를 결정하기보다는 기록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석유’의 힘이 쇠퇴하는 것은 장기간의 불황을 뜻한다. 석유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보다 지속가능한 자원으로 다각화하면서 긴밀한 협력을 독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다자간 전략을 통해 신성장 분야를 파악하고, 국가들 간의 비교우위를 특화할 수 있다. 석유수출국이 아닌 북아프리카 및 근동지역 국가들 중에는 이미 전도유망한 산업 분야를 보유한 국가가 있다. 튀니지의 관광업과 농업, 모로코의 관광업, 인산염, 제조업, 요르단의 섬유산업, 제약업 등이 그 예다. 

아랍세계의 통합은 아랍의 봄처럼

하지만 기존의 안락함에서 벗어나려면, 위험을 최소화하고 단기간 고수익을 내는 것에만 투자하려는 본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석유수출국들은 태양에너지에 거의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 석유와 달리 태양에너지는 비축하기가 어려운 만큼, 신속한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경제 다각화는 활발한 이민과 노동시장의 개방이 있을 때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우선 걸프만 국가들이 채택 중인 노동계약제도인 카팔라(Kafala) 체제를 포기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지위가 거의 노예 수준인 이 체제를 포기하고, 노동자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노동권을 도입해야 한다.(3)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매년 해외로 유출되는 엄청난 자본 중 일부를 자국 시장으로 다시 끌어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아랍지역의 재외 자국민들에게 노동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 

물론 산업 다각화에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여와 공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정치적 비용이 들겠지만, 당분간 이를 지불하고자 하는 정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있었던 걸프만 왕국 간 전기망 연결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이 프로젝트는 전기 생산비용과 보급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안됐지만, 프로젝트에 서명한 6개국 특히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불화로 완성되지 못했으며, 제대로 활용되지도 못했다. 아랍국가 중 대부분이 경제통합을 원한다고 해도, 장기적 관점의 경제통합을 위해 단기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데는 현재로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인 갈등관계가 정점에 달했고, 아랍국가들 간 합의를 끌어낼 리더가 될 만한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리더 역할을 담당했던 이집트는, 현재 지역 내 정치·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엄청난 부를 자랑하지만, 주변국과 연합할 능력은 부족하다. 

아랍세계는 아랍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EU는 가장 가까운 정치·경제적 파트너지만, 제국주의 말부터 서구는 아랍통일국가 건설에 도움보다는 방해가 돼왔다. 과거에서처럼 현재에도 미국과 프랑스, 영국, EU는 아랍권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보다는 해당 지역 내 국가와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아랍국가가 서구에 기대하는 바도 크지 않지만, 아시아에 기대하는 바는 더욱 적다. 러시아도, 중국도 아랍세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이용하고 싶어 할 뿐, 아랍세계의 통일에 대한 전략적인 관심은 조금도 없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와 근동을 잇는 원대한 ‘신(新) 실크로드’ 계획은 현재의 헤게모니를 자국의 헤게모니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랍 내 문제의 해결책은 다른 곳이 아닌 아랍세계 내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아랍국가 대부분은 먼저 국가와 자국민과의 관계를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거나 지역협력을 구축할 수 없다. 권위주의보다는 민주주의를, 특권보다는 정의를, 그리고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보다는 투명성을 지향한다면, 지역통합문제를 논의할 이상적인 조건이 구축될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EU의 경우에서 보듯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원주의 체제는 경제협력 면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당사자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분야에 정당한 보상을 하는 등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공익을 고려하고,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난관을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치국가는 사사로운 이익에 휩쓸리는 소수 엘리트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지역통합이 성공하려면, 모든 파트너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조건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 중, 아랍 국가는 아무 것도 갖추지 못했다. 통합의 이익에 대해 아랍 국가를 설득할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아랍세계의 혼란은 극에 달했고, 정치·경제적 통합은 각국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의 길이 됐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안심하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에서 불안정의 시기는 계속되고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단결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반면, 아랍세계는 서구를 등에 업고 구체적인 안전협정이 마련됐지만 1990년의 쿠웨이트 침공에서부터 현재 시리아 내전까지 그 어떤 재난도 막아낼 수 없었으며,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전국토가 황폐화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아랍세계의 지역통합은, 새로운 ‘아랍의 봄’의 단계에서처럼 국가기능을 변화시킬 만한 내부적인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글·히참 알라위 Hicham Alaoui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 <Journal d’un prince banni : Demain, le Maroc(추방당한 왕자의 일기)>(Grasset, Paris, 2014)의 저자.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UN개발계획(UNDP), <2016 아랍 인간개발 보고서>, 2016
(2) 파티하 다지-에니, ‘사우디의 야욕이 걸프지역을 위기로 내몬다(Drôle de guerre dans le Golf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7년 8월호.
(3) Nazim Kurundeyr, ‘Derrière l’eldorado, l’enfer(엘도라도 뒤의 지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6~7월호 특집기사(Manière de voir) ‘Les monarchies mirages(신기루 왕국)’.